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셔먼의 ‘반-자화상’
40년 전부터 이 미국인 예술가는 자신이 만든 인물을 스스로 뒤집어쓴 사진을 찍어 현대의 초상을 남기고 있다. 9월 23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프랑스 루이 비통 재단은 신디 셔먼의 ‘반-자화상’에 대한 회고전을 열어 정체성, 여성성, 남성성, 인류라는 주제에 질문을 던진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평범한 한 여성과의 대화.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1시간가량 페이스타임으로 대화를 나눴다. 파리는 밤이었고, 뉴욕은 낮이었다. 셔먼의 성격이나 작품을 말하는 데 잘 맞는 수단은 아니었다. 신디 셔먼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으며, “진실하게 거짓말한다”는 모순적 표현을 실체화해 소통하는 독보적 능력이 있다. 전 세계 예술 비평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그거야말로 그녀 작품의 영혼이다. 셔먼이 스스로를 사진의 유일한 주제로 삼은 지 40년이 지났다. 그야말로 현대의 카스틸리오네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1954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젊은 여배우, 광대, 억만장자, 화가, 스타, 주부 등 자신을 수많은 역할로 탈바꿈하며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1년, 그녀가 60년대 젊은이 같은 분장을 하고 바닥에 누워 있는 ‘무제 #96’이라는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390만 달러에 팔렸다.
저녁 8시에 화장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얼굴이 휴대폰 액정에 나타났다. 신디 셔먼의 피부는 아주 창백했고, 눈은 진한 푸른색에 금발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라운드넥 회색 스웨터 차림이었다. 미국식 표현으로 ‘옆집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보다는 더 예뻤지만 말이다. 그녀는 작품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주름도 없고 윤기 있는 모습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 현대 예술의 대스타는 그에 걸맞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지겨울 정도로 온화해 보이는 얼굴은 도화지 같았다. 그녀는 그 도화지에 자신의 것인 적이 없었던 어떤 이야기의 한 획을 크게 긋는다. 달리 표현하자면, 셔먼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초상, 그녀 자신을 찍는다. “자아 정체성의 문제, 장르의 유동성 같은 문제는 언제나 신디 셔먼 작품의 핵심이죠”라고 루이 비통 재단 아트 디렉터 수잔 파제(Suzanne Pagé)가 힘주어 얘기했다. 그녀는 ‘신디 셔먼 기념 전시’와 ‘크로싱 뷰’ 전시 담당자였다. 또 루이 비통 재단 컬렉션의 인물 사진(루이즈 부르주아, 데미안 허스트, 앤디 워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전시도 있다.
신디 셔먼의 작품은 남성의 시선이 규정한 여성성의 원형을 중심으로 사회가 발전해온 과정을 반영한다. 남성들 그리고 미국 여성들은 이런 주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너무 내밀한 이야기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신디 셔먼은 이런 클리셰와 침묵하는 여러 목소리를 환기하고자 한다.
분장의 소재가 유년기 경험이라고 들었어요. 네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죠?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가족끼리 관계가 좀 독특해서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막내였는데 나이 차가 아홉 살, 열아홉 살씩 났어요. 한 핏줄이라는 느낌이 없었죠. 그래서 뭔가 다른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컸거든요. 제가 가족에 잘 융합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어린 시절 가족에게 “짠, 그거 나야!” 하며 당신의 사진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을 느낀 거군요. 그래서 작업할 때도 연출한 인물 뒤의 자신을 없애는 걸까요. 가족사진을 작업처럼 생각한 적은 절대 없어요! 그렇지만 가족이 재미있어한 것은 맞아요. 이 사진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찍힌 이 사진 속 얼굴은 어떤 탐구 가능성을 열어주었거든요. 탐정처럼 말이죠. 어린아이가 자기가 아기일 때 사진을 보면 좀 이상한 일이 생겨요. 자기가 그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자기인 것을 알아보잖아요. 이것처럼 제가 “그거 나야!” 하고 알려줄 때도 제 아이덴티티에 대한 생각은 전달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모르는 저의 이미지에 스스로를 새로 연결 짓는 거예요. 이제 나중에는 제 작업처럼 가발을 쓰고 분장한 제 자신 뒤에 스스로를 지우는 거죠.
자기 자신의 괴리가 불편하지는 않나요? 왜 불편하죠? 배우처럼 배역을 연기하는 것과 같아요. 제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드러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은 어떤 환상이 아니에요. 제가 되고 싶었던 것을 연출하는 것도 전혀 아니고. 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작품으로 말을 대신하는 거군요? 네, 다른 모든 장르의 예술가에게도 같은 의미일 거예요. 사진, 회화, 조각… 많은 분야에서요.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죠? (웃음) 제 사진에서 누군가는 제 유머 감각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엄청 거대하고 깊은 뜻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는 거겠죠. 제 사진 속에 즐거움이 있고, 사진으로 그런 느낌을 구현해서 느껴지게 하는 거예요.
그런 게 바로 예술가의 역할 아닐까요. 어떤 예술가는 미를 추구해서 세상을 더 멋지게 만들고 싶어 하죠. 또 다른 예술가들은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고,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해요. 제 경우에는 마지막 유형에 해당하겠군요.
작품과 예술가를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잘 모르겠어요. 아주 민감한 질문이군요. 예술가에 대해, 특히 남성 예술가 중 비난받아 마땅한 짓을 저지른 예술가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반유대주의를 표출하거나. 그런데 그의 작품이 위대하다는 핑계로 그런 문제를 모른 척할 수 있을까요? 답변하기 어렵군요.
이미 그림은 남자들이 다 선점해버려서 당신이 사진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군요. (웃음) 전에 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70년대 말에 많은 여성이 사진을 잘 모르는 채로 선택했어요. 그냥 사진이 있어서요. 그림의 세계에서는 거절당했거든요. 이런 걸 의식하고 사진을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굳이 따지자면, ‘사람들이 신경 안 쓰는 게 있네. 한번 해보자!’에 가까워요. 제 경우에는 사진 수업 시험에 낙제했어요. 그리고 다른 교수님 수업을 재수강했는데, 카메라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때 저는 정말 꼼꼼한 데다 리얼리스트였거든요. 정말 철두철미하게, 작은 것까지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그 선생님 덕분에, 필름에 아이디어라는 찰나를 붙잡아 이를 다듬는 데 시간을 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죠.
당신의 사진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여러 경로에서 나오죠. 2년 전에 20년대 영화 스타들을 작업한 적 있는데, 이것은 당시 독일 영화에 대한 오래된 책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은 거예요. 그때 제가 여배우들처럼 과장되게 화장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어요. 남자 배우처럼 해보기도 하고. 분장의 용도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몰랐거든요. 그전까지는 얼굴을 바꾸기 위해 여러 사진 작업에 디지털적 수단밖에 쓰지 않았어요. 아주 진한 메이크업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전부 준비해서 초록 바탕 앞에서 연기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각 사진을 위한 장식품 같은 것을 생각해내고 만들어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처리하고, 인물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화장은 잡지에서 잘라낸 얼굴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요. 결과물은 그 원본과 전혀 다르지만요. 그런데 가끔 결과물이 제가 실제로 마주친 사람들을 닮기도 해서 실존하는 인물이 되곤 해요.
이런 기술적 발전으로 더 자유로워졌나요? 그렇죠. 그런데 자유로운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주어진 틀에 저항하면서 작업하기 위해 규칙과 한계가 있어야 해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능성은 무한해졌고 제가 무엇을 원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새것을 창조하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서는 다시 한계를 설정해야만 했어요.
당신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을 언제 알았나요? 제 작업이 이전의 어떤 것과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예요.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통해 제가 전혀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를 본 느낌을 받았을 때도 느꼈죠. 그리고 작품 안에서 제 자신이 보이지 않았을 때도요.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점점 이런 느낌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져요.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질까 봐 두려운 건가요? 맞아요, 너무 무서워요! 제가 뭔가 했을 때, 누군가는 제가 똑같은 것을 한다고 생각할 텐데,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하게 해서 촬영한 적 있나요? 시도는 했어요. 80년대에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탁해봤죠. 어시스턴트를 둔 적도 있어요. 그런데 잘 안 되더라고요. 사람들을 어떻게 디렉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커피도 준비해야 하고, 구도를 잡을 때도 시간이 걸려서 사과하고… 그리고 결과물도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하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할 필요 없이, 맘껏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작품에는 여성이 중심에 있어요. 페미니스트인가요? 활동가는 아니지만, 제 친구 몇몇은 실제 활동가죠. 그들처럼 강력하게 드러내진 않아요. 그들만큼 논리적인 주장도 없고. 그래서 세상에 대한 정치적 관점을 제 작품이 저 대신 말하고 표현하게 해요. 그리고 제 스스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여겨요. #미투 운동 같은 것은 불편하긴 하지만.
왜죠? 너무 이분법적이라서요. 모든 것을 흑백으로 따질 순 없잖아요. 오히려 회색 영역이 많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나치게 정치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다고 봐요.
패션과 럭셔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패션 좋아해요, 쇼핑도 좋아하고. 그런데 패션 산업이 ‘예쁘다’, ‘날씬하다’ 이런 개념을 강요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느껴요. 가끔 럭셔리 브랜드의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기도 해요. 그런 작업을 통해 또 한 번 스스로의 작업을 계속 이끌어가는 거죠.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까?”라고 자문자답하죠. 구명조끼 같은 역할이랄까. 예를 들면 스텔라 맥카트니에게 의뢰받은 적이 있어요. 지금은 보류 중이긴 한데. 맥카트니가 남성복 라인을 론칭할 때인데, 저도 옛날부터 남성 초상화 시리즈를 작업하고 싶던 참이었어요.
당신이 남성성을 표현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요. 제 초기작에는 많이 있어요. 그런데 맞는 말이죠. 아마 여성으로서, 남성의 캐릭터와 관점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표현하는 인물들은 분노를 표현하곤 하는데, 그걸 남자의 관점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면 결과물이 고정관념이나 클리셰처럼 나오는 거죠. 순수하게 기술적 문제도 있고. 좋은 남자 가발을 찾는 게 어렵거든요.
성공의 비결이 뭔가요? 성공했다고 여기지 않아요. 어릴 때도 성공한 여성을 롤모델로 삼지도 않았고. 뉴욕에 왔을 때, 제 작품으로 돈을 벌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70년대 말에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잘 안되면,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도 없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성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40년 전처럼 스스로를 아직 초짜로 여기죠.
당신의 작품 중 하나가 400만 달러에 팔렸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중 1달러도 만져보지도 못했지만, 완전히 기분 좋았죠! 제 작품이 일반적 시각에서도 굉장히 많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단계였던 건 분명해요. 하지만 여성 예술가들이 남성에 비해 정말 정말 많이 덜 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요! 정말 웃기는 일이죠. 최근 10년간 경매에서 팔린 남성 작가의 작품 가격이 여성 작가 작품의 100배 이상이에요. 정확히 숫자는 기억나지 않는데, 엄청난 불균형이죠.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르겠어요.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려고 해요.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예술가가 될 테고, 그녀들의 작품도 많이 수집하게 되면 판도가 바뀔 거예요. 그리고 유색인종 아티스트가 겪는 불합리함을 해결할 방법도 아직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지 않고 있어요. 현 미국 정부나 선거를 보면, 그렇게 기쁘거나 긍정적일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주제를 위해 유머가 당신의 작품을 꿰뚫고 있다고 인터뷰 초반에 말한 건가요? 예술가의 궁극적 목표는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남성이 여성을 보는 방법을 바꾸고… 남자들이 우리 위에,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드리우는 이 시야를 가리는 장막을 찢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건 정말 거대한 목표죠. 너무 거대한 목표라서 관람객을 즐겁게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즐겁기라도 해야죠!
어떤 작품이 가장 자랑스러워요? 제 모든 작품이 자랑스럽죠.
후회하는 것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웃음) 제 인간관계 속에.
남자 문제예요? 맞아요! 특히 남자들과의 문제죠!(웃음)
- 글쓴이
- Fabienne Reybaud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