예술적인 장난감?
지난봄 미술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의 작품 낙찰. 4월 1일 홍콩에서 열린 소더비(Sotheby’s) 경매에는 그의 ‘카우스 앨범(The KAWS Album)’이 출품되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심슨 가족을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었는데요. 심슨 가족이 발매한 ‘노란 앨범(The Yellow Album)’이라는 음악 앨범 커버를 차용했습니다. 심슨 가족은 카우스 특유의 시그니처 ‘X’ 형태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왼쪽 아래에는 불상 같은 ‘친구(Companion)’가 앉아 있었습니다.
약 9억원에 시작한 작품 가격은 빠르게 올라갔습니다. 전화로 누군가가 원하는 가격을 말하면 현장에서는 패들을 들고 더 높은 가격을 불렀죠. 경매사의 지휘 아래 가격 경쟁은 빠른 박자의 음악처럼 한참을 흘렀습니다. 결국 경매사는 ‘땅’ 하고 망치를 내려쳤고 상상치 못한 결과에 박수가 터져 나왔죠. 최종 낙찰가는 무려 시작가의 18배가 넘는 약 167억원!
단 한 번의 이례적인 낙찰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뒤 5월 16일 뉴욕에서 열린 필립스(Phillips) 경매에 그의 작품이 다시 나왔죠. ‘집으로(The Walk Home)’는 ‘X’ 형태의 눈을 가진 스폰지밥이 팔다리를 힘껏 뻗은 작품인데요. 잘린 팔이 가득한 괴이한 배경으로 스폰지밥이 느끼는 공포심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약 7억원에 시작한 이 작품 역시 약 70억원의 가격에 낙찰됐습니다.
카우스의 작품이 경매에서 흥행하는 것은 다른 나라 일이 아닙니다. 상반기 우리나라 경매 회사의 작가별 낙찰 총액 순위를 살펴볼까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작가별 낙찰 총액 17위였던 카우스는 10위로 상승했습니다(참고로 1위가 김환기, 2위 르네 마그리트, 3위 이우환, 4위 클로드 모네, 5위 박수근). 생존 해외 작가 중에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카우스의 움직임은 이례적인 이벤트라기보다 새로운 흐름입니다. 그가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면 오픈 당일, 작품을 예약해둔 손님들에 의해 완판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 갤러리와 경매에서만 사랑받는 상업적인 작가라고 쉽게 말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죠. 지난 2016년 포스워스 현대미술관(The Modern Art Museum of Fort Worth)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이 작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는 것은 미술사의 흐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작가가 되었다는 의미니까요.
과거 서브컬처의 일부로만 여겨졌던 스트리트 아트, 아트 토이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대가의 작품 사이에서 그들의 작품을 발견하는 것 또한 익숙한 일이 되었고요. 명확하지 않은 경계와 대중할 수 없는 컬렉터층, 들쑥날쑥한 가격대에 이를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까지, 여러 가지 요소가 뒤엉킨 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순항 중이죠.
앤디 워홀이 만화와 광고를 사용해 회화를 제작했을 때 미술계는 그를 외면했습니다.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 작품 형태의 지형도가 새롭게 완성되는 시기였죠. 미술과 광고, 패션, 언더그라운드 음악, 독립 영화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의 활동 범위는 명확하지 않았고 불명확한 자의 활동은 상업디자인을 끌어들여 순수 미술을 궁지로 몰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대 현대미술사에서 대체할 인물이 없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죠.
카우스는 한쪽은 순수 미술에, 다른 한쪽은 아트 토이와 패션 등 상업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술 감각과 영리함으로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적 행보를 걷고 있죠. 그는 지난해 7월, 석촌호수에 거대한 ‘친구’를 띄웠습니다. 37m에 달하는 ‘친구’는 이후 타이베이, 홍콩, 미국을 거쳤고 이번에는 일본으로 향했어요.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친구’처럼 전 세계를 누비는 카우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아마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시간일 거예요. 지금 우리가 앤디 워홀을 읽어내듯 카우스를 읽어낼 미래의 시간 말입니다.
-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Sotheby's, Phillips
- 컨트리뷰팅 에디터
- 김한들(큐레이터,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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