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비롯해 새 문화를 만드는 34인 Part 1
세상에 없던 판. 황해도 굿거리가 영국 페스티벌에서 불리고, 전자 기타가 아니라 전자 양금이 연주되며, 스물한 살의 줄광대는 자기만의 기술로 360도 날아오른다. 전통에서 비롯해 새 문화를 만드는 34인. ‘新전통’이 통하였다.
일일 일탈! 천하제일탈공작소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젊은 탈꾼들의 예술 단체다. 한국탈춤단체총연합회가 있으나 소규모 탈꾼 창작 집단은 드물던 2006년에 창단했다. 이곳의 공동대표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인 이주원은 첫 공연을 생생히 기억한다. “시대에 맞춰 탈춤 서사가 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현대 탈춤은 정체됐죠. 천하제일탈공작소의 공연은 시대를 담고자 했어요. 첫 공연은 노부부의 투신자살 뉴스를 다룬 ‘노부부 이야기’, 정계와 재계의 유착을 그린 ‘해결사 이야기’, 성형으로 얼굴이 비슷해지는 세태를 풍자한 ‘변신 이야기’로 구성했죠.”(이주원) 천하제일탈공작소를 보여주는 또 다른 공연은 고전 시리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각색해 탈춤 <오셀로와 이아고>를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와 탈춤이라니! 염상섭의 <삼대>와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뒤를 잇는다.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전통 레퍼토리는 ‘가장무도’다. 이를 보기 위해 1월 2일 남산국악당에 갔다. 젊은 탈꾼 14인이 이북, 경기, 경남, 경북, 강원 등의 국가지정무형문화재 탈춤을 선보였다. ‘가장무도’에서 천하제일탈공작소의 공동대표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이수자인 허창열은 문둥탈을 썼다. 병으로 손가락이 없어진 문둥이 악기를 잡기 위해 애쓰는 문둥북춤에 눈물이 났다. 허창열이 가장 아끼는 탈도 애환의 문둥탈이다. “탈을 쓸 때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워요. 탈은 요즘 말로 저의 ‘부캐’죠.”(허창열) 그는 경계를 무너트리는 공연을 해왔다. “2016년 병신년에 현대무용가 김설진, 한국무용가 김재승과 각자의 ‘병신춤’을 무대에 올렸어요. 일명 ‘몹쓸춤판’이죠.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이들의 춤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춤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어요.”(허창열) ‘가장무도’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이수자 박인선은 탈을 벗고 춤을 췄다. 이날은 꼽추춤을 선보였는데, 구부러진 몸에 오만상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탈꾼이 춤출 때 어떤 표정인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박인선) 그는 꼽추춤을 출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비장애인의 장애인 형상화가 어떤 점에서 예술이 될지 고민이 많다. 또 하나의 고민은 전통 탈춤이 여성을 바라보는 불합리한 시선이다. 박인선은 탈춤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탈꾼이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문제다. “전통 탈춤에서 독립적인 여성은 핍박받거나 내쫓기죠. 탈춤의 현대화 작업에 이것의 개선도 이뤄져야겠죠. 개인적으로는 큰 꿈이 없어요. 죽음을 곁에 두고 삶을 재미있게 흘려보내고 싶어요. 무대야 제가 행복해서 오르니 관객도 좋아해주리라 믿죠.”(박인선) 올여름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축제를 연다. “탈춤에 ‘풍편에 넌즞 듣고’라는 대사가 있어요. 바람결에 얼핏 들었다는 얘기인데, 대중에게 탈춤이 그런 것 같아요.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죠. 올여름, 남산국악당에서 사흘 동안 공연을 열 거예요. 관객과 함께 탈춤도 추고 음식도 나눠 먹는 축제지요. 이전에는 3박 4일 동안 탈춤을 췄대요. 그 분위기를 재연하고 싶어요.”(이주원)
추다혜의 샤머닉 펑크 추다혜는 서도민요를 공부하고 서울예대 국악과를 거쳐 중앙대 음악극과에서 노래연기를 전공했으며, 한때 연기자도 꿈꿨다. 덕분에 그의 무대는 풍부한 표정 연기, 카랑카랑한 목소리, 아방가르드한 의상까지 한 편의 연극 같다. 그녀는 한국 민요 등을 현대화해 족적을 남긴 그룹 씽씽의 보컬로 대중에게 먼저 알려졌다. 2015년 씽씽을 만나 4년여간 활동했다. 현재는 무속음악의 현대화에 빠져 있다. “굿을 처음 접하고 이거야말로 예술이구나 실감했죠. 저의 퍼포먼스가 누추하게 느껴졌어요. 그 후 이찬엽 만신께 평안도 다리굿을, 이용옥 심방께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을 배우러 다녔어요. 공부할수록 무속음악이야말로 삶에서 비롯된, 치유의 예술임을 절감했죠. 하지만 어느 날 유명 예술 단체가 주최하는 굿판에서 일부 사람들의 매도를 들었어요. 공공의 자리에서 예술로서 시연되는 굿에도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저의 관심은 결심으로 굳어졌죠. 흔히 낮게 취급되는 샤먼의 세계를 펑키하게 재해석해 대중에게 선보이자!” 그렇게 2019년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했다. 보컬 추다혜, 기타 시문, 베이스 김재호, 드럼 김다빈으로 이뤄진 팀이다. 2020년 5월 발매한 첫 정규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에서 평안도, 황해도, 제주도 무가를 재해석했다. “힙합 저널에서 우리 앨범을 ‘무가를 보컬 형식으로 삼은 얼터너티브 블랙 뮤직’이라고 리뷰했어요. 저는 우리의 장르를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라 이름 짓고 싶어요. 사실 어디에도 규정되고 싶진 않아요. 여러 문을 두드리는 중이죠. 광적으로 열광하는 이런 판이 조명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무대를 원해요. 추다혜차지스뿐 아니라 솔로로서 민요를 부르는 추다혜의 무대 역시도!”
노자 노자, 악단광칠 홍대의 굿쟁이, 작두락, 접신락, 조선악극단의 부활. 모두 악단광칠의 애칭이다. 그만큼 신명 나는 무대를 선보인다. 출발은 유닛 그룹이다. 가곡과 줄풍류를 전파하고자 2000년 창단한 정가악회에서 아홉 명이 모여 결성했다. 김약대(대금), 이만월(피리, 생황), 그레이스박(아쟁), 원먼동마루(가야금), 전궁달(타악), 선우바라바라밤(타악), 홍옥(보컬), 월선(보컬), 명월(보컬)이다. 2015년 광복 70주년에 결성해 악단광칠이라 이름 지었다. 악단광칠의 대표곡 중 하나는 ‘영정거리’다. 액운을 거둬달라 비는 황해도 굿거리를 재해석했다. 그 의미 덕분에 ‘코로나 백신 노래’로 아침마다 듣는 팬도 있다. “2집 수록곡 ‘노자노자’도 추천해요. 느린 리듬과 상반되는 가사가 매력적입니다. ‘노자 노자 이히히히. 중요한 건 마음의 나이, 춤을 출 줄 아는 영혼의 나이!”(전궁달) “악단광칠의 첫 곡 ‘모십니다’는 황해도 굿의 대표 선율에서 파생됐죠.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니 가족이 함께 들어보세요.”(이만월) 단장 김약대는 악단광칠이 추구하는 음악을 이렇게 말한다. “갈 데까지 갑니다. 극한까지 치달으면 내가 잊히며 삶의 고통을 뛰어넘는 음악, 그래서 나뿐 아니라 주변의 아픔을 돌보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김약대) 악단광칠의 정체성은 뭘까. “도전이에요. 기존에 없는 것을 하기에 ‘쇼킹하다’고들 하죠.”(그레이스박) “악단광칠이 내린 현재 결론은 ‘국악의 소리’입니다. 대학 때 이런 토론을 했어요. 한국음악이란 뭔가? 전통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해도 국악인가? 어느 정도 맞아요. 장르가 다를지라도 전통악기를 쓴다면 전통음악의 큰 부분을 차용하는 거니까요. 특히 국악과 현재가 만날 때 악기 소리가 정체성을 많이 규정하는 거 같아요. 악단광칠이 서양 악기 영입을 경계하는 이유기도 하죠.”(김약대) 그는 국악의 소리가 물질적 악기뿐 아니라 가사, 소리의 발성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악단광칠의 보컬인 홍옥, 월선, 명월은 팬이 많다. “판소리, 서도민요 등 세 보컬의 전공 분야가 달라요. 각기 다른 개성의 보컬의 조화가 매력적이죠.”(월선) 악단광칠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덴마크 로스킬레 페스티벌, 워마드 UK 등 미뤄진 해외 공연을 떠난다. 지난해에만 수십 개 해외 공연에 초청받은 만큼 국악의 현대화를 넘어 글로벌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체코 오스트라바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외국인들이 ‘영정거리’에 춤추며 함성을 질렀죠.”(원먼동마루) “파키스탄 공연에서 히잡을 쓴 여자들이 ‘어차’라는 곡에 맞춰 환호했어요. 나라, 인종 상관없이 관객과 호흡할 때 보람을 느껴요.”(이만월) 악단광칠의 인기 이유에 대해 홍옥은 이렇게 답한다. “우린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삶을 살아요. 하지만 어디에도 나만의 것이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였죠. 나이를 떠나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 점이 닮아 우리를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홍옥) 악단광칠의 꿈은 대중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누구나 알 만한, 생활 속의 팀을 원해요.”(명월) “<유희열의 스케치북>, <보그> 등 대중매체가 찾아줄 때 우리가 사람들에게 스며들었구나 실감해요. 아홉 명이 지금 자세 그대로 대중에게 더 다가가고 싶어요.”(선우바라바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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