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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덕분에 슈퍼모델이 된 수주 이야기

2022.09.28

엄마 덕분에 슈퍼모델이 된 수주 이야기

엄마 때문에 김연아의 자리를 놓쳤고, 엄마 때문에 늘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던 고교 시절. 그러나 엄마 덕분에 수주는 슈퍼모델이 됐다.

Mom. Mother. Mama. ‘엄마’라는 발음 자체가 물, 정확히 말하면 ‘양수’보다 더 진한 편안함, 보살핌, 연관성 등의 보편적인 말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엄마는 책임이 막중한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에 이렇게 존재하게 된 이유니까. 우리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엄마는 우리에게 수많은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후천적 특징을 물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의 단점이 눈에 띄면, 본의 아니게 혹은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탓하곤 한다.

일례로 내 목소리는 큰 편이다. 우리 엄마도 우렁차다. 그래서 아빠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다”며 우리 모녀를 놀리곤 했다.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우리의 목소리는 여지없이 그랬다. 심지어 동네 사람들 모두 알 정도다. 또 내 발은 키에 비해 작은 편(미국 사이즈 7, 한국 사이즈 235~240mm쯤 된다)이며 게다가 뒤꿈치가 매우 가늘다. 딱 우리 엄마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고 심지어 귀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모델이라는 직업상, 평균 260mm 이상의 큰 신발에 맞춰 워킹(뛰거나 점프하기도 한다)해야 한다는 사실이 문제다. 샘플 슈즈는 대부분 물을 채운 거대한 바나나 보트를 신고 있는 듯하다. 특히 펌프스와 슬링백 힐은 내 인생 최대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신발은 발 사이즈보다 살짝만 더 커도 가느다란 뒤꿈치에서 벗겨지기 십상이니까.

물론 감사하게도 나는 아직 런웨이에서 넘어진 적은 없다. 그렇지만 피팅하는 동안 나만 특정 샘플 슈즈를 신고 워킹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패션쇼에서 캐스팅이 취소된 적도 있다(언젠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 특별한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 그때를 위해 세세한 이야기는 아껴둘 거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패션 위크 시즌에는 양말, 솜덩어리, ‘깔창’ 쿠션, 접착력이 뛰어난 산업용 양면테이프 등을 모아둔 꾸러미를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한국의 피겨 여왕이 될 기회를 놓친 것도 우리 엄마 탓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피겨스케이팅 레슨(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을 받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엄마가 실수로 스피드스케이팅 레슨을 신청하고 말았다! 제일 예쁜 프릴 스커트를 입고 시뇽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채 회전하는 법을 배운다는 기대로 부풀었던 수업 첫날, 세상에! 나는 스쿼트를 하고 쫄쫄이 전신 레오타드를 입고 헬멧을 쓴 채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어린 내 심정이 어땠을까. 김연아가 존재하기 전 김연아 같은 피겨 여왕이 탄생했을 수도 있었다!

금발로 패션 세계에서 주목받기 10년 전. 내 인생 첫 시그니처 뷰티 룩도 엄마 ‘탓’이다. 나는 10대 시절, 가장자리가 빈약한 이상한 모양의 눈썹 때문에 고민이 컸다. 살길을 찾아 내 얼굴 가장자리로 기어가는 두 마리의 송충이처럼 보였으니까. 나는 미용실에 가서 눈썹 모양을 다듬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이윽고 열여섯 살의 어느 날, 엄마가 내 요구 사항을 수긍하고 직접 눈썹을 다듬어주겠다고 나섰다. 엄마는 나를 옆에 앉혀 무릎에 내 머리를 눕혀놓더니, 눈썹을 뽑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예상한 독자들이 있겠지만, 이 시도는 악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부디, 내가 그 운수 나쁜 날 고통스럽게 몸소 얻어낸 값진 교훈을 다들 명심하시길. ‘누군가 옆쪽에서 보며 눈썹을 뽑아주겠다고 하면 반드시 사절할 것!’ 엄마가 눈썹을 아래쪽으로 처지게 뽑아놓는 바람에 나는 늘 인상 쓰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눈썹이 다시 자라는 몇 달 동안 사람들은 “대체 뭐가 문제니?”, “너 기분 괜찮은 거 맞니?”라고 묻곤 했다. 맨날 ‘삐진’ 표정이었던 고교 시절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기다.

하지만 내가 엄마를 가장 많이 원망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현재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몰아붙였던 사실이다. 엄마는 이 고집 세고 거친 아이(악마의 눈썹을 가진!)가 원하는 것을 헤아리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게 내주었던 것이다.

지난주, 나는 엄마에게 <보그 코리아>에서 칼럼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어찌나 좋아서 흥분하는지 수화기 건너편에서 바로 그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뒤 자신이 대학 시절 학보사에서 활동했고, 문학을 전공하며 한때 작가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러면서 “내가 인생에서 이룰 수 없었던 것 모두 네가 이루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찡했다. 긴 시간 엄마는 소녀로서, 여자로서, 한 개인으로서 지녔던 모든 꿈과 야망을 제쳐놓고 살아온 것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 정말 대단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세상에 창조해낸 그 무언가와 많은 연관성을 느끼는 것들이 그토록 힘들고 소모적인 일인 만큼 보람된 일이라고 나는 여긴다.

진심으로, 엄마들은 멋지다.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특별히 우리 엄마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사랑해요. 당신의 ‘아가’는 세월과 나이와 상관없이 어리거나 다 자랐어도 늘 당신의 ‘아가’랍니다!”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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