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을 풍미한 런던의 활기 그리고 생 로랑과 에디 캠벨이 누리는 2021년의 자유!
자기 감정에 의지하기, 유혹하면서도 부드러움을 원한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기… 2016년부터 생 로랑 아트 디렉터를 맡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은 이렇게 표현된다. 패션을 영화처럼 사는 이 남자와 만났다.
이브 생 로랑이라는 세계를 예민하지만 자발적으로 여행하는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행복한 사람이다. 5년 전부터 이브 생 로랑을 지휘하며 창립자에게 약간의 불손함이 섞인 존경을 표하는 이 디자이너는 유혹이라는 길 위에서 모험을 계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브 생 로랑의 기본 신조에 너무도 철저히 자리 잡은 ‘유혹하다(Séduire)’라는 프랑스어 동사를 바카렐로는 어깨에 비스듬히 둘러메고 있다. 때로는 결투의 모습을 띤 독창성을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깃발을 꽂는 것은 일리 있는 행동이다. 패션, 빛, 어둠, 문화, 감정 등의 역사에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진행한 새 컬렉션은 어떤 생각을 하며 준비했나요? 라텍스와 다양한 컬러가 돋보였던 겨울 컬렉션 이후 더 정화된 분위기, 더 간결한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생 로랑과 연결 지었어 요. 특히 68혁명과 평행선에 놓이는 무언가를 연출하려고 했어요.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컬렉션을 발표하는 일에 대해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렇지만 제가 혁명이나 연설 또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느낌에 가깝죠. 주위에서 지나칠 만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저는 부드럽고 둥근 형태를 원했습니다. 현대 여성에게 1960년대 저지를 다시 입혀보는 것처럼요. 이번 컬렉션은 호흡하기,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와 같았어요.
왜 사막에서 컬렉션을 연출했죠? 당연히 패션쇼 진행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한적함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는 것은 자유지만, 의상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여자 모델들이 걷는 거죠. 6개월 안에 패션을 재발명할 수는 없어요. 그건 헛된 환상입니다. 패션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더 심오한 성찰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지 않으면 틀린 소리가 나죠. 사막 촬영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솔직히 저는 사람들이 패션쇼장에 북적이는 모습을 보기 싫어합니다! 여자 모델이 부드럽고 천천히 워킹하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슬로모션… 클래식한 패션쇼에서 로봇처럼 워킹하는 모습과는 다르죠. 이번 컬렉션 작업을 할 때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여주인공을 떠올렸습니다. 현재 그 여주인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늘 영화의 분위기에 끌렸습니다. 스토리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말이죠. 가스파 노에 감독에게 이번 컬렉션을 다르게 리메이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어요. 짐 자무시도 함께합니다. 생 로랑에서 일한 뒤 여러 영화감독과 협업했어요. 저는 패션쇼의 엄격한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한 컬렉션을 연출하는 10가지 방법을 상상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잡지 제작 작업과 약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요? 에디팅 작업 말이에요.
오래전부터 당신은 영화에 특히 많은 애정을 기울였어요. 패션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창조성을 얻을 필요가 있는 건가요? 저에게 패션과 영화는 불가분의 관계예요. 두 분야에서는 진짜 옷을 갖고 일하죠. 소매가 세 개 달린 재킷이나 플라스틱 망토를 만드는 일은 절대 없어요. 생 로랑의 힘은 생 로랑의 세계가 옷 바깥으로 뻗어나간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드레스 룸을 넘어 우리가 이야기하는 역사, 우리가 만들어내는 미장센에 담긴 생 로랑의 정신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생 로랑에도 영화적 측면이 존재해요. 저는 영화와 영화감독으로부터 정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상상력을 발전시켜왔어요. 그래서 영화와 영화감독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어요.
생 로랑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창조에 대한 자극을 받습니까? 브랜드의 과거, 영화, 당신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스토리 등을 통해서인가요? 생 로랑 하우스에서 저를 둘러싼 것들로부터 큰 영감을 얻습니다. 꼭 과거에서 자극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떨어진 것들 사이를 잇는 일이나 신호를 보내는 것을 좋아해요. 생 로랑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볼만한 것들이죠.
당신 이름의 브랜드를 이끌 때처럼 생 로랑에서도 완전히 길게 뻗은 다리 길이나 깊이 팬 허리선처럼 극단적이 거나 과장된 표현에 크게 집착하나요? 이번 컬렉션에서도 그런 특징이 보였어요. 네, 오래전부터 반복하고 있는 특징입니다. 이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제 키가 작아서 그런 것 같은데요(웃음)! 옷을 자르거나, 새로운 실루엣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가 꿈꾸던 몸을 드러낸다는 점을 감추지는 않을게요. 이전 작업에서는 라인을 활용하거나 테크니컬한 분야에서 쓰이는 원단을 갖고 일했어요. 이번에는 레이스, 가죽, 라텍스 등이 지닌 가치를 드러내는 데 더 집중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몸을 에로틱하게 하는 거라 볼 수 있겠군요. 최근 분위기와 비교하면 다소 역행하는 것 같아요. 라텍스 컬렉션에서는 그 점이 꽤 명백히 드러났어요. 에로티시즘은 생 로랑에 강하게 함축되어 있습니다. 옷 아래 가려진 몸을 표현하는 거죠. 몸을 해방시키거나 가둔다는 구실로 몸을 감추거나 몸을 드러내는 방식이 안타까워요. 과도하게 수줍은 태도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저는 수줍음을 좋아하거든요. 여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평등하거나 비교되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여성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요. 오늘날 에로티시즘의 개념을 생각하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생 로랑에서는 다소 위험한 에로티시즘의 분위기가 늘 흐릅니다. 일종의 성적 도착이 상존하는 거죠. 예를 들어 창립자 이브가 창녀를 연상시키는 발목 사슬, 속임수로 쓴 쪽 찐 머리, 투명한 천 아래 비치는 한쪽 가슴 등을 선보이던 것이 제게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또 이런 패션 하우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행운으로 여겨요.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저는 이런 특성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한다는 뜻으로, 특히 유명인이나 공인이 논쟁거리가 될 만한 발언을 했을 때 SNS에서 해당 인물 팔로우를 취소하는 행동 양식)’가 만연하고 유혹을 수상한 것으로 여기는 요즘 트렌드에 휩쓸려가지 않을 거예요. 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유르겐 텔러가 촬영을 맡았던 지난 광고 캠페인을 두고 벌어진 논쟁도 떠오릅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새침 떨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클로드 소테 감독의 <막스와 고철 장수>에서 비닐로 된 방수 재킷을 입은 로미 슈나이더는 대표적인 스타일 레퍼런스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 모습을 재해석한다면 사람들은 여성을 대상화한다고, 그 여성의 모습이 강간을 연상시킨다고 말할 거예요. 어떻게 여성의 모습이 강간을 연상시킨다고 말할 수가 있죠? 진짜 스캔들은 바로 그런 말이에요. 이브 생 로랑은 늘 외설적인 스피릿을 지녔다는 것을 모르는 문화의 부재이기도 합니다. 저는 생 로랑 뒤에 숨을 수도 있어요. 독립권을 가진 작은 섬 같은 브랜드이기에 몸을 숨기기 딱 좋거든요.
매혹적이지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는 아카이브를 갖고 어떻게 작업하죠? 생 로랑에 막 왔을 때 아카이브를 보러 갔어요. 가자마자 피에르 베르제를 만난 뒤 모든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었죠. 처음 시작할 때 손을 담가야 할 곳에 제대로 손을 담가보았다는 느낌을 받은 뒤, 두 번 다시 아카이브를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옷에 대해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봐요.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으니까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상상해요. 생 로랑에 대해 제가 가진 아이디어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합니다. 반면에 저는 서로 다른 것을 잇는 일도 좋아하기에 과거와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중요해요. 이전 쇼에서 소개한 라란의 보석이나 1980~1990년대 스타일을 제가 직접 재해석해 지난 시즌에 소개한 트위드 재킷처럼요. 늘 은밀한 공모, 암시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저지를 당시 스타일처럼 두꺼운 메리야스 천으로 재현했어요. 그 무언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빌려 쓰는 사람입니다. 그 점이 아주 기뻐요. 그리고 생 로랑과 제 의견이 일치하면 좋죠.
이브 생 로랑 파운데이션을 꽤 중요시하잖아요. 베티 카트루 전시를 직접 큐레이팅할 만큼. 이브 생 로랑을 만들어낸 모든 인물에게 진정으로 크게 감동합니다. 생 로랑에 왔을 때 제게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건 피에르 베르제, 베티 카트루, 카트린 드뇌브의 의견이었어요. 형식적으로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사람들의 생생한 의견을 듣는 편이 더 좋아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니 누구보다 생 로랑을 잘 아는 인물들이기도 하죠. 그들은 제게 당신들의 눈에 세련되어 보이는 현재 생 로랑이 보여주는 모습이 더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비록 저는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친절히 대해준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죠. 그들은 늘 자리를 지키며 생 로랑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엄청난 의리파죠. 저는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당신 역시 당신이 패션계에 데뷔한 시기부터 함께한 사람들에게 아주 충직합니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계에서 의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에요. 저는 친밀한 가족이 있어야 해요. 우리 팀원들을 비롯해 안야, 프레야, 미카 같은 모델들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어요. 그들과 함께 발전해가고 싶어요.
생 로랑 리브 드와(Saint Laurent Rive Droite) 컨셉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생 로랑의 세계를 더 펼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콜레트 매장을 인수했을 때 부티크를 열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컨셉 스토어의 정신을 간직함과 동시에 혼합적인 느낌을 더하고 싶었어요. 가구와 오브제, 좀 더 날카로운 라인을 소개하는 부티크로 말이죠. 우리는 ‘필’을 따라 제품을 선택해요. 아주 자유롭고 참여 중심적이며 즐거운 과정입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프랑스 패션에 혁신을 가져온 벨기에 크리에이터의 특징인 ‘벨기에 유전자’가 당신에게도 있나요? 저는 진짜 벨기에 사람이에요! 벨기에 패션계에는 디올, 샤넬, 생 로랑처럼 중압감을 줄 수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없어요. 저는 옷의 내부가 좋고, 내부를 해체하는 것도 좋아해요. 일종의 불손함을 가진 태도죠. 연구하는 것처럼요. 벨기에 패션 스쿨 라 캉브르(La Cambre)에서 공부한 결과이기도 해요. 5년 과정인데, 최고 학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옷을 바느질할 수 없거든요. 이런 특징이 디자이너로서 달리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최초 격리 기간에 당신은 정해진 컬렉션 일정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어요. 생 로랑의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패션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바꾸지는 않는 온갖 담론과 탁상공론, 심포지엄을 보며 극단적인 피로를 느껴요. 격리가 해제된 뒤 팀원들에게 한 달 만에 컬렉션을 완성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느꼈어요. 서둘러 일정을 지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왜 그 일정을 고수해야 하죠? 상황이 어느 정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땐 당연히 원래대로 돌아갈 겁니다. 게다가 사막에서 촬영한 패션쇼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어요. 유일하게 존재하는 규범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시간이 해결하도록 둬야죠. 규범을 지키는 일이 고통스러워지면 멈춰야 해요. 무엇보다 패션은 즐겁고 가벼운 장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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