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과 글로벌 플랫폼 비즈니스의 미래는?
IT 기업이 K-팝, 한류 콘텐츠와 글로벌 플랫폼 비즈니스를 전개한다. 또 한 번 변혁이 온다.
최근 몇 주간 음악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네이버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가 의기투합해 ‘위버스컴퍼니’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며, 엔씨소프트는 신규 플랫폼 유니버스를 134개국에서 동시에 출시했다. 또 스포티파이는 마침내 한국에 진출했고, 카카오M과 카카오페이지가 합병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출범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작정하고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으로 보자.
세계적인 기준에서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가장 먼저 디지털 음악 시장이 형성된 지역이다. SKT의 멜론과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시장 변화를 주도한 게 2004년 무렵. 미국 아이튠즈가 디지털 음원을 주도한 것은 2008년쯤이니 한국은 그보다 몇 년은 더 빨랐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통신사가 음악 사업의 주도권을 쥔 곳이었다. 이런 구조는 카카오가 멜론과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2016년까지 단단하게 유지되었다. 2017년에는 네이버가 YG엔터테인먼트에 1,000억원 투자를 감행했고, 2018년 12월에 SKT는 새로운 음원 서비스 플로(FLO)를 출시했다. 게다가 이즈음 SKT는 통신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플랫폼 비즈니스를 지향하겠다며 카카오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2021년은 이런 변화가 비로소 가시화된 때다. 마침 KT도 통신사가 아닌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며 ‘스튜디오지니’를 설립, 단계적으로 구조 변화를 단행할 것을 예고했다. 한국의 음악 산업은 바야흐로 통신사에서 플랫폼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셈이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지는 걸까. 글로벌 시장, 콘텐츠 비즈니스,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 등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글로벌로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통신사업은 태생적으로 내수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체질 개선으로 한국을 벗어나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할 꿈을 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주력 분야는 기술과 콘텐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업의 생리다. 우리는 흔히 사업자라면 업계 1위가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정작 기업 입장에서 위기는 성장이 정체될 때 온다. 한국 통신사업은 1990년대부터 국가 기간산업으로, IMF를 겪은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지식 분야가 중요해지면서 21세기 한국 경제 발전의 큰 방향이 되었다.
통신사업과 인터넷 벤처 붐은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다. 그런데 2010년대가 되자 네이버와 카카오가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했다. 국내 시장에서 강력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SKT와 KT도 가만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과 앱 생태계가 발달하면서 말 그대로 국경 없는 시장이 열렸다는 점이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 스토어 등을 통해 국내에서 곧장 전 세계 100여 개국 동시 출시가 가능해지고 실제로 성과를 내는 상황에서 누구든 글로벌 진출을 미루거나 머뭇거릴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한편 K-팝은 애초에 ‘국적 없는 음악’이라는 점으로 비판도 받았다. 전문가들은 장르적 뿌리가 없다는 점, 그러므로 변종이나 혼종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K-팝∙아이돌 음악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국적 없는 음악은 21세기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것은 스포티파이, 유튜브뮤직, 애플뮤직 등의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을 착실하게 장악하는 동안 거의 모든 음악의 특징이 되고 있다. 특히 ‘제3세계’로 불리던 지역의 음악인 태국, 뉴질랜드, 폴란드, 대만 등의 인디 팝은 언어 차이가 없다면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와중에 K-팝은 오히려 혼종과 변종이라는 특징 덕분에 차별화되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K-팝의 성과에는 음악적 특징 외에 퍼포먼스와 부가 콘텐츠 등 여러 요소가 작동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K-팝이 글로벌, 특히 미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음악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이 모두 새로운 ‘한류’를 만들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여러 산업 분야 중 콘텐츠 산업이 가장 중요한 위치로 부상한 것이니까.
이런 맥락에서 IT 기업이 K-팝, 한류 콘텐츠와 손잡고 글로벌 플랫폼을 꿈꾸는 건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 유튜브뮤직 등이 대폭 성장했다는 점은 카카오와 네이버가 미국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IP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IP 비즈니스는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사업이다. 쉽게 말해 원작을 다양한 형태로 확장해 부가가치를 늘려나가는 방법론으로, (약간 올드한 느낌이 드는) 원 소스 멀티유스(OSMU)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빅히트의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인데, 윤석준 빅히트 공동대표는 자사의 비전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음악과 아티스트라는 원천 IP를 기반으로 빅히트의 세 가지 사업 부문인 공연·IP·플랫폼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융합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빅히트는 그를 통한 고객 경험의 혁신과 가치 사슬 확장을 지향한다는 얘기로, 방탄소년단과 팬덤에 더 많은 콘텐츠와 제품을 선보여 가치 사슬의 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뜻이다. 라인프렌즈와 협업한 BT21, 넷마블과 개발한 게임 ‘BTS World’ 등이 그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렇다면 플랫폼 기업은 왜 IP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걸까. 다소 뻔하게 들리지만, 인터넷 환경이 바뀐 데다 수익 구조도 변했기 때문이다. 초기의 네이버는 이메일, 블로그, 카페, 뉴스 등으로 다수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그들로부터 발생하는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를 판매했다. 사실상 신문이나 잡지, 방송과 똑같은 구조다.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터넷 사업이라는 게 알고 보면 기존 미디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먹고살았던 셈이다.
모바일에서는 달랐다. 카카오톡은 네이버처럼 무료 채팅 서비스로 대량의 사용자를 모았다. 하지만 수익을 거두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광고 모델을 고민했지만, 채팅이라는 개인화된 서비스 특성상 인터넷 광고 모델은 작동하지 않았다. 게임 수수료와 채팅창용 스티커를 통해 수익 창출을 꾀했지만 확장성은 요원했다.
사실 플랫폼은 양면 시장 구조다. 양면 시장이란 공급자와 사용자 모두 나름의 이득을 얻는 구조를 말한다. 크리에이터와 광고주, 사용자가 모두 윈윈하는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플랫폼은 이런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 순환 구조가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키며 계속 확장하는 수익 모델을 만든다. 문제는 네이버든 카카오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를 판매하거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가져가는 의외로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콘텐츠는 점점 무료에 수렴한다. 공급이 초과되고 유통 구조가 단순화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콘텐츠 제작비는 줄어들지 않으니, 무료화되는 콘텐츠는 부가가치를 통해 높은 수익을 도모해야만 한다. 지금 콘텐츠로 돈을 번다는 얘기는 필연적으로 부가가치 사업, 즉 IP 비즈니스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
SKT는 2018년부터 IT 기업을 지향하며 SM엔터테인먼트, 빅히트 등과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휴를 맺었다. KT는 최근 IPTV와 케이블TV를 미디어 플랫폼으로 정의하며 플랫폼 사업자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네이버는 국내외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콘텐츠와 IP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고 있다. 카카오는 콘텐츠 투자∙기획, 제작∙유통, 원천 IP 개발을 함께 한다. 살펴보면 SKT는 네이버를 닮았고, KT는 카카오와 닮았다.
이제까지 구조화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결과를 봐야 한다. 요즘 아무렇지 않게 빌보드에서 K-팝 아이돌 기사를 보는 것처럼, <이코노미스트>나 <뉴욕 타임스>에서 수시로 한국 기업 뉴스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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