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음주 생활
밥 먹는 것처럼 술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던 생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혼자서 술을 즐깁니다. 하지만 혼술을 할 때 꼭 지키는 저만의 법칙이 있어요. 어떤 술이든 딱 한 잔만 마시죠. 혼술은 취하기 위해 마신다기보다 아무래도 향을 즐기기 위해 마시는 거니까요.” 유튜브를 장악한 ‘카페 사장 최준’이 했을 법한 이 미끄덩한 말은 실제로 내 말이다. 술과 음식에 대해 기사를 쓰는 커리어를 설명할 때마다 했으니 열 번, 아니 스무 번은 활자화되어 어디엔가 박제되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연말에 출간한 나의 첫 책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에도 그 말은 여지없이 진하게 남아 있다. 이 꼿꼿한 돌진이, 이 팽팽한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진 건 지난해 12월이다.
프리랜서 3년 차로, 마음 놓고 잠잘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한 2020년이었는데 12월에 약간의 여유가 찾아왔다. 나와 거래하던 기업은 올해 결산과 내년 플랜을 짜기 위해 가래떡 같던 발주를 멈추었고, 떡국떡처럼 일을 주던 월간지 에디터들 역시 11월에 일을 끝내고 12월에 모두 휴가를 떠났다. 마감이 쫓아오지 않는 밤이 손에 꼽히던 나에게 벼락처럼 2~3주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이 여유를 어떻게 잘 씹어 삼켜야 할지 계획이 없었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방콕이나 오키나와로 떠나버리면 그만일 이 시간을, 그저 혼자 사는 작은 아파트 안에서 꾸역꾸역 보내게 됐다.
냉장고에 양파나 대파는 없어도 와인과 위스키는 넉넉히 구비된 터라 매일 밤 좋아하는 술과 새로이 발굴한 배달 음식점의 안주로 연말을 만끽했다. 간만에 술 쇼핑도 마음껏 하고 SNS도 기분껏 올렸다. 주량이 많이 줄어 와인 반병이면 취했고, 하는 거 없이 리모컨을 두드리다 풀썩 잠들곤 했다. 다음 날엔 새로 사온 맥주로 또 새로운 밤을 시작하고, 반병 남은 와인을 마저 마셨다. 아침엔 머리에 고무줄을 낀 듯 숙취가 옥죄어왔지만 원인을 아는 병이라 그냥 두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어느 순간 제3자의 시선으로 냉장고 앞에 선 나를 보았다. 혀를 차진 않았지만 등골은 조금, 아니 많이 서늘했다.
그즈음 넷플릭스에서 <퀸스 갬빗>을 봤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최악의 혼술 장면’으로 주저 없이 이 드라마를 고른다.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동네 친구들의 빈집에서, 그리고 홀로 남은 자신의 집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방탕해지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나는 그저 웃었다. 구김 없는 실크 로브는 그렇다 치더라도 발끝 각도 살려 소파에 공주처럼 쓰러지는 장면에선 할리우드까지 코웃음을 날려주고 싶었다. “그냥 아주 염병을…”과 같은 시국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욕까지 해가며.
취기에 실려 TV를 보다 모든 것이 재미없어지는 순간, 책꽂이에 화석처럼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꺼냈다. 1996년에 출간되고 국내엔 2003년에 번역, 발간된 캐롤라인 냅(Caroline Knapp)의 <드링킹>이다. 다시 생각해도 나의 어떤 무의식이 그 책을 콕 집어 꺼냈는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저널리스트로 일했고,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 애완견 중독에 거식증까지 앓으면서도 주옥같은 명작 명문을 남긴 그녀가 쓴 알코올 중독에 대한 기록이다. 글이 어찌나 선구적인지 25년 전인데도 어제 쓴 것처럼 생생했고, 이 책 이후 모든 ‘알코올 중독 저널리스트’들은 그녀보다 더 훌륭한 알코올 중독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글을 시작할 정도였다. 몽롱하게 취한 와중에도 단숨에 읽었다. 술을 마시는 기쁨과 환희에 대해 내가 지난 몇 년간 쏟아낸 글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어느 때엔 내가 썼나?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어머, 이것 봐. 모르는 누가 보면 내가 캐롤라인의 생각을 흉내 냈다고 하겠어.” 차이가 있다면 내 글은 ‘술의 환희’로 문단이 끝났고, 그녀는 그 문단 마지막에 “그때는 이 것이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로 끝난다는 점이었다. 알코올 중독은 진행형 질환이라는 사실,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은 겉으로 봐선 아무런 티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은 뇌에 메모하듯 읽었다. 그리고 반쯤 읽었을 때(그녀가 알코올 중독을 치료받으러 가기도 전에) 나는 절주를 결심했다.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절주의 긍정적 효과는 꽤 선명하게 나타났다. 12시 이후,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책 읽을 시간이 생겼다. 그 전에는 손바닥으로 뭉개버린 생크림 케이크 같은 밤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는 깨끗하게 잘 잘린 조각 케이크처럼 시간을 쪼개 썼다. 12시부터 1시까지 아이돌 영상 보기, 1시부터 2시까지 책 읽기, 2시부터 3시까지 메일 업무와 같은 잔무를 하다 잠들기… 3시간의 여유가 갑자기 굴러들어온 것처럼 즐거웠다.
돈이 굳는다거나 살이 빠진다거나 하는 일상의 드라마틱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술 하나 줄였다고 해서, 인생이 순진하게 달라져줄 리 없다. 그런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다만 아침이 조금 가뿐해질까, 내심 기대했지만 그 역시도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환상 중 하나였다. 길어진 밤을 촘촘하게 즐겼더니 아침은 더욱 무겁고 게을러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거실이 그 어느 때보다 단정하다는 것 정도랄까.
절주의 부작용도 선명하게 나타났다. 각종 음료를 너무 많이 마셨다. 커피는 적당한 대체재가 아니었다. 커피는 늘 마시는 음료라 술처럼 새롭고 즐거운 자극 이 되지 못했다. 그때부터 자몽주스를 엄청 마시기 시작했다. 달지 않고 쌉쌀한 것이 와인의 육촌쯤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콜드브루 커피를 조금 더하면 칵테일 뺨치는 환상의 음료가 완성된다. 풀무원 돌얼음 팩으로 냉동고를 그득 채우고 밤마다 자몽커피 온더록스를 마셨다. 또 하나 꽂힌 음료는 건강을 위한 비타민 음료로 유명한 로트벡쉔의 ‘진저 비타민’이다. 진하고 칼칼해서 마음에 들었다. 어느 때엔 냉장고에 쟁여두었던 깨수깡과 모닝케어도 음료처럼 마셨다.
절주의 또 다른 부작용은 SNS에 남기는 ‘뻘소리’였다. 술 한잔에 털어버리면 그만일 생각을 SNS에 꾹꾹 눌러쓰고 마는 것이다. 외로운 감정, 허탈한 감정, 나에겐 웃기고 재미있지만 남에게는 별것 아닌 이야기 등을 빈 벽에 빔 프로젝터 쏘듯 필터 없이 그대로 SNS에 쏴댔다. 그걸 보고서는 정확히 세 명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니가 걱정되어서”, “니가 한 말이 어쩐지 기억이 나서”, “괜찮냐”는 말을 서두에 꺼내 들면서. 내가 조금 (많이) 외로워 보였나 보다.
<본아페티>, <애틀랜타 매거진>의 음식 담당 에디터였고, 한때는 알코올 중독을 겪다 현재는 무알코올 주류 문화에 대한 기사를 열심히 쏟아내는 저널리스트 줄리아 베인브리지(Julia Bainbridge)의 홈페이지에서 놀다가 그녀가 ‘The Lonely Hour’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세상아, 이것 봐라! 술이 떠난 자리에는 반드시 외로움이 온다니까? 거봐 맞지? 내가 이상한 게 아니지? 어? 흐응?” 물론 이 외침엔 대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일면식도 없는 줄리아 베인브리지도 인과관계가 뒤틀어진 나의 논리를 듣는다면 바다를 건너 달려와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무알코올 음주 문화의 선봉에 서면서 동시에 ‘외로움’을 직시하는 법을 설파하는 그저 멋진 여성일 뿐이다. 나는 술과 외로움 간의 유착 관계가 끈끈하다. 나는 술을 줄이고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외로움이라는 새로운 벽 앞에 섰다. 누군가 사무치게 그립다거나, 무료해 허파가 뒤집어진다거나,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거나 하는 식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외로움이란 다른 어떤 감정이 아니라 그저 술을 마시지 않는 데서 오는 공황 상태에 가깝다. 부풀었던 감정이 한순간에 푸숙 빠져나간 자리에 쭈그러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한 마음이 남았다.
술 없이 밤을 지내보니 술이 그동안 혼자인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너 지금처럼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맛있는 술 즐기는 삶 좋지 좋아, 이 상태로도 너는 충분히 근사하지, 야 네 인생에 말 보태는 사람 다 꺼지라 그래…”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술은 일종의 ‘웰니스(Wellness)’였다고 생각한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혼자만의 리추얼이자, 마음의 소리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명상의 시간.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다만 내 몸이 노화된다면, 그리고 술이 내 몸을 물리적으로 악화시킨다면, 구멍 난 독에 웰니스 붓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자 마시는 술을 엄청나게 줄였고, 그것에 성공했고, 아직까지는 만족한다.
나는 1월 한 달간 총 네 번의 밤만 취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마신 술로 취했다. 2월 한 달 동안 취한 밤은 고작 세 번이다. 그리고 3월은 8일인 현재까지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와인 한 잔을 4시간에 걸쳐 마신 날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정도의 작은 구멍은 빠르게 기울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간헐적 단식에는 실패했지만, 간헐적 음주에는 성공했다. 이제 알코올 의존증 의심을 좀 거두어도 될까? 안도의 숨을 내쉬어도 될까? 그게 아니라면 이 글 끝에 ‘그때는 알지 못했다’로 끝나는 새로운 단락을 덧붙이는 날이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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