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맥퀸을 만나다
할리우드에서 군림하며 10여 년을 보낸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이 테이트 모던에서 회고전을 새로 열며 자신의 본업으로 되돌아갔다.
“음…”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이 한참 생각하더니 운을 뗐다. “기념하기…” 그러더니 오스카상과 터너상의 유일한 동시 수상자인 이 화가 겸 영화감독이 말을 멈췄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을 생각하며 침묵에 빠졌다가 다시 말문을 연다. 어떨 때는 완벽한 문장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는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워 보이는 상태에서 생각을 전개시켜나갔다. “그것은 과거에 관한 것이죠. 그것은 일종의… 때때로… 죽음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가 지난 2월 13일부터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며 영국에서 20년 만에 가지는 첫 대규모 전시회에 대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예술계와 영화계, 패션계에서 받은 다수의 상, 내키지 않는 명성이나 찬사 또는 슈퍼스타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인간적 측면에서 맥퀸이 지닌 본질적 특성은 ‘오로지 진실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 밖의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는 가장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통쾌한 사람이 된다. 그는 50세지만 여전히 20대 때 그대로다. 철저한 자기 관리 덕분이다.
‘죽음-설명(Death-Splanation)’이라는 전시 테마가 그리 놀랍지 않다. 그가 즐겨 하는 말이 바로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죠. 결국 그것이 최선 아닌가요?”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캐치프레이즈와 같다. “그렇잖아요!” 그가 배우를 만난 런던 소년 같은 특유의 목소리로 외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몇 달 후 그 친구한테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었죠. 그러자 그녀가 ‘거침없이 살고 있어’라고 답하더군요. 내가 들은 어떤 말보다 자유로운 말이었죠. 가장 섹시한 말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는 템스강이 내려다보이는 테이트 모던 멤버스 룸에 앉아 오전이었지만 벌써 서너 잔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꼼데가르송 옥스퍼드화를 신고 크레이그 그린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군인 같으면서도 수도승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풍겼다. 그는 얼마 전 <3학년(Year 3)>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프로젝트는 런던에서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들의 2/3를 학교별로 촬영해, 총 3,128장의 사진을 그 도시 곳곳에 전시한 것이다. 그것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존 보예가(John Boyega)와 레티티아 라이트(Letitia Wright)가 주연을 맡은 새로운 TV 드라마를 한창 촬영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곧 있을 테이트 모던 전시회에 대해 상의하려고 그날 아침에야 촬영장을 벗어난 것이다.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할리우드의 아우라가 그에게 뿜어 나왔다. 하지만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맥퀸의 악명 높은 태도는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작품을 어떻게 전시했는지는 별로 관심 없어요.” 그리고 전시 예정인 360도 실감 비디오와 영상 설치미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은 극장이나 TV로 뭔가를 보는 것과는 다르죠. 하나의 작품에서 옆에 설치된 작품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단지 작품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차원이 아닌 거예요.” 관람객들은 <일루미너(Illuminer)>(2001)에서부터 <그레이브젠드(Gravesend)>(2007)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일루미너>는 파리의 한 호텔 방에 있는 벌거벗은 한 화가를 보여준다. 그 방은 아프가니스탄전 참전을 위해 훈련 중인 미국 군인들을 보여주는 TV 영상으로 환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레이브젠드>는 콩고 콜탄 광산으로 가는 여정의 다큐멘터리다. 한편 <노예 12년>을 비롯한 <셰임>, <위도우즈> 등 성공적인 영화로 맥퀸을 알게 된 팬들은 그의 전시회 작품을 통해 그의 불안정한 순수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관람객이 직접 그것을 발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그 전시회는 <스태틱(Static)>(2009)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9.11 테러 이후 다시 일반에 공개되는 자유의 여신상 주위를 헬리콥터로 뱅글뱅글 돌며 촬영한 작품이다. “저는 세상의 많은 것이 지금 이 순간 위태롭다고 생각해요. 자유의 상징, 정의의 상징이 매우…”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새로운 표현으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들의 매일매일이 지금 이 순간 정말 불분명하죠. 저는 그것을 좋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맥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희망과 기쁨이고, 가능성을 지니고 있죠. 이 말은 그 시기가 지나면 모든 것이 당신을 엇나가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시작점이에요.” 어쨌든 그는 지나치게 명확히 규정대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내재된 보편성을 강조하고자 덧붙여 말했다. “또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최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아침에 얼마나 우울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죠. 애인과 싸운 얘기도 마찬가지고요. 늘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을 처음에 내놓게 됩니다. 저는 모든 것에게 시작점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런 포부를 갖고 있죠.”
포부는 맥퀸이 고민하는 난제의 열쇠다. 사회의 노력과 그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가 감독으로서 지닌 작업 윤리에 대해 말했다. “어, 저는 많은 것을 요구해요. 아시다시피 저는 많은 것을 주거든요.” 늘 그래왔다. 그는 웨스트 런던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셰퍼드 부시(Shepherd’s Bush)에 있는 악명 높은 화이트 시티 지역에 거주했고, 나중에는 어머니가 가족을 교외로 ‘구조한’ 덕분에 숲이 무성한 한웰(Hanwell)에서 살았다. 그는 학교를 혐오했고, 독서 장애를 앓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약시 치료 때문에 눈에 패치를 붙이고 다녔다. 트리니다드와 그레나다 이민자 집안의 아들이었던 맥퀸은 젊은 시절 실패를 통해 인생을 배워갔다. 그가 다니던 학교는 그가 육체노동에나 적합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좋지 않은 시스템을 경험했다. 하지만 맥퀸은 정서적으로 동떨어지고 상처받은 감독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것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스티브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뛰어난 지각 능력과 공감 능력에 놀랐다. “어린 시절 학대당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군림하고 당신을 조종하려 하며 망치려고 노력하는지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그가 살짝 일어난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으면, 당신은 ‘좋아, 이것은 바보 같은 게임이야. 그리고 나는 그 게임을 하지 않고 있어. 나는 그것을 끝장낼 거야. 제기랄 그것을 부셔버릴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의 커리어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성공은 일찍 찾아왔다. 영화와 TV 중독자인 그는 다섯 살 때 셰퍼드 부시 도서관 밖에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해놓았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그는 첼시 아트 & 디자인 칼리지에, 그다음에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골드스미스에 진학했다. 1993년 그는 자신의 첫 주요 영상 작품 <베어(Bear)>를 연출했다. 그가 발가벗고 레슬링 경기를 하는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절찬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 그는 터너상을 수상했다. <Exodus>, <Girls>, <Tricky>, <Western Deep> 같은 단편 영상 작품을 연출하던 그는 2008년 장편영화 <헝거>를 탄생시켰다. 1981년 아일랜드 단식투쟁을 다룬 이 영화로 그는 첫 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장편영화 제작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는 이미 슈퍼스타 감독이다. 그렇지만 소신이 확실한 그는 예나 지금이나 늘 다름없는 도덕적 틀 안에서 작품을 만든다. 페미니스트 액션 스펙터클 영화 <위도우즈>든, 그의 오스카 수상작 <노예 12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저는 흑인 주연의 영화가 해외로 팔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죠. 그런데 <노예 12년>이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렸죠.” 그가 말했다. “그 영화는 의식이 나가야 할 방향을 다루고 있죠. 저는 그런 부분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제작된 후에도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저는 바로 그런 점이 가장 자랑스럽답니다.”
맥퀸은 예술을 의무로 여긴다. “틀림없죠. 제가 땀을 흘리지 않으면, 뭔가를 고심하지 않으면, 예술에는 어떤 핵심도 담기지 않거든요.” 1990년대 후반부터 그는 교수로 재직 중인 아내 비앙카 스티그터(Bianca Stigter)와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는 함께 살기 편한 상대일까?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더 잘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늘 일하느라 바빠요.”
현재 그렌펠(Grenfell)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영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저는 그렌펠 타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죠. 어떤 권한을 위임받지는 않았어요. 그냥 지역사회로부터 허락을 받은 거죠.” 그는 테이트 모던 전시회 준비뿐 아니라 몇 달간 촬영이 이어지는 BBC One 방영 예정 드라마 <작은 도끼(Small Axe)>에도 깊이 몰입 중이다. 1시간 분량의 드라마 여섯 편으로 제작되는 이 작품은 윈드러시 세대(Windrush,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노동력을 지원하기 위해 윈드러시호를 타고 영국으로 간 카리브해 출신의 이민자들)를 다룰 것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작업은 언제라도 들이닥칠 것이다. 팬들이 그가 메가폰 잡기를 원하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어느 날 수락할 수도 있고 말이다(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저는 예술을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정말입니다.” 그가 대화 막바지에 강한 어조로 반복해 말했다. “나를 사로잡을 만한 모든 정답이 예술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술은 완전한 아이디어를 가지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디어의 일부만 가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죠. 그리고 어떻게 그 아이디어가 뭔가로 합쳐질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원하던 표현을 찾아냈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예술은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 글
- 자일스 해터슬리(Giles Hattersley)
- 포토그래퍼
-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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