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에 찾아온 특이점?
우리는 삼겹살의 민족입니다. 외식할 때 삼겹살은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 메뉴죠.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지만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도 대충 삼겹살집에 가면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밤 11시의 치킨과 비슷하죠. 삼겹살을 필두로 목살, 항정살에 갈매기살 등 특수 부위까지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유독 사랑해서 구이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소스도 다양하고 찬도 다채로워졌죠. 해외에서도 ‘코리안 바비큐’는 K-팝과 함께 한국의 인기를 쌍끌이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치채셨나요? 언젠가부터 냉삼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개업한 잠수교집이 히트하며 고깃집에 새로운 유행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이전까지의 삼겹살은 전문가가 구워주지 않으면 잘 굽기 힘든 두툼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는데 역으로 몇 밀리미터 두께로 얇은 삼겹살이 등장하고야 만 것이죠. 인건비 부담도 덜하고, 뉴트로 열풍에 딱 맞는 아이템인 냉삼은 잠수교집 이후 행진, 대삼식당, 랭돈 등이 등장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냉삼 노포인 나리의 집과 전주집, 문경식당도 새삼 힙스터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되었죠.
이베리코, 듀록 같은 특수한 품종의 돼지고기도 냉삼 이후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대부분 세 종류의 돼지를 교배해 생산성 좋고 맛도 좋게 만든 YLD라는 품종인데요, 어려운 말로 삼원 교잡종이라고도 해요. 특수 품종 돼지고기로 이름난 곳은 대표적으로 금돼지식당을 꼽을 수 있죠. 국내산 듀록을 사용합니다. 일반 YLD보다 감칠맛이 더 강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한 향도 깊은 돼지 품종이에요. 생산성이 떨어져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살짝 비싸지만 그만한 값을 합니다.
스페인에서 온 이베리코는 두말할 것도 없죠. 한우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배꼽집 등 초기부터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도입한 식당 이외에도 이젠 동네 곳곳마다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이 흔해졌습니다. 이베리코는 도토리를 먹고 자연 방목으로 자란 베요타부터 여러 등급이 있지만 아무튼 이제까지 먹던 돼지고기와 판이하게 다른 소고기 같은 육향과 짙은 육색 등 새로운 경험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최근엔 돼지고기에 새바람이 불자, 소고기에도 새바람이 이어지네요. 돼지고기 중 냉삼이 컷(정형)으로 색다름을 시도한 것처럼 소고기에서도 컷으로 새로움을 시도합니다.
평일에도 최소 1시간 웨이팅은 각오해야 하는 몽탄은 지난해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화제가 되었습니다. 짚불에 구워 매캐한 향이 듬뿍 밴 우대갈비가 대표 메뉴입니다. 원시인의 도낏자루처럼 큼직한 갈비뼈에 두껍게 고기가 붙어 있어 비주얼부터 군침이 돌죠. 소갈비나 갈빗살은 소고기구이에서 전혀 색다를 게 없는 부위입니다. 익히 아는 맛이죠. 그러나 몽탄의 성공 비결에는 독특한 커팅이 큰 역할을 했어요. 대개 갈비는 갈비뼈를 짧게 쳐내 고기를 저며내는데, 몽탄의 우대갈비는 뼈를 길이대로 두고 뼈에 붙은 고기는 저며내지 않고 통째로 구워줍니다. 가장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봄으로써 새로운 맛을 창조했달까요? 새롭게 시도한 소고기 컷이 우리의 입맛과 인증샷 욕구를 저격했습니다.
몽탄에 이어 새로운 컷으로 주목받는 따끈따끈한 소고깃집도 얼마 전 등장했습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 근처인데요, 허름한 골목에 백송이라는 매끈한 간판을 붙이고 매장 밖으로는 갈비 두 채를 주렁주렁 매달아두어 박력이 넘칩니다. 8월에 오픈했는데 이미 소문을 듣고 장안의 먹보들이 모여들고 있다죠. 백송이 화제 몰이 중인 신박한 컷은 서대살. 활처럼 휜 뼈에 마블링이 찬란한 고기가 붙어 있는 처음 보는 비주얼입니다. 1++등급의 촘촘한 마블링에서 고소한 육즙미가 느껴지죠. 그런데 잘 보면 이 또한 아는 맛입니다. 바로 부챗살 또는 낙엽살이라고 하는 부위인데 뼈에 붙은 채로 나오는 것이 차이점이지요. 뼈를 제거하지 않은 덕분에 뼈와 살코기 사이 쫄깃쫄깃한 근막까지 먹을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흔한 것 하나도 다시 보면 새로운 맛이 되는, 고기 특이점의 시대인가 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색다른 시도가 이어질지, 가위와 집게를 들고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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