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원은 지금 어떤 시간에 둘러싸여 있을까?
허무함을 태우고 싶어 <악의 꽃>에 매달렸고 작품을 끝낸 지금, 문채원은 어떤 시간에 둘러싸여 있다. 사랑할 때 나오는 에너지에 진심인 이 배우는 힙합의 용기를 좋아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늦잠을 자지 않는다.
<악의 꽃> 종영 후 두 달이 지났다. 유정희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후 주인공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로서도 차지원이 어떻게 지낼지 상상해본 적 있나. 없다. 나름 해피 엔딩으로 애매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에 궁금해하지 않았다. 너무 고생하며 결혼 생활을 했으니 이제는 둘이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강력계 형사 차지원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역할이었다. 연기하며 저런 감정 변화를 겪고 집에 와서 어떻게 잠이 드나 싶을 만큼. 스스로를 계속 괴롭히며 찍어야 했다. 감정적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야 했으니까. 모든 출발이 다 사랑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기에 내가 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버거운 부분도 있었다.
처음에는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악의 꽃>은 결국 인간의 마음, 특히 사랑에 대한 얘기였다. <공주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악의 꽃>까지 당신은 사랑에 솔직한 역할을 할 때 정말 특별 해진다. 사랑할 때 나오는 에너지에 진심인 느낌이다. 팬 카페에서 이런 당신을 두고 ‘사랑에 미친 능동 캐릭터 전문 배우’라고 정의했는데 동의하나. 그런 에너지가 있긴 한가 보다. 그런 에너지를 좋아하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로망이 있어 그런 작품을 만나면 힘들 줄 알면서도 그 에너지를 쓰고 싶어진다.
이런 유의 인물은 문채원의 세계를 어떻게 확장시켰나. 나이가 들고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다 보면 로맨스가 옅어진다. 그리고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감정이 짝사랑으로 끝나면 슬프고 괴롭겠지만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면 그만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싶다. 부, 명예, 건강 등 좋은 것도 많지만 결국 그 감정은 나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물론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내가 느끼는 내 현실이 드라마보다 나았으면 좋겠다.
어떤 마음으로 <악의 꽃> 작품에 들어갔나. 허무함을 태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1년 동안 여러 가지로 힘들었는데 이럴 때 감정이 배제된 작품을 하면 스스로 더 건조해지고 물기가 없어질 듯했다. 버겁고 힘들어도 차라리 지금 느끼는 이런 감정을 작품으로 달래고 싶었다. 그렇게 7개월 동안 매달렸고 고민하던 어떤 부분은 좀 더 뚜렷해졌다. 나는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싶은지, 사람들이 어떤 부분을 알아줬을 때 내가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있다.
어떤 평가 혹은 칭찬을 듣고 싶나. ‘당신이 표현해줘서 아주 좋았다’, ‘그 역할을 해줘서 고마웠다’가 가장 여운이 긴 큰 칭찬이다. 그러려면 마음에 쫓겨 작품에 임할 수는 없다. 사실 연기자는 기다리는 직업이라는 말의 의미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 칭찬이 좋으니 자꾸 활동하는데 그러려면 자신 있는 작품에 들어가야 한다. 필모를 쌓아갈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냥 하면 안 된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가 내가 하고 싶을 때 일을 못할 수도 있으니까.
잘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감정적 작품이 어렵고 힘든데 그려지는 그림이 있긴 하다. 그리고 평소 유머 감각이 있는 편이 아닌데 유쾌한 작품을 좋아한다. 또 동적인 편도 아니라서 동적인 작품을 만나면 재미있다. <오늘의 연애>, <굿 닥터> 같은 작품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시간이 가도 계속 좋아하는 작품은 메시지가 있는 경우다. 메시지의 유무는 작품 선택할 때도 중요하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해서 쓴 글을 표현할 때는 나도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이를테면 소설책도 좋으면 반복해 읽는 편인데 개성에 매료되면 그 힘으로 읽는다. 작품이든 소설이든 개성이 있어야 한다.
<악의 꽃> 차지원은 여자가 느끼기에 멋진 여자였다. 어떤 상황도 피하지 않고 뛰어들고, 혼란에 빠진 남자 캐릭터를 구원한 덕분이다. 당신이 멋있게 생각하는 여자는 어떤 특징이 있나. 다른 캐릭터를 너무 힘들게 하는, 딱히 하는 일 없이 갈등을 빚는 역할만 아니라면 다 멋있는 부분이 있다.
<크리미널마인드> 프로파일러에 이어 강력계 형사를 맡았다. 형사를 연기하면서 알게 된 점도 있나. 강력계 형사는 진짜 용감한 분들이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평소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현실에서 수사하는 분들의 인터뷰도 많이 찾아보는데 정말 대단한 직업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자 삶과 일상에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내가 결코 못할 것 같은 직업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데 형사가 그렇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챙겨 보는 이유는 뭔가. <그것이 알고 싶다> 자체가 시청률이 높은 장수 프로그램이라 마니아적인 건 아니다. 그저 어릴 때부터 늘 봤다. 오래 보다 보니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기여하는지도 알게 됐다. 실제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범인 잡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알게 되면 겁이 나면서도 외면할 순 없는 것 같다.
형사로서 과격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진 않았어도 달리는 장면은 많았다. 100m는 몇 초에 뛰나. 기억이 잘 안 난다. <악의 꽃>에서 달린 만큼 방송에 길게 나오진 않았는데 진짜 열심히 달렸다. 주변에서 ‘빠른데?’, ‘잘 달리는데?’ 해주니 칭찬의 힘이 작용했다. 그리고 몇몇 액션 연기할 때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주 떳떳하다(웃음).
몸을 잘 쓰는 편인가. 못 쓴다. 그러니 이렇게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하는 거다. 스스로 몸을 잘 못 쓴다고 알아서 사리는 면도 있다(웃음). 사실 100m 달리기 기록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달릴 때마다 넘어졌다. 학생 때 의외로 빠르다며 주변에서 부추겨 계주에 나갔는데 배턴 터치하며 넘어졌다.
그럼 단거리에 강한가, 장거리에 강한가. 단거리.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게 신나나, 최근에 발견한 맛집 같은, 일 외의 관심사를 얘기할 때 신나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좋아하는데 내 연기에 대한 얘기는 쑥스럽다. 처음 배우가 되었을 때는 인터뷰하면서 기분에 도취되어 말에 살을 붙이고 미화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것도 보이다 보니 조심스럽다.
예전 인터뷰에서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편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면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쑥스럽게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 맞다. 나 역시 개성이 있으니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데 개성은 어느 정도 선천적이다. 옆에서 아무리 도와줘도 개성이 개발되진 않는다. 그런 개성과 매력을 제외하고 나머지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게 더해졌을 때 할 수 있는 연기가 다양해지고 주변에서 인정받는데 그 부분에 늘 갈증이 있다. 하지만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시도는 많지 않다. 연습 삼아 작품에 임할 수는 없으니까. 작품에서 좋지 않은 모습으로 나오면 인식이 되고 그런 작품이 쌓이면 이미지가 된다. 배우가 지닌 매력은 각기 다르니 그 매력에 대해 자꾸 논하는 건 오글거린다. 나아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어떤 노력을 했다고 전하고 싶다.
배우라는 직업에는 운도 많이 작용한다. 물론이다. 또 만들어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요즘에는 1990년대 옛날 감성이 그립다. 트렌디하고 젊은 감각도 좋지만 매스컴에서 일단 어떤 맛이라고 쏟아내면 나는 그 맛을 즐기지도 못한 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새로 생긴 맛집에 사람들이 5년 이상 지속적으로 가면 이유가 있다. 오래 지속적으로 좋아했던 맛이 지겨워진 것일 수도,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된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잘 못 읽겠다. 요새 이런 생각도 한다. 그 맛이 뭔지 자꾸 파악하려고 해도 어차피 입맛에 맞출 수 없다고.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관심도 없는데 취한다면 더 어색해진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다작을 하진 않지만 하루가 분주해 보인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도 굉장히 많지만 예전보다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졌다. 사람은 변한다.
매일 지키려고 하는 것은. 늦잠을 못 잔다. 정말 늦게 일어나도 9시 반이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싫다. 비록 소파에 누워 음악 듣고 인터넷만 하더라도 일단 잠에서 깬다.
취향을 알아보는 요즘 대표 질문이다.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좋아하나. 찾아서 먹는 편은 아니지만 그 맛은 맛있다. 치약 맛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파인애플 피자는. 그건 싫다.
누구 잘못인가. 파인애플? 피자? 주방장 잘못이다. 파인애플은 밀가루와 만나면 안 된다. 파인애플 타르트도 먹어봤는데 파인애플 맛이 강하다 보니 파인애플 맛만 난다. 원래 밀가루만 먹으면 달지 않나. 그런데 더 단맛이 합쳐지니 밀가루 맛이 전혀 안 난다. 복숭아는 괜찮다.
MBTI 검사 해봤나. 오늘 했다! ISFJ, ‘용감한 수호자’가 나왔다.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크리미널마인드> 당시 장르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장르물의 미덕은 뭘까. 감정을 괴롭히지 않고 볼 수 있다. 시청자나 관객 입장에서 의외로 장르물이 킬링 타임용이다.
여가 시간에 늘어져 피 칠갑 장르물을 보는 모습이 상상된다(웃음). 인생 장르물을 꼽아준다면. <시그널>과 <비밀의 숲>을 정말 잘 봤다. 외국 작품도 많다. 우리가 다 아는 유명한 작품, 데이비드 핀처 감독 장르물, <홈랜드> 등. 나는 취미를 혼자 찾고 즐기고 곱씹는 편인데 힙합을 좋아한다(웃음). 영화만큼 열심히 공연 영상이나 힙합 뮤지션 인터뷰를 찾아본다.
힙합의 어떤 면이 좋나. 무척 용기 있는 인물들 같다. 자기 호흡대로 사는 면이나 마이너였을 때부터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면에서도.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지금도 그림을 그리나. 배우 일을 시작하고 두 번 정도 그렸다. <악의 꽃>을 시작하기 전에 몇 장, 또 몇 년 전에 몇 장. 너무 답답하고 힘든데 해소되지 않았고, 갖고 있는 기술이 그리는 것 하나라 그렸다. 딱 거기까지다. 나름 오랫동안 나의 표현 방법이었으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든가 음미하는 일은 없다. 그림은 나에게 취미 생활이 될 수 없다.
어제 공식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 하루 만에 팔로워가 1만4,000명이던데 그 숫자를 보면 두려운가, 뿌듯한가. 많은 숫자인지도 몰랐다(웃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근황을 알리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쑥스럽지 않은 선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계속 쑥스러움과 갈등이 있는 듯하다. 맞다(웃음).
1년에 한 편씩 작품을 하고 있고 이 속도가 맞다고 했다. 차기작은 잡혔나. 잡히지 않았다. 2021년에도 뭐가 됐든 하려고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지금 어떤 작품이 하고 싶다고 아무리 계획을 잡아도 그때 그 작품이 들어오지 않으면 선택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지금 얼마큼 일을 하고 싶을까’, ‘나는 얼마큼 연기가 그립고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을까’,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고 얼마큼 감당하고 싶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신인 시절에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늘 질문을 받는다. 큰 방향성인데 요즘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나. 몇 해 전부터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가는 길이 내 길이라 여긴다.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길로 못 갔다고 해서 끝도 아니다.
1년 전 어느 음악 사이트에 추천한 선곡 리스트를 봤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네버 엔딩 스토리’ 등 1990년대 감성이던데 요즘 플레이리스트도 1990년대에 머물러 있나. 끝으로 노래 한 곡 추천한다면. 엊그제 <쇼미더머니 9>에서 원슈타인이 부른 ‘적외선 카메라’. 1990년대 노래는 아는 사람만 반가워할 테니 새로운 곡을 추천한다.
- 에디터
- 조소현
- 패션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윤송이
- 에디터
- 이소민
- 스타일리스트
- 이혜연
- 헤어
- 주희(@김활란 뮤제네프)
- 메이크업
- 임소영(@김활란 뮤제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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