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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때문에 고민인가요?

2019.08.09

우정 때문에 고민인가요?

주목받는 젊은 시인 문보영이 ‘우정’을 주제로 한 책 세 권을 추천합니다.

로베르토 볼라뇨 <전화>

<전화>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이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속 화자는 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다. 인물 과다형 소설이랄까.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외로울 틈이 없다. 재미있는 건, 화자와 관계 맺고 있는 인물들은 연인도 아니고 지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라는 점이다. ‘안 친한 지인들’에 관한 소설이랄까. 그들을 친구라고 칭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걔 누구야?” 하고 물을 때, “아, 그냥 친구야”라고 말할 때의 그 “친구”. 연인도 아니고 뜻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도 아닌, 그냥 지인에 가까운 사이를 칭하는 소극적 의미의 친구 말이다. 볼라뇨는 그런 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애정과 우스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친구나 가족 혹은 애인이 아닌, 그냥 스쳐 지나가는 편이 자연스러운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어쩌면 인간 자체에 관한 관찰과 애정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로맹 가리 <그로칼랭>

볼라뇨의 <전화>가 소극적 의미의 친구에 관한 소설이라면, 로맹 가리의 <그로칼랭>은 동물 친구,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소설의 화자 쿠쟁은 사람이 결핍을 느끼는 이유는 팔이 두 개밖에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여분의 팔을 열망한다. 퇴근 후, 자신이 키우는 뱀(그로칼랭)이 그의 몸을 칭칭 감아줄 때 그는 잠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뱀은 공포와 미움의 대상이며, 사람들은 쿠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을 해도 자꾸 미끄러지는 것이다. “애정은 내부에 구멍을 파고 자기 자리를 만들어놓지만 막상 거기에 애정이 없기 때문에 의문이 생기고 이유를 찾게 된다”고 쿠쟁은 말한다.

에르베 기베르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이 소설은 기베르의 애인이었던 푸코(뮈질)에 관한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뮈질은 도중에 죽고, 그 후에 그 없이 소설이, 삶이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작품이 끝날 때 인물이 생을 마감해주는 것만큼 이상한 것도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게 놓아두고 서사는 진행된다. 이 소설에서 뮈질보다 더 눈길이 가는 인물은 빌이다. 빌은 화자의 친구이다. 빌과 화자가 지루하고 묘하게, 긴 시간을 두고 싸우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한 가지 재미이다. 빌은 우아한 개자식이다. 나는 과연 글에서 친구를 우아한 개자식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어쩌면 친구들은 다 우아한 개자식인지도 모른다. 기베르는 우정을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우정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피처 에디터
김나랑
문보영(시인)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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