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멘키스가 품평한 2015 S/S 파리 패션 위크 2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수지 멘키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저널리스트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현재 <인터내셔널 뉴욕 타임즈>로 이름이 교체됐다)에서 25년 간 패션 비평을
담당한 그녀는 현재 세계 각국의 ‘보그닷컴’을 위해 독점 취재 및 기사를 쓴다.
솔직하고 용감하며 자유로운 요지 야마모토는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에 가기로 결심했다. “섹시해지기를 원했어요!”라고 얌전함과 순수함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말했다. 지금껏 피부에 대한 그의 탐구는 뒤쪽의 플래시처럼 신체를 잠깐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는 한때 영국 시인이 ‘옷의 멋진 무질서’라고 표현했고 프랑스어로는 ‘데자비에(déshabillé)’라 부르는 것에 기반한 컬렉션이 있었다. 짙은 색조의 미끄러운 단들이 흘러 내린 어깨, 수수한 롱 스커트, 번아웃되어 아래쪽의 신체를 흐릿하게 보여주는 패턴 등등. 그리고 요지에게 친숙한 50가지의 블랙 색조들이 있었다. 톱 아래 입은 팬츠는 허리의 맨 살을 보여줬고, 측면이 잘린 턱시도는 맨다리를 드러냈다.
작은 은색 의자에 앉은 청중들의 앞뒤로 모델들이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걸어나오며 긴장감이 조성됐다. 풀린 실들이 매달린 것부터 은색 그물망과 금색 조각들까지. 또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금색 새틴과 부츠 등등. 이 예기치 않은 에로티카(erotica)에 대한 탐험은 요지에 의해 대범함을 드러냈다. 의자 주위로 꾸불꾸불하게 움직인 모델들의 느릿한 걸음을 보며 나는 영화 <피아노>를 떠올렸고, 박물관 구석에 숨겨진 에로틱한 일본의 그림들을 생각했다. 미소 띤 디자이너가 연인 앞에서 모자를 들어 올리듯, 관능성에 대한 요지의 긴 구애는 꽃으로 치장한 신부로 마무리.
Maison Martin Margiela
오뜨 꾸뛰르가 레디 투 웨어로 해석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디올 쇼에 의해 제기됐다. 두 시간쯤 후, 같은 주제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 하우스가 7월 꾸뛰르 위크 때 발표한 아티저널 컬렉션은 신체의 매끄러움을 드러니개 위해 역사적인 옷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쉽게 해석하기 힘든 아름다움이었다.
이번 컬렉션의 주된 모티브는 신축성이 있는 거즈인 것 같다. 얇은 베일로 가려진 알몸 위로 작은 창문 크기가 아닌 넓은 문 크기의 틈을 내며 양말 같은 옷감이 피부 위로 신축성 있게 늘어졌다. 속옷들은 각진 옷감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이것은 허벅지에 둘러진 스커트나 비치 사롱처럼 때로 꽤 근사해 보였다. 그러나 허벅지를 가로지르며 삼각형으로 잘린 옷들은 반복적이었고 종종 어색했다. 빽빽한 패턴의 옷감으로 제작된 멋진 옷이 등장하면서 반나체 효과는 점차 희미해졌다. 결과적으로 컬렉션에는 좋아할 만한 것은 많았지만 사랑할 만한 것은 없었다.
Undercover
쇼는 파스텔 색상의 크리놀린에 내재된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으로 시작됐고 검은 새로 끝마쳤다. 혹은 디자이너 준 타카하시(Jun Takahashi)의 말대로, 소녀들은 순수함으로 시작해 점점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 런웨이에 놓인 커다란 장밋빛 체리들(그 중 하나는 해골로 만들어졌다)로 시작한 강렬한 쇼에는 다른 것들도 많이 전시됐다.
위협적인 느낌은 여성스러운 트렌치 코트나 보머 재킷처럼 치밀하게 기획된 채 스포티한 옷들 사이에 배치됐다. 미묘하게 비율이 바뀐 채 클래식한 형태를 새롭게 만든 옷들이었다. 디지털화된 생생한 이미지들이 주머니 밖이나 핸드백의 옆면에서 깜박거릴 때 그게 애플의 새 기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뒤 줄거리를 이해했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 하지만 타카하시는 컬렉션에 사상과 아이디어들을 끼워 넣을 줄 아는 흥미로운 디자이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에서 따온 이미지가 프린트된 드레스들은 순수의 개념이 타락으로 빠져드는 또 다른 면을 추가한 것이다. 쇼는 환상을 강화하는 크고 까만 깃털들을 단 까마귀처럼 까만 옷들로 마무리됐다. 전세계 젊은 디자이너들은 언더커버의 컬렉션들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다카하시의 컬렉션은 늘 연구, 상상, 독창성의 교본이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쉬운 옷들로 구성되어있으니까.
Loewe
LVMH가 아일랜드 태생의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의 손에 넘긴 스페인 패션 하우스! 로에베 위한 새 날이 밝았다. “하우스의 코드 재확인에 관한 거지만, 좀더 공기처럼 가벼운 느낌을 원했어요. 쇼를 아침에 열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죠. 일상복이 주를 이루고 풍경의 어떤 특징을 관찰하는 것에 대한 컬렉션입니다.”
디자이너가 모델들이 걷던 현대식 유네스코 본부의 외부 테라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로에베 남성복이나 바뀐 라벨, 그리고 광고처럼 모래색 스웨이드 코트를 입고 같은 재질의 조각들을 몸에 걸친 여성들은 로에베 본고향인 마드리드보다 이비자 섬에서 쉽게 볼 듯 했다. 게다가 후반에 등장한 갈기갈기 찢긴 백은 한층 더 고급스러운 히피족 같았다. 조나단 앤더슨이 여성복을 디자인한지는 겨우 4년이지만 그는 로에베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과거 기록에서 따온 실크 스카프 패턴이 라텍스에 프린트된 것과 함께 이 스페인 하우스는 디자이너가 부드럽고 유연하게 손질한 가죽으로 더 유명해질 것이다. 70년대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없었으나 앤더슨은 색색의 가죽으로 수작업한 표면장식 등으로 그 분위기를 포착했다. 한편 선명한 색상의 팬츠들이 눈에 띄었고 여기엔 꼼꼼히 짜인 스웨터들이 함께 매치됐다. 결과적으로 이번 옷들은 믿음이 갔고 여전히 쇼의 핵심이었던 가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Chalayan
샬라얀 쇼의 배경은 무어인(Moorish, 아프리카 북서부에 살았던 이슬람 종족으로 8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했다) 격자구조물이었다. 이 격자무늬는 처음엔 바닥에 비쳐졌다가 후반부에는 드레스 패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피날레는 회색 부르카를 쓴 여성이 밖을 응시하는 모습이 그려진 우아한 패턴의 드레스였다. 그러나 당황한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이 “아니다!”라고 백스테이지에서 말했다. 모델들이 머리를 감싼 것만 제외하고 옷을 벗는 다양한 단계를 검은 옷으로 표현했던 16년 전 자신의 독창적인 컬렉션은 이 쇼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 쇼는 패션 역사에 기록됐고 현재 아랍 지역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뭔가 불쾌하게 꿰뚫어보는 듯 보였다. 따라서 당신은 샬라얀이 이전 컬렉션과의 관계를 부정할 때 그를 믿어야만 한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이번 시즌의 영감은 스페인과 머그레브 사이의 관계였다고 설명했다. 북아프리카에 대한 힌트는 프린트들과 오렌지 나무 모양의 자수들, 또는 지중해 양쪽의 무어인식 건축에서 발견 가능한 패턴들에 있었다. 더 긴 치마를 만들기 위해 펼쳐진 드레스를 제외하고, 이것은 샬라얀의 빛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프닝의 검은 의상들은 롱 스커트의 옆트임을 통해 다리를 힐끗 보여줬고 포트레이트 목선을 지닌 가볍고 예쁜 드레스들과 얇은 천으로 된 모자도 있었다.
이들은 스페인 여성들의 고귀함을 종종 표현했으며 격자무늬 프린트에서는 모로코적인 색조가 깃들어 있었다. 이 모든 것들 것 가볍고 공기 같은 컬렉션을 완성했다. 그런데도 샬라얀은 이번 컬렉션에 ‘무어인의 응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제목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 있는 게 확실하다.
Jean Paul Gaultier
립스틱을 바른 키스자국으로 얼굴이 뒤덮인 장 폴 고티에가 그의 기성복 쇼를 끝마칠 때, 까뜨린느 드뇌브는 눈물을 닦았고, 보이 조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들어올렸다. 디자이너의 악명 높은 마돈나 스타일의 코르셋을 입고 가짜 미인대회에 오른 스페인 여배우 로시 드 팔마(오랫동안 고티에의 뮤즈)를 응원하면서 르 그랑 렉스(Le Grand Rex)의 관중들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대회에서는 또 다른 피부빛 코르셋을 입은 모델 배우 코코 로샤가 우승했다. 그것은 ‘성숙한’ 모델들의 기이한 행진이 섹시한 젊은 남성들에 의해 무대 위로 등장하고, 가장 상스럽고 외설적인 JPG 의상으로 ‘축구선수들의 여자들(축구선수의 아내들)’이라는 라인업을 보여준 뒤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아, 그 옷들! 고티에가 자신의 기성복 컬렉션을 마무리 짓는 무심함은 모든 것을 간결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엄격히 재단된 턱시도들은 성적인 자유에 대한 JPG 심볼 중 하나처럼 한쪽 면이 잘라져 여자의 몸을 지배했다. 고티에는 컬렉션을 둘로 나눴다. 하나는 그가 지속적으로 보여줄 꾸띄르의 기본이 된 완벽한 테일러링, 다른 하나는 스포츠웨어. 스포츠웨어는 ‘코코’ 로고로 장식된 실크와 스트레치 옷감 뭉치였다. 그 로고는 디자이너의 짓궂은 재치가 담긴, 다시 말해 코코 로샤보다 코코 샤넬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쇼가 찬란한 금빛 색종이조각들로 마무리되기 전, 또 다른 무리들이 무대에 올라왔고 고티에는 청중들을 향해 거칠게 달려갔다. 나를 포함한 패션 에디터 동료들이 런웨이에서 풍자되거나 명예를 얻었다. 그레이스 코딩턴은 연한 적갈색 머리카락, 카린 로이펠드는 그녀의 조각같은 광대뼈, 프랑스 <보그> 편집장 엠마누엘 알트의 록시크,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 프랑카 쏘자니의 숱 많은 보티첼리 금발 등으로. 그렇다면 나는? 무대에 오른 내 앞머리 스타일에 대해 훌륭한 디자이너로부터 들은 강력한 칭찬으로 여겼다.
그는 이미 다음 1월 꾸뛰르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기에 고티에의 유산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감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인종적 문제들이나(그는 캣워크에 맨 처음 혼혈 인종을 세웠다) 속옷을 거리로 가져다 놓은 원뿔형 브래지어 같은 성적 이슈들을 무대에 올린 데 대해 칭찬받을 만 했다. 그 후 게이 프라이드로 발전한 캣워크에 대한 발명도 있었고, 그의 깊은 지식과 멋진 재단실력의 핵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파리지엔 특유의 시크함까지! 파리 프레타 포르테는 고티에가 없이는 희미하고 둔해지며 재미없어질 게 분명하다.
Comme Des Garçons
옷들은 흐르는 피처럼 선홍빛이었고 땅에서 뽑은 장미처럼 붉었으며 패션이 될 수 있을 만큼 심오했다. “장미들과 피예요.” 꼼데가르송 쇼를 끝마친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가 말했다. 그녀는 18세기 궁정사람 같은 회색 곱슬머리에 빨간 부츠를 신은 붉은 여성들의 중단되지 않는 흐름을 분명히 보여줬다. 각각의 옷을 구성하는 과장되고 비틀어지고 세공된 모든 옷감들은 다 같은 색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고급스러운 방식 덕분에 섬뜩해지지 않았다. 몸 위로 감긴 레드 테이프는 실제로 피부 위에서 빛을 냈다. 그리고 모델의 빨간 입술은 투명한 모자 속에서 미소를 띠었다. 전체적으로 버클이 달린 벨트로 제작된 코트의 라펠은 다른 의상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사운드 디자이너 프레드릭 산체스(Frédéric Sanchez)에 의해 준비된 음악은 선 오(Sunn O)였다. 가발을 쓴 채 하얀 날개를 달고 장미가 가득한 코트를 입고 폐허가 된 공업단지를 걸어가던 첫 룩처럼 “계속해서 움직여”라는 사운드트랙이 들렸다. 꽃들의 행진은 계속됐고 가죽과 딱딱한 소시지 모양의 옷감으로 서서히 교체됐다. 가슴에 감겨있거나 더 길고 굴곡 진 옷감들은 기이하다기 보다 예술적이었다. 이 정교한 드라마에는 유혹이 존재했다. 돌아서면 맨 등을 드러내는 드레스가 있었고 프루 프루(frou frou) 스타일의 러플들이 속바지에 장식됐다. 카와쿠보에게 흔히 있었던 것처럼 대혼란 속의 아름다움! 폭력적인 싸움 뒤에 붉은색이 튄 듯한 부풀린 듀벳 코트조차 매력적이었다. 꼼데가르송 쇼는 여름 옷이라거나 바이어를 위한 아이템으로 보긴 어려웠다. 이것은 철저히 본능적이고 감정적 반응에 관한 것. 그건 검은 옷을 입은 자그마한 체구의 디자이너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장미들과 피예요.”
Olympia Le-Tan
올림피아 르탱의 장난기 많은 여학생들이 런웨이를 걷고 있을 때, “우리에겐 교육이 필요 없어요”라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유명한 가사가 무대 뒤편의 칠판에 분필로 적혀져 있었다. 책을 모방한 위트 있는 핸드백으로 일을 시작한 디자이너가 그녀의 아이러니를 옷에 옮겨 놓았다. 그런 뒤 올림피아는 펜슬 스커트를 재창조하며 자신의 기술을 빠르게 보여줬다(그 늘씬한 스타일에는 연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교복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컬렉션을 위한 영감은 세인트 트리니안스(St Trinian’s)에서 따왔어요.”
해리포터와는 너무 다른 가상의 여학생 기숙학교를 언급하며 디자이너가 말했다. 올림피아는 학생다운 스트라이프, 위트 있는 프린트, 단추들과 끝이 짧게 잘린 타이들을 사용해 소녀적인 옷에 가짜 순수함을 더했다. 잘 재단된 드레스들과 오버사이즈 블레이저들은 학교가 교복을 요구한다면, 프랑스 소녀들이 얼마나 시크하게 보일 지를 확인시켰다. 가방도 마찬가지. 필통부터 시작해 책과 지리학 수업에서 가져왔거나 르탱이 글로벌화되고 있다는 신호인 지구본 형태까지 재치로 가득했던 쇼!
Haider Ackermann
“제 사생활에는 좀더 부드러운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토록 부드럽고 다분히 핑크빛과 회색빛을 띠는 이유죠. 그리고 제가 떠올린 꽃은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이예요.” 보들레르(Baudelaire)의 에로틱한 시집을 언급하며 하이더 아커만이 말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 마디로 육체와 조화된 옷들이 조용히 속삭이는 쇼. 과거와 달리 음악이 부드럽게 시작돼 점점 커지는 대신, 사운드트랙은 낮은 콧노래의 수준을 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옷들은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짧은 스커트가 한쪽 허벅지를 옷감으로 감싼 반바지로 변형될 때도 이상한 형태로 왜곡되지 않았다. 블러시 핑크빛 실크 재킷에 있는 소용돌이 무늬에서 꽃들은 손으로 움켜잡아 가슴에서 아스러진 듯 보였다.
똑같은 짧은 가발을 쓴 모델들에게서 보인 장식적인 효과는 부드러운 바지 정장과 드레스들을 포함한 이번 쇼의 핵심. 역설적이게도 옷들이 지난 시즌보다 더 완성도를 높였고 토털 룩으로 보였기에 일종이 감정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하이더는 늘 저 멀리서 수평선을 배경으로 여성을 바라본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쇼에서 그의 여성들은 몸을 감싸는 매끄러운 암적색 바지 정장을 입고 과감하게 걸어나갔다. 흐릿한 형체와 유동적인 옷으로 구성된 이전 쇼 이후, 우아하게 커팅되고 단아하게 바느질된 의상들은 바이어들이 무척 솔깃해 할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옷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하이더 작업엔 알 수 없는 뭔가가 존재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Junya Watanabe
만약 앙드레 쿠레주가 1966년 영화 제목이었던 <폴리 매구(Polly Maggoo)>와 결혼했다면 21세기 현재 그들의 자손들은? 준야 와타나베는 자신의 빛나는 기하학적 판들과 3D 에나멜 가죽, PVC 원단으로 질문에 답했다. 투명한 헬멧들은 한쪽 눈만 컬러풀하게 화장한 모델들을 우주시대의 우주비행사로 만들었다. “그래픽 행진입니다.” 드레스 패턴을 장식하는 듯 보이는 선명한 색깔의 상의와 스커트로 쇼를 끝마친 뒤 준야 와타나베가 백스테이지에서 말했다.
모델들이 에나멜 가죽으로 된 플랫폼 브로그 신발을 신고 쿵쿵거리며 걸었던 것처럼, 옷들은 딱딱했으며 약간 초현대적 느낌마저 풍겼다. 그렇다고 전혀 못 입을 옷들은 아니었다. 다분히 도전적일 뿐. 헬멧을 벗어놓고 계란상자처럼 와플 무늬를 지닌 노란 드레스, 또는 둥근 어깨의 반짝이는 레드 페이턴트 코트를 블랙 시가렛 팬츠와 매치해 입을 수 있을 것이다(모던해 보였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청 프린트가 있거나 네이비 줄무늬 티셔츠처럼 심플한 것들도 마련됐다.
차이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에나멜 가죽소재로 된 미니마우스 귀는 어깨에 달려 있었다. 준야 와타나베는 스포티한 옷들과 실험적인 컬렉션 사이를 왕복했다. 그건 우주를 향한 큰 발걸음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컬렉션은 가상공간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다.
Viktor & Rolf
빽빽한 태피스트리, 더치 마스터스(Dutch Master)의 거위와 오리 그림들, 금박을 씌운 거울과 녹색 가든 등등. 고국인 네덜란드 대사관의 파리 저택에서 열린 빅터앤롤프 쇼는 이 듀오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내디딘 큰 걸음이었다. 튈르리 정원의 대형 텐트에서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쇼장이 바뀐 것. 이 듀오는 지난 10년 간의 패션 라이프로 채워진 위트 있는 주제를 버린 채 단순하고 스포티하며 예쁜 옷들을 준비했다.
“로맨틱한 스포츠예요.” 롤프 스노에렌(Rolf Snoeren)이 컬렉션을 요약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엷은 파란색 배경에 노란색과 코랄색의 꽃무늬가 있는 러플 상의와 측면에 세로 줄무늬가 있는 까만색 바이시클 쇼츠를 매치했다. 그건 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같은 아이디어가 되풀이될 때는 그 효과가 떨어졌다. 원 숄더 형태의 숏 드레스, 목 부분이 주름진 상의, 어깨 끈이 없는 드레스 등에 그 프린트가 계속 적용됐으니까. 두 개의 튀튀 스커트들(이번 시즌 내내 발레리나 아이디어가 존재했다)은 실루엣을 바꿨다. 그렇다고 많이 바꾼 건 아니었다. 반바지 형태로 번아웃 가공한 스트레치 시폰과 삐딱한 느낌의 멋진 화이트 드레스 몇 벌이 쇼를 지배했다. 이 모든 건 꽤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파리 패션 위크! 그런 면에서 이번 쇼는 뭔가 아쉬움이 컸다.
Mugler
뮈글러는 장 폴 고티에, 파코 라반, 빅터앤롤프와 비슷하게 사업 성공이 향수 판매와 본질적으로 연결된 브랜드 중에 하나다.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가 무대를 떠난 이후, 8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차갑고 각진 세계를 환생시키기 위해 많은 디자이너들이 존재했다.
뮈글러의 가장 최근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코마(David Koma)는 불꽃(문자 그대로 불타는 듯한 패턴의 날씬한 드레스들)을 가져오며 데뷔 컬렉션을 안전하게 치렀다. 컬렉션은 대부분 검정색과 하얀색으로 구성됐고 보디스를 비스듬하게 연출하기 위해 나침반이 빙빙 도는 역할을 하는 기하학적 커팅도 있었다. 은색 장식이나 빛나는 은빛 스커트를 추가하자 딱딱하고 메탈릭한 느낌이 완성됐다.
만약 이게 프리 컬렉션이었다면 나는 감명받았을 것이다. 꿰여있는 잘려진 옷감들, 둥글게 파인 등과 빙하 같은 오묘한 푸른색 옷은 구입할 만했다. 은색 장식과 옆트임이 있는 긴 검은색 드레스는 다른 컬렉션도 쉽게 볼만한 의상이었지, 잘 만들어져 있었다. 나에겐 티에리 뮈글러의 획기적인 순간들을 직접 봤던 행운이 있었기에 이를 회상하지 않기란 어려웠다. 나는 프로그램 노트들에 손을 뻗었다. 가방에는 차가운 뮈글러 물병들과 뮈글러의 주인인 클라란스의 미니어처 향수 샘플들이 한가득이었다.
Day Five
Givenchy
누구를 위한 패션 컬렉션들인가? 지방시 쇼의 관객들은 높게 드리워진 커튼을 지나 구불구불하게 놓인 의자들과 함께 복잡한 핀볼 패턴의 역할을 했다. 아마 그 캣워크는 주로 유명인사들과 그들의 파트너, 또 그들의 친구와 아이들을 위해 고안된 것 같았다. 얇은 블랙 시폰을 입은 킴 카다시안과 아기 노쓰가 지방시 쇼의 전략적 위치에 앉은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온라인에 관해 생각했을 것이다.
최신 지방시 컬렉션을 보는 사람들은(종교적 교차점과 뒤에서 보는 관점에 대해 충분히 여지를 남겨 놓은 채) 가슴이 깊이 파인 보디스를 감상한 뒤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래디에이터 치마들은 짧았고 부츠는 발가락과 허벅지 윗부분을 아찔하게 노출시켰다. 그것이 경사진 커브에 있었던 내 관점에서 본 것이다. 모델들이 내 왼쪽에서 다른 쪽으로 돌아나가는데 2.1초 정도가 걸렸다. 그들이 코너를 돌아올 때는 더 적게 걸렸다. 그 후 내 스마트폰 이미지들은 전부 흐릿했고 내 노트에는 반 페이지쯤 쓰여있었다.
이것은 ‘엿보는 쇼’ 같은 느낌을 줬다. 가슴 부분이 끈으로 묶인 옷을 힐끗 봤는데, 이 옷은 티롤 산에서 내려와 섹스 클럽으로 간 하이디처럼 보였다. 금속 리벳들과 밀라노의 파우스토 푸글리시 쇼에서 최근에 본 흑백 패턴의 센추리언 스커트는 검투사를 연상시켰다.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옷들이 매우 섹시하고 핫하다는 것, 그리고 멋진 기술로 복잡하게 제작돼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것. 그러나 1시간을 기다릴 만큼 훌륭하지는 않아 보였고, 그렇게 훌륭한 디자이너에 대한 평가를 내릴만한 것 같지도 않았다.
Galliano
스타일리시한 정글 이파리들로 구성된 초대장부터 녹색 나뭇잎 프린트의 롱 드레스들과 짧은 재킷에 이르기까지 존 갈리아노 쇼에는 잎이 무성한 녹색 이야기가 가득했다. 디자이너 빌 게이튼(Bill Gaytten)의 멋진 테일러링 위에 얹혀진 고리 버들로 엮인 원예모자는 환경주의적 녹색 메시지처럼 보였다. 쇼 노트들에 나타난 단어들은 ‘organic’, 그리고 ‘crafted’였다.
그러나 올리브색과 잔디색 모피가 달린 재킷이나 스커트들, 보는 것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비닐소재의 나뭇잎 장식이 런웨이를 떠나간 뒤 디자이너는 ‘jacquard‘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갈리아노의 환상적인 상상력에 대해 게이튼은 늘 현실적인 구조를 더했기에 옷감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했을지 모른다. 이는 디지털 프린트들과 현대적인 소재의 사용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실용적이고 만족스러운 여름 의상을 완성했다.
Céline
단단한 금색 펜던트가 달린 가죽 벨트를 맨 깔끔하고 슬림한 코트를 입을까? 아니면 맵시 있는 튜닉 톱과 발목 부분에 술을 달아 풍성해 보이는 바지를 입을까? 플랫슈즈가 나을까, 힐이 나을까? 아마 높은 굽보다 발레리나 슬리퍼가 나을까? 꽃 같은 느낌이 날까? 그렇다면 어떤 꽃? 나는 밝은 레드와 빛 바랜 레드 둘 다를 좋아하는데, 그 둘을 합치는 건 또 어떨까? 강력한 셀린 쇼는 이렇듯 결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찬가였다. 소위 여성의 결정장애로 불리는 것에 대한 재치는 아니었다. 이것은 그런 마음의 변화들과 스타일, 옷감, 꾸밈, 장식 등 패션의 다양성 포용을 기뻐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딸의 손을 잡고 유명인사들을 만나며 설명했던 것과 같았다.
“저는 편집이 없고 확실성도 요하지 않는 전체 과정에 대해 고민했어요.” 꽃무늬는 밝은 패턴들로 드레스들을 뒤덮거나 두 가지의 다른 흐릿한 색들이 혼합돼 있었다. 그녀는 이것이 ‘꽃들에게 따뜻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전체적으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쇼의 장치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가운데 나는 특별한 소재를 발견했다. 가령, 합판의 추상적인 모양과는 다른, 견고하고 반짝이도록 래커칠한 플라스틱 같은 것. 컬렉션은 디자이너가 제공한 옷들을 우리가 선택하는 듯 보였다. 스티치로 윤곽을 드러낸 라펠이 달린 멋진 봄 코트들, 소 방울, 로켓, 그리고 남근의 혼합처럼 보이는 둥근 금빛 보석을 단 얇은 벨트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실용적인 옷들을 고안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여성 디자이너에게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피비의 날씬해 보이고 현대적인 의상들은 많았으나 가끔 변덕스러운 터치도 있었다.
그녀는 옷에 구멍을 낸 뒤 팔꿈치 같은 곳에 신체를 볼 수 있는 창을 내거나 흉골 주변을 자르거나 몸통의 측면을 잘라 허리의 맨 살이 드러나게 했다. 나는 여성들이 자신의 옷장의 모든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이 컬렉션은 1년 전 피비의 대담한 아프리카적 영감과 아주 달랐다. 이번 컬렉션의 프린트들은 빨간 꽃무늬가 될 테지만, 오래된 앞치마처럼 빛 바랜 꽃들과 섞일 것이다. 특히 매일매일의 고된 일상을 사는 바쁜 여성들을 위한 시(詩)가 존재했다. 나는 헐렁한 노란색 바지를 꺼내 테일러드 재킷과 매치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더 이상 입는 것에 제한 받지 않는 현대 여성의 개념이 즐겁게 느껴졌다. 개인적 선택으로 이뤄진 새로운 패션 세계를 납득하기 힘든 여자는 셀린의 가방을 선택할 수 있다. 타원형의 화려한 색을 지닌 부드럽고 빛나는 가죽 가방이 그것. 나는 오렌지색 악어 가방 외에 다른 가방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중요한 포인트. 한 때 미니멀을 추구했던 디자이너의 포커스는 백에서 특징 있고 우아한 옷으로 기울어왔으니까 말이다.
Kenzo
파리의 스케이트보드장에 설치된 LED 스크린에서 양갈래 머리에 이상하리만치 하얀 치아를 지닌 아바타 얼굴의 소녀가 다양한 언어로 겐조에 관해 말했다. “그녀는 인류의 진화예요.” 겐조의 공동 디자이너인 움베르트 레온(Humberto Leon)이 백스테이지에서 설명했다. 그가 이 발명품에 대해 말했듯, 컴퓨터로 만든 휴머노이드의 모습이다. 레온과 그의 디자인 파트너인 캐롤 림(Carol Lim)은 파리에서 일하며 느꼈던 낙관주의와 가까운 미래 패션에 대한 상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무서운 것은 없었다. 쇼는 브로드리 앙글레이즈 형식의 발목까지 오는 화이트 드레스로 시작됐는데, 무릎 아래는 반투명했고 상체에는 전차 선로처럼 은색 지퍼가 달려있었다. 프로그램 노트는 미래, 반향, 그래픽, 순수를 언급하며 분위기와 옷들을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이 사각으로 잘린 셔츠와 데님 치마, 또는 재킷이 됐다. 디자인들은 신선했고 스포티했으며 몸에 비해 살짝 여유 있었다. 덕분에 옆에서 봤을 때 몸이 보이는 작업복 형태의 옷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얀색과 대조를 이루는 하늘색 줄무늬처럼 가벼운 소재들과 반짝이거나 빛나는 표면은 가볍고 현대적이었다. 핑크색 패턴들이 소녀적인 감성을 더했는데, 이건 두 디자이너의 패션 아바타인 크놀라(Knola)의 ‘카와이’한 취향일지 모른다. 크놀라는 혈기왕성해 보였다. 컬러풀한 여러 스크린을 통해 그녀가 눈을 깜박이며 전한 겐조의 메시지는? “플라넷 B(차선책으로 택할 행성)는 없다!”
- 에디터
-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 수지 멘키스(Suzy Menkes)
- 포토그래퍼
-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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