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Needle
넣고, 깎고, 조이는 기상천외한 성형술이 판치는 21세기. 느리지만 강력한 한 방, 침의 귀환.
“100여 개의 바늘이 제 얼굴을 조각하죠.” 2020년 1월호 미국 <보그> 표지를 장식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만삭의 그녀가 요즘 가장 열 올리는 시술은 ‘침술’이다. 지난해 12월 초, 애슐리는 생생한 시술 현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시술은 없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트리트먼트 바이 란신’은 뷰티 기자들은 물론 셀러브리티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사랑방’. LA에서 활동하는 자연요법 전문가이자 침술가인 패티 킴도 전 세계 뷰티 전문가들의 러브콜을 받는 핵심 인물이다. 슈퍼모델 아녹 야이, 아두트 아케치는 멧 갈라를 앞두고 침 시술을 받기 위해 뉴욕 중심가에 자리한 한방 클리닉 ‘더 주히-아시 센터’를 찾았다. 대체 그 매력이 뭐길래?
얇고 긴 바늘이 전하는 미용 효과는 생각보다 극적이다. “수십 개의 바늘을 얼굴부터 데콜테, 필요에 따라 두피까지 꽂아요. 혈액순환 촉진과 해독 작용을 위해서죠. 게다가 피부 표면과 근육 자극을 통해 콜라겐, 엘라스틴 생성에 도움을 줍니다. 트러블, 안색 개선은 물론 리프팅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트리트먼트 바이 란신’의 수장 산드라 란신의 설명이다. 피부 스스로 재생하도록 이끄는 ‘자생 환경 조성’이 한방 미용 시술의 최장점. 뷰티 생태계의 필수 덕목인 ‘논 케미컬’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대자인한의원 김래영 대표 원장은 “침은 소재, 굵기, 길이가 천차만별이에요. 하지만 원재료와 가공 방식에서 화학 성분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죠. 타고나길 민감하거나 원인 모를 만성 염증에 시달리는 피부에 이보다 적합한 시술은 없어요.”
한반도엔 이미 한차례 ‘침 바람’이 불었다. 2008년 약물 주입 없이 혈점을 자극해 보톡스와 필러 효과를 낸다는 한방 미용 침이다. 이후 미세 바늘로 피부를 자극해 콜라겐 생성을 촉진하는 ‘MTS(Microneedle Therapy System)’가 한방 성형의 블루 오션으로 떠올랐고 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뷰티 브랜드에선 앞다투어 홈 케어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비수술적 성형 시술의 포문을 연 침술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반짝 스타’에 그쳤다.
피부과 시술에 비해 드라마틱한 효과가 없어서 혹은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게 그 이유다. 한풀 꺾여 시들어버린 미용 침이 역주행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 있는 게임이다.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은 오는 3월 ‘한방 동안 클리닉’을 연다. 이를 이끄는 침구과 이수지 교수가 펼친 시뮬레이션 자료에는 임상 시험 대상자의 온 얼굴에 은색 침이 꽂혀 있었다. “안면마비센터에서 침으로 얼굴 근육 움직임 개선과 비대칭 교정을 위한 한방 미용 시술 연구에 한창입니다. 침술을 기반으로 녹는 침, 미세 침처럼 한방 미용의 새 시대를 열 만한 침구를 찾는 일도 멈추지 않고 있죠.” 수차례 반복해야 효과를 내는 일부 한방 시술은 고주파, LED 기기 협공으로 단계를 대폭 단축할 예정이다.
뾰족한 바늘을 얼굴에 꽂는데 고통스럽지 않느냐고? 안면 미용 침의 한 종류인 ‘정안 침’에 사용하는 바늘의 두께는 평균 0.2mm. 처음 찔러 넣을 때 살짝 따끔할 뿐 이내 사라질 아픔이다(인스타그램 영상에서 애슐리 그레이엄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시라!). 20~30분 지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기분 좋은 온기가 도는데 이때 극도의 편안함을 느낀다는 게 시술자들의 공통 의견이다.
잦은 약물 주입과 박피로 주름 하나 없는 피부를 쟁취한들 이목구비의 조화가 깨지면 무용지물이다. 피부 본연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침술은 넣고, 깎고, 조이는 과격함 대신 균형의 미를 앞세운다. “20대 얼리 안티에이징을 위해 추천해요. 드라마틱하진 않아도 자연스럽게 예뻐질 수 있죠.” 패티 킴의 설명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변화 대신 장시간, 통합적 관점을 강조하는 미용 침술은 육체와 정신,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이르는 ‘웰니스’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오장육부를 다스리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명상과 동일한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느림의 미학’. 미용 침의 역주행을 원하고 바라는 이유다.
- 뷰티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이윤화
- 모델
- 박수완
- 헤어
- 최은영
- 메이크업
- 박수연
- 스타일리스트
- 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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