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for the Road
다른 길을 걷던 세 사람이 한길에서 만나 같은 비전을 공유했다. 그 길의 끝에서 ‘콜빌’이 탄생했다.
개인이 ‘쉽게’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그러나 지금 소개할 여성 세 명은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숙고의 시간이 걸렸다. 영국 <보그> 전 패션 디렉터 루신다 챔버스(Lucinda Chambers), 마르니 출신 디자이너 몰리 몰로이(Molly Molloy)와 크리스틴 포스(Kristin Forss)는 패션계의 중심에서 일해왔다. 몰라서 무모한 것과 달리, ‘그 바닥’을 너무 잘 알면 현실감 있게 비전을 꿈꿀 수 있다. 루신다는 <보그>를 통해 수많은 디자이너를 만났고 시대상에 비추어 그들을 재해석했으며 신인 디자이너가 하우스의 수장까지 올라가는 타임라인을 지켜봤다. 그리고 몰리와 크리스틴은 마르니라는 브랜드가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베테랑 3인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기 위해 론칭한 ‘콜빌(Colville)’은 다각도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매치스패션 한정판으로 대중과 처음 만난 콜빌이 분더샵을 통해 서울에 상륙했다. 한국 첫 팝업 스토어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세 사람을 <보그>가 만났다.
Vogue Korea(이하 VK) 영국 <보그>에서 36년간 일하며 수많은 브랜드를 봐왔다. 그렇다면 루신다 당신이 이제껏 봐온 브랜드와 콜빌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Lucinda Chambers(이하 LC) 패션 에디터는 하나를 보아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콜빌에 대해 말하자면, 독특한 관점을 지닌 브랜드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옷. 입었을 때 기분이 좋은 옷. 콜빌은 하나의 이미지로 정의된다기보다 제각각의 아이템을 합쳤을 때 좋은 시너지를 낸다는 것. 말하자면 활기가 넘치는 캐릭터다.
VK 그렇다면 당신의 문장으로 콜빌이 지향하는 세계관을 설명한다면?
LC 용감하고(Brave), 대담하고(Bold), 두려움이 없는(Fearlessness) 그리고 뒤틀린 엘레강스(Twisted Elegance).
VK 최근 흥미로운 패션 뉴스가 있다면?
LC 재미있는 사실은 현시대엔 특정 트렌드가 없다는 것이다. 트렌드에 자유로운 시대다. 어떤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VK 몰리, 당신은 마르니에서 오래 일하며 배운 점도 많겠지만, 일하는 방식이 힘들었을 것 같다. 빡빡한 디자인과 제작 스케줄, 연이은 런웨이 쇼 등. ‘번아웃’에 빠지기 쉽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온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나?
Molly Molloy(이하 MM) 마르니에서 정말 많은 쇼를 발표했지만, 윤리적 시스템의 브랜드였다. 모든 직원의 시간을 존중하는 회사였다. 어시스턴트라도 제시간에 퇴근하고 주말을 보장했다. 물론 쇼를 열 때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루에 100가지가 넘는 결정을 해야 했지만 결정할 때 자신감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더불어 벼랑 끝까지 몰아붙여야만 엄청난 게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4시간 패션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 밖의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콜빌로도 이 철학을 지키고 싶다. 일할 때의 즐거움이 옷에 적용된다는 사실 말이다.
VK 콜빌 외에 당신의 옷장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브랜드는?
MM 빈티지 아이템을 정말 많이 산다. 집 근처에 훌륭한 수선집이 있는데 그곳에서 디자인을 이리저리 해체하며 커스터마이징한다.
VK 지금 패션계는 ‘어떤 디자인’의 옷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현실적인 옷’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MM 동의한다. 레퍼런스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어렵다. 고객들은 본인이 쿨해 보이는 옷을 입고 싶어 하지, 이상하게 비쳐지는 옷을 입고 싶어 하진 않는다.
VK 크리스틴에게는 계절성(Seasonality) 외에 콜빌이 벗어나려는 기존 패션의 문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Kristin Forss(이하 KF) 여행을 많이 다니는 요즘 사람들을 위해 계절의 경계가 없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콜빌은 시즌과 시즌을 믹스해도 어색하지 않게 옷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소 예전 방식인 런웨이 쇼를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브랜드를 보여주는 창의적인 방법이 정말 많으니까. 9월 밀라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보그> 팀도 꼭 와주길.
VK 콜빌이라는 이름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70년대 즐겨 찾던 거리에서 따왔다. 호크니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LC 파리 생로랑 뮤지엄에서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 시리즈를 봤는데, 정말 대단했다. 살면서 본 전시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다. 현대적이면서도 감동적이었다.
MM ‘클라크 부부와 퍼시’. 구도, 그리고 서로가 끌어당기면서도 거리감이 있는 게 좋다. 무엇보다 컬러감, 그리고 두 인물의 시선이 매력적이다.
KF 내겐 호크니의 폴라로이드 작업이 인상적이다.
VK 2019 F/W 시즌, 각자가 마음에 드는 룩 혹은 아이템 하나씩을 꼽는다면?
LC 5번 룩. 크롭트 재킷의 테일러링과 플레어 스커트의 조합이 꽤 좋다.
MM 1번 룩. 오버사이즈 프린트 패턴 스웨터와 플라워 패턴 스커트. 콜빌의 클래식 룩이다.
KF 콜빌의 로고 티셔츠와 그 위에 레이어링한 플라워 패턴 원피스, 소매 부분만 남긴 재킷. 이 또한 콜빌의 아이코닉한 룩이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다.
VK 어느 인터뷰에서 셋이 같이 협업하되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MM 서로를 믿고 또 존중하기 때문이다.
LC 셋이 지닌 강점과 약점을 아는 게 중요하다. 서로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는 데 집중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뭉치는 힘이 약해질 수 있는데, 반대로 셋은 서로 다른 관점을 기반으로 강해진다. 또한 디자이너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이 지워지면 고립되고 또 큰 도전이지 않나. 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전적이 있고 또 이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우정도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VK 패션계 지인 혹은 고객으로부터 들은 칭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LC 디자이너들의 코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디자이너들과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많은 디자이너들이 내게 “콜빌은 쿨하다”라고 말해주었다. 어덤의 디자이너 어덤 모랄리오글루 역시! 오늘 같이 촬영한 한국 모델이 콜빌의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이보다 기쁜 게 없다. 누군가 우리 옷을 입은 걸 보는 것만큼 잊을 수 없는 멋진 경험이 있을까.
VK 셋 모두 영국 출신이다. 오늘날 ‘영국 패션’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LC 우선 콜빌은 영국 브랜드라고 할 순 없다. 요즘은 다국적 인물들이 각 패션 도시의 브랜드에서 일하기에 특정 국가의 성향이 패션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KF 교육적 측면에서 ‘영국적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패션 스쿨을 거친 많은 디자이너가 있으니까.
MM 덧붙이자면 영국은 개성을 존중하고 또 칭찬하는 문화가 있다. 어릴 때 학교 친구들이 모두 데님 재킷을 입어 나도 정말 입고 싶던 때가 있었다. 아빠가 나를 거울 앞에 세워두고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으냐”고 물으신 게 기억난다. 나는 “네”라고 답했지만, 하하! 그 길로 아빠가 백화점에 가서 주머니가 네 개 달린 보라색 코듀로이 재킷을 사주셨다.
VK 지속 가능성이 여전히 화두다. 브랜드 콜빌은 이 이슈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또 행동하려고 하나?
MM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퍼프 소매 카디건 스타일 아이템은 90년대 빈티지 트랙 수트를 업사이클링한 것이다.
VK 오늘날 컨템퍼러리 패션 브랜드에 필요한 자질은 뭘까?
KF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누구도 당신이 될 수 없으니까.
- 에디터
- 남현지
- 포토그래퍼
- 오희현
- 모델
- 박서희, 김아현
- 헤어
- 조미연
- 메이크업
- 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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