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ET PHYSICAL
운동선수의 삶은 관성을 종종 비켜간다. 어제까지의 성취가 내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몸과 승패는 변덕이 심해 의지만으로 꼭대기에 오르기란 어렵다. 그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누군가는 재능과 확신, 노력과 행운을 모두 거머쥔다. 이들의 육체로부터 생명력이 펄떡거리는 건 치열한 매일이 쌓였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순결하고 스포츠 정신은 고결하며 스포츠맨은 우리 여자들을 매혹한다. 시작과 동시에 자기 분야의 선두에 선 젊은 스포츠맨들의 찬란한 처음을 만났다.
손희찬의 희열
씨름 르네상스! 몇 년 전까지 이 종목은 ‘존폐’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스포츠였다. 숫자가 인기를 간결히 증명한다. 젊은 관중을 모래판으로 끌어들인 한 경기, 2018 학산배 전국장사씨름대회 대학부 단체전 결승 영상의 조회 수는 현재까지 222만 회를 기록 중이다. 흰머리만 듬성듬성 자리를 메우던 경기장엔 이제 플래카드와 여성 팬, 망원렌즈와 환호가 활기차게 난무한다. 지상파에선 씨름 경연 예능 프로그램이 주말 황금 시간대에 편성됐다.
인기의 부활은 태백급(80kg 이하) 선수들이 이끌었다. 이 ‘가벼운’ 남자들은 모래 위의 풍경에 전에 없던 박진감을 더한다. 새 팬들은 샅바를 그러쥘 때마다, 단단한 기둥 같은 다리를 모래 위에 디딜 때마다 불끈 솟는 정직한 근육, 힘과 힘의 강렬한 격돌, 찰나에 폭발하는 긴장감, 허를 찌르는 기발한 기술에 열광한다. “이 좋은 걸 할아버지들만 보고 있었다”는 뒤늦은 푸념과 함께.
인기의 앞줄에 선 손희찬이 씨름을 시작한 건 모래판의 황제와 신사, 악동이 은퇴하고 종목의 존폐 여부까지 거론되던 2006년 무렵이다. 승리욕 강한 열두 살 소년은 ‘교내 씨름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씨름 인생의 시작점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대회에 물론 씨름부 친구들은 출전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1등을 했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치솟았죠. 마침 우리 반에 씨름부 선수가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한판 겨루자고 했어요. 당연히 졌죠. 세 판 다. 그것도 2초 만에.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 다음 날 씨름부로 찾아갔어요. 입회시켜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체중도 30kg대에 불과했고, 몸집도 작았거든요. 그럼 받아줄 때까지 찾아가자, 해서 세 번 만에 허락을 얻었죠.”
고작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이 삼고초려의 집념을 보인 건 유난한 승리욕 때문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 거듭된 거절 앞에서 생긴 오기로 시작한 운동에 곧장 매료됐다. 늦은 시작, 불리한 몸의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는 성실뿐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했어요. 하나만 더 하자, 한 번만 더 하자. 훈련 전에도, 끝나고 나서도 불 다 끄고 몰래 운동을 했어요. 지는 건 싫고, 더 하는 걸 들키는 것도 창피했거든요. 물론 이를 악물고 억지로 한 건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씨름이 한결같이 재미있어요.”
한결같은 재미가 자부심이 됐을 때 손희찬은 국적 하나를 포기했다.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두 개의 국적을 가진 그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전통 스포츠 선수로서 ‘한국인’의 삶을 갖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씨름으로 전통을 잇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씨름에 몰린 이 인기와 관심이 식지 않도록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습관처럼 쓰던 부사, ‘꾸준히’와 ‘열심히’는 그의 진정한 리듬이다.
변준형의 자신감
한국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의 덩크슛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얼마 전 안양 KGC 인삼공사의 변준형은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한 손으로 림에 공을 메다꽂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가 남긴 소감은 “넣을 자신이 있었다”였다. 김승기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종종 변준형을 ‘대체 불가능한 자원’, ‘역대급 재능을 가진 선수’ 같은 말로 표현한다. 스포츠 세계에서 입단 2년 차 신인이 이런 극찬을 받은 적이 있던가? 그런 수식어가 없어도 변준형은 파워풀한 돌파, 패스 센스, 경기의 흐름을 읽는 예민한 감각으로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그의 탄력과 순발력이 동양인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움직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변준형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땐 농구를 ‘너무 못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고 회상한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고, 뚱뚱하기까지 했어요. 애들이 뭐라고 한 건 당연한 거죠.” 유망주라는 수식어를 갖기 전까지 그를 지탱한 건 ‘지지 말자’는 의지였다. 제물포고 시절은 변준형의 첫 전성기다. 열여덟 살 때 그는 쌍용기 전국남녀고교농구대회 우승, 선배들을 제치고 최다 득점, MVP 등 고교 농구 선수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순간을 누렸다. 이후 선택한 중위권 팀, 동국대행은 모두가 의아해한 결정이었다.
“경기를 너무 뛰고 싶었어요. 쉼 없이. 강팀으로 가면 그런 기회가 더 적어질 수도 있잖아요. 부상이라도 당하면 저를 기다려주지 않을 수 있고요.” 최종 목표는 프로 입단이었고, 그래서 대학 리그 우승보단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중요했다. 실속 있는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안양 KGC 인삼공사에 지명됐고, 이듬해엔 2019 KBL 신인왕이 됐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수식어와 관심, 성취를 남의 일처럼 무심히 바라보는 만 스물셋의 청년은 그런 면이 자신의 강점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듯했다. “그저 조용히 살아온 것 같아요. 노선을 벗어나거나 일탈을 꿈꿔본 적도 없고, 뭔가에 미혹되는 편도 아니고. 프로 선수가 된 이상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서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그럴 땐 혼자 있으면 돼요.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가만히 생각하죠. 내가 왜 이럴까? 뭘 잘못하고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게 저한텐 명상 같은 일이에요.”
이 온순하고 바른 청년이 승부에 대해 말할 땐 눈빛이 바뀐다. “늘 이기고 싶어요. 무조건.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에 동의가 안 돼요. 잘 싸웠다는 건 이겼다는 거 아닌가요?”
KGC 인삼공사는 현재(12월 11일) 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간판선수 오세근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성적이다. 김승기 감독은 일등 공신 중 하나로 변준형의 활약을 꼽는다. 그게 이 신인 선수가 지닌 100%의 기량 중 70%만 드러난 결과라는 말과 함께. 아직 보여주지 않은 나머지 30%는 변준형의 미래다.
조준희의 몰입
조준희가 서핑 얘기를 할 때 그는 새로 산 터닝메카드를 자랑하는 소년 같았다.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신난 기색을 숨기지 않는 아이. 그 말갛고 순수한 얼굴을 보면 집채만 한 배럴 안에서 거침없이 파도를 타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서핑 대회에서 한국인 선수가 기록할 만한 성과를 내는 날이 온다면 첫 주자가 조준희일 확률이 높다.
지난해 여름 고흥에서 열린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는 숏보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엔 중문 국제서핑대회에서 2위를 기록했고 2017년엔 제주 타이푼 마스터즈 대회 우승자였다. “셋이서 한 보드를 돌려 써가며 리시 대신 빨랫줄을 발목에 감아 서핑을 접했다”고 간증하는 한국 1세대 서퍼의 나이가 고작 40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조준희의 등장은 한국 서핑에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온 가능성이다. 놀랍게도, 이 화려한 성취를 이룬 스물다섯 살 청년의 서핑 경력은 고작 7년. “열아홉 살에 양양에서 처음 서핑을 접했어요. 처음부터 되게 잘 타거나 막 운명 같은 만남은 아니었는데 서울에 올라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휴학계를 내고 바로 양양으로 내려가서 서핑 숍에 취직했죠.”
하면 할수록 잘하고 싶어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더 큰 파도와 경험, 훈련이 필요했으니까. 열다섯 장짜리 기획안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내가 서핑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SWOT 분석으로 정리했어요. 그 안에서 저는 이미 엄청난 서퍼가 돼 있었죠.”
발리를 베이스캠프로 두고,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호주, 스페인, 대만 등을 떠돌며 서프 트립을 즐긴 그는 호주 HPC(High Performance Centre)에서 서핑 인생의 새 국면을 맞는다. ‘세계 최고의 서퍼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동시에 소개받은 코치, 클레이튼 니나버는 조준희의 라이딩을 “그건 서핑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평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웠어요. 진짜 서핑을 하려면 운동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 워터맨이 되어야 했거든요. 워터맨에겐 숏보드나 롱보드 같은 도구나 환경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 워터맨은 맨몸으로도 파도를 타요. 그게 서핑의 본질이니까요.”
서핑이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그는 공식 국가 대표가 됐고, 2019 ISA에 출전해 대한민국 팀 주장으로 활약했다. 올림픽 출전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한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평생 서핑하는 것도 좋은데 그게 꿈은 아니에요. 국기를 품었을 때 사명감은 있지만 책임감에 눌리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를 운동선수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저는 모범생처럼 서핑을 했어요. 하루에 꼭 몇 시간 이상 타야 하고 빨리 저 수준에 도달해야지. 나중에 보니 그건 서핑이 아니었어요. 욕심이었죠. 지금은 언제든 재미없으면 안 할 거예요. 그 마음이 서핑과 지금 이 순간에 저를 더 몰입하게 해요. 이젠 사랑하는 걸 맘껏 사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전세진의 쉼표
전세진의 이름 앞엔 ‘슈퍼루키’가 호처럼 따라붙는다. 여덟 살에 축구를 접하고 열한 살에 선수 인생에 입문한 그는 초·중·고 시절 내내 왕중왕전 결승컵에 입을 맞추며 화려한 10대를 보낸다. 전문가들은 그를 ‘큰 무대, 큰 경기에 강한 선수’, ‘결승전에서 결정적 활약을 펼치는 선수’라고 평한다. 그만큼 ‘결승’에 자주 올랐다는 뜻이다. 유튜브에선 매탄고 시절 전세진의 결승골을 모은 영상이 전설처럼 떠돌아다닌다.
2018년 매탄고 졸업 후 곧장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한 다음, 청소년 국가 대표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낸다. 10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이하 AFC) U-19 챔피언십에서 다섯 골을 넣으며 준우승을 견인하고, 이듬해에 열리는 FIFA U-20 월드컵 출전 티켓 획득에 결정적 공을 세운다. 대회 직후 FIFA는 전세진에게 ‘센세이셔널 전’(참고로, 손흥민이 국제 무대에서 처음 받은 애칭은 ‘손세이셔널’이다)이라는 별명과 함께 ‘뛰어난 공격력과 패스로 상대를 위협하는 선수’ ,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세를 이어 AFC가 2018년 한 해 아시아를 빛낸 축구 선수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유망주’ 최종 3인에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12월, 대한축구협회에선 전세진에게 ‘올해의 영플레이어’ 트로피도 안겼다.
2018년이 전세진의 쾌거였다면 2019년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쾌거로 남는 해였다. 6월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 청소년팀은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에서는 사상 처음 결승전에 진출, 준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들뜬 분위기 속에 대회 참가 티켓 획득을 이끈 전년의 히어로 전세진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런 욕심이 오히려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데 방해가 되더라고요. 제 자신에게 아쉬움을 많이 느꼈지만 한편으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부담을 내려놓자, 수비든 공격이든 상황에 맞게 편안하게 하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는 마음을 갖게 됐거든요.” 이 고비가 선수 인생에서 맞는 첫 위기였을까? 정작 단 한 번도 ‘위기’라고 생각한 시간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선수 생활 하면서 포기하고 싶거나 슬럼프라고 여긴 적은 없어요. 기대에 미치는 좋은 모습을 못 보여줬을 때 비판이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 역시 저에게 필요한 경험이죠. 그게 저를 힘들게 하거나 흔들진 않아요.”
11월, 소속 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19 KEB하나은행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을 차지한다. 몸만큼 건강한 ‘멘탈’로 드라마틱한 한 해를 순조롭게 넘긴 그는 프로 진출 2년 만에 ‘우승 트로피’라는 보상을 받았다. 12월, 전세진은 더 큰 기회를 위해 ‘군 복무’에 돌입했다. 국군체육부대는 전세진을 비롯해 오세훈, 문선민 등이 포함된 상주 상무 입소 명단을 공식 발표했다. “정말 좋은 기회예요. 미리 한번 가봤는데 엄청 ‘시골’이더라고요. 축구 말곤 할 게 없어 보였어요. 하하.” 여덟 살 때부터 축구만 바라보고 온 전세진은 “축구에만 온전히 매진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촬영장을 떠났다. ‘2년은 금방’이라면서. 2년 후에도 전세진의 나이는 만 스물둘이다.
정우영의 배짱
촬영 당일, LG 트윈스 정우영은 2019 일구상 신인상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이틀 전 2019 조아제약 프로 야구대상에서, 그 전주엔 2019 KBO 신인왕으로 뽑혔다. 한 해에 할당된 ‘신인왕’ 자리를 혼자 휩쓸었다는 뜻이다. 경사 앞에서 그는 담담했다. 소감도 단 두 마디. ‘영광이다.’ ‘기분 좋다.’
실은 이제 막 프로 무대에 데뷔한 고졸 선수의 과묵하고 침착한 얼굴, 일말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태도를 시즌 내내 마운드에서 목격할 때마다 의아했다. 야구광, LG 트윈스 팬, 기자, 해설가들이 입 모아 말하는 그의 강점 역시 “신인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배짱”이다. “물론 긴장은 됩니다. 티를 안 내는 거죠.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보는 사람들까지 불안해지잖아요. 그런데 사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집중이 잘되는 편이에요. 어느 순간 잡념이 사라지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려요. 그 순간에 확 몰입하는 것 같아요.”
대범한 기질은 날 때부터 갖춘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경기 전날 공을 던질 때 마주칠 수 있는 갖가지 상황을 미리 상상한다. ‘이럴 땐 이렇게 던져야겠다’는 이미지 트레이닝, 늘 잘될 거라는 긍정적 마인드 컨트롤은 정우영으로 하여금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투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열아홉 살에 프로에 데뷔한 류현진이 한국 야구의 전설적 신인으로 남은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서른 몇 살처럼 흔들림 없이 공을 뿌리던 담대함 덕분이었다. 팀과 팬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유다. 정우영의 초연함은 심술궂은 악플 앞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기사나 저에 관해 올라온 글을 다 찾아봐요. 신기한 게, 대부분 다 옳은 말을 해요. 잘한 날엔 ‘와, 잘한다’ 하고 못한 날엔 ‘못했다’고 하고. 물론 거친 표현도 있고 욕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아요. 반응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야구는 내가 하는 건데. 다음부터 잘하면 되죠.”
2019년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우영은 2라운드 전체 15순위로 지목됐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주목받은 선수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스스로도 ‘1군 진입’을 첫 시즌 목표로 공언했다. 모든 고졸 신인들이 밝히는 포부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 두각을 나타낸 그는 목표한 대로 최종 엔트리에 안착했다. 여름에 어깨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한 달 만에 복귀해 4승 6패 1세이브 16홀드 평균 자책점 3.72의 호성적으로 팀의 가을 야구 진출에 기여했다. 193cm, 83kg의 준수한 하드웨어, 장신에서 보기 드문 사이드암 투수로 150km 안팎의 묵직한 공을 던지는 정우영이 자신의 약점으로 꼽은 건 ‘신인’이라는 신분이다.
“이제 겨우 1년 차잖아요. 경험이 많이 부족하죠. 어떤 상황에서도 경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연륜을 갖고 싶어요.” 그 약점이 실은 가장 강력한 강점이라는 사실을 알까? 2019 시즌 중 밝힌 세 가지 목표(1군, 신인왕, 국가 대표 후보 엔트리)를 모두 ‘클리어’하며 무섭게 성장했다. 신인만이 낼 수 있는 속도다. 세 번째 트로피를 받은 자리에선 “내년엔 선발투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12월과 1월은 야구 선수가 1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기). “2020 시즌도 열심히 준비해야죠. 남들 쉴 때 쉬면 못 따라가요. 놀면 뭐해요.”
임성진의 스파이크
빼어난 외모를 제쳐두고 배구 선수 임성진을 소개하기란 불가능하다. 194m의 장신, 부드럽고 날렵한 근육질의 몸, 흉과 흠 하나 없는 피부, 배우 ‘누구’를 쏙 빼닮은 얼굴… 고교 시절부터 연모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소녀들의 레이더에 일찍 포착된 그의 SNS 팔로워는 26만여 명에 육박한다. 외모를 대화의 주제로 올리자 임성진은 그걸 빨리 지나치고 싶은 기색이었다. “배구 선수니까 배구로만 주목받고 싶어요. 팬들의 관심과 응원이 정말 감사하긴 하지만… 더 노력해서 실력이 더 쌓이면 그렇게 되겠죠?” 단호한 태도 앞에서 연예계 진출이니 모델 데뷔 같은 단어를 적어둔 메모가 무안했다.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칼답’을 듣고 나서야 남은 미련을 거뒀다.
아직 프로 리그에 나오지 않은 선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배구 전문 잡지, 스포츠 신문을 뒤져 얘깃거리가 될 만한 드라마를 찾았다. 최근 성적은 얼굴보다 더 준수했다. 2019 시즌 리그 팀 내 최다 득점, 공격 성공률 전체(대학 리그) 2위, 2018년 해남 대회, 전국체전 우승, U리그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 2018 대학 리그 신인상까지. 거의 모든 기사에서 임성진의 이름 앞에 ‘에이스’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용모와 재능 모두 특출하게 뛰어나며, 선수 인생의 위기나 부상 같은 것을 묻는 질문에 “딱히 그런 건 없었다”고 무심히 말하는 이 남자는 무슨 덕을 쌓았길래 인생이 이토록 잘 풀리는 걸까? 급기야 질투 같은 것이 슬그머니 치밀었다. 그게 그냥 받은 것도, 저절로 생긴 것도, 그저 운이 좋아서도 아니라는 걸 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요. 만족을 잘 못해요. 경기를 못한 날은 못해서 짜증 나고, 조금 잘된 날엔 ‘이 정도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활약하려면 지금 수준에 머물러서는 절대 안 되거든요.”
이 청교도 같은 청년은 그래서 자신을 통제하는 일이 호흡만큼 익숙하다. “1년 중 한두 달 정도만 훈련이나 시합이 없어요. 그때 맘을 놓으면 페이스도, 감도, 체력도 잃기 쉬워요. 그래서 쉬는 기간에도 개인 운동을 빼먹지 않으려고 해요.” 임성진은 기량 향상이나 부상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고강도 운동이나 훈련도 좋지만 매일 해야 할 스트레칭, 웨이트, 시합 후 통증 관리나 컨디션 조절 같은 기본을 꾸준히 지키는 게 중요해요. 몸은 어느 날 갑자기 망가지는 게 아니거든요. 매일 그걸 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한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대개의 스물한 살들은 욕망하는 걸 참지도 않고, 참을 필요도 없는데. 연애, 여행, 인기 같은 대화 주제엔 일관되게 심드렁하던 그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눈빛을 바꾼다. “경기에서 이기면 행복해요. 제가 잘해서 이기면 더 좋고요.”
- 피처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목정욱
- 글
- 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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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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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내주, 서진영(빗앤붓), 김우준, 에녹
-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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