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미셀리의 세련된 파리 복층 아파트
루이 비통의 액세서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미유 미셀리 . 파리의 이 세련된 복층 아파트는 그녀의 작업만큼 다채롭고 유니크하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에는 집에서 춤을 많이 췄어요.” 루이 비통의 액세서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미유 미셀리(Camille Miceli)는 사교 활동을 하지 않으며 지낸 지난 몇 달을 회상하며 말한다. “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마주 앉아 관심사를 나누고 와인도 한잔하는 시간을 즐기죠. 팬데믹은 모두의 발을 묶어놨지만 저는 나름대로 대안을 찾았어요.”
미셀리는 프랑스 서부 해안가의 캅 페레에 위치한 임대주택에서 지난 몇 달을 보냈다. 그녀는 와이파이가 잘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남편 제롬과 함께 줌으로 지인들과 대화하고 블롯(브리지와 비슷한 게임)과 스크래블(알파벳으로 단어를 만드는 게임) 같은 게임을 즐기며 말이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게임을 했어요. 스크래블은 아주 엉망이었지만 특유의 묘미가 있죠.” 게임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실제 게임 보드와 말을 옆에 두어 집에서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게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루이 비통의 리조트 액세서리 컬렉션을 마무리하는 데 열중했어요. 덕분에 DHL 배달원과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죠.”
예상치 못한 재택근무는 미셀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결과물로 봤을 때 이번 컬렉션이 오히려 이전의 것보다 더 나은 것 같아요. 방해받을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그녀가 호탕하게 말했다. “프린트 컬러와 다양한 아이디어가 더 쉽게 떠올랐어요.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보통은 이 부분이 가장 힘들거든요. 한번 정하고 나서 다시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작업에 몰입할 수 있어 더 수월했어요.”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 근처에 자리한 오스마니안 스타일의 복층 아파트는 미셀리와 완벽하게 닮았다. 거실에 놓인 그린과 블루 컬러의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 소파와 그 뒤를 받친 물결 디자인의 테라코타 벤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자신의 컬러 팔레트를 여러 번 수정한다는 말을 믿기가 어렵다. 이번 리조트 컬렉션을 위해 그녀는 과감한 컬러를 선택했다. 코발트, 버밀리언, 피코크 블루, 밝은 오렌지 컬러로 구성된 컬러 블록 스카프와 타이가 그 결과물이다. 미셀리는 이런 비비드 컬러로 외부 세상에 구조 깃발을 흔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지 그녀의 아파트와 그동안 그 안에서 벌어지던 입체적인 그녀의 삶을 그리워한 걸까?
외출 제한 명령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특히 더 힘들었다. 미셀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샤넬 PR팀에서 일할 때나 마크 제이콥스를 수장으로 둔 루이 비통에서 일할 때도 미셀리는 모두를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외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혼자 발렌시아가 레고 슈즈를 벗어 던지고, 핑크 몽골리안 시어링 모피를 입은 채, 완벽한 알라이아 착장을 하거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과감함을 보였다. 2000년대에 매거진 <Paradis> 촬영에서 그랬듯 말이다. 미셀리의 대담함에 사로잡힌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 PR팀에 있던 그녀를 인사 이동시켜 주얼리 컨설팅과 디자인을 하게 했다. 참이 달린 오버사이즈 후프 이어링과 주얼리 중앙에서 커다란 스톤이 튀어나오는 듯한 청키한 알루미늄 커프스 등 그녀가 만든 멋진 액세서리는 패션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미셀리는 2009년 디올로 이직했다. 그리고 모두가 갖고 싶어 했던 두 개의 진주가 맞물린 이어링을 만들었다. 이 제품은 그녀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한 창작물이자 디자이너로서 그녀를 대표하는 아이템 중 하나가 되었다. 2014년부터 그녀는 다시 루이 비통으로 돌아가 니콜라 제스키에르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서 그녀는 패션 주얼리, 스카프, 벨트, 런웨이용 액세서리, 아이웨어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가 미셀리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다음 시즌에 선보일 신제품 아이웨어를 착용하고 있었다. 멋스러운 1970년대 스타일의 골드 와이어 프레임 아이웨어로, 미드 센추리 모던 가구와 그녀가 수집한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채워진 그녀의 집에 완벽하리만큼 잘 어울렸다. 거실에 있는 작품 중에는 타티아나 트루베(Tatiana Trouvé)의 조각 작품과 필립 히킬리(Philippe Hiquily)의 조각품,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찾은 다수의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도자기 작품도 있었다. 착용한 제품이 멋있다고 칭찬하자 미셀리는 “처음에는 아이웨어 만드는 것에 걱정이 조금 있었어요”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핏에 아주 집착하는 편인데, 다수에게 잘 맞는 아이웨어를 만드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사람의 얼굴 형태는 모두 다르니까요.” 그럼에도 그녀는 멋진 제품을 만들어냈다. 렌즈 주변에 골드 스터드가 장식된 와이어리스 에비에이터 글라스는 그녀가 디자인한 초기 아이웨어 중 하나로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녀는 이 제품을 ‘The Party’라 부른다.
파티는 미셀리가 전문인 또 다른 분야다.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기 부르댕(Guy Bourdin) 같은 포토그래퍼와의 촬영장에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덕분에 미셀리는 사교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어릴 때는 감정 기복이 무척 심했어요.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을 자주 경험했죠.” 아트북 발행인인 아버지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알덴테(Al Dente)의 대표인 남동생도 그녀와 함께 수차례 여행에 동행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의무가 되기 전, 미셀리는 매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익숙한 부엌에서 12인분의 화려한 만찬을 준비하곤 했다. 최고급 식재료 마켓으로 꼽히는 프레지덩 윌슨 마르셰에서 장을 보는데, 뵈프 부르기뇽과 같은 전통적인 요리도 뚝딱 만들어낼 만큼 요리 실력이 탁월하다. 요리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다 갖춘 그녀의 부엌은 다다시 가와마타(Tadashi Kawamata)의 나무 둥지 작품과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잉크 작품, 클로드 레베크(Claude Lévêque)의 네온 아트로 장식했다. “이곳에 서면 늘 저도 모르게 춤을 추게 돼요. 조지 마이클, 프린스, 키드 크레올과 코코너츠(Kid Creole and the Coconuts) 같은 음악을 좋아해요. 저는 의외로 클래식한 사람이랍니다.” 미셀리는 최근 아파트를 구입해 새로운 방을 증축했는데,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스무 살 아들 로메인이 사용할 침실과 TV 룸, 작은 사무실, 그리고 그녀에게 교회만큼 성스럽다고 할 수 있는 드레스 룸을 새로 꾸몄다.
새롭게 만든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원목과 크롬으로 만든 로저 탈롱의 헬리콥터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꽃잎을 밟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볼드한 레드와 블루 격자무늬로 된 코디마 카펫이 바닥에 깔려 있다. “카펫을 정말 좋아해요. 맨발에 닿는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드레스 룸이 나온다. 미셀리는 자신이 디자인한 플렉시글라스 손잡이를 심플한 캐비닛에 달아 공간에 개성을 더했다. 캐비닛을 열면 센서 등이 켜지고 폴카 도트 무늬 의상, 라메 패브릭으로 만든 의상, 각종 드레스, 스카프와 액세서리, 가방이 끝없이 펼쳐진다. 옆으로는 지난 휴가를 떠올리게 하고 앞으로의 휴가에도 동반할 레트로페지엔(Les Tropeziennes)의 흙색 샌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드레스 룸 한가운데에는 이 공간의 성지라 할 만한 유리로 덮인 아일랜드 수납장이 놓여 있다. 안에는 그녀의 보물 같은 주얼리가 담겨 있는데, 대부분은 미셀리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이다. 큰 아이템도 있고, 작고 정교한 아이템도 있다. 미셀리는 제이콥스와 함께 일할 때 만든 벨벳과 스톤 칼라 등 예전에 무척 좋아하던 것을 찾아 나에게 보여줬다. 나의 감탄사를 자아낸 건 그 아래 서랍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저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이에요”라며 미셀리가 서랍을 한 칸 열어 지난 30년간 모아온 아제딘 알라이아 스커트, 드레스, 스웨터, 팬츠를 보여줬다. 알라이아는 미셀리 가족의 친한 친구로, 그녀가 10대였을 때 첫 인턴십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랍의 두께를 하나하나 다 재서 제작했어요. 니트 소재 때문에 알라이아의 옷은 모두 납작하게 뉘어 보관해야 하거든요. 이제 옷이 손상될 걱정 없이 평생 보관할 수 있게 됐어요. 이건 제 평생의 꿈이기도 했답니다.” 그녀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 에디터
- 공인아
- 글
- Alexandra Marshall
- 포토그래퍼
- Matthieu Salva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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