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떡볶이
‘여자들은 왜 떡볶이를 사랑하는가.’ 인류의 미제로 남은 그 각별한 관계에 대한 고찰.
요조의 에세이집 <아무튼, 떡볶이>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최고의 리뷰는 이 책을 읽고 난 당신의 바로 다음 끼니가 떡볶이가 되는 일일 것이다.” 마침 먹으러 나가던 참이었다.
작년 한 해만 떡볶이 에세이집이 세 권 출간됐고 올해는 떡볶이 소설집도 나온다. 저자들은 모두 여자다. ‘여자가 남자보다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가설은 특정 성별이 특정 음식을 좋아한다는 전제부터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여자들을 대표해 밝히자면 나는 떡볶이가 늘 먹고 싶다. 배가 불러도 먹을 수 있고, 어제 먹어도 오늘 먹을 수 있다. 아침밥은 물론 주식으로도 먹을 수 있다. 떡볶이라는 말만 들어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에 침이 고인다. 떡볶이라는 단어에서는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사나이가 연주하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향수>에서 그르누이가 조향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업체 사이에 경쟁이 없다면 떡볶이는 광고도 필요 없을 것이다. 떡볶이를 떠올리는 순간 칼로리, 나트륨 함량, 시간 같은 물리적인 제약은 모두 사라지고 ‘먹고 싶다’는 생각만 강렬하게 남는다. 역시 차가운 머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자들에게 떡볶이는 하나의 현상이다.
흔히 떡볶이는 추억과 연결된다. 해 질 녘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집밥판 소울 푸드라면, 떡볶이는 돈 내고 사 먹은 외식판 소울 푸드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사 먹던 떡볶이’의 행복한 기억이 대뇌 어딘가에 남아 끊임없이 그 행복을 다시 느껴보라고 유도하는 것이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말한다. “떡볶이를 먹었는데 친구들과 깔깔 웃던 기억이 떠오른다면 굉장히 효과적인 자기 치료제죠.”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보선은 추억을 생생하게 소환하기 위해 각기 다른 그릇에 담아서 먹곤 한다. 코렐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 벗겨진 프라이팬 등에 옮겨 담고 같이 먹었던 사람, 당시 공기를 떠돌던 분위기를 조목조목 떠올린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저자이자 추리소설가 조영주는 떡볶이로 육체와 정신과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고 싶어서 지난 1년간 친구, 작가 등을 불러 매일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고 깨달은 바가 있다. 각자의 삶에 떡볶이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는 것. “떡볶이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김치에 가까운 국민 음식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친구들에게 연락할 때마다 한 말은 ‘떡볶이 먹자, 만나자’였어요. 이 말은 마법과도 같아 친구들은 대부분 ‘오케이’를 외쳤습니다.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친구도요. 하지만 만난 친구들 중 대부분이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날이 되면 왠지 더 외로워지고 떡볶이가 먹고 싶더군요. 친구들과 다시 떡볶이를 먹으면 불안을 나눌 수 있겠지 싶었어요. 친구들도 그렇다면 우리가 만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작가 조영주가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건넨 말 “떡볶이 먹자”는 떡볶이가 여자들의 인간관계 중심에 있음을 증명한다. 초등학교 하굣길의 떡볶이 친구는 가족을 떠나 처음 맺은 관계고, 중고등학교 하굣길의 떡볶이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기의 속내를 나누던 관계였다. 마인드맨션의원 안주연 원장은 말한다. “여자와 떡볶이를 연결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스트레스를 대화로 푸는 여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얘기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청소년기에 떡볶이를 먹으며 고민을 나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큐 사인이 되는 거죠.” 동시대를 산다는 건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험은 성인이 되어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도 유효하다.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시작이다.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현재의 떡볶이를 먹는다.
여럿이서,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유연한 음식량도 성인이 된 지금도 떡볶이를 즐기게 하는 요인이 된다. 떡볶이는 한꺼번에 만들어놓고 덜어서 판매하기 때문에 퇴근길에 1인분만 사 먹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몇 인분씩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다. 튀김을 함께 파는 포장마차에서 먹으면 온몸에 냄새가 배긴 하지만 대체로 옷차림이나 메이크업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다. 한 입 혹은 두 입에 나눠 먹기 좋은 떡볶이 떡은 핑거 푸드의 원형이다. 양 조절이 용이한 떡볶이는 디저트 코스 설계에도 유리하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신화와 같은 믿음이 있지만 떡볶이는 믿음직스럽게 6:4 혹은 5:5로 디저트 비율을 확 올릴 수 있다. 와플, 케이크, 대용량 빙수 등 포만감을 주는 디저트를 이어서 먹기에도 적당하다. 서양에서는 짠맛이 나는 주요리가 많아서 텁텁해진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하기 위해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떡볶이 역시 디저트로 마무리해줘야 완성되는 강렬한 맛을 가지고 있다. 빙수를 파는 떡볶이집의 인기가 이 논리를 뒷받침한다. 배달 앱이 발달하면서 접근성도 좋아졌다. 레토르트 제품이 쏟아지면서 라면 끓이는 정도의 노동력으로도 집에서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 ‘모닝 떡볶이’가 위세를 떨치게 된 현실적인 이유다.
지하철역 ‘델리만쥬’가 후각을 자극한다면 떡볶이는 철저히 시각을 자극한다. 접시에 갓 담은 떡볶이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떡볶이는 탐스럽게 새빨갛고 맛깔스러운 광택과 윤기가 흐른다. 손석한 원장은 붉은색에 대해 말한다. “붉은색은 감정적으로 흥분시키는 색깔이에요. 불이나 피를 보면 흥분하잖아요. 피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살아 있음을 상징하기도 해요. 붉은색은 생명의 색깔이에요. 심장을 뛰게 만들고 살아 있게 만들어요.” 그러고 보면 간장 떡볶이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 경험은 없다. 광택과 윤기가 자극하는 건 쫄깃한 식감을 향한 상상력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보선은 촬영할 때 음식을 맛있게 보이기 위해 물엿이나 설탕을 비법처럼 활용한다고 전했다. 떡볶이에는 레시피에 이미 그 재료가 들어 있으니 태초에 식욕을 자극하도록 태어난 셈이다.
매운맛은 통각으로 알려져 있어 떡볶이는 맛 평가에서 열외로 치부되어왔다. 미식가들은 떡볶이의 맛을 평가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이는 일리가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홍신애는 셰프로서 입장을 들려줬다. “떡볶이는 완벽한 맛을 가진 음식이에요. 셰프 입장에서 맛을 디자인하고 창작할 때 고려하는 요소가 많아요.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다섯 가지 맛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식감까지 만족시키는 음식은 떡볶이가 유일합니다. 떡을 씹는 행위는 으깨지고 다시 단맛으로 승화되는 재창조의 작업이에요. 여자들은 이 모든 조화로운 맛을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게 진화된 동물이에요. 생물학적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제가 여자니까 안다고 대답하겠어요. 여자들은 세밀하게 맛을 느끼면서 본인에게 이유를 부여해 맛을 재창조해요. 계속 새로운 맛을 느끼고 그 미세한 차이점으로 즐거움을 획득하죠.”
한의학에서는 떡볶이가 양(陽)의 성질을 많이 갖고 있어 음(陰)인 여자에게 잘 맞는 음식으로 분류한다. 예당한약국 변유영 한약사는 떡볶이의 매운맛을 내기 위한 고추, 단맛을 내기 위한 설탕이나 물엿이 모두 양의 기운을 띤다고 설명한다. “의학서 <황제내경>에도 ‘매운맛(辛)과 단맛(甘)은 발산하니 양(陽)이고, 신맛(酸)과 쓴맛(苦)은 용설하니 음(陰)이다. 짠맛(鹹)은 용설하니 음(陰)이고, 담미(淡)는 삼설하고 양(陽)이다’라고 나와 있어요. 그런데 매운맛과 단맛 두 가지만 있다면 기만 발산되어 기운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보충해주는 맛이 짠맛입니다. 짠맛은 음의 성질로 발산을 조절해주기 때문이죠.”
음식 문헌학자 고영은 역사를 돌아본다. “떡볶이라는 어휘는 아주 오래전에 태어났어요. 심지어 조선 후기 조리서, 조선 말기 소설, 식민지의 대중음악에도 등장합니다. 옛 떡볶이는 주안상에 올라갈 만한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떡볶이는 옛 떡볶이와는 전혀 달라요. 과거에 고추장은 비용과 수고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별미 장이었습니다. 현대 떡볶이는 대두를 이용한 식품 산업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유사 고추장’과 손잡은 면모가 있지요. 값싼 유사 고추장에다 이전보다 값이 떨어진 설탕 등 감미료 등이 공급되면서 떡볶이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안상에서 길거리로.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현대 떡볶이는 또다시 변화한다. 엽기 떡볶이로 통칭되는 매운 떡볶이다. 캡사이신, 후추 같은 재료는 오로지 ‘더 맵게’라는 목표만 향한다. 매운 떡볶이를 즐기는 이면에는 자학을 통한 고통 해소가 있다. 맵다는 고통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를 잠시 잊는다. 게다가 떡볶이의 영양소 대부분은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두뇌 회전에 도움이 된다.
매운맛의 유행 때문에 떡볶이가 스트레스 해소책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IMF 키즈의 생애> 저자 안은별 역시 여자들이 떡볶이를 사랑하는 원인을 떡볶이 자체가 아닌 2018년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강렬한 제목이 환기한 효과로 짚었다. “여성들에게 따뜻한 경험으로 남아 있는 떡볶이가, 그 독자들을 타깃으로 한 힐링 기획 서적에 의해 키워드로 발견되고, 그게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림으로써 힐링 푸드로서 떡볶이의 위상이 확립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유행이나 현상이 그렇듯 필연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우연의 중첩에 의해서요.”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심어야 할 사과나무처럼, 죽더라도 먹어야 할 오직 하나의 음식으로 정해졌달까. 만약 제목이 <죽고 싶지만 삼겹살은 먹고 싶어>였다면 지금 우리는 삼겹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 문헌학자 고영은 여자와 떡볶이의 상관관계를 부정한다. “지나친 과장입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이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떡볶이가 자꾸 화두에 오르는 이유는 냉정하게 말해 ‘가격이 싸서’입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는 거죠. 자극적인 맛이니까 기억하기 좋고 묘사도 쉽고요. 따라서 낭설, 원조 주장도 많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탐구해야 할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탐구가 시작돼 아직 대단한 결론은 없어요.”
여기에 진짜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광범위한 경험이 담론을 이루고 담론을 위해 또다시 경험을 자청한다. 넓어졌다고 믿는 그 얕은 과정 속에서 사랑은 깊어져만 간다. 하지만 애써 머리를 차갑게 식혀도 떡볶이를 생각하면 또다시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나는 이제 인간으로서 떡볶이를 사랑하기로 했다.
- 피처 디렉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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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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