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성의 아티스트
지속 가능성의 예술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 알렉산드라 치코르스키(Alexandra Cicorschi)를 소개합니다.
<보그 코리아> 독자에게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하이, 독자 여러분! 우선 나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저는 제 작업을 ‘플랫 스컬프처스(Flat Sculptures)’라고 불러요. 버려진 나무 조각을 가늘고 길게 다듬어 유화에 적용하는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자 붙인 이름입니다. 나무 조각이 그림 안에서 붓 자국 역할을 하지요. 나무라는 소재는 그만의 시간과 이야기가 있는 소재입니다. 그 히스토리가 지닌 나무를 통해 저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해요. 저는 루마니아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던 마지막 시기에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두려움이었지만 커뮤니티, 즉 공동체 생활을 배우며 자라기도 했지요. 사람들이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유지해야 할 때 서로에게 다가가 돕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서로의 특별한 기술에 의지하고 지지하며 생활하지요. 물건을 고치고 재사용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창조 작업으로 연결되고요. 그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제가 주변 건축 공사장 혹은 버려진 가구 등에서 소재를 구하는 과정으로 연결된 것이지요. 이렇게 구한 재료를 바꾸고 재사용하여 아트워크에 사용함으로써 버려질 수도 있는 소재에 새로운 이야기를 심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자라 독일에서 공부했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아티스트로서 샌프란시스코는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샌프란시스코는 매우 다양한 문화가 만나 상호 교류하는 도시이며,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입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 사이에서 고향에 자리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요. 이 다양성이 유럽을 상기시켜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지요. 반면에 문화적으로 다른 부분도 분명히 느낍니다. 그러한 부분은 작업에 또 다른 영감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캘리포니아에서 나무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어요. 건물 철거 현장에서 400년 된 나이테를 지닌 삼나무 기둥을 찾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지요. 나이테 하나가 1년을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을 지탱해온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한순간에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이것이 결정적으로 작품 소재를 찾아내는 과정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죠. 저는 나무 소재를 구매하기 위한 노력은 결코 들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잠재력을 가진 소재가 무궁무진하거든요.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보면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변환하여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소재가 있음을 알 수 있죠. 이것은 단순히 이 시대의 소비주의를 향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내가 사용하는 소재의 기원에서 얻는 끊임없는 영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창 시절 에칭과 그래픽 테크닉에 집중했죠. 이러한 학창 시절이 당신의 작업 스타일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나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걸쳐 공부한 에칭은 나에게 길고 반복되는 작업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동판 위에 에칭을 할 때 거쳐야 하는 수많은 과정은 매우 정교하며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하지요. 첫 프린트를 찍어내는 순간은 나에게 매우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나무를 소재로 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순간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죠. 오랜 시간 나무를 자르고 붙이고 샌딩 작업을 거친 후 오일을 바르는 그 마지막 작업은 정말 기뻐요. 그 순간은 나무 조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시간이면서, 나무 조각 각각의 색채와 콘트라스트가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작품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자연 속에는 흥미로운 수심(나무의 중심), 나무껍질 틈에서 볼 수 있는 흐름, 바위의 유형, 언덕의 흐름을 통해 볼 수 있는 모양 등 패턴을 가진 것이 아주 많아요. 우선 저에게 울림을 주는 패턴을 발견하면 그와 동일한 패턴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제 안에서 발견하는 많은 영감도 있지요. 제가 겪어온 많은 경험, 저의 과거, 마음속에 품은 질문과 찾고자 노력한 답, 수년에 거쳐 견고해진 감정, 특별한 이벤트 등 저의 인생에서 이야기를 찾고자 해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많은 부분 중에서도 의도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을 위한 다양한 텍스처를 지닌 나무는 각각의 색, 기원, 나이에 근거해 매우 신중하게 선택되지요.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작업할 때는 그것을 마치 가구처럼 다루며 직접 샌딩하고 폴리싱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나뭇결을 만지고 느낌으로써 작품을 알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작품에 유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날카롭고 뾰족한 앵글을 피하고 모든 각도가 열린 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지속성은 내 작품의 토대죠. 그 무엇도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고 믿어요. 모든 것은 발생점이 분명히 있고 그로부터 생성되는 일이 연결되어 끊임없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 무엇의 존재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모든 것의 분명한 시작점이 없듯이 결말도 없고 오직 변형과 진화만 존재한다고 믿어요. 이것이 제가 작품에 녹이고자 하는 것이고요.
‘셀프 포트레이트’ 시리즈는 자신이 거쳐온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스몰 제스처’ 시리즈는요?
‘스몰 제스처’ 시리즈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에 관한 깊은 생각이며 그것이 끌어올 수 있는 힘에 관한 것입니다. 듣는 것, 의문을 가지는 것, 도움을 권하는 것, 다가가는 것, 친절한 말을 건네는 것과 유지하는 것. 이 모두는 작지만 누군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죠. 이 시리즈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17인치의 작은 캔버스를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제스처를 만들어내기 위해 들어가는 작은 노력이라는 아이디어 때문이죠.
아티스트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려운 주제네요. 최종 목표라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긴 여행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나의 상상을 이루어낸 하나의 단계일 수 있으며, 아티스트로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의미할 수도 있지요. 저는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위해서 작품을 만들어요. 더 많은 작품을 만들수록 그 작품이 나에게 더 다가오고 창작 의지가 더욱 강해지지요. 그동안 작업해온 작품 하나하나가 다른 작품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어요. 제가 탐구했던 다양한 아이디어는 새로운 질문으로 저를 이끌고, 그 속에서 찾은 답은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연결되었어요. 내 작업이 가진 연속성은 진전하고 진화하는 나의 모습입니다. 제 작품 활동 중 어떤 경우는 한 시리즈에서 다른 시리즈로 보여주는 진전이 점진적이며 가시적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인해 여러 단계를 한 번에 넘어 새로운 단계로 진전하죠. 제 목표는 아티스트로서 발견한 모든 방향을 계속 탐구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여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작업이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면서요.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방한 계획이 있나요?
물론이죠! 너무 가보고 싶어요. 남자 친구가 서울 출신이어서 함께 한국을 여행하는 얘기를 자주 해요. 한국에 있는 많은 갤러리와 박물관에 가보고 싶습니다. 서울 근교의 산,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 종류도 무척 알고 싶어요. 예술은 전 세계적인 언어죠.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제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요.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좀 더 큰 스케일의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코로나로 모든 것이 셧다운되기 전에는 몇몇 공공장소를 위한 작업에 집중했어요. 벽 전체가 아트워크가 되었을 때, 새로운 방식을 탐험할 자유가 주어지고, 그 과정에서 기술적 한계를 해결해나가는 도전도 주어지죠. 스케일이 큰 작업의 디테일은 곧바로 보여주기가 힘들어요. 그것은 큰 작업의 움직임 중 하나로서 서서히 나타나게 됩니다. 저는 작품이 관찰자를 둘러싼 공간을 디자인하고 싶고, 버려진 소재의 아름다움을 다시 빛으로 끌어오는 작업도 하고 싶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계획이 바뀌고 작품 활동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2021년 계획은 세웠나요?
2020년은 아티스트로서 매우 힘든 한 해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예정이던 개인전이 무기한 연기됐고 온라인 전시에 힘써야 했지요. 저의 작품은 직접 눈앞에서 보았을 때 큰 감흥을 얻을 수가 있어요. 휴대전화의 작은 스크린을 통해서는 작품의 깊이를 잃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없지요. 하지만 새로운 소재와 작업 방법을 탐험할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해요. 최근에 다이어리에 메모를 많이 하는데 이것이 좀 더 개념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문이 되어주었어요. 제게는 매우 흥미로운 전환이죠. 현재는 2020년에 해온 창의적인 생각이 불확실함과 혼돈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죠. 그래서 현 상황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어떻게 이 시간을 경험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고자 해요.
INSTAGRAM @alexandra_cicorschi
- 글쓴이
- 이지현(칼럼니스트)
- 사진
- Alexandra Cicors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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