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Can’t Stop Dancing #1 비걸 김예리
춤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와 강력한 힘을 믿고 한계와 차별을 넘어선 댄서 3인을 만나봤다. 그들은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걸.
YELL 김예리(비걸, YGX의 댄스 아티스트 크루 NWX, 갬블러즈 크루)
2018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 올림픽 브레이킹 분야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김예리는 청각장애라는 어려움을 딛고 계속해서 자신 앞에 주어진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이 될 수 있도록.
언제, 어떻게 춤을 시작하게 됐나?
춤과는 원래 거리가 멀었고 춤을 추는 친구들을 동경하는 입장이었다. 배드민턴, 농구, 수영, 축구 등의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면서 부모님의 권유로 춤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스트리트 댄스 중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게 브레이킹이었다. 브레이킹에 도전하는 여자가 별로 없길래 내가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선택하게 됐다. 처음엔 프리즈(순간적으로 멈추는 동작) 하나 배우려고 시작했는데, 그걸 습득하려면 기초부터 쌓아야 했고 1년 정도가 걸리더라. 다른 동작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재밌어서 계속하다 보니 전문적인 댄서로 성장하게 됐다.
춤을 추면서 가장 크게 바뀐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춤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춤을 춰서 학창 시절 왕따를 벗어날 수 있었고 춤을 춘 덕분에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 위기에서 나를 끄집어낸 게 춤이었다고 생각한다. 겉모습부터 생활환경까지, 춤 덕분에 모든 게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춤을 안 췄으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춤출 때 청각장애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미루고 미루다가 청각장애 진단을 뒤늦게 받았다. 장애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생기니까, 오히려 사람들에게 “대화할 때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보청기의 도움으로 소리를 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보청기를 교체할 때마다 새로운 기계의 소리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보청기를 바꾼 지 한 달 만에 대회에 나갔다가 음악 소리가 구분이 안 돼 패닉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불편함만 아니면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리듬을 다양하게 분해하고 해석해서 춤을 추다 보니, 사람들이 ‘쟤가 장애가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브레이킹에 특별히 매료된 이유가 있나?
고난도 동작으로 이뤄지다 보니 특정 기술이나 동작을 해냈을 때 성취감이 크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힘드니까 더 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성취감이 크다 보니 그만큼 자존감도 높아진다. 몸을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무릎 부상을 겪기도 하는 등 연습과 도전이 꽤 위험해 보이는데 두렵진 않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다. ‘다치지만 말자’는 모든 비보이, 비걸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심한 부상을 겪을 때도 있지만 도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무릎을 다쳤을 때는 팔로 춤을 추고 손목을 다치면 손목으로 땅을 안 짚고 춤을 추는 등 어떻게든 춤을 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몸이 불구가 되지 않는 한 계속 춤을 출 것 같다.
아무래도 브레이킹은 그동안 남자들의 춤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 편견을 어떻게 극복했나?
비보잉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레이킹은 남자들이 추는 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브레이킹을 추는 여자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 “여자는 힘이 없다”, “보는 재미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브레이킹을 잘 추는 여자에게는 오히려 “왜 남자 같냐”고 하기도 한다. 편견을 의식했다기보다는 브레이킹의 매력인 역동성과 테크닉을 잘 살리고 싶어 계속 어려운 기술에 도전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춤을 추게 된 것 같다.
2018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받았다. 무엇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나?
예선부터 본선까지 1년 반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사실 원래 동메달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처음엔 할 수 있는 기술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남아서 끝까지 연습하게 되더라. 1년 반 동안 열심히 연습했더니 실력이 늘었다. 원하는 것을 향해 숨지 않고 모든 힘과 에너지를 연습에 쏟은 결과인 것 같다.
세계 대회에서 1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한가?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브레이킹이 잠정 승인됐는데 거기도 도전할 생각인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다. 몸만 괜찮으면 당연히 2024년 파리 올림픽에도 나갈 계획이다. 메달을 딴 최초의 한국 댄서로서 욕심이 있다.
춤이 우리 사회를 하나로 연대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나?
춤뿐 아니라 모든 문화 예술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춤은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춤을 통해 에너지와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어떤 특정한 사회적 위기가 왔을 때 춤이 그 위기를 구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강술래도 그런 예라고 생각한다. 제사를 지낼 때 추는 춤, 한을 푸는 춤도 그런 예라고 생각한다. 춤이 가진 힘은 그렇게 크다. 손가락 혹은 발만으로도 춤을 출 수 있다. 보이지 않아도 역시 춤을 출 수 있다. 모든 예술 중 가장 한계가 없는 게 춤이라고 생각한다.
싸우고 싶은 편견과 차별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떤 장애가 있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환경에 놓였든 그에 대한 편견이 없었으면 한다. 사람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주면 좋겠다.
자신의 히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한 가지를 고른다면?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도 적어놓은 단어인데 ‘Limitless’, ‘한계 없음’을 고르고 싶다. 일반적으로 비걸이 하지 않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단순히 비걸로만 활동하지 않고 안무가로도 활동하려고 한다. 비걸이 다른 춤도 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나랑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비걸은 미국의 ‘Logistx’밖에 없다. 그를 보면서 참고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 않다. 내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정해진 틀과 대중적 인식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댄서가 되려고 노력한다.
- 에디터
- 허세련
- 인터뷰
- 나지언
- 필름 디렉터
- 쿠보(Kubo)
- 헤어
- 조소희
- 메이크업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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