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아일리시가 바꾼 세상
슬라임 그린 가르마의 소녀, 룰 브레이커, 그래미의 여왕 그리고 안티 패션, 안티 팝. 우리가 ‘빌리 아일리시’라고 부르는 절대적 인물이다.
지난해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은 사랑스러운 모먼트로 알려진 축제는 아니지만, 아기 판다 두 마리와 맞먹는 팝 스타 두 명의 조합을 내놓았다. 분홍색 경기장 조명 아래, 10대 목격자 수천 명의 환호성과 열광적 반응을 반주 삼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는 그녀의 우상 저스틴 비버를 처음 만났다. 그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더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 의미를 생각해달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17세와 25세의 팝 천재 두 명이 그리는 서로 다른 곡선이 맞닿아, 한자리에서 만났다. 빌리 아일리시의 어린 시절 침실은 비버의 사진으로 가득 도배되어 있었다. 그가 루이 비통 로고가 새겨진 짝퉁 오버사이즈 데님을 입은 그녀에게 긴 포옹을 하자, 가까우면서도 색다른 두 세대의 틈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속삭이는 반체제적 사상에서부터 알 수 없는 의미의 그녀의 안티 패션, 그리고 팬들에게 보여주는 ‘진정한 나’와의 관계성에 이르기까지, 팝 세계 전체에 미친 빌리의 영향은 그녀가 나타나기 직전에 나타난 선구자들을 과거의 산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늘 저는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만들려고 해요. 예를 들면 저는 룰 브레이커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안티 팝이라든가 그런 거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때 칭찬 받는 기분이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내가 뭐 어디에서 룰을 부쉈는데? 팝 음악을 만드는 정석이나 소녀답게 옷 입는 법 같은 건가? 제가 그런 거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어요. 그냥 지금 안 하는 거지.”
싸늘하던 아침, 부모님과 함께 살며 그녀가 자란 이스트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두 개의 침실이 딸린 하일랜드파크의 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빌의 집 인근만큼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멈춰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간에 그녀가 해온 인터뷰를 찾아보면, 가장 선호하는 인터뷰 장소는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바나나를 가져다주거나,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불쑥 나타나곤 하는 어머니 매기 베어드(Maggie Baird)의 말소리가 들리는 부엌 창문 근처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모습을 밖에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빌리는 그녀의 어머니가 종종 나타날 때마다 퉁명스럽게 “알겠어!”라고 대답한다. 매기는 그래도 조금도 화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빌리 아일리시, 풀 네임은 빌리 아일리시 파이럿 베어드 오코넬(빌리는 그녀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이름인 윌리엄에서 따온 것이다. 아일리시는 그녀의 부모가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아일랜드 샴쌍둥이 이름이며, 파이럿은 그녀의 오빠인 피니어스 오코넬이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부르던 이름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은 아버지의 성이다). 그녀는 흰 스포츠 양말을 신었다. 흰 농구 반바지에 흰 후디를 입고, 머리카락의 뿌리 부분은 가장 좋아하는 색인 슬라임 그린이었다. 패션은 작은 체구를 더욱 강조했지만, 고양이처럼 햇볕을 쬘 수 있는 주방 구석에서도 아일리시의 존재감은 훨씬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목소리는 크고 확신에 차 있으며, 그녀가 당신에게 참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한, 결코 참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그녀의 특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빌리는 초인종 보안 시스템의 희미한 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이더니 움찔했다.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방문했고, 매기는 조금이라도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현관문의 네 개의 긴 유리창에 수건을 걸었다. 빌리의 존재가 가족보다 더 커진 것은 분명하다. 아일리시의 아버지 패트릭 오코넬은 거실 구석에 있는 버려진 듯한 작은 그랜드피아노 옆의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아일리시가 더 이상 집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바닥은 수트케이스로 뒤덮여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아일리시의 부모는 여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배우다. 지금은 딸 아일리시의 투어를 돕고 있다). 거실에 쌓인 빌리 아일리시 굿즈(모두 슬라임 그린!)에서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전날 아일리시는 낡은 금으로 된 체인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옆에는 빌리 아일리시 마트료시카 인형을 두었다. 이 인형은 팬들로부터 종종 받는 멋진 선물 중 하나다. 그곳에서는 요람이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 다. 오코넬 집안은 딱히 종교가 있지는 않지만, 아일리시와 그녀의 아버지는 예수의 탄생 장면을 어릴 때부터 만들곤 했다.
“사람들은 룰을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를 룰 브레이커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딱히 룰을 부수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만약 제가 누군가가 그들이 기대한 것 대신에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어떤 것을 할 거라고 누가 기대한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원하는 걸 했어요.”
아일리시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이 팬 부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티파니 반지 같은 블링블링함도 없고, 케이티 페리같이 섹시하게 굴곡진 몸매도 없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예술적 분위기는 끝을 모르는 어둠 속에 있었다. 아일리시는 열세 살 때 오빠가 쓴 ‘Ocean Eyes’라는 곡으로 네이팜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불타는 도시를 노래하며 유명해졌다. 뮤직비디오는 끔찍하기 그지없다. 두꺼운 눈꺼풀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눈물, 입에서 기어 나오는 타란툴라 거미, 등에 박힌 바늘, 그녀의 뺨에 담배를 하나씩 지져서 끄는 것 같은 장면이 있다(아일리시가 많은 영향을 받은 라나 델 레이는 음악으로는 애처로운 분위기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중이 익숙한 충격의 형태를 따랐다). 그러나 아일리시 세대는 음울한 사건이 잔뜩 벌어졌을 때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고 세 달 후 9·11테러가 있었고, 기후변화 위기, 교내 총기 사고 등 수많은 사건은 인터넷에서 엄청난 마찰을 빚으며 더 증폭되기만 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그레타 툰베리나 파크랜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들 같은 Z세대 활동가들이 나타났다. 이런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많은 동시대 사람들은 침실에 숨어 인터넷 세상에 빠져들거나, 최악의 경우 오피오이드나 벤조디아제핀으로 스스로를 마비시켰다(故 릴 핍 같은 Z세대 이모 래퍼처럼). 아일리시는 이런 친구들에게 ‘어른이-되지-않아’라고 말하는 그녀의 거대한 파자마를 입고 말을 건다. 그녀는 ‘When the Party’s Over’를 통해 그들의 외로움을 들여다보았다. 또 카바레 발라드라고 할 수 있는 ‘Xanny’ 같은 노래로 자낙스 남용에 대한 정부의 쓰레기 같은 발표에 대해 경고했다(아일리시는 마약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관심도 없지만, 마리화나 냄새는 좋아한다고 했다). 팬들이 그녀를 1위 앨범과 1위 곡을 낸 첫 번째 2000년대생 아티스트로 만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녀의 팬들은 옛날처럼 그들이 되고 싶어 하는 10대보다, 그들을 이미 닮은 10대 소녀에게 열광했다. 그녀의 음악을 듣는 팬들은 연애에 대해 얘기하는 진부한 노래를 듣고 싶지도, 그럴 시간도 없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꺼낼 때, 아일리시는 종종 ‘Wish You Were Gay’에서처럼 조숙한 냉소주의로 표현한다. 이 곡에서 그녀에게 관심 없는 한 소년에 대해 “내가 얼마나 너와 같이 있고 싶지 않은지 말할 수 없어”라는 이중 부정의 말로 그녀의 양면적인 모습을 전한다.
빌리 아일리시의 세계는 음울하지만, 어린 시절은 행복했고 모든 예술적 표현을 격려하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오빠는 작곡 천재이면서 아일리시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공동 작업자로서 그녀의 앞길을 닦아주었다. “음악은 어디든 숨어 있어요. 저는 늘 노래해요. 노래하는 것은 속옷을 입는 것과 비슷해요. 뭘 하든 늘 안쪽에 있죠.” 그녀는 일곱 살에 우쿨렐레로 첫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피아노와 기타를 독학했다. 늘 독립적이었고, 무대에 올라갈 것을 강요받지도 않았다. “‘저 노래 잘해요!’ 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그런 아이들이 늘 있는 거 아시죠? 저는 그런 애들 정말 싫어했어요. 박수 받으려고 노래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애들요. 그리고 그 애들 엄마들도 ‘그래, 우리 애는 이렇게 저렇게 될 거야’라고 말하죠. 나는 결코 그런 카테고리의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저 역시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일리시와 그녀의 오빠는 여러 이유로 홈스쿨링을 받았다. 아버지인 패트릭은 오클라호마의 형제 밴드 핸슨에 대한 기사를 읽고, 홈스쿨링을 하면 자녀들이 더 자유롭게 예술적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인 매기는 콜로라도 출신인데, 피니어스가 태어나고 2년 뒤에 콜럼바인 총기 사고가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매기와 패트릭은 둘 다 홈스쿨링으로 아이들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피니어스는 2년간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잘 정도로 특이한 아이였다. 빌리는 말로 전달하는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청각 정보 처리 기능에 장애가 있었고, 수학을 공부할 때는 스트레스로 반복적으로 심한 틱을 보이는 투렛 증후군도 있었다(유튜브에 그녀의 틱 증상을 모아놓은 영상도 있는데, 단순히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으로 보이는 비자발적 눈의 움직임이 그녀의 틱 증상이다. 아일리시는 약물 치료 없이 잘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 굉장히 기뻤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사는 것 같은 인생은 없었을 거예요.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마구 돌아다니고 싶을 때뿐이에요. 사물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학교에서 춤출 때, 선생님 말 안 듣고 크게 막 웃는 그런 거요. 학교에선 그런 것만 재밌었거든요. 이걸 알고 나니까, 학교에서 학교를 뺀 나머지만 하고 싶은 것이더라고요.” 아일리시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고, 부모는 그 에너지를 댄스 클래스나 체조, 승마로 승화시켜주려고 했다. 수많은 체험을 했고, 아일리시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오코넬 가족은 돈이 별로 없어서 많은 품을 팔아야 했다. 패트릭은 체조 교실에 가서 소일거리를 도왔고, 매기는 음악 수업을 했고, 아일리시는 사우스패서디나의 샌패스퀄 마구간에서 말을 빗질하고 재갈을 물려주었다. 빌리는 같은 수업을 듣던 부잣집 소녀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보던 것을 기억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 빌리에게는 쓰라린 학습이었다. “전혀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그런 분위기였어요. 누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당연히 바로 알 수 있잖아요. 제 어린 시절 내내 그랬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재밌어요. 저랑 열한 살쯤에 같은 반이었으면 저를 싫어했을 사람들이 제 팬이니까요.”
아일리시는 LA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갔고, 거기서 어린 시절의 가장 알찬 음악적 경험을 했다. 합창단은 엄격하고 진지했다. 합창단원들은 얼굴을 만지지도 못했고, 휴대폰도 볼 수 없었다. 음악 이론을 배웠고, 가만히 서 있는 법도 배웠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붉은 니트 조끼에 타이츠와 스커트를 입고 낮은 구두를 신고, 머리를 검은 끈으로 질끈 묶었다. “정말 개 같았어요,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이건 부정 못하겠네요. 합창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아일리시는 열세 살 때 합창단의 주요 멤버가 되지는 못했지만, 프로 가수의 삶이 시작되면서 합창단도 그렇게 끝났다. “굉장히 감정적으로 슬펐어요. 제가 합창단을 나가면, 모두 저 빼고 다른 친구들을 사귈 테니까요. 그때 울먹이던 나를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미래에 대해, 내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며 울었어요. 그런데 내가 완전히 맞았어요. 사람들이 나아가야 하는 때에 계속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어요. 여행을 떠날 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줄 것을 바랄 수 없는 것처럼요.”
아일리시는 그 무렵 처음 닥친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공개적 입장을 취해왔지만, 어두운 주제에 대한 집착은 그전부터 있었고, 일반적으로 그녀의 기분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얘기했다. 지난 몇 년간 그녀는 드라마 <워킹 데드>의 한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은 ‘Fingers Crossed’가 그녀가 맨 처음 쓴 곡으로, 어머니가 홈스쿨링을 받는 아이들을 위해 했던 작곡 수업에서 쓴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최근 그녀는 열한 살 때 알고 있던 유일한 다섯 개의 화음으로 만든 멜로디 ‘Why Not’을 포함, 열한 살에 작곡한 곡을 우연히 발견했다. 가사는 단순하고 병적인 전제를 갖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살해도, 모든 것은 똑같을 거라는 전제다. 별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태양이 뜨고, 계절은 계속 바뀐다. 그래서 안 될 것은 뭔가? 친구들은 그 노래를 좋아했다. “열한 살 때 만든 노래 예요. 그때 엄청 행복했거든요.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느끼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노래를 만드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행복한 가정의 안정된 여자아이 빌리와 머릿속에 악마가 가득 찬 아티스트 빌리라는 두 정체성을 모순적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다. 이런 모순적인 모습은 그냥 현대 10대 문화의 극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의 노래는 결코 자전적 소재로 된 것만은 아니다. 그녀와 피니어스는 노래의 화자를 만들어내고, 그 관점에서 가사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Bury a Friend’에서 나오는 침대 밑의 괴물, ‘Bellyache’에서 친구를 막 죽이고 죄책감과 싸우는 소녀와 같은 화자들이다. 아일리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많은 아티스트를 참고한다. 라나 델 레이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마리나 앤 더 다이아몬즈, 오로라와 같은 가수들이다. 이들은 노래에서 그들을 대신하는 어두운 알테르 에고(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다. “이야기가 허구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잖아요. 거짓을 노래하는 것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달라요. 그냥 거짓말만 하는 노래가 몇 트럭이에요. 요즘 랩에 그런 게 많고, 제가 아는 래퍼들도 그래요. 예를 들면 이런 건데, ‘난 AK-47이 있고, 개쩔어…’ 이런 걸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뭐? 총도 없으면서. ‘날 쫓아다니는 여자들…’ 이런 가사를 들으면 ‘뭔 여자들?’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건 그냥 허세죠. 제가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비록 빌리는 그녀의 노래가 죽음을 미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고통받는 팬들은 그녀의 암울한 노래를 죽음에 연결시킨다. 이는 젊은 아티스트에게는 엄청난 부담과 책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인사하고 나서 바로 ‘제 딸이 올해에만 다섯 번 입원했는데, 따님의 음악만 계속 듣거든요’ 이런 얘기를 해요.” 매기가 말했다. 어느 핀란드 팬은 아일리시 집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곧 있을 콘서트 표를 예매했지만 그때까지 살아서 콘서트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매기는 SNS를 통해 그녀에게 연락했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런 친구들은 빌리가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소녀들이에요. 정말 고통스러워해요.”
매기는 아일리시의 가사(혹은 피니어스가 빌리를 위해 쓰는 가사도 말이다. 아일리시는 그녀의 오빠가 가사로 그녀의 마음을 읽는 수준이라고 말했다)의 어둡고 음산한 면이 고통의 표출이라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종 예외가 있긴 하지만. 지난해 앨범에 수록한 ‘Listen Before I Go’의 경우 매기는 어떤 경고로 받아들였다. “내가 필요하고, 나를 보고 싶으면 서둘러, 난 곧 이 세상을 뜰 테니까”라고 빌리가 노래하고 있었다. “이게 완전히 창작된 이야기인지 알아야만 했어요. 10대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어요. 아이들이랑 새벽 2시나 되어야 이야기할 수 있고, 제 앞에서 눈을 굴리며 저를 증오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제가 말씀드린 게 실제로 제가 걱정한 빌리의 행동이에요. 그 아이 침실 벽에 써 있는 것도 무서웠어요. ‘난 왜 살아 있지?’ 같은 메모나, SNS에서 하는 일도 그렇고요. 플로리다에 사는 소년이라고 주장하는 낯선 사람과 DM을 주고받는다거나. 아이들은 온라인에서는 무서워졌어요. 하지만 가사는 아니었죠. 정말 어두운 것은 지어낸 이야기예요.” 아일리시는 자신의 우울증을 댄스 수업에서 다친 것, 나쁜 친구들, 그녀를 푸대접하는 사람을 좋아한 것 같은 어린 시절 사건과 연결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외모로 고통받았다. “제 몸을 너무 싫어했어요. 달라질 수만 있다면 뭐든 했을 거예요. 정말 정말 모델이 되고 싶었거든요. 저는 키도 작고 통통했는데 말이죠. 너무 일찍 성숙했거든요. 아홉 살에 가슴이 나오고 열한 살에는 생리를 하고요. 몸이 머리보다 빨랐어요. 웃기지 않나요? 어릴 때는 몸에 대해 전혀 생각을 안 하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는 ‘와, 어떡해’ 이런 느낌.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뭘 할 수 있었겠어요?” 그녀는 자해적 행동을 했고, 이에 대해 상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자살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밝힐 수는 없지만 어떤 변화가 찾아왔고 어둠이 걷혔다. “사람들이 저한테 멘탈 관리에 대해 조언해달라고 할 때,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견디라는 말뿐이에요. 저는 스스로 견뎠어요. 최후의 방법까지 가지 않았죠. 기다렸어요. 그러자 지나갔어요.”
비록 거대한 트레이닝복 코디의 레퍼토리는 단순히 그녀가 불편함을 느끼는 신체로부터 자신을 가리거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시작됐지만, 아일리시는 늘 패션을 사랑했다. 이 매우 독특한 작은 소녀는 이미 네 살 때부터 속옷이 바깥에 붙은 아기용 우주복을 골랐다. 열세 살에는 타깃 매장 진열대를 들쑤시고 다녔고, 산 것을 자르고 다시 꿰매고 이어 붙여 새롭고 기괴한 형태로 다시 만들어냈다. 그녀는 옷장에서 발견한 노란색 어망 천으로 만든 셔츠와 이케아 쇼핑백으로 만든 시원해 보이지만 매우 불편하던 셔츠를 떠올렸다. 스니커즈도 해체해 텅(신발 혀)으로 솔을 감싸곤 했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오빠 방(둘이 모든 곡을 만들고 녹음한 곳이다)에 걸린 초록색 용이 프린트된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녀는 드레스를 입지 않지만 말이다. “그냥 이상한 걸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아홉 살, 열 살 때쯤의 저를 생각하면 진짜 옷을 끔찍하게 못 입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제가 입고 싶은 거였어요. 엄청 집착해서, 결국 입고, 행복했죠.”
독성이 느껴지는 듯한 색채와 혼란스러운 프린트, 짝퉁 유럽 명품 엠블럼(그녀가 가진 비주얼의 힘을 알아챈 럭셔리 브랜드가 그녀에게 진품을 보내주었다)을 입은 아일리시는 늘 독점적이거나 포식적 시선을 경멸하는 것 같다. 지난해 캘빈 클라인 캠페인 영상에서 그녀의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돼요. 아무도 ‘저 여자 날씬해’, ‘저 여자는 날씬하지 않아’, ‘그녀는 엉덩이가 납작해’, ‘그녀는 엉덩이가 커’와 같이 말해서는 안 되는 거죠.” 지난해 9월 그녀가 4,600만 명이 팔로우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반항적인 포스팅을 올린 적 있다. 아일리시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프릭 시티(Freak City)’와 협업한 그래피티 프린트 티셔츠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문간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만약 내가 평범한 걸 입었으면 더 섹시했을 텐데, 그래그래, 더 좋은 코멘트를 생각해보세요. 나는 이미 지쳤으니까”라는 자막도 달았다. 우리가 그 포스팅을 보고는 남자들에게 국한된 스케이터 스타일을 비판하며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정치화하고 싶었을지라도, 아일리시는 어떠한 항의의 의미도 없다고 밝혔다. 퍼렐 윌리엄스와 함께한 <V> 매거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내가 옷 입는 방식에 대한 긍정적 코멘트는 야하게 입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마인드에서 나오는 거예요. ‘네가 남자처럼 입어서 좋아, 여자들도 남자처럼 입을 수 있고 그럼 창녀가 아닌 거야.’ 이런 소리로 들려요. 그런 거 전혀 고맙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아요.”
클라라 보우에서 케이트 모스에 이르기까지 ‘쿨한 여자’를 정의하는 낡았지만 진화하는 패러다임에 따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의 아일리시를 ‘쿨한 여자’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침착하게, 아주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도 초연하며, 대중문화나 전통적 매력의 특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그녀만의 아우라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택을 딱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합창단이나 마구간에서 반항하지 않는 한, 그녀는 ‘쿨함’의 필수 요소인 반항아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최근 뷰티 유튜버인 여자 친구 클라우디아 슐레우스키(Claudia Sulewski)와 함께 집을 얻어 이사한 피니어스는 오코넬가의 아이들은 반항적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저는 일반적인 유년기가 뭔지 몰라요. 친구들 중에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솔직히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 없어요. 부모님이 우리의 질문과 관심사를 하찮게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제 친구들은 부모님께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친구 집에서 자고 와도 되나요?’ ‘아니, 안 돼.’ ‘왜요?’ ‘왜냐면…’ 이런 대화요. 그런데 저희는 어릴 때 대화를 정말 많이 했고, 그 결정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일리시와 피니어스는 비교적 간단하게 음악을 만든다. 그녀의 공기가 많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빈 공간감이 느껴지는 비트에 내보내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집에서 이뤄지는 그들의 작사, 녹음, 편곡 취향에 잘 맞는다. “스튜디오 작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햇볕 받는 게 싫어요. 그리고 스튜디오에서는 이상한 냄새도 나고요. 녹음 부스는 혐오해요. 멀리까지 가서 방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것도 싫어요. 처음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함께 스튜디오에 들여보내자’는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고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이 프로듀서나 작사가, 다른 아티스트, 또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일했고 좋은 경험이었는데, 나와 피니어스가 해오던 것이 거기서는 아무것도 안 됐어요. 그래서 원래 하던 방법으로 계속하기로 했어요. 일주일 전에 오빠가 와서 컴퓨터를 설치하고 녹음을 좀 했어요.”
아일리시는 최근 팝의 일반적 범주와 사운드에서는 탈피했지만, 스트리밍 시대의 룰에 따르기도 한다. 첫 정규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10만 뷰를 달성했다. 그녀가 발매한 싱글의 경우 다소 구식으로 제작했다. 각 싱글은 다른 색을 띠고, 팀이 한 번에 여러 개의 플레이리스트를 작업하는 방식으로 구성해 더 많고 다양한 팬층을 모았다. 아일리시는 팝 스타덤에 오르길 갈망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이제 당황스럽지 않다. “모든 게 제가 원한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따라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면, 그녀도 메인스트림으로 선회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그녀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인 메모리엄(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영화인을 기리기 위한 코너)’에서 공연했다. 또 최근에는 <007> 영화의 주제곡 ‘No Time to Die’를 만들고 (물론 그녀의 오빠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의 팝을 규정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철저히 프로듀싱한 댄스곡 없이도 아일리시의 콘서트 투어는 성공 행진을 이어갔다. 팬들은 댄스 대신 아일리시를 따라 머리를 하고, 그녀가 고딕풍 몽타주 영상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무대에서 날뛰는 것을 보며 열광했다. 장장 49일에 걸친 ‘Where Do We Go?’ 월드 투어는 지난가을 50만 장의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미국 전역과 유럽에서 1시간 만에 매진됐다(지난 4년간 아일리시의 모든 투어는 전석 매진).
어떤 부분에서 아일리시는 엄청난 ‘팬심’을 갖고 있다. 대중이 SNS의 거짓된 진정성을 실제와 분리하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그녀의 다채롭고도 걸러지지 않은 열정은 환영할 만한 진정성을 지녔다. 자신이 암기하는 수준인 미국 드라마 <오피스>의 주연인 레인 윌슨과 함께라면, 상식 문제도 풀고 싶어 할 것이다. 또 리한나를 거의 신으로 모신다고 말하기도 했다(“말 그대로 ‘쩌는’ 신이라니까요!”). 최근 대성공을 거둔 아일리시의 스트리트웨어와 액세서리, 잡화 브랜드 ‘블로시(Blohsh)’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은 열한 살 먹은 아일리시의 사진을 프린트한 티셔츠다. 그녀는 저스틴 비버 포스터로 도배된 침실에서 끔찍하기 그지없는 스팽글 장식의 무지갯빛 파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보통 ‘쿨함’이란 걱정 없고 아이러니하게 무심해 보이는 모습을 의미하곤 했는데, 아일리시식의 ‘쿨함’은 걱정과 애정 어린 집착까지도 중요시한다.
한때는 힘들던 투어가 점점 더 기쁜 일이 되면서 그녀의 심리 상태가 나아지긴 했지만, 아일리시는 유명해질수록 팝이라는 기계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 혹은 그 명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상상을 더 쉽게 했다. “팬들이 자라서 변하는 게, 아니 그게 뭐가 문제예요? 스캔들 같은 것 있죠. 브리트니 스피어스같이 그런 구설수에 휘말리는 거. 다들 연예인들 예쁘다, 엄청 말랐네 이런 생각하면서 자라잖아요. 그걸 왜 굳이 망쳐요? 그런데 제가 점점 더 잘나갈수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날 망하게 해야 했는데. 내면 어두운 곳에서 제가 걱정하는 건 젊은 아티스트라고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이 내가 되는 거예요. 어떻게 그러지 않겠어요? 지난해 유럽 투어 때 진짜 바닥을 치는 상태였어요. 너무 걱정돼 신경쇠약이 오면서 머리까지 밀어버릴 뻔했어요.”
아일리시는 지난해 12월에 열여덟 살이 된 기념으로, 작은 생일 파티를 열었다. 스키 볼, 바운스 하우스, 테이블 풋볼, 피냐타 한 통, 그녀의 요청으로 어머니가 직접 구운 비건 크림 치츠 장식과 페퍼민트 사탕으로 장식한 비건 초콜릿 케이크가 있었을 것이다. 팝 스타의 기준으로 그녀의 평탄하던 유년기는 끝났다. 지난가을 그녀는 작은 스캔들을 일으킨 적 있는데, 그녀보다 열다섯 살 연상인 드레이크과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상황은 지금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요즘 인터넷에는 멍청이들만 있어요.” 그녀는 2018년에 트위터를 그만뒀다. “모두 멍청하고 예민해요. 다 큰 성인은 팬 하면 안 되나요? 인터넷에는 걱정거리가 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면 드레이크가 제 팬인 게 징그러운 일인가요? 그리고 트럼프한테 투표할 거고요?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일리시는 올가을 첫 투표를 한다. 그녀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팬들도 참여를 독려하곤 한다. LA 시장 에릭 가세티의 공약이었던, 고등학교 학생들의 유권자 등록을 2018년 중간선거보다 일찍 진행하는 것을(새로 등록하거나 사전 등록한 유권자가 가장 많은 학교에서는 자체 콘서트를 열었다) 돕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봄 데이비드 아텐버러의 BBC 다큐멘터리 <기후변화-위협받는 영국(Climate Change-The Facts)>을 보고 난 후 환경을 위한 투사가 되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통해 팔로워들에게 지구 온난화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싱글 ‘All the Good Girls Go To Hell’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불꽃에 둘러싸여 유출된 기름에 찌든 날개 달린 생물로 변했다.
초인종이 울리고, 매기가 뭔가 받는다. 부엌 출입구를 통해 그녀가 식당 테이블에 뭔가를 내려놓는 것이 보인다. “뭐예요?” 빌리가 소리 질렀다. “누가 과일을 보냈네.” 매기가 대답했다. 마일라(Mylar)의 생일 파티용 풍선으로 묶인 먹음직스러운 과일 세트였다. 매기는 카드를 펴서 소리 내어 읽는다. “집에서 지루하게 있는 게 안타까워서 보내.” 몇 시간 전 아일리시는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하나 올렸다. 수천 개 휴대폰 플래시가 별이 총총한 하늘처럼 비치는 광활한 경기장에서 노래하는 자신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투어가 그리워… 집에 있는 건 지루해”라고 자막을 달았다.
“으, 그건 진짜 완전 소름 끼쳐요.” 그녀는 그 불쾌한 선물에 대해 말했다. “팬들은 다들 착하지만,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못 봐요. 가끔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이 편지 꼭 남기고 싶어’ 이러는 것 같아요. 그럼 저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왜 해?’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프라이버시가 붕괴되는 것은 그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지난 주말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이번 겨울 캘리포니아에 내린 첫눈 속에서 산책하기 위해 강아지 페퍼와 함께 윌슨산을 지나 오솔길을 벗어난 숲속으로 차를 타고 갔다. 몇몇 사람을 지나치긴 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숲속에서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돌기 시작했다. “다행히 맨날 옷을 잘 입고 다니니까, 제가 엉망일 때의 사진을 찍지는 못할걸요.” 그녀가 우스개로 얘기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기분? 빈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봤는데, 그 빈방에 있는 자기 사진을 문자로 받는 기분이에요.” 현재 그녀는 부모님 집을 떠날 생각은 없다. 비록 주소가 공개되어 때때로 원하지 않은 방문객도 오고, 주문도 하지 않은 피자는 더 많이 오지만. “운 좋게도 부모님을 사랑해요. 이 집도 좋아하고요. 오빠도 맨날 오고. 오빠도 오고 싶어 하거든요. 저희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지금은 밸런스가 좋은 것 같아요.”
그녀는 자기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다른 여느 10대와 같이 독립을 갈구하면서도, 부모의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한 것이다. “아니, 밸런스는 잊어버리세요. 여기 있는 게 좋아요. 뭐가 어쨌든지요. 저는 자동차가 있으니까요. 차 한 대면 충분해요.”
- 글
- Rob Haskell
- 사진
- Courtesy of Harley Weir, Ethan James Green, Xu Zhen, Hassan Hajjaj
- 헤어
- Holli Smith
- 메이크업
- Fara Homi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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