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의 시대에 뷰티 월드가 일으킨 대전환
바이러스가 일으킨 대공황과 뷰티 월드가 일으킨 대전환 사이. 전쟁이 아닌 공생을 위한 뷰티의 진화가 보인다.
GOLD MEDALIST 위기에 직면하면 검증된 것을 본능적으로 찾는다. “소비가 위축됐지만 베스트셀러는 여전히 이름값을 합니다. 이미 잘 알거나 추천하는 제품을 안전하게 구입하려는 심리죠. 메이크업 카테고리의 매출이 주춤한 상황에서도 맥의 대표작 ‘파우더 키스 립스틱’과 ‘리퀴드 립 컬러’의 식지 않는 인기가 이를 증명합니다.” 맥 코리아의 설명이다. 1년 사이 뷰티 월드는 ‘승자 독식’ 체계가 견고해졌다. 믿고 쓰는 ‘1등 브랜드’는 돌발 상황에도 노련한 대처를 보여주리란 신뢰가 쌓여서 그렇다. 하지만 뷰티 뉴 페이스에게도 탈출구는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은 ‘숏케팅(Short+Marketing)’을 제안한다. 요즘처럼 위태로운 시기엔 민첩하게 변하는 소비 심리를 간파한 단발적 마케팅이 효과적이라는 것. 시시각각 들려오는 신제품 평가에 따라 기민한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SKIN FREE “뷰티 비즈니스의 절반을 스킨케어가 압도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NPD의 뷰티 애널리스트 라리사 젠슨(Larissa Jensen)의 설명처럼 우리의 화장대가 재편됐다. 롯데홈쇼핑의 지난해 전체 화장품 판매의 75%는 에센스, 크림 등 기초 제품이 차지했고 올리브영 판매 리스트에는 토너가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사는 우리는 메이크업의 즐거움을 약탈당하고 피부 트러블이라는 악재까지 동반 경험하며 잘 고른 스킨케어 제품에 의지할 수밖에. 그럼에도 팻 맥그라스는 코로나19 종식 이후 립스틱의 인기 반등은 어렵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립스틱은 순간의 기분을 정의하고 자신감을 드높이는 감성의 결정체입니다.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죠.” 나스는 보송하게 마무리되어 마스크 안에서도 살아남는 ‘에어 매트 립 컬러’로 인기를 누렸다. 뷰티 천재의 후속작은? 마스크에 묻지 않는 블러셔.
HOME LEAGUE “미래의 집은 단순히 집 이상의 역할을 하며,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출 것이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의 예고가 딱 맞는 요즘이다. 대표적인 예가 운동이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2020년 3~4월 동안 필라테스와 요가용품 배송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8%, 러닝 머신은 266%, 스테퍼는 162%, 덤벨은 140%가량 증가했다. 집이라고 ‘나 혼자’ 움직일 필요는 없다. 운동 의지를 높이기 위해 줌과 페이스타임을 활용한 그룹 트레이닝도 인기다. 즈위프트(Zwift)는 사이클 한 대만 있으면 TV나 PC 모니터 속 세계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가상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실제와 흡사한 그래픽과 사운드는 기본, 온라인에 동시 접속한 유저들과 함께 운동하는 온라인 사이클 동호회의 현실판이다. ‘홈트계의 넷플릭스’인 펠로톤(Peloton) 역시 ‘같이’의 효과를 높이 평가한다. 펠로톤은 집에서 트레이너의 채널에 접속해 실시간 지도를 받을 수 있다. 홈 피트니스 디바이스 미러(Mirror)는 근력 운동부터 요가와 필라테스, 발레, 복싱, 스트레칭 등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데, 유저의 모습을 스크린에 띠워 전문가의 섬세한 코칭을 동반하고 신체 움직임과 운동량 트래킹 기능까지 추가하며 차별화했다. 그리고 이 모든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받는다. 이제 값비싼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월급을 탕진하는 ‘피트니스 푸어(Fitness Poor)’도 옛말이다.
NO SCENT, NO GAIN 2020년 뷰티 월드의 주인공은? ‘향’.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신제품을 제치고 ‘미스 디올 블루밍 부케 오 드 뚜왈렛’의 인기가 역대 최고예요.” 디올 코리아의 전언이다. 니치 퍼퓸 브랜드 크리드로 잘 알려진 ICP 그룹은 도멘 프리베(Domaine Privé), 아크로(Akro), 미젠시르(Mizensir)까지 향수 가문 세 곳을 인수했다. 지난 1년간 온라인 매출이 50% 이상 올라간 크리드가 일등 공신. “집 안 곳곳을 향으로 채우는 것이 웰빙의 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트렌드 예측 전문 기관 ‘Light Years’를 창립한 미래학자 루시 그린(Lucie Greene)은 리빙 퍼퓸 시장의 지속적 성장을 예고한다. 조 말론 런던 코리아의 우수한 성적표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9년 대비 리빙 퍼퓸의 매출이 56%까지 도약했는데 그중 디퓨저가 47%. 코로나 ‘반짝 특수’가 아닌 향기로운 삶의 서막이 열렸다.
EYES ON “미국과 유럽에서 서비스 교육의 일환으로 ‘스마이즈(Smize)’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웃음(Smile)과 응시하다(Gaze)를 더한 단어로, 눈 주위 근육과 이마, 광대뼈를 움직여 효과적인 ‘아이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죠.”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박초희 교수의 설명대로 눈은 ‘마스크 페이스’에서 유일하게 드러나는 곳이자 꾸밈이 허용된 공간이다. 심지어 마스크를 썼을 때 눈은 실제보다 6% 크게 인식된다는 오사카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덕분에 2021 S/S 컬렉션 백스테이지에는 온갖 아이섀도와 아이라이너, 인조 속눈썹까지 각축을 벌였고, 아티스트들은 어느 때보다 현란한 아이 메이크업을 공개했다.
SUPER K K-뷰티의 신화는 바이러스도 막지 못했다. 2020년 11월까지의 수출 누계액은 68억 달러로 2019년 총액 65억 달러를 상회하며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가 주목한 ‘K-방역’의 성공이 수출 산업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고, 깐깐한 성분 검열과 섬세한 셀프케어의 대명사 K-뷰티 스킨케어 제품은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연성대 뷰티스타일리스트과 이은주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성형외과 업계는 코로나19 쇄국정책의 공격을 받았다. 대책은? 재택근무 기간에 미룬 시술과 수술을 해치우기 시작한 발 빠른 우리 여자를 향한 디지털 마케팅!
SELF-CURE “클렌징 디바이스 관련 키워드에 ‘위생’, ‘박테리아 제거’ 등이 추가됐습니다. 간편함보다 내가 원하는 진동 세기, 작동 시간, 마사지 트리트먼트를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는 뷰티 기기가 인기였죠.” 뷰티 디바이스 시장의 프리미엄화를 꼽은 포레오의 평가에 LG프라엘은 클리닉 못지않은 효과를 강조하며 의견을 보탠다. “10월에 발표한 ‘메디헤어’는 250개의 레이저와 LED 광원으로 탈모를 치료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용 레이저 조사기 3등급 허가를 받았고 FDA로부터 가정용 의료 기기 수준의 ‘Class II’ 자격을 인가받았죠.” 셀프케어를 넘어 셀프큐어(Self-Cure)의 시대. LG경제연구원이 예상한 2022년 뷰티 기기 시장 규모는? 1조6,000억원!
ON AIR 지난해 7월 트위터 코리아의 자체 조사 결과, SNS 이용자의 50%가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는 광고에 호의적이라고 답했다. 이유는 꽤 안타깝다. 평범하던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여러 온라인 플랫폼은 물론 소셜 미디어까지 브랜드 홍보의 장이 된 2020년, 자본주의 키즈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5~6월이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Y)의 소비자 전략팀 디렉터 마시 메리만(Marcie Merriman)은 ‘#Quarantine’ 피드가 SNS를 점령한 5월을 기점으로 집에 머물며 이전과 같은 일상을 바라는 소비자의 심리가 오프라인 마켓의 대대적 온라인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한국은 카카오톡 ‘선물하기’ 서비스와 올리브영, GS홈쇼핑, 신세계TV쇼핑 등 유통사들이 인터넷 쇼핑 생방송 격인 ‘라이브 커머스’를 개척하며 쇼핑몰 업계의 판도를 흔들었다. 메리만은 “습관을 형성하는 데는 21일이 걸리고 이를 자동으로 만드는 데는 66일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코로나19 시기에 전환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은 상당수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예견했고 많은 전문가도 동의한다. 한편 온라인 마켓의 포화 속에 기업의 고민은 양보다 질, 즉 다채로운 고객 경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는 4월 파리와 홍콩에 문을 여는 오프라인 매장을 3D 가상현실(VR)로 구현한 클라랑스가 대표적이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매장을 둘러보며 제품 설명을 확인하고 AR 테스트를 누릴 수 있다. 조 말론 런던은 영국 본사 타운하우스 도슨트 투어와 각 공간별 추천 향을 가시적으로 체험하며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온라인 부티크 버추얼 타운하우스’ 서비스를 11월부터 운영 중이다(한남 부티크에서는 줌을 통한 VVIP 대상 프라이빗 향수 클래스도 진행한다). 1년간 재정비를 마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한 달 전 문을 열었다. 백화점의 얼굴인 1층 화장품 매장은 3층으로 올라갔고 그 자리는 뜨는 맛집과 카페가 차지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1층을 돌며 신상 립스틱을 바르고 엄마와 나란히 앉아 카운슬러의 설명을 듣던 기억은 쇼핑이 제품 구입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콘택트와 언택트 사이의 줄다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BE GOOD 미국 시장조사 컨설팅 기업 코어사이트 리서치(Coresight Research)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를 직면한 인구의 30%가 “급격한 사회 변화는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지속 가능 발전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모습을 기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역시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기업은 ‘ESG(환경·사회·지배 구조)’에서 소비자에게 인정받을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4세기 타락한 종교와 봉건제도가 장악한 중세 시대를 끝내고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은 혁명이 아닌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이었다. 코로나19는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갈 만큼 강력하지만 고차원의 ‘자기 효능’을 장착한 우리 세대는 좌절 대신 변화와 본질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택했다. 이렇게 전진한다면 재기의 순간은 화려하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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