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보내는 1990년대생
모두들 ‘靑春’을 말한다. 하지만 화자의 역할은 그 시기를 지난 흘려보낸 인물들의 몫이다. 정작 인생의 푸르른 봄을 지나고 있는 주인공은 스스로의 계절을 깨닫지 못한다. 흔들려야 하는 건지, 아파야 하는 건지 혹은 1990년대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지 알지 못하고, 또 관심도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 순간이 선사하는 ‘희망’이다.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지. 그 ‘지금’이 영원하지 않기에 청춘과 희망은 더 찬란하다. 2020년을 보내는 청춘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에서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는 12인을 <보그>가 만났다.
SEOHEE PARK
주문진에서 자란 박서희는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모델 일이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건 아니다. 생각이 바뀐 건 스스로 표현하는 방법을 깨달은 후였다. “평소엔 에너지가 뜨거운 편이 아닌데, 언젠가부터 스스로 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모델 일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가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1년 반 넘도록 채식을 하면서 사람들과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올해, 상암 어딘가에 열게 될 비건 레스토랑이 그 목표다.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가 청춘 그 자체 아닐까요.”
JUNTAE KIM
김준태는 ‘TICV’와 ‘Juntae Kim’이라는 두 개의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동시에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있다. 가을부터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한다. “학생이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제 작업을 패션계에서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버려진 소재를 업사이클링한 디자인은 디스토피아적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파격적인 이미지를 원하는 패션지와 아티스트에게서 협찬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잘나가는 파리 디자이너 브랜드의 남성복 디렉터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먼저 해나갈 예정이다. “지속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MAY KIM
뮤지션 림 킴의 비주얼 작업을 맡았던 아트 디렉터 메이 킴의 연료는 호기심이다. Z세대가 지닌 창의력이 어떻게 폭발할지,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들이 모였을 때 어떠한 시너지를 낼지. 세상은 온통 궁금한 점투성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알고 싶고, 사운드와 미디어 아트를 대중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이러한 호기심 때문에 지금 아티스트로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듯해요.” 패션과 예술, 소셜 플랫폼과 대중문화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녀의 고민은 또 다른 행보의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BAH NO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던 바노에게 모델이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준 버튼과 같다. 2019년 6월 마르니의 제안으로 밀라노로 날아갔고, 얼떨결에 남성복 패션쇼의 오프닝을 맡았다. 신인 모델로서의 설렘보다 더 컸던 건 패션쇼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의 작업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러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타일링을 직접 하고, 이미지에 어울리는 모델을 캐스팅하고, 사진가와 협업을 통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그저 신난다. 사진가 제프 월처럼 일상적 이미지에 예상 밖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것 역시 또 다른 욕망이다. “우리를 둘러싼 사물을 해학적인 시선으로 해석해보고 싶어요.”
GAYOUNG KO
고가영은 요즘 사운드 디자인과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움직임을 표현하길 원해요. 그것이 설치미술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모델에겐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 과제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모델 활동으로 견문을 넓히기도 한다. “모델이라는 역할로 패션계에 진입해보니, 여러 형태로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SUMIN SEONG
패션 에디터를 꿈꾸던 성수민은 블로그를 통해 새 길을 발견했다. 여기저기서 직접 수집한 빈티지 아이템을 입고 찍은 사진에 흔히 말하는 ‘구입 문의’가 이어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온 후 ‘Tuming’이라는 이름 아래 빈티지와 직접 디자인한 아이템 등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 “저와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반응한 듯합니다.”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던 그녀는 이제 여자와 남자 모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도 준비 중이다.
JIHYUNG CHOI
2년 전 서울을 방문한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동묘 구제 시장에서 찍어 올린 사진은 한동안 화제였다. 그를 동묘에 데려간 인물이 최지형이다.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한 후 코스타디노브와 함께 일했어요.” 서울로 돌아온 뒤 시작한 것이 브랜드 ‘지 초지(Ji Choi)’다. “제가 입고 싶은 옷이 가장 우선이에요.” 세컨드 라벨 격인 ‘JX’에는 더 대중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손으로 티셔츠를 묶어내는 ‘꼬임티’는 꽤 인기다.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제 작업에서 표현하고 싶어요.”
IN YOON & DAEUN HONG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윤인과 홍다은이 ‘2000 Archives’를 시작하게 된 것은 철저히 컬렉팅의 목적이었다. 과거 패션 아이템을 더 많은 이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존 갈리아노와 장 폴 고티에 등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빈티지 아이템을 모아 촬영하고 공유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또 ‘2000 Archives Made’라는 라벨을 통해 직접 디자인한 아이템을 선보였다. 9월에는 두 번째 시즌을 선보인다. 매 시즌 객원 디자이너를 영입해 남다른 이미지를 완성할 계획도 있다. “우리 라벨을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일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키울 거예요.”
YOUNGJI LIM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임영지가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게 된 건 친구 덕분이다. 함께 학교를 다닌 김현우의 졸업 컬렉션을 스타일링했고, 그 작업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잠시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결국 스타일링으로 이미지를 완성하는 재미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김현우의 ‘기준’은 물론, 여러 상업 브랜드와 독립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 끗 차이로 어긋난 아름다움이 좋습니다. 저만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며 작업하고 있어요. 플러스 사이즈 등 보다 다양한 여성을 제 이미지에 담고 싶습니다.”
MINJEONG KIM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앨범 디자인과 뮤직비디오 컨셉, 티저 이미지 등등. 김민정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언어로 담는 일을 하고 있다. YG에서 경험을 쌓은 후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모인 ‘FA’ 크루(@fa_presents)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맡고 있다. 아티스트와 직접 대화를 통해 이미지를 상상하고, 음악 장르에 따라 다른 결의 결과를 완성하지만, 일관된 시각적 언어를 지니도록 노력한다. “개성의 총집합입니다. ” 무엇보다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작업이 신나는 건 그 속도 때문이다. “제 작업이 세상에 파고드는 속도가 다릅니다. 그 속도가 저를 더 긴장하게 만들죠.”
SUNGSIG MIN
유연하게 주변을 관찰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민성식은 실험 음악, 즉흥 음악, 전시 음악 등 경계를 뛰어넘는다. 요즘엔 ‘팝’ 작업에 재미를 붙였다.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보이 밴드는 물론 친밀한 래퍼와 함께 작업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해온 타투 작업도 이어가는 중이다. “음악과 타투는 미디엄의 차이일 뿐입니다. 휘발성이 강한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하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 스스로의 감각을 더 뾰족하게 다듬고 있죠.”
- 패션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조기석
- 헤어
- 이현우, 조은혜
- 메이크업
- 오성석, 박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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