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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하는 K-푸드, 비건 김치 만들기

2023.02.20

세계인이 사랑하는 K-푸드, 비건 김치 만들기

플렉시테리언으로서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인 김치부터 비건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리하여 세계인이 사랑하는 신비의 슈퍼푸드를 직접 만들었다.

SECRET RECIPE 비건 김치 감칠맛의 비결은 표고버섯과 다시마로 우려낸 채수다.

배철러(Bachelor) 파티에 초대받았다. 서양 친구들은 남성 생식기 모양 케이크와 게임용품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런 파티에 가본 적도 없고 손재주도 없는 나는 고심 끝에 총각김치를 한 봉지 샀다. “이것은 코리안 배철러(총각) 김치다. 작지만 단단하고 매콤하지”라는 설명과 함께. 국어학자들은 총각김치의 어원이 과거 미혼 남성의 머리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퍼뜨리지만 솔직히 그걸 누가 믿나. 단톡방에 모인 파티 준비원들은 내가 보낸 총각김치 사진에 열광하며 음흉한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그들의 국적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슬로바키아, 인도네시아, 캐나다, 프랑스, 홍콩 등으로 다양했다. 나는 총각김치가 게임 벌칙으로 잘 쓰일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이 맥도날드라는 캐나다인 빼고 모두가 그것을 벌칙이 아닌 포상으로 받아들였다. 접시 중앙에 총각김치를 한 점씩 올려놓고 스테이크처럼 정성껏 썰어 먹으면서 “세봉!”, “그레이트!” 연발하는 외국인들을 보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저기… 그건 반찬인데…’

김치를 정성과 건강, 식품 과학의 상징으로 여기며 예찬해온 슬로바키아 친구는 동네에 단 한 명 있는 한국인이 마침내 제 본분을 다한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의 기쁨이 실망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진짜 음식이지! 다음 주에 플리 마켓에서 팔 거지? 미리 주문해도 돼? 뭐? 너는 김치를 못 만들어? 이해를 못하겠네. 그럼 양념을 사서 버무렸어? 뭐? 마트에 완제품이 있어? 봉지만 뜯으면 된다고? 에라이…” 현대 김치는 정성과 건강, 식품 과학의 상징일 뿐 아니라 포장 기술의 승리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의 실망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다. 오가닉과 건강 음식에 열광하는 호주 히피가 내 앞에서 30분 동안 김치 강의를 늘어놓을 때 “이봐 애송이, 내 평생 먹은 김치를 한 겹으로 펼쳐놓으면 호주 대륙 전체가 붉게 절여질 걸세” 하며 입을 막으려던 나다. 물론 그는 열정적인 백인 여행가답게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김치의 주재료로 쓰일 수 있는 식물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을 한참 더 설명하다가 누군가 음악 소리를 말소리보다 키운 다음에야 잠잠해졌다. 그런 내가, 모태 김치 이터인 내가, 국가와 국기를 알기도 전에 물에 씻은 김치를 먹으며 한국인으로 성장한 내가, 김치 없이 탄수화물을 먹으면 오장육부가 울부짖는 이 몸이,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것이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삶에 필수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조달하거나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조리가 어렵고 복잡해 보인다는 이유로, 세계 어디서든 완제품을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나는 김치에 대해서는 전혀 노력이라는 것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이 상황을 바로잡고 싶었다. 정확히는, 바로잡아야만 했다.

내가 사는 발리 인근에서는 김치를 사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번거롭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나는 플렉시테리언(채식 우선주의)이기 때문에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인 김치를 비건으로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비건 김치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 세계 히피들의 천국인 우붓에서는 내공의 증거인 양 김치를 갖춘 비건 오가닉 레스토랑이 있다. 하지만 그 맛은 김치보다 기무치에 가깝다. 한국 김치는 채식주의자에겐 위험하다. 한국에서 비건이라는 개념은 이제 막 대중화되는 단계고, 외국에서 김치를 만들어 팔 정도 한국인이라면 정통 한식에 능란한 사람들이라 자기 방식과 개념을 고수하는 편이다. 간단히 말해, 이 동네에서 김치를 만들어 파는 한국인들은 아직 ‘채소가 많이 들어가면 채식’이라 생각하는 분들이다. 내가 문의를 넣어본 몇몇 판매자도 그랬다. “네~ 채식 맞아요. 젓갈요? 젓갈은 안 넣었고 한국에서 공수한 고급 액젓을 넣었답니다.” “김치가… 채식이지 아마? 젓갈이 들어가면 채식이 아니라고? 에이 그래도 김치는 젓갈이 좀 들어가야 맛있지.” 이런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 비건, 오가닉, 건강 음식 마니아들은 이곳에서 정통 방식으로 만든 슈퍼푸드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의도치 않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페스코 김치를 맛있게 먹었을 서양 비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결국 나는 직접 김치를 만들기로 했다.

요즘 유튜브에 시골 주부들이 운영하는 요리 채널이 굉장히 많다. 나는 팔도 사투리로 김치 절이는 법을 배웠다. 망치부인과 백주부도 빠질 수 없다. 한국에서 사온 사찰 음식 책을 보고 멸치 육수 대신 표고버섯 채수로 감칠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게 문자와 동영상으로 요리를 배운 다음 실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현실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멋모르고 만든 김치는 그럴듯했다. 자신감이 붙어서 배추 양을 늘리고 제멋대로 소금을 듬뿍 쳐서 절였더니 김치가 너무 짰다. 다음엔 겁먹고 소금 양을 줄이는 바람에 싱거워졌다. 네이버에 ‘김치 절이기, 소금 비율’을 검색해서 나오는 모든 페이지를 읽었다. 하지만 적절한 절임물 비율은 아직 모르겠다. 그게 또 소금 따라 기후 따라 다르단다. 너무 짜면 절인 후 물에 담가두면 된다니까 대충 넘어가자. 그런데 다음엔 양념이 겉돌았다. 찹쌀 풀을 잔뜩 넣어봤다. 풀 묻은 김치가 아니라 김치전 반죽이 되었다. 그대로 프라이팬에 부쳐 먹었다. 다음 김치는 단맛이 전혀 없었다. 김치의 단맛을 내는 데는 설탕보다 과일이란다. 과일을 잔뜩 넣어봤다. 그런데 덩달아 생강도 너무 많이 넣었다. 김치인지 기무치인지 모를 맛이 났다. 그러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고춧가루가 떨어졌다. 인도 식품점에서 칠리 파우더를 샀다. 김치가 매워서 눈물이 쏟아졌다. 촉촉이 젖은 눈으로, 마침내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격 1:1 요리 강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나 왜 이 고생인 거냐. 하지만 어머니는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하셨다. “네가 김치를 담근다고? 김치가 너를 담그겠다.” 다만 어머니는 1980년대 어느 해 고추 흉년이 드는 바람에 사람들이 인도 고추를 수입해서 김장을 담근바 본인도 그 맛을 아는데, 조그맣고 쪼글쪼글한 게 엄청나게 매우니까 다음부턴 조심해서 쓰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아이고, 니가 김치를 담근다고… 흐흐흐흐… 살다 살다 별일이…”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한국 고추가 없으면 품종이 다른 인도 고추라도 수입해서 김장을 담가야 하는, 그리하여 단체로 부르튼 입술을 호호 불면서 겨울을 나야 하는 게 한국인인데, 왜 내가 김치를 담그는 건 우스운 일일까. 김치는 만드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있는 음식의 대표 주자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별도의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손대기에 김치는 너무 번거로운 음식이다. 그 인식이 여태 나를 가로막았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김치는 주부에게. 하지만 그 덕에 마흔 줄에 들어서 새삼스레 김치를 배우는 일이 즐겁기도 했다. 나는 일상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문학적 사고방식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김치를 만든다는 것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탐구하는 흥미로운 도전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나의 준거집단, 즉 한국의 중년 싱글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스타나 밀푀유가 아니라 직접 만든 김치를 주요리로 내놓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이 이 탐구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미국 힙스터들은 아파트에서 닭도 키운다는데 한국 힙스터라면 자취방에서 판소리 EDM을 들으면서 김치 정도는 담가줘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김치는 어렵다. 유산균, 발효, 염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재료의 수만큼이나 변수도 많다. 어떤 날은 먹을 만해서 ‘오호, 이제 뭔가 알겠다’ 싶다가 다음번엔 망하고 마는 것이 내 인생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호주 히피보다야 김치를 잘 만드는 날이 오지 않겠나 생각한다. 명색이 한국인인데. 내 머리는 몰라도 내 가슴은 이미 김치를 알지 않는가. 그리하여 언젠가 나는 나를 더욱 완벽하게 먹여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에디터
    조소현
    글쓴이
    이숙명(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
    이현석
    푸드 스타일링
    김보선(스튜디오 로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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