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낯선
그리웠던 송지효의 서늘한 얼굴, 증명해온 김무열의 공감 능력이 영화 <침입자>에 있다. 이들은 가장 가깝다고 주입된 관계, 가족을 낯설게 본다.
익숙함을 비틀 때 공포스럽다. 영화 <침입자>는 노래 ‘Home Sweet Home’의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네”를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로 바꾼다. 이 영화는 가족이 낯설어지는 공포에서 출발한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건축가 서진(김무열)에게 25년 전 실종된 동생 유진(송지효)이 찾아온다. 서진은 유진이 어딘가 불편하고 나머지 가족도 변해간다.
시나리오의 첫 장엔 이렇게 써 있다. “언제든, 당신에게도 올 수 있는 사람.” 김무열은 시나리오를 읽고 ‘해괴하다’란 단어가 떠올랐다. “낯섦이 주는 공포를 해괴하게 풀어내요. 보는 이를 억누르고 짓누르는 에너지를 갖고 있죠.” 송지효는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이란 사람”이 궁금해 무작정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감독이에요’ 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의 여성이 들어왔어요. 이분이 이런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썼다고? 작품보다 감독님을 먼저 이해하고 싶어서 전작을 찾아보고 오래 이야기를 나눴죠.”
손원평 감독은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자 25만 부 베스트셀러 <아몬드>와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서른의 반격>을 쓰고, 단편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2005)과 <두 유 리멤버 미 3D>(2012)를 만들었다. <침입자>가 장편 데뷔작이다. 김무열은 <아몬드>를 읽고 저자의 세계관이 영화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했다. “감독님은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어느 날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어떡할까’란 고민에서 소설을 썼어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하고 독특해서 함께하고 싶었죠. 감독님은 만날수록 좋은 의미에서 이상한 사람이에요.”
감독은 송지효가 데뷔작 <여고괴담 3: 여우 계단>(2003)에서 보여준 그늘을 떠올리고, <침입자>의 유진 역을 제안했다. 송지효 역시 <여우 계단>과 <썸>(2004) 이후 15년 만의 스릴러였고, 긴장감을 풀 수 없는 캐릭터에 매료돼 “무작정 하고 싶었다”. 오랜 예능 프로그램 출연, 코미디와 로맨스 장르로 친숙한 송지효가 드디어 스물아홉 번째 여우 계단을 오르던 서늘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동안 송지효의 이런 재능은 너무 묻혀 있었다.
유진은 비밀스러운 캐릭터인 만큼 관객에게 숨길 지점과 알릴 지점을, 너무 빨리도 늦게도 보여줄 수 없다. 감독에게 “저도 모르게 삐져나온 지점을 누군가 알아챈 것 같은 느낌”을 요구받았다. “새로운 도전, 흥분되는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숙제가 많았던 만큼 저답지 않게 일상이 흔들렸죠.” 송지효는 당시 캐스팅만 되면 주목을 받던 <여고괴담> 시리즈의 오디션에서 “천하태평”이란 소리를 들었고, “결과가 어떻든 겸허히 받아들이는” 성정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집에서도 작품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가족을 잃어버리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처참해졌죠.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됐고, 소중한 것을 잃을까 두려웠어요. 같이 사는 가족에게 뜬금없이 고맙다고 말했죠. 이 영화는 잃어버린 가족이 돌아오면서 일어난 변화를 보여주며, 가족이란 개념을 생각하게 해요.”
김무열 역시 이번 영화로 한동안 “대미지를 입었다”. 작품이 끝나면 집안일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상을 중력으로 사용하지만, 이번엔 소용없었다. “서진은 25년 전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트라우마, 아내를 잃었다는 슬픔을 외면하고 살아가요. 하지만 상처는 틈을 비집고 나와 가족 관계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게다가 유진의 등장은 감당 못할 변화를 불러오죠. 서진의 심리 변화가 극명하지 않고 점진적이라 힘들었어요. 자칫 반복처럼 느껴질까 표현의 차이를 조율하기 너무 어려웠죠.” 감독이 김무열을 서진 역에 캐스팅한 이유다. “김무열이야말로 관객이 보편적으로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한다. 그를 지켜본 관객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송지효가 서늘함을 지녔다면 김무열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얼굴이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보다 약자의 얼굴이다. 이는 배우 김무열의 소명이기도 하다. “가운데 있는 사람, 매개체, 가교가 되고 싶어요. 제가 대변하고 선동한다는 게 아니라, 다른 두 지점을 연결하고 싶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무언가를 흉내 내는 것인데, 관객은 극에 자신을 대입하고 해석을 확대하고 생각을 넓히기도 하잖아요. 배우로서 이 역할을 잘해내고 싶어요.” 김무열은 특히 세대 간 갈등의 가운데 있고 싶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에 점차 멀어지는 두 세대를 생각해보곤 해요.”
송지효는 작품마다 새로움을 실현하고 싶은 배우다. “<침입자>처럼 새로운 연기를 시도하면 신이 나요.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이 안 해본 작품에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죠. 이번 영화가 개봉되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농담하곤 해요. 걱정보다 설렘에 가깝죠.” 작품 활동과 일상은 거의 반대다. 영화로 치면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극장을 선호하고, 3D보다 2D, 멀티플렉스보다 동네 단관을 선호한다. 카카오톡을 깔지 않고, 사람도 물건도 세상이 광고하는 대로 바꾸는 것은 나답지 않다. “생각해보면 일상의 정적을 연기로 푸는 것 같아요.”
<침입자> 촬영이 끝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 송지효는 김무열을 “열무”라 부르고 김무열은 송지효를 “누나”라 부른다. 하지만 영화 촬영을 하는 3개월은 거리를 가졌다. “상대 배우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무열 배우에게 의지를 많이 했죠. 믿는 배우거든요. 하지만 쉬는 시간에 수다를 떨진 않았죠. 의도치 않았음에도 서로를 서진과 유진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작품에 빠져 있었어요.”
김무열 역시 신경증적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60kg대까지 줄였다. 그의 키는 183cm다. “영화 <악인전> 때 살을 찌웠기에 약 20kg을 줄였어요. 또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지쳐가는 서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촬영 전에 소리를 질러 목을 혹사시켰죠. 문제는 영화 촬영이 극의 순서대로 진행되진 않기에 쉰 목소리로 만들었다가 되돌려놓길 반복해야 했어요.” 걱정하는 주변에 그는 뮤지컬 배우라 목소리 관리하는 법을 안다고 했지만 어쨌든 위험한 노고다.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예요.” 그는 영화 <인랑>(2018) 때는 역할과 비슷한 직업이라 생각한 국가 정보기관 퇴직자를 인터뷰하고, <기억의 밤>에서는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싶어 퇴역 군인을 연구했다. <침입자> 촬영 전에도 서진의 신경증적 증세에 관한 책과 논문을 읽고, 그의 직업인 건축가는 어떤 외양인지 조사했다. 그는 “건축가도 도면을 그리는 분이나 인테리어 하는 분 등 분야에 따라 풍기는 이미지가 별개이고, 실내와 실외 어디를 다루는지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달라진다”고 했다.
김무열은 역할을 준비하며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했다. “저도 작품이 끝날 때나 시작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조급해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의심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직업이잖아요.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삶의 태도를 배우고, 어제보다 조금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어요. 이 직업에 큰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영화적 체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영화 <대립군>(2017)에서 백성들이 왕에게 숨지 말고 나서서 적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비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가 촛불 시국이었어요. 촛불이 타오르는 광화문과 제가 찍는 이 영화가 겹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감대와 내가 이 순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니, 엄청난 감정에 휩싸였죠.” 그는 이런 영화적 체험을 관객에게도 줄 수 있길 바란다. “특히 스릴러란 장르는 2D 영화가 줄 수 있는 영화적 극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SF의 특별한 영상 기법이나 장치 없이도 극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장르죠. <침입자>가 그런 영화입니다.” 송지효도 덧붙인다. “저 역시 영화를 찍으며 긴장감에 몸을 풀 수 없었어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무언가에 휩싸이는 기분이에요.”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패션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김영배
- 스타일리스트
- 정설(송지효), 신지혜(김무열)
- 헤어
- 홍다희(송지효), 윤성호(김무열)
- 메이크업
- 오윤희(송지효), 이준성(김무열)
- 세트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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