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섹스를 즐기는 법
후끈한 계절이지만 우리의 섹스는 예전과 다른 쪽으로 가고 있다. 자위, 섹스 토이, 웹캠 섹스가 권장되고 성욕의 표출은 분노로 이어지는 시대, 성적 즐거움은 언제,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존재할까. 고요할수록 밝아지고 혼란스러울수록 선명해지는 오늘의 섹스, 이 여름의 섹스.
틴더에서 생긴 일 나는 발리 근처 휴양 섬에 산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고 관광객 엑소더스가 벌어진 후, 여기 남겨진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은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일거리가 사라지고 보트마저 끊긴 섬에서의 고립은 도시의 록다운과 차원이 달랐다. 가장 자유롭던 이들이 가장 고독해졌다. 매일 풀 파티가 열리고 여행자가 북적이던 시절에는 섹스 파트너 구하기가 치즈나 잡지 구하기보다 쉬웠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기보다 이 환경을 즐기며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던 친구들은 졸지에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이나 <마션>의 맷 데이먼처럼 인간 존재 자체가 그리운 지경이 됐다. 그들은 평생 자기와는 연이 없을 줄 알았던 데이트 앱을 열고 구조 신호를 쏘아 올렸다.
1. 첫 번째 조난자 우마는 섹스 자유 구역의 혜택을 최후까지 알뜰하게 활용한 인물이다. 참고로 우마의 본명은 우마가 아니지만 우마 서먼처럼 키가 크기 때문에 우마라고 부르겠다. 우마는 동네 관광업자들의 팬데믹 기념 파산 파티에서 몸 좋은 남자와 섹스 파트너가 되었다. 하지만 곧 그가 복잡하게 발달된 근육에 비해 매우 단순한 사고를 가져서 말이 잘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화롭게 관계를 청했다. 우마는 그 후 두 달간 금욕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섬에는 자연스럽게 만날 남자가 남지 않았고, 록다운 해제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굴욕감을 느끼며 틴더를 켠 우마는 평소 “요즘 배변 활동은 원활하냐?” 수준의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인 이웃 케빈을 발견했다(감독 겸 배우 케빈 스미스를 닮았기 때문에 케빈이라 부르겠다). 록다운 된 섬에서 틴더 따위를 켜봤자 ‘섹스를 하려면 초저녁에 했겠지만 뭔가 내키지 않아서 거른 상대’뿐인 건 당연지사다. 우마는 재빨리 전략을 바꾸었다. 그는 케빈에게 라이크 신호를 보냈다. 케빈도 그 못지않게 짓궂었다. 그들은 매칭되었다. “우마 씨, 프로필 사진이 아주 매력적이네요. 발리 근처에 사나 봐요?” “반가워요, 케빈. 나도 당신 프로필 중에 방금 한바탕 토한 술꾼처럼 보이는 사진이 마음에 들어요.” 둘은 그렇게 ‘틴더 놀이’를 시작했다. 낯모르는 남녀처럼 밤새 플러팅을 나눴다. 뻔히 아는 각자의 연애사, 황당 섹스 경험 따위에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호응했다. 화젯거리가 떨어지자 인터넷에서 ‘연애 100문 100답’ 파일을 찾아내서 공유했다. ‘당신 친구들은 당신을 뭐라고 묘사하나요?’ 식의 유치한 질문에도 그들은 성실하게 답했다. 서로의 개, 고양이, 식물 사진도 주고받았다. 만일 이것이 로맨틱 드라마나 연애 앱 광고라면 그들은 얼렁뚱땅 섹스를 하고 연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이성인 친구’ 두 사람은 가짜 플러팅으로 응급 상황을 극복한 뒤 록다운이 해제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이웃 섬으로 건너가 진짜 짝짓기에 나섰다.
2. 그즈음 어째서인지 발리 지역 틴더에는 추운 나라에서 온 헐벗은 여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보톡스를 좀 과하게 넣은 듯한 입술에 매트한 분홍 립스틱을 바르고 단풍잎만 한 비키니를 걸친 백금발 여성들이다. 케빈의 틴더 메이트도 그중 하나였다. 그 프로필을 보는 순간 나는 어째서 케빈이 우마와 맺어질 수 없는지, 현재 그가 얼마나 섹스에 절실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만난 지 5분 만에 케빈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섹스하려면 돈을 내라잖아. 틴더에서 누가 성매매를 하냐고! 그럴 거면 만나기 전에 말을 하든가.” 케빈은 황망하게 웃었다. 그는 매춘이 합법인 나라에서 왔지만 성을 구매하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대놓고 ‘쎄에에엑쓰!’ 부르짖는 프로필을 보고 ‘나빠 봤자 골드 디거겠지’ 예상한 친구들도 충격에 빠졌다. 데이트 앱에서 성매매를 하는 건 아무래도 반칙 같지만 단풍잎을 걸친 여자들의 프로필은 아직 거기에 있다.
3. 반면 우리의 세 번째 친구 크리스는 틴더에서 퇴출당하는 바람에 동네 전설이 되었다. 몸매가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 같은 남자다. 맞다, 앞서 말한 ‘복잡하게 발달된 근육에 비해 매우 단순한 사고를 가진’ 청년이다. 그는 새벽 술자리에서 바다 보러 가자고 친구들을 꼬드기다가 다들 피곤하다며 거부하자 훌쩍훌쩍 울어버린 적 있다. 그 사건 이후 친구들은 그를 캡틴 아메리카 몸매를 한 도자기 인형으로 여긴다. 하여간 알다시피 틴더 월드에는 통성명도 없이 다짜고짜 ‘당장 섹스하자!’고 덤비는 인간이 수두룩하다. 연애 빙자 간음 후 튀는 인간, 드라마 킹과 퀸, 스토커, 사기꾼, 성매매자… 별별 사람 다 있다. 하지만 추방은 극히 드문 일이기에 우리는 크리스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 궁금했다. 크리스 자신도 답을 몰랐다. 우리는 다만 짐작해볼 뿐이다. 록다운이 풀린 동안 크리스는 도시가 있는 이웃 섬으로 건너가서 틴더에 본격 매진했다. 그는 훌륭한 몸을 가졌으므로 매칭 확률이 높았다. 그는 그렇게 만난 여자들에게 여행 상품을 팔았다. 여행 상품을 팔려고 몸을 끼워 판 건 아니다. 오히려 섹스만 노리는 많은 틴더남에 비해 진지한 쪽이었다. 다만 여자들에게 “자신이 이웃 섬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이 함께 다이빙 데이트를 한다면 자신은 에이전트 및 강사 수수료를 벌고 당신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노라” 홍보하는 걸 매번 잊지 않았을 뿐이다. 그가 데려오는 손님들은 망해가는 휴양 섬의 한 줄기 빛이었다. 그의 틴더걸이 온 마을의 유일한 손님인 달도 있었다. 그들이 떨어뜨린 몇 장의 지폐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근을 면했다. 언젠가는 틴더걸 두 명이 동시에 여행을 오기도 했다. 주변인들은 잠시 눈치를 살폈지만 크리스나 그녀들이나 섹스는 섹스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식으로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만난 여자들 중에는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 눈에 크리스는 저 추운 나라에서 와서 춥게 입고 다니는 여자들과 비슷한 존재였을 것이다. 같은 시기 다른 다이빙 센터의 리즈(짐작하겠지만 리즈 위더스푼을 닮았다)도 틴더보이를 숍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그 남자는 리즈를 틴더에 신고하는 대신 트립어드바이저에다 “이 숍의 다이빙 강사인 리즈는 최악의 틴더 메이트였다”라고 불평 글을 남겼다. 그 소식을 들은 크리스는 전 세계 관광업자들이 목숨 줄처럼 여기는 트립어드바이저에 그런 후기로 남느니 차라리 틴더에서 쫓겨나는 게 낫다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 후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크리스를 소개할 때 “무려 틴더에서 쫓겨난 전설의 인물”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한 푼이 아쉬운 동료들은 “이렇게 된 김에 그라인더로 옮겨서 영업을 계속해보는 건 어떠냐”고 그를 꼬셨지만 크리스는 거부했다. 그는 데이트 앱에서 뭘 파는 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교훈을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4. 이런저런 만남에 지친 조난자들이 한데 모인 날. 그들은 4년째 함께 지내는 나와 애인을 부러워하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냐”고 물었다. 나는 애인의 팔짱을 끼고 그의 어깨에 기대며 최대한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운명적인 만남이었지.” 친구들은 눈을 반짝이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틴더라고…”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추고 예상한 반응이 터져나오는 순간을 즐긴다. 친구들이 배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뭣이라?” 되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그게 그리 나쁘지가 않다니까. 너희들도 즐겁긴 했잖아?” —이숙명(칼럼니스트)
섹스의 본질 그날의 주제는 섹스였다. 3년 전 런던에서 1년가량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모여 있는 왓츠앱 그룹 채팅방, 우리는 팬데믹 시대에 걸맞게 각자 와인과 맥주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누군가는 자극적인 섹스팅 이후 몹시 실망스럽던 하룻밤 에피소드를 들려주었고 다른 친구는 틴더에서 만난 남자들은 왜 유령처럼 사라지는가에 대해 투덜거렸다. 뻔한 얘기였다. 팬데믹 전에도 나쁜 섹스는 흔했고 지구 반대편에도 나쁜 남자는 존재한다. 하지만 파리에 살고 있는 C의 이야기는 평소와는 좀 달랐다. 자유연애주의자인 그녀는 최근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고 입을 열었다. 첫 데이트를 마친 후 집 앞, 굿바이 키스를 하려던 순간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는 거다. 여느 때라면 “넷플릭스 볼까?(Netflix and chill?)”라는 사인을 건넸을 상황인데 불현듯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고 했다. “내가 전염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이 남자를 좋아하나?” 결국 그녀는 그날 밤 데이팅 앱을 삭제하고 혼자 잠들었다며 툴툴댔다. 포르투갈의 어느 시골에서 농장을 하고 있는 J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지금 인생 최장의 휴식기를 가지는 중이었다. 자연에 둘러싸여 와이파이가 없는 이웃과(그의 이웃은 틴더의 존재조차 모른다) 함께 사는 그의 마지막 섹스는 1년 반 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섹스를 하고 싶다고 애절하게 토로하면서도 단순히 하룻밤을 위해 애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처음 반년 정도는 고요와 평화를 보장하는 생활이 만족스러웠고 1년쯤 됐을 때는 순수하게 성욕이 솟구치더니 지금은 섹스보다 관계가, 목적보다는 만족이 절실해졌다면서 말이다. 유럽만큼 극단적이지는 않겠지만 팬데믹이 섹스에 어떤 영향을 미친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날 대부분의 섹스가 술자리에서 성사되었던 선배 Y는 코로나로 인해 어느 때보다 무료한 삶을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간단했다. 10시라는 시간이 문제였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기엔 아쉽지만(물론 택시도 잘 안 잡히고) 방을 잡자니 애매하게 친밀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기엔 정신이 아직 멀쩡한 시간, 10시.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정말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만나는 건 끝내주게 황홀한 섹스보다 훨씬 더 귀한 일이다. 약간의 취기와 약간의 숙취의 날만 이어졌다. 선배는 요즘의 일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아, 재미없어.” 하지만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선배는 재미의 나날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백신 공급이 가시화되면서 전 세계가 여름, 아니, 섹스의 여름을 준비 중이니 말이다. 미국 백악관이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틴더, 힌지, 범블비 등과 같은 글로벌 데이팅 앱과 협력 프로젝트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팬데믹 이후 ‘섹스의 여름’에 대한 기대를 방증한다. 실제 올해 4월 콘돔 소비량은 2020년 같은 시기에 비해 두 배 이상 급증했고 몇몇 기사는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을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의 ‘광란의 1920년대’와 비유하며 쾌락주의의 시대가 되돌아올 거라 예견하기도 했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타인과 나누는 긴밀한 관계에 목말라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캐주얼한 섹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BBC>는 ‘우리는 섹스의 여름을 향해 가는 중일까?’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팬데믹 후 사람들이 사회에 재진입하면서 단순히 성적 충족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유대감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최근 킨제이 연구소에서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4%가 팬데믹 이전과 비교했을 때 한 사람 이상의 성적인 파트너를 갖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고 답했다. 연구진 중 한 명인 저스틴 가르시아는 사람들이 침대 밖에서도 어울릴 만한 상대를 찾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금 ‘감정적인 교류’를 갈망하고 있고 그건 반드시 신체적 섹스만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팬데믹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길었다. 지루한 고립의 시간은 우리의 욕구를 파고들었고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했다. 한동안 섹스를 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섹스라는 건 삽입과 사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섹스를 하고 싶다”는 것은 절정에 도달하는 그 순간이 아니라 오르가슴까지의 모든 과정 그리고 후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걸 뜻한다. 그래, 우리는 그냥 섹스가 아니고, 많은 섹스도 아니고, 좋은 섹스를 원한다. 그건 열과 성을 다하는 정열적인 섹스일 수 있고 이제까지 못해본 종류의 과감한 섹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고의 섹스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결국 가장 ‘좋은 섹스’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과 대화를 나누는 섹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팬데믹은 세상의 우선순위를 재편했다. 섹스에서 역시 그랬다. 간격을 강제한 관계로 인해 우리는 우리 욕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건지도 모른다. 섹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다. 우리가 왜 섹스를 원했더라? 섹스에서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게 뭐였더라? 그동안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철저하게 안전 수칙을 지킨 쪽에 속한다. 성교육 국제단체 Avert의 코로나19 시대에 추천하는 섹스 방법 다섯 번째 조항 “자위, 섹스 토이, 웹캠 섹스 등 신체적 접촉 없이 성적 즐거움을 탐구할 것”을 따랐다. 한동안 우머나이저에 만족했다는 얘기다. 처음엔 신세계였지만 놀라움은 오래가지 못했다(물론 지금도 기술력과 편리함만큼은 인정한다). 평소에도 성욕 그 자체보다 차라리 호기심이 도화선이 되는 편이었고 오르가슴에 집착하는 타입도 아니다 보니 금세 흥미를 잃었다. 섹스가 인생에서 사라지고 있을 때쯤 그 남자를 만났다. 나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그가 좋았다. 취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취하지 않았을 때 자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그 남자와의 섹스는 운명처럼 불붙은 듯 뜨겁지도, 놀랄 만큼 실험적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낯설다가 조금씩 편안해지는 그런 섹스,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소파에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게 좋은, 아주 평범한 관계. 내가 원하던 섹스가 바로 거기 있었다. —권민지(칼럼니스트)
텍스트 탐미주의 팬데믹 상황이 터지기 바로 한 달 전, 나는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마지막 연애가 되었다. 그와의 이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정한 남자였지만, 그와의 섹스는 정말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은 괜찮으니까, 하고 타협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다정다감함은 유약함의 표현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단 요만큼도 성적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의 취향을 무시하는 우를 범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고, 그렇게 지나간 연애를 곱씹고 나의 선택을 반추하기도 전에 팬데믹 상황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자의적, 타의적으로 역대급 솔로 기간을 갱신하던 와중에도 성욕은 착실했다. 망해버린 섹스에 대한 반동인지 연애, 키스, 포옹 따위는 됐으니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매일 밤, 아니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두드렸다. 무엇보다 남자, 남자의 무게를 느끼고 싶었다! 나보다 압도적으로 커다란 남성이 나를 짓누르는 상상은 연애하던 중에도 종종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마음이었다. 원 나잇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하필이면 본명으로 활동하며 애매하게 생겨난 소셜 포지션 때문에 그것마저도 녹록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신분을 감추는 것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데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게다가 전 작품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했기에, 우연한 손 모양 하나에도 공격을 일삼는 광기가 퍼진 현시점에서 누군가 마음먹고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낯선 사람과의 섹스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주변에서 고르자니 음, 그게 바로 그 전 남자 친구였다. 하여간 옛날 통속소설에서 과부들이 독수공방하며 허벅지를 찌르는 것이 바로 이런 심정에서 비롯된 일이었을까? 하여간, 속된 말로 ‘양기’가 필요했다. 그러다 나의 삶에 스며든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연히 접한 팬 픽션(Fan Fiction)이었다. 일명 팬픽. 그렇다. 한동안 ‘알페스(Real Person Slash,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물)’라며 한때 온갖 범죄물과 동급 취급을 받던 바로 그것이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굉장한 음모 또는 무서운 뒷배가 있을 것 같지만, 그 실체는 그저 팬들이 자신의 최애(좋아하는 대상)의 얼굴을 한 아바타를 가지고 인형 놀이를 하는 것뿐이다. 사실 가장 큰 관문이 바로 그 현실의 인물을 소재로 쓴다는 점이었지만, 그것도 이내 적응이 되었다. 정확히는, 글에 등장하는 그들은 해당 실존 인물 본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의 외형으로 묘사되었지만 소설 안에서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 아니 캐릭터에 가까웠다. 쓰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편집된 그들은 때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물의 히어로였고, 누아르물의 마피아였으며, 서로의 혹은 나의 연인이자 섹스 파트너이기도 했다. 시작은 팬 픽션이었지만, 원래부터 활자 중독자였던 나는 슬금슬금 살짝 에로틱한 고전소설부터 베스트셀러 로맨스 소설 시리즈, 갓 나온 신작 19금 웹 소설까지 손을 뻗게 되었다. 심지어 다른 작가가 쓴 남자 주인공이 내 취향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접(!) 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작가라는 나의 직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포르노와 만화 같은 매체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포르노와 같은 영상 매체는 불법 촬영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착취해 유통되는지 모를 일이었고, 애초에 국내에서는 야동 자체가 불법이다. 무엇보다 막상 화면을 통해 마주한 섹스라는 행위는 장기와 장기가 서로 비벼지는 것처럼 보여 불쾌하기까지 했다. 만화라는 매체도 있었지만 심의에 의해 엉성하게 칠해진 흰 칠은 보기가 불편했고,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인 동종 업계인의 노고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만. 무엇보다 그 이름도 찬란한 인터넷 소설 ‘귀여니’ 시리즈 세대이자, 교복 입고 쿨피스 마시던 시절 너도나도 카시오 전자사전에 .txt(메모장 파일) 소설을 넣어두고 읽었던 사람에게 텍스트 형태의 포르노는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연달아 읽으면서, 나는 나의 부끄러운 취향을 몇 가지 알게 되었다. 굳이 그것을 일일이 이곳에 나열하지는 않겠지만 그중 하나를 용기 내 말하자면, 나는 정말로 강압적인 섹스에 대한 묘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페미니즘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사실 내 취향은 딱히 드문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엄청난 메이저 장르였다. 소설 속의 ‘남성’은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제압한다. 그들은 때로는 폭력적이며, 무례하고, 위험하다. 현실이었으면 데이트 폭력으로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할 만큼 당연히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렇게 흥분되는 걸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 <사랑은 왜 불안한가>의 저자 에바 일루즈는 그런 강력한 ‘지배’가 곧 두 사람(혹은 캐릭터) 간의 강한 감정적 교류를 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통제되는 쪽 없이는 통제하는 쪽도 없다는 것으로, 서로를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성립하는 관계라는 뜻이다. 나 역시 포르노처럼 ‘씬(Scene, 섹스 장면)’만 있는 것보다는 앞뒤 양옆의 세세한 상황과 서사가 있는 편이 훨씬 흥분된다. 심리적으로, 훨씬 섹시하다. 조금 더 노골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남성 주도적인 강압적 섹스는 언뜻 보면 남자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인 내가 원하는 혹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극상의 쾌락을 제공받는 것이 목적이다. 나의 심리적, 신체적 에너지 낭비는 일절 필요 없는 엄청난 쾌락과 온몸의 진이 다 빠지게 만드는 섹스. 말하자면 내가 시시콜콜 ‘이렇게 해줘’, ‘저렇게 해줘’라고 말하지 않아도 간지러운 곳을 딱딱 긁어내는 효자손 같은 섹스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섹스는, 우리 모두 알지 않나. 소설 속의 알파남-잘생기고, 능력 있고, 권위 있는-과는 달리 현실의 남자는 태미 와이넷의 노래 ‘Stand by Your Man’처럼 변변치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심리적 위축으로 발기가 되지 않는 남자의 곁을 지키는 것이 대부분의 여자가 처한 현실이라는 뜻이다. 노래의 가사처럼, 여자로 사는 것은 너무 힘들다. 남자가 제멋대로 행동해도 늘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니, 끔찍이도 피곤하다. 그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자로 태어난 이상 해야 할 것도, 결정해야 할 것도, 책임져야 할 일도 많다. 더군다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라도 하면 그 스트레스는 두 배, 아니 곱절이 넘는다. 스릴을 추구하는 나의 ‘빻은’ 감성과 안전을 추구하는 이성이 늘 머릿속에서 설전을 벌인다. 사실 팬데믹 전에도, ‘안전’이라는 요소는 여느 여성에게 섹스할 상대를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혹시나 이 남자가 성병이 있지는 않을지, 피임을 안 하는 쓰레기는 아닐지, 최악의 경우 살인범이 아닐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여자는 섹스에 뒤따라오는 대가, 임신을 하면 일신상의 많은 것이 뒤바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실수로’ 아이가 생기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만 년 동안 유전자에 새겨진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잠재적 리스크를 피하는 조심성을 발휘하는데, 문제는 이쪽으로 사고 회로가 팽팽 돌다 보니 심리적으로 흥분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 욕구가 어떻게 다른지 여실히 보여주는 책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오기 오가스, 사이 가담)에 기술된 연구 결과에서도, 남자들은 심리적 흥분과 신체적 흥분이 일치하는 반면에 여성은 둘이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컨대, 남자는 일단 페니스에 피가 몰리기만 하면 그게 포르노 때문이건 비아그라 때문이건 성적으로 흥분하지만 여자는 몸의 흥분이 반드시 성적 흥분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게 여성용 비아그라가 없는 이유라나. 말하자면, 여자는 심리적으로 흥분되는 느낌, 즉 감정적 페티시즘을 원한다. 나는 이 말에 십분 동의하며, 또 한편으로는 혹은 그래서, 그런 것 따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줄 섹스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그 따위 자잘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끝내주는 오르가슴만을 위한 섹스를 원한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파트너 남성에게 나의 성적 욕망과 성감대를 일일이 협의하고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너무 피곤하다. 제발 알아서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 이제는 ‘아, 안 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제는 정말 안 하거나 못하게 되었지만. 덕분에 지난 몇 달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섹스 디톡싱’을 하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섹스의 근본적 의미를 탐닉할 수 있었다. 그저 성욕에 눈이 돌아서 혹은 외로우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덜 맘에 들어도 나쁘지 않아 어느 정도 순응해 몸을 섞는, 그런 행위로부터 멀어지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 그렇지.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이런 취향을 가지고, 이런 사람을 좋아했지, 하는 것들. 팬픽으로 시작해 고전소설, 장르소설을 거쳐 이와 관련된 각종 논문과 심리학 도서 등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를 섭렵하며 지식을 쌓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 글을 쓰는 것조차 내 성생활의 일부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진짜 섹스와는 다르지만. 글을 읽는 사람도 많고, 쓰는 사람도 많은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을 향한 사회적 압박이 두드러지는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에 로맨스 소설 시장이 호황을 맞이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거기에 나오는 일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라면 뭐든지 용서해줄 수 있다. 전혀 허무하지 않다. 상상 속이라서, 창작물 속이라서 오히려 좋다! 굳이 밖으로 나가 위험한 바이러스와 마주하지 않아도,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현실의 남자들 사이를 헤집지 않더라도 클릭 몇 번으로 이상형의 남자를 소환해 끝내주는 섹스를 즐길 수 있다니. 가상의 세계이니 안전한 것은 물론이요, 마음에 안 들면 뒤로 가기 한 번에 안녕, 그뿐 아니라 행위 앞뒤로 탄탄하게 빌드업된 서사에서 오는 짜릿함까지, 말하자면 문학, 예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취한 탐미주의 그 자체랄까. 거기에 섹스 토이를 곁들인. 모르는 사람과 가까워지겠다고 아등바등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의 욕망에 더욱 집중하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지금이 훨씬 편안하다. 무엇보다, 상상은 어디서든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주는 섹스를 하고 싶다. 현실의 너랑. —민서영(웹툰 작가, <망하고 망해도 또 연애>, <썅년의 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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