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icon Sensation
녹아내리는 듯한 실리콘으로 정형화되지 않는 여성의 실루엣을 살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다. 2018년 RCA(Royal College of Art) 졸업 패션쇼에서 작품을 내놓자마자 주목받은 시네이드 오드와이어(Sinéad O‘Dwyer).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경계에 맞서는 시네이드가 패션업계에 보내는 메시지.
패션 역사에는 코르셋과 크리놀린같이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의상이 있었다. 이런 패션계의 한계 혹은 기존 틀을 본인의 의상으로 깨고 싶었나.
짜임 디테일이 돋보이는 마지막 컬렉션은 코르셋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코르셋의 특징을 살려 ‘정해진 사이즈의 옷’은 ‘몸을 구겨 넣는 도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언제 여성이 아름답다고 느끼나.
여성은 자신감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감을 가지고 싶어도 어렵게 느낄 때가 많다. 무엇이 사람들을 자신감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나.
자신감과 외관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들은 변하는 것을 기피한다. 예를 들어 주름이 느는 것, 나이가 드는 것, 몸무게가 증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자신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옷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에서 유머를 느낀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뜻인가.
친구이자 나의 컬렉션 모델이었던 아구스타(Agusta)는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기성복이 없어 항상 스튜디오에 너무 짧은 치마나 어정쩡하게 맞는 옷을 입고 왔다. 이와 같이 패션업계의 정형화된 사이즈 차트가 개개인의 수치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신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옷을 제작해 똑바로 입지 못하는 상황이 나에겐 한 편의 코미디처럼 우습다(웃음).
실리콘은 패션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재료가 아니다. 옷을 만들 때 실리콘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내 옷은 주로 전시나 뮤지션의 무대의상으로 쓰여 일반적인 옷의 장점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바느질을 대체해 한 번에 하나의 실리콘 틀에서 옷을 제작할 수 있어서 간편하고 본인의 몸에 꼭 맞게 생산할 수 있다.
최근 패션업계에 ‘지속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리콘으로 만든 옷은 지속 가능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실리콘으로 만든 옷은 매일 입지 않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 문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사이즈 8에서 12 위주로 제작해 아무리 지속 가능한 소재로 옷을 생산해도 그 위 혹은 아래 사이즈 여성은 못 입고, 못 사고, 결국 재고가 남아 환경을 오염시킨다.
앞으로 디자인하고 싶은 옷이 있다면.
조금 더 웨어러블한 옷을 만들고 싶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워낙 명확해서 그것을 올바르게 담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다음 컬렉션은 9월에 공개할 예정인데 제반 사항은 비밀이다(웃음).
어떤 여성상을 선호하나.
주로 나의 뮤즈를 보면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여성을 선호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항상 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취약점이 있고 그런 부분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졸업 패션쇼 이후에 비요크(Björk), 켈시 루(Kelsey lu)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본인의 옷을 입었고, 꾸준히 관심을 받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사실 디자이너들은 본인 옷을 언제 협찬했는지(대행사가 있을 경우), 제공한 옷이 사진이 찍혔는지, 찍혀도 어떻게 잡지에 실릴지 모른다. 그래서 팀 워커가 촬영한 패션 매거진 화보에 내 옷이 등장했을 때 굉장히 흥분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꿈만 같다.
최근 모든 몸의 형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보디 포지티비티(Body Positivity)’를 점점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논의가 활발한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패션업계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지속 가능성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소비 지상주의에 맞춘 대량생산은 멈추고 브랜드는 더 많은 신체 구조와 사이즈에 대해 공부하며 더 성장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본인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을 수 있다면 더 비싸더라도 구매하고 또 오래 입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패션업계 전체가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1년에 빠른 템포로 네 개 이상의 컬렉션을 진행하면서 ‘보디 포지티비티, 지속 가능성, 노동 착취’ 등 꾸준히 언급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뮤지션이 앨범을 내고 나서 바로 다음 앨범을 발매하지 않는 것처럼, 패션 디자이너도 아티스트로 존중받으며 조금 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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