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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이 되면 떠오르는 남자, 장국영

2022.11.10

만우절이 되면 떠오르는 남자, 장국영

매년 4월 1일이면 떠오르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18년 전 이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배우 장국영이죠. 우수 어린 눈빛으로 많은 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장국영, 오랜만에 그를 추억해봅시다.

1976년 홍콩 뮤직 콘테스트에 미소년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입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명 시절은 7년 가까이 이어졌죠. 이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전 매니저가 장국영에게 계약을 제안하면서 그는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풍계속취’와 ‘Monica’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특히 1987년 나온 <Summer Romance>는 당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에 등극할 정도.

가수로 성공한 장국영은 연기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은 그를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죠. 지금도 여전히 손에 꼽히는 작품이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미청년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최고의 스타가 된 장국영. 그의 5:5 가르마와 청재킷, 화이트 스니커즈는 최고로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도 했고요. 

장국영은 1990년 은퇴 선언을 해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복귀한 이후에는 예술 영화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며 작품 세계를 넓혔습니다. 그의 전성기 작품에서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이나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빼놓을 수 없죠. 왕가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장국영을 주연으로 생각하고 집필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했고요. 

이 외에도 그가 출연한 작품은 대부분 최고의 히트작으로 떠올랐죠. <야반가성>, <성월동화>, <해피 투게더>, <이도공간> 등 작품명을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니까요.

장국영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적은 없지만, 한 인터뷰 도중 양성애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중요치 않다.” 이후 2000년 <타임>과 인터뷰에서는 “나는 ‘양성적’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합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등 비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셈이죠.

인생의 화양연화를 보내던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자신이 머물던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46세의 나이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버린 비운의 스타로 남았죠. 공교롭게도 이날은 만우절이었고, 장국영의 소식을 믿지 않던 사람들은 뒤늦게 사실임을 깨닫고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무성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를 일부러 살해했다는 설, 그의 동성 연인으로 알려진 당학덕이 유산을 노리고 살해했다는 설 등이 한동안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렸죠. 그의 마지막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겁니다.

지금도 4월 1일이 되면 많은 이가 그를 추억하는데요.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에디터
오기쁨(프리랜스 에디터)
포토
@VogueFilm weibo, IMDb,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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