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은 12월부터
2020년이라는 압도적 숫자의 새해를 앞두고 계획을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날이 풀리면 조깅을 시작해서 마라톤 대회까지 도전해볼까 생각하니 이미 마음은 피니시 라인에서 박수를 받는 장면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육감적인 ‘바차타’ 댄스를 능수능란하게 추는 친구의 페이스북 영상을 보면 나도 2020년대에는 제대로 댄스 스텝을 밟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깁니다. 댄스 의상을 입으려면 체중도 줄여야 하니, 술도 끊고 채식에 도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해 계획을 이것저것 추가하다 보니 그 항목이 어느덧 열 개가 넘어 슬슬 지칩니다. <기생충>의 아버지 기택의 말처럼 무계획이야말로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머리를 스칩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무색하게, 결정 장애자는 새해가 코앞이건만 계획 하나도 제대로 결정을 못합니다.
인간 심리를 조사하는 한 학술지 조사에 따르면 새해 계획을 세운 사람들 중 80%가 2월 둘째 주가 되면 계획 실천에 실패한다고 합니다. 계획 중 55%가 운동과 식이요법 같은 건강 관련 계획으로,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달 이상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이 될 만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우리 대다수는 어차피 새해 계획은 작심삼일이기 마련이며 새해를 맞이하는 이벤트일 뿐이라는 관념을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습니다. 그래야 일주일을 버틴 것도 대단하다며 죄책감이 덜할 테니까요. 하지만 정말 새해 계획을 지키는 건 불가능한 걸까요?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알고 보니 계획을 지키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는 연말을 맞이해 새해 계획을 12월부터 세워야 한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습니다. 새해 계획은 구체적일수록 실천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12월 한 달 동안 계획을 현실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은 때때로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생물의 항상성은 기대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습관이 1월 1일이 되었다고 자동으로 초기 상태로 리셋이 될 리가 없습니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6시에 일어나겠다고요? 몸이 내 맘 같지 않아 내일 못 일어나면, 내일모레, 아니면 내년으로 미루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겠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 아침마다 요가를 하겠다 등 모두 생활 습관을 바꿔야만 가능한 계획입니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하루 시간 중 얼마를 이 계획에 배분해서 실천해야 하는지 전략을 짜야 합니다. 2시간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려면 2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까지 밤에 해오던 습관을 변경해야 합니다. 추운 날 조깅을 하려면 준비물도 많이 필요합니다. 기능성 운동복과 이어폰을 준비하고, 조깅할 코스도 미리 점검해봅니다. 그러므로 1월 1일부터 새해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12월의 예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할 일 하나를 추가하는 것 같지만 그 변화를 위해 나의 하루 패턴 및 24시간의 일정을 분석하고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새해 계획을 ‘모 아니면 도’, 즉 ‘성공 아니면 실패’로 결론짓지 말라는 겁니다.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하는데 몇 주일이 지나도 몸무게가 그대로면 동기부여가 안 되어 포기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땐 다음과 같은 ‘생명 연장의 꿈’ 이미지를 머릿속에 주입하십시오. 1시간의 운동이 당신의 수명을 1시간 늘려준다고 할 때, 몇십 년이 지나 당신은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유가 2020년에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자신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건강한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러닝 머신을 달립니다. 예쁜 아이돌처럼 되겠다며 운동해봤자 그런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세요. 대신 우리는 계단을 오를 때 케토톱을 찾을 필요 없는 건강한 근육질의 할머니가 될 것입니다. 2020년의 새해 계획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그때까지 보류입니다.
새해 계획이 몇 주 만에 성공한다는 것은 새해에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과 비슷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가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새해 계획은 한 인간의 궤도를 변경하는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12월이 가기 전에 당장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좀더 구체적으로 다듬고, 가능한 실천 전략을 세웁니다. 연말에 놀 시간도 부족한데 새해 계획을 연구하라니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예습 숙제라도 받은 듯합니다. 365일 가득 찬 새로운 해를 알뜰하게 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느린 스타터들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보는 게 좋습니다. 저녁에 과일 하나씩 먹기, 출근할 때 영어 팟캐스트 듣기 등 시간을 덜 뺏기는 일을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2019년 계획을 재활용하거나 연장해보는 것도 좋겠죠? 2019년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실패가 아니라 조건이 안 맞아 ‘지연’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기회는 당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것입니다. 새해 계획은 작심삼일이 아니라 장기전임을 기억하자고요. 2020년에는 모두의 새해 계획이 잘 흘러가길 기원합니다.
- 에디터
- 조소현
- 글
- 홍수경(칼럼니스트)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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