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WAVERING FAITH
1017, 알릭스, 9SM. 생소한 듯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럽고 세련돼 보이는 숫자와 단어 조합에 패션 마니아들이 열광한다.
1년 전 밀라노 패션 위크. 도시 북부에 자리한 오래된 기차역에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몽클레르가 ‘One House, Different Voices’라는 모토로 몽클레르 지니어스(Moncler Genius) 컬렉션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영국의 신예 리차드 퀸, 로맨티시스트 시몬 로샤, 발렌티노의 피엘파올로 피촐리, 프래그먼트의 히로시 후지와라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협업 컬렉션에 참여했다. 컬렉션마다 기차 승강장이 배정됐고 관객들은 인기 놀이 기구 앞에 줄을 서듯 승강장에 전시된 옷을 구경하러 앞을 에워쌌다. 그중 입장객 제한으로 승강장 밖으로 긴 행렬이 늘어선 곳은 요즘 스트리트 신에서 컬트적 인기를 끌고 있는 ‘1017 알릭스 9SM(1017 Alyx 9SM)’이었다.
“몽클레르 CEO 레모 루피니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지니어스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정말 영광이었어요. 디자인은 물론 마케팅과 리테일에서도 매우 앞서나가는 브랜드라고 여겨왔고, 오래전부터 몽클레르 팬이었기 때문이죠.” 매튜 윌리엄스(Matthew Williams)가 <보그 코리아>에 소감을 말했다. ‘6 몽클레르 1017 알릭스 9SM’이라는 이름의 컬렉션은 1년 후인 지금 글로벌 고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1월 11일부터는 서울 몽클레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판매한다).
카니예 웨스트, 트래비스 스캇, 에이셉 라키 등 스트리트 패션 팬들이 숭배하는 우상들이 알릭스의 옷을 입었다는 사실은 알릭스 ‘입문자’들이 잘 아는 ‘팩트’다. 여기에 매튜가 킴 존스의 디올 맨을 위한 액세서리를 디자인했다는 또 다른 팩트,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들었다는 또 하나의 팩트 덕분에 알릭스는 5년 미만의 다른 ‘아기’ 브랜드가 넘볼 수 없는 지위를 점령하고 있다. 2015년 세상에 처음 나온 브랜드가 이토록 고공 성장하는 일은 사실 드물다. 누구에게나 선물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 기회를 매튜는 어떻게 여길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일에 대한 전념 그리고 헌신의 결과가 아닐까요.”
누군가는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블랙 수트 차림의 그를 보고 신뢰를 느낄지 모르겠으나, 패션계 인물들은 그가 알릭스 이전에 쌓았던 견고한 경력에 믿음을 싣는 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매튜 윌리엄스는 클럽 키드에 DJ로서 유년을 보냈다. 패션계에 입문한 건 뮤지션 스타일리스트 친구들로부터 레이디 가가와 카니예 웨스트의 의상을 제작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레이디 가가의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디렉터로 일하며 비주얼을 총괄했다. 이 시기에 그는 패션 커리어에 결정적 인물을 만난다. 레이디 가가와도 친한 사진가 닉 나이트다. 그는 자신의 이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 명으로 닉 나이트를 언급했다. “에디 슬리먼, 킴 존스와 닉 나이트! 엄청난 영감을 주는 인물들이죠. 그들이 창조한 모든 것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며,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닉 나이트의 런던 쇼 스튜디오에서 일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매튜는 헤론 프레스톤, 버질 아블로와 의기투합해 스트리트 브랜드 ‘빈 트릴’을 론칭했다. 버질과 헤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패션계에 늦게 알려졌지만 브랜드를 공개하자마자 돈 주고도 입히기 힘든 정상급 래퍼들이 입기 시작했다. “트래비스 스캇, 드레이크, 플레이보이 카티는 모두 저의 친구들이에요. 브랜드 시작할 때부터 많이 도와줬고, 알릭스 이미지를 잘 표현하죠.” ‘알릭스 패거리’에는 모델 겸 스타일리스트인 한국인 양승호(Xin)도 있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데다 온몸을 휘감은 타투, 유명 뮤지션의 스타일을 책임지던 양승호는 알릭스의 룩을 일상에서도 근사하게 입는다고 매튜는 설명한다. “신(Xin) 역시 ‘알릭스 피플’이라 부를 수 있겠군요. 지금까지 열린 모든 알릭스 패션쇼에 섰던 모델이기도 하죠.”
셀러브리티라는 존재는 브랜드가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데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기도 하지만 빠른 추락을 숨긴 요소일 수 있다. 매튜는 미국 <보그>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력이 셀러브리티들과 함께한 것으로 한정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과거 셀러브리티들과 함께한 작업이 매우 자랑스럽지만, 그런 작업이 저를 정의한다고 여기진 않습니다. 전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전진하고 싶을 뿐이죠. 5년간 셀러브리티와의 작업에 대한 똑같은 질문을 받아왔답니다.”
그의 전진하는 성격은 브랜드 론칭 후 네 번째 해가 되는 2018년 6월, 파리 남성복 패션 위크를 통해 데뷔 쇼를 기획하게 했다. 남성복과 여성복이 혼합된 33개 룩은 알릭스가 단순히 ‘하이프(Hyped)’ 브랜드, 다시 말해 몇 가지 유행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은 운 좋은 브랜드, 혹은 리셀러들의 중고 사이트 그레일드(Grailed)에 올리면 재빨리 팔려나가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토털 브랜드로서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결정적 순간이었다. 브랜드 시그니처도 적절히 섞여 있었다. 롤러코스터에서 영감을 받은 폴리아미드 소재의 버클 벨트, 카니예 웨스트가 입어서 유명해진 방탄조끼 스타일 백, 나이키 협업 티셔츠와 신발 등등. ‘테크웨어(Techwear)’라는 밀레니얼들의 패션 트렌드에 운 좋게 편승했다는 의구심을 깔끔하게 정리한 마성의 한 방이었다.
쇼가 공개된 후 알릭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더 많이 기록됐다. 브랜드의 숫자 1017은 10월 17일 매튜의 생일이라는 것, 9SM은 뉴욕에 있었던 그의 스튜디오 주소 ‘9 St. Marks Place’의 약자라는 것, 그리고 Alyx는 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 등등. 그리고 알릭스의 옷은 밀라노에서 차로 3시간쯤 떨어진 소도시 페라라(Ferrara)에서 정교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추가되기 시작했다. 알릭스의 홍보와 판매를 맡고 있는 아내 제니퍼와 딸을 포함한 가족이 페라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보다.
알릭스가 몽클레르를 만나기 전까지 협업한 대상은 나이키, 매킨토시다. 트렌드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브랜드가 아닌, 독자적 기술과 전통을 지닌 상징적인 브랜드였다. 덕분에 아웃도어 브랜드로 시작해 전방위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 몽클레르와 테크니컬 디자인을 스트리트로 끌어올린 알릭스의 만남은 꽤 자연스러웠다.
“협업은 제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혼자서 불가능한 제품을 전문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 자체에 믿음을 갖고 있죠.” 매튜는 이번 협업을 통해 기술적 시도까지 감행했다. “패딩을 직접 코팅하는 가먼트 다이를 통해 하나의 원단을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을 전면으로 끌어내겠다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였죠.” 그렇다면 20개 룩 중 그가 제일 아끼는 것은 뭘까. “빨간색으로 염색한 패딩 조끼를 입은 첫 룩! 이 조끼에는 알릭스의 대표 아이템인 버클 세 개를 몽클레르식으로 브랜딩해 부착했습니다. 그 밑에는 종이 같은 느낌을 주되 특수 나일론 소재 립 스톱(Rip Stop)으로 만든 긴 테크니컬 재킷과 이음매 없이 매끄러운 니트 레깅스를 매치했습니다.”
아울러 2020년은 알릭스를 운영하는 데 ‘지속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매튜는 2년 전 ‘알릭스 비주얼(@alyxvisual)’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재활용 저지와 플리스를 사용해 지속 가능 패션을 선보였지만 지금은 제작 공정 전반에서 지속 가능을 실천하고 있다. “지속 가능 패션을 추구하면서도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컬렉션에 사용해도 손색없는 고품질 지속 가능 소재를 찾는 노력, 이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공급자들과 일하고 있습니다.”
시대정신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탐구, 또한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태도 등으로 패션 세계에 포지셔닝된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 듯하다. 벨라 하디드, 킴 존스, 버질 아블로처럼 쿨한 인물과 친구로 지내며, 패션쇼를 열고, 세계를 유람하는 인기 디자이너의 삶,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비결을 묻는 우문에 대한 현답이 그것이다. “일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각각’ 따로 내는 게 중요하죠.”
- 패션 에디터
- 남현지
- 포토그래퍼
- 박종하
- 에디터
- 허보연
- 모델
- 박성진, 김도현
- 헤어
- 장혜연
- 메이크업
- 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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