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골든글로브는 <기생충>의 외국어 영화상 수상으로 우리에게 유독 뜻깊은 행사가 됐다. 오래 기억될 2020 골든글로브 하이라이트를 모았다.

자막 너머에 존재하는 자

<기생충>으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나는 외국어 영화 감독이기 때문에 통역을 데려왔다”는 농담을 영어로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불과 1인치 자막의 장벽만 뛰어넘으면 좋은 영화를 훨씬 많이 만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다양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시상식 직후 HBO가 <기생충>을 드라마로 만들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영화 팬들은 “미국인은 자막의 장벽을 넘을 생각이 없다”며 웃었다.

취준생의 꿈

아콰피나가 첫 주연작 <더 페어웰>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탔다. TV 부문에선 지난해 산드라 오가 <킬링 이브>로 여우주연상을 탄 적 있지만 영화에선 아시아계 배우의 첫 수상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유튜브에 여성 성기를 과시하는 자작 랩을 올려 유명해진 아콰피나는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특유의 유쾌한 언변으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특히 화제가 된 발언은 이거였다. “아빠, 내가 취직했다고 했잖아!”

LGBTQ의 롤모델

실력 못지않게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으로 유명한 방송인 엘런 드제너러스가 공로상인 캐롤 버넷상을 받았다. 시상자로 나온 레즈비언 배우 케이트 맥키넌이 평소 뻔뻔한 이미지와 달리 울먹이면서 한 연설이 감동이었다. “엘런이 없었다면 나는 나 자신이 외계인이고, 여기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엘런.”    

성난 스타들

오프닝 사회자 리키 저베이스가 “정치 발언 하지 마라. 당신들은 누굴 가르칠 처지가 아니다”라고 경고했지만 성난 스타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포시/버든>으로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셸 윌리엄스는 일주일 전 여성의 임신 중단권에 반대하며 대법원 앞에서 농성을 벌인 200명의 공화당원에게 분노했다. “여자로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 우리 몸에 벌어질 수 있다”고 말문을 연 그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표하라고 독려했다. <디 액트>로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은 패트리샤 아퀘트는 트럼프가 하루 전 “이란의 문화유산에 폭탄을 퍼붓겠다”고 트위터에 쓴 걸 언급했다. 역시 결론은 투표를 잘하자는 것이었다.

불길 속에서 보낸 편지

호주 출신 배우 러셀 크로우는 대형 산불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간 참이었다. 러셀 크로우가 <라우디스트 보이스>로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자 제니퍼 애니스톤이 그의 메시지를 대신 읽었다.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기후변화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시작한 메시지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과학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