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를 주름잡는 여가수의 남자들
당대 패션의 얼굴로 떠오른 여가수들.
그 뒤에는 그녀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는 남자 스타일리스트들이 있다.
지금 패션계를 주름잡는 여가수의 남자들.
지난 2월 말 저녁, 파리의 에꼴 데 보자르 앞 광장은 카메라 대포를 장착한 파파라치들의 전쟁터로 갑자기 돌변했다. 랑방 쇼를 찾은 리한나가 탑승한 차가 막 쇼장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리한나!”라고 부르짖으며 차 앞을 지키는 사진가들을 피해 잠시 뒤로 물러선 <보그> 팀은 차 안에서 마무리 단장 중인 리한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자동차 실내등이 켜지자 손거울로 메이크업을 점검하던 슈퍼스타를 코앞에서 엿본 절호의 찬스. 좀더 지켜보니 그녀 곁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남자가 있었다. 리한나가 입은 랑방 수트 위로 모피 스톨을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 위치를 이리저리 고정하던 그 남자는? 리한나의 스타일리스트 멜 오텐버그(Mel Ottenberg)였다.
지난달 <보그>는 현재 가장 뜨거운 패셔니스타가 된 리한나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했다. ‘촌티’를 못 벗어난 바베이도스 출신의 유색인 소녀 가수를 샤넬과 셀린, 발맹과 지방시 등 하이패션의 열매를 따 먹도록 유혹한 인물이 바로 그 오텐버그다. <디테일> <보그 옴므 인터내셔널> <i-D> 등의 패션지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오텐버그는 칸예 웨스트의 소개로 리한나를 만난 후, 그녀의 스타일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월드 투어는 물론, 레드 카펫 의상을 포함해 리한나의 모든 옷을 담당하는 그의 리한나 스타일링은 패션지 화보와 다를 바 없다. 가령, 지난 투어에서 리한나가 입은 의상을 한번 볼까? “알렉산더 왕 남성복 가죽 베이스볼 톱과 애덤 셜먼의 가죽 브라, 오프닝 세리머니의 데님 쇼츠, 닐 레인의 빈티지 다이아몬드 스터드와 반지, 80년대 베르사체 뱅글, 겐조 선글라스와 발렌시아가 부티!” 패션지 화보 캡션으로 나열했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을 조합이다.
레이디 가가가 후세인 샬라얀의 가마와 소고기 드레스를 비롯, 기상천외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후, 다음 세대 여가수들에게는 좀더 충격적이고 개성 만점의 패션 감각이 필요하게 됐다. 그리고 레이디 가가에게 니콜라 포미체티가 있었듯, 지금 패션계가 주목하는 톱 여가수들 곁에는 그들의 스타일을 전담하는 스타일리스트들이 있다. 특이 사항이라면, 여가수의 스타일리스트들은 죄다 남자라는 것! 여배우들의 얌전한 레드 카펫 드레스를 책임지는 할리우드 스타일리스트들이 대부분 여자인 반면, 무대에서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여가수들에겐 남자 스타일리스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발하고 도발적이며, 때론 발칙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이들 스타일리스트들이 여가수들에게 끼친 영향력을 쉽게 확인할 곳은 오스카보다는 그래미 시상식. 비욘세의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인 타이 헌터(Ty Hunter)가 선택한 신인 디자이너 마이클 코스텔로의 작품. 케이티 페리의 발렌티노 꾸뛰르 드레스는 그녀와 10년 넘게 함께한 스타일리스트 조니 워젝(Johnny Wujek)이 런웨이에서 ‘찜’한 아이템이다.
리한나가 오텐버그를 만나 스타일이 달라졌듯, 화끈하게 이미지 변신이 필요한 여가수들은 당연한 수순처럼 남자 스타일리스트의 힘을 빌린다. 오색찬란한 패션으로 그저 튀는 게 목적인 여성 래퍼 니키 미나즈는 최근 영화 <The Other Woman>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제레미 스콧의 인형 달린 스커트 대신 아제딘 알라이야의 타이트한 블랙 드레스 차림의 성숙한 스타일을 원한 것. 여기엔 제로드 맥클레언(Jerod McClarin)과 논자 멕킨지(Nonja McKenzie)란 스타일리스트 듀오가 투입됐다. 한동안 가수 활동을 쉬었던 릴리 앨런 역시 복귀하면서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빌렸다. 새로운 스타일리스트는 런던의 쿨한 아이들 중 한 명인 리처드 슬론(Richard Sloan). 한때 샤넬 광고 모델로 활동했던 그녀에게는 좀더 펑키한 이미지가 필요했고,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파티에서 디제잉을 즐기던 슬론은 그 역할에 ‘딱’이었다. 그런가 하면, 함께 쇼핑을 즐기던 ‘베프’가 스타일리스트를 자처하고 나설 때도 있다. 생로랑의 모델인 여가수 스카이 페레이라는 친구인 이안 브래들리(Ian Bradley)를 스타일리스트로 점찍었다. 덕분에 그들은 쇼핑하듯 스타일링을 연구한다. 또 요즘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퉈 부르는 리타 오라가 패션 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스타일리스트 제이슨 렘버트(Jason Rembert)의 역할이 컸다.
이렇듯 패션에 대해 ‘빠삭’한 유행 정보와 뛰어난 감각을 지닌 남자들 덕분에 여가수들은 패셔니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멋쟁이로 변신한 여가수들로 인해 좀더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여가수들의 옷은 팬들로부터 열렬한 연구 대상이 되니까. 비욘세가 입은 스텔라 맥카트니 톱이 전 세계에서 솔드아웃 되고, 스카이 페레이라의 팬은 그녀가 입었던 생로랑 베이비 돌 드레스를 사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가는 식이다.
신인 디자이너들 역시 여가수와 남자 스타일리스트로 구성된 복식조의 도움으로(SNS 파급효과!)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는 세상이다. “리한나가 파리에 갈 예정이니 샘플 의상을 보내달라는 메일이 왔더군요.” 리한나가 파리에서 꼼데가르쏭 쇼장을 찾았을 때 입었던 모피 스톨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서혜인이 그 유명한 복식조와 일한 경험에 대해 전했다. 멜 오텐버그가 뉴욕 컬렉션에 섰던 서혜인의 옷을 스타일닷컴에서 본 뒤 직접 연락한 것. 그로부터 한 달 뒤, MTV 뮤직비디오 어워즈에서 다시 한 번 리한나는 서혜인의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하루 전날 멜에게 메일이 왔어요. 시상식에서 공연할 때 제 옷을 입히고 싶다고 말이죠.” 마침 다른 촬영을 위해 뉴욕에 보낸 샘플 의상이 그대로 리한나에게 배달됐고, 서혜인의 옷은 다시 한 번 화제에 올랐다. “헤어밴드와 목걸이까지 제 룩을 그대로 입고 나와, 마치 제가 그녀를 위해 만든 것처럼 잘 어울렸어요!” 덕분에 왕립 앤트워프 예술학교에서 졸업 작품을 준비 중인 그녀는 요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하루 만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엄청나게 늘고, 전 세계 편집매장에서 그녀에게 연락하기 시작한 것. “여가수의 파워를 제대로 체감한 셈이죠!”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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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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