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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국에 대해 쓸 것, ‘파친코’ 작가 이민진 인터뷰

2023.02.12

평생 한국에 대해 쓸 것, ‘파친코’ 작가 이민진 인터뷰

해외에서 한국계 작가의 소설이 읽힌다는 것은 단순히 국경을 뛰어넘은 뛰어난 소설의 탄생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시안 아메리칸, 이민 가족, 아시안 청소년, 소외된 아웃사이더 등 엄연히 존재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삶도 주인공으로 보편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명이다. 코로나로 소용돌이 같은 시간, 반아시아 정서와 혐오 범죄의 증가로 무력감마저 드는 혼란스러운 시기. 아티스트이자 변호사 이소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건 민진 리, 메리 H.K. 초이, 프란시스 차, 제니 한의 소설이었다. 공감이 위안이 되고, 상흔이 섬광이 되는 순간. 울퉁불퉁한 삶에 빛을 비추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소설가 4인을 이소은이 만났다.

평범함에 대한 긍정, 민진 리

베이지색 블레이저는 커미션(Commission).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말마다 책,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추천 리스트를 발표하는 전통이 있다. 그의 안목을 믿기에, 늘 그의 리스트를 기다린다. 2019년 추천 도서 목록에서 재미 한인 이름을 봤다. 민진 리(Min Jin Lee), 책 제목은 <파친코(Pachinko)>.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연말의 여러 행사를 핑계로 타이밍을 놓쳤고, 1년 후 코로나로 집 밖에 나가는 게 목숨 거는 일처럼 느껴질 즈음에야 책을 집어 들었다. 출산 후 아기가 잘 때 나도 잠이 필요했지만 잠을 포기하고 책을 봤다. 아니, 볼 수밖에 없었다. 유려한 문장력과 광범위한 인물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민진 리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로스쿨에서 그리고 변호사로 일할 때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명료한 글이 좋은 글이다. 그녀의 모든 작품이 그렇다. 군더더기 없이 섬세하고 장면이 연상되고 인물의 감정이 느껴진다. 일곱 살 조카에게 읽어줘도 이해할 것처럼 명확할 뿐 아니라, 여러 인물의 뒤엉킨 인생이 마치 포토 모자이크처럼 모이는 스토리 구성은 독자를 감동시키고 도전하게 한다. 소설 밖의 사람은 어떨까? 인터뷰와 촬영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민진 리는 단호했다. 의상, 헤어, 메이크업, 촬영 방식 등 동의할 수 없는 것과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 못해 냉정해서 처음에는 꽤 당혹스러웠다. 33도를 웃도는 여름날, 그녀를 만나러 간 할렘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그녀의 브라운스톤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예정 시간보다 일찍 시작해도 괜찮냐는 연락에, “Sure” 한마디로 답이 왔다. 바로 집 출입문이 열렸고, 소개를 시작하려는 순간 와락 포옹으로 나를 맞이했다. 코로나 때문에 악수를 하기도 머뭇거리던 분위기에서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촬영 팀을 집 안으로 안내했고 우리를 위해 준비한 다과를 내주면서 팀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물어보고 말을 건넸다. 촬영과 컨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시작하자던 그녀는 첫마디로, “난 정말 까다로워요. 얼마나 까다로운지 믿기 힘들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바로 응수했다. “아니요, 충분히 믿을 수 있어요.” 52세 아시안 여성으로서 가장 좋은 점은 싫은 건 싫다고 할 수 있는 아줌마 파워라고 말하며 통쾌하게 웃는 그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민진 리는 일곱 살에 부모님과 언니, 여동생과 함께 한국을 떠나 뉴욕 퀸스에 정착했다. 데뷔작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에서 주인공 가족이 살았던 곳 역시 퀸스였고 길거리 명칭도 그대로 사용했다. 부모님은 코리아타운에서 처음에는 작은 신문 판매대, 나중에는 보석 도매 가게를 운영했고,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데뷔작의 주인공인 케이시 한이라는 인물은 세탁소에서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했지만 대단한 집안의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못 느끼고 로스쿨 입학을 미룬 채 투자은행 비서로 취직한다. 돈이 없지만 비싼 옷을 사고, 부모님 몰래 백인 남자를 만나고, 다른 남자와 바람도 피우면서 의아한 선택을 반복한다. 혹시 자전적 소설인지 물어보니,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손사래를 친다. “전혀 아니에요. 그녀에 비해 난 너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어요. 스물두 살에 약혼하고 스물네 살에 결혼하고 담배 한 번 안 피우고 골프 한 번 안 쳤어요(웃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호기심, 카리스마 있고 반항적이고 독립적이지만 엉망진창인 여성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그런 캐릭터를 쓰고 싶었죠. 2007년에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케이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2021년이 돼서야 그런 여성이 제 시대를 만난 것 같아요.” 2007년에 케이시 같은 여성은 분명히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기준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오래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다양성은 주목받지 못했고, 소수 인종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여성, 이디스 워튼이나 싱클레어 루이스 소설의 인물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젊은 여성이나 미국의 미디어에서 보기 힘든 아시안과 재미 한인에게 그들을 대표한다고 느낄 수 있는 인물을 쓰고 싶었죠.”

민진 리는 친구가 별로 없었지만 도서관이나 책만 있으면 괜찮았다. 그녀는 싱클레어 루이스 작가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고, 그가 예일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고 본인도 예일대학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교양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전혀 예상 못한 픽션과 논픽션 상을 모조리 탔다.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했고, 뉴욕 로펌에서 기업 변호사가 되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당신도 변호사잖아요? 그런데 글을 쓰고 있네요. 그런 사람들 꽤 많아요”라고 말하며 몇 사람의 이름을 대고 웃는다. 민진 리의 집필 준비 과정은 대단하다. 때로는 기자처럼, 고고학자처럼 취재하고 탐사하고 수집하고 연구한다.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인터뷰를 통해 주제와 인물을 심도 있게 파고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다닌 인물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하버드 MBA에 지원했고, 수업을 청강하면서 학생들을 관찰했고, 뉴욕의 유명한 디자인 스쿨인 FIT에서 한 학기 동안 모자 만드는 수업을 수강하기도 했다.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세부적인 포인트를 잡아내는 변호사로 일한 경험 때문인가 싶었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수백 명을 인터뷰하면서 ‘저런 사람이구나’로 시작했다가 ‘내 생각이 틀렸구나’ 깨닫게 될 때가 많아요. 사람들은 정말 복잡해요. 아름답고 돈 많고 똑똑하고 인기 많고 성공한 사람도 알고 보면 평생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지레짐작을 안 하게 되죠.” 그녀는 강연 중에 이렇게 말한다. “Reality corrects my preconceptions, and my eyes and my ears experience what my characters may ultimately feel(현실은 내 선입견을 고쳐주고 내 눈과 귀는 내 주인공들이 느낄 감정을 직접 경험한다).” 수많은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많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민진 리의 작품에는 악인 카테고리에 쉽게 분류되는 인물이 없다. <파친코>에서 야쿠자로 일본에서 권력을 갖고 사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조선인 고한수도 일차원적인 악인으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선자와 그의 아들 노아에게는 자신의 방식으로 헌신한다. 그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결국 비극을 불러일으키더라도 그 인물의 내적 동기는 악한 곳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독자는 이해하게 되고 연민을 가진다. 많은 사람을 깊이 관찰한 그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민진 리는 로펌 변호사로 2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사표를 썼다. 몇 년 동안 힘든 공부를 하고, 비싼 학비와 시간을 투자한 일을 그만둔 계기가 무엇일까. “20년 동안 지속된 간 질환이 있었어요. 혈액을 기증하다가 발견했는데 의사들이 20대 혹은 30대에 간암에 걸려서 죽을 거라고 했어요. 요절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변호사를 쉽게 그만둘 수 있었던 거죠. 일의 강도가 너무 높았고, 나를 정말 해칠 수 있었죠. 죽음을 바라보면 하루하루를 사는 게 다른 의미로 다가와요.” 그렇게 그녀는 스물다섯 살에 높은 연봉과 타이틀을 반납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첫 소설은 2007년, 11년의 긴 집필 생활 끝에 결국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첫 책이 나오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은 데뷔작 출판 10주년 에세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없이 거절당한 치욕스럽고 절망적인 경험을 날것 그대로 담담하게 서술한 에세이에는 죄책감, 수치심, 문학을 향한 열망, 끈기, 절망과 희망이 드러난다. 원고를 크고 작은 문예지에 보냈지만 퇴짜만 맞다가 단 한 번 선정되어 미미한 상금으로 또 다른 글쓰기 워크숍에 참석했다. 아이가 한 살이 되었을 때, 임신과 출산, 수유를 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또 글쓰기 컨퍼런스에 참석했고, 문예 창작 석사 학위를 취득할 형편이 못되어 여러 문학 단체에서 주최하는 작가 수업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 수강료를 내기 힘들어지자 유명 작가들 리딩에 공짜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렇듯, 펜을 놓지 않는 집요한 끈기와 글쓰기를 향한 대단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 에세이의 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I counted 11 years as my apprenticeship(나는 11년 동안 글 쓰는 견습생이었다).” “성공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했어요. 재능이 없다고 확신했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했죠. 데뷔작이 나왔을 때도 조용히 비주류 작가로 살아가자고 노선을 정했어요.” 11년 동안 글을 쓴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꺼려졌다. 한번은 남편의 직장 칵테일 파티에서 대화 중에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소설은 안 본다거나, 이미 소설로 나올 만한 소재는 다 나왔는데 왜 쓰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좋은 대학, 좋은 로스쿨을 나와서 물려받을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연봉을 포기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 출판한 건 없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을 오래 하다 보니 성공에 대해서 얼굴이 두꺼워졌어요. ‘성공하지 못해도 살 자격은 충분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죠.” 그녀는 에이전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글쓰기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초대한 행사에 동행했다가 뉴욕 문학계에서 꽤나 유명한 에이전트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다. 하지만 그 에이전트와 거의 얘기를 안 했고 오히려 무관심하게 대했다. “출판된 작품도 없고,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상처받기 싫은 일종의 방어기제였어요.” 그런데 그 에이전트는 온라인 문예지에 실린 그녀의 단편을 인터넷에서 읽은 후, 다음 날 런치 미팅을 제의했고 동행한 다른 에이전트와 바로 일을 함께 하게 되면서 원고가 팔린다. 그렇게 민진 리의 작품은 2007년에 세상에 나오면서 호평을 받는다. 그리고 그해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비평가들은 물론 전 세계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 소설 <파친코>를 완성한다.

민진 리는 브라운스톤에 위치한 자택에서 주로 집필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뉴욕 라이브러리를 축소한 듯한 책꽂이가 펼쳐진다.  퍼플 컬러 벨벳 수트는 피터 도(Peter Do).

<파친코>는 한일 간의 복잡한 역사와 그 관계 안에서 4대에 걸친 한 가족사일 뿐 아니라 이민자로서의 고통, 혐오와 차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과 삶의 복원력을 보여주는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대서사시이다. 집단 따돌림으로 재일 교포 학생이 투신자살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것을 계기로 재일 교포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서 거의 26년 동안 집필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학술적인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초고를 완성했지만 수많은 재일 교포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는 그녀는 재일 교포의 고통보다 더 큰 그들의 강인함에 초점을 맞추고 소설의 배경을 영도까지 확장시킨다. ‘Thesis Statement’라고 불리는 소설 첫 줄은 책만큼 유명하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작품의 테마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문구이다. 삶은 본질적으로 공평하지 않지만 ‘상관없다’는 굳건한 의지로 살아내는 것 역시 억압과 차별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 살아냄을 실천한다. 소설의 테마에 대해 그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어떤 면에서 <파친코>야말로 자전적이에요. 물론 인종차별, 식민주의, 제국주의, 외국인 혐오에 대한 것이지만 부모가 되는 의미에 대한 것이기도 해요. 집필하는 동안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죠. 인터뷰를 진행할 때 부모님 얘기를 참 많이 하고 모든 캐릭터에 부모 됨의 철학을 가미해요. 인물의 행동과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Living in the presence of those who refuse to acknowledge your humanity takes great courage(자신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파친코>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미국에서 마침 조지 플로이드 살인 사건으로 인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이었고, 노예제도 잔재와 인종차별 시스템에 대한 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 뒤로 아시안 혐오 범죄가 매일같이 보도될 때도 이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의 존엄성과 이를 지키기 위한 용기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혐오에 맞서야 할 때가 있어요. 국가나 역사의 시스템에 의한 것이든, 일반 시민에게서 오든 분명히 혐오는 존재하고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죠. 진정한 용기는 그 혐오에 대해 또 다른 혐오나 폭력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 복수심에 불타오르지 않게 감정을 관리하는 것, 시니컬해지지 않는 것이죠.” 사회 이슈에 대한 민진 리의 발언은 미디어 매체에서 인용되기도 한다. “내가 소셜 미디어를 할 때는 학생들 한두 명이 보겠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플랫폼이 커지면서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는 경우가 생기고, 그들에게 색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죠. 예를 들면, 애틀랜타 총격 사건에서 한국인 네 명의 살해 사실과 그 부당함에 대해 한국인이 목청껏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0.0001%의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으면 만족해요.”

민진 리는 유독 강연을 많이 한다. 그녀의 강연이 한글로 번역된 영상은 100만 회가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감칠맛 나는 강연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학생들과의 즉흥적인 질의응답 시간에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인다. 애머스트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로서 어떤 존재일까 궁금했다. “선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의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글쓰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작가로서 가장 중요하죠.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에 대한 비전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공간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큰 믿음이 필요해요. 자신만이 가지는 고유한 의문을 깊이 사랑하고 몰두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어요.”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강조한다. “열네 살 때 나를 보았다면, 나중에 책을 쓰고 무언가를 할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을 거예요. 너무 평범해서(웃음). 하지만 그때도 마음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소망과 꿈이 많았죠.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나와 같을 거라 생각해요. 내 삶은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이 좋아요(웃음). 평범하면서 반듯하고 선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죠. 작품에서 꾸준히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요.” 그녀의 강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기자가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요?”라고 물어봤고 그녀는 “한국인들은 춤추기를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단순히 음주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 어린 답이 아니었다. 강연 끄트머리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인 내가 왜 춤에 대해 얘기할까요? K-팝의 현란한 군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춤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어깨를 돌리는 할머니를 뜻하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추는 그런 춤을 말하는 거예요. 화려한 수사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만 관심을 받는 것을 늘 우려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본질을 보는 그녀의 시각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계를 확장시킨다.

<파친코>는 애플 TV+에서 윤여정, 이민호를 비롯한 여러 아시안 배우들을 캐스팅해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그녀의 데뷔 소설 역시 넷플릭스에서 파일럿 각본을 샀고, 순조롭게 제작된다면 할리우드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 아메리칸 TV 드라마에 본인이 직접 각본을 쓰고 쇼러너를 맡게 된다.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 같은 19세기 작가들의 작품은 에피소드별로 출판되었어요. 내 작품 역시 드라마에 필요한 줄기, 챕터마다 갈등이 고조되고 해소되는 부분이 있어요. 물론 각본 포맷은 엄청 공부했죠. 52세에 드라마 시리즈 각본을 쓰기 시작하고, 쇼러너라는 커리어 역시 시작할 수 있어요. 세상에 늦어서 못하는 건 없죠.” 새로운 일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없을까.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미친 듯이 일을 해요. 책을 추천받으면 10권을 더 찾아 읽고, 이 사람이 도움 될 거라 조언을 해주면, 20명을 더 찾아서 얘기를 나눠요. 그 과정을 통해 용감해지고 자신감이 생기죠. 이민자인 영향도 있어요. 누군가의 보살핌이나 배려를 받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몇 배로 준비하고 만일의 경우도 대비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죠. 그렇게 하고 나면 일이 잘 안 풀려도 내 능력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실망을 안 하죠.”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과 <파친코>는 민진 리가 ‘Korean Trilogy’라고 부르는 3부작 시리즈에 속해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 소설이 될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집필하기 위해 미국뿐 아니라 한국, 싱가포르, 호주, 홍콩, 영국 등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내가 해온 모든 일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업이에요. 숨을 쉴 수 있는 한, 집필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정말 어려운 주제예요. 무척 고민되고 두렵기도 하면서 너무 매혹적인, 그래서 내가 꼭 써야 하는 책이죠.” 한국에 대한 여러 이미지 중 교육열은 톱 3에 들 것이다. 교육제도의 문제점, 지나친 경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얘기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잔인한 사슬은 끊기지 않는다. 교육열은 한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불법행위를 감행하면서까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한 사건이 화제가 되었고, 교육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고조되었다. “책의 테마 중 하나는 자식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현상이에요. 수많은 부모님을 만나서 인터뷰했는데, 어른의 방식이 얼마나 아이들을 배제시키는지 알게 되었죠. 아이들은 부모가 친절하고 옆에 있기만 해도 행복해해요. 사랑의 이름으로 하는 부모의 행동이 아이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무엇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지, 부모가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지. 이런 의문을 풀어보려 합니다.”

평생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라고 말하는 그녀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성공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이 문화적으로 가진 ‘소프트 파워’에 집중한 전략도 영향이 있었죠. 한국에서는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과 동반되는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의지가 참 강한 것 같아요. 한국인들의 끈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슴이 아플 때가 있어요. 별을 향해 쏘면 어려움도 많고 실망도 크기 마련이니까.”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어간다. “내 별명은 거북이에요. 나는 늘 느렸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나처럼 평범하고 느리지 않을까요? 그래도 괜찮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몇몇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죠. 하지만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바로 당신의 삶, 당신의 스토리입니다. 당신이 사는 삶이 똑같이 중요하고, 그 스토리를 존중한다는 거죠.”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대해서 의심이 많다는 그녀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 내리는 정의는 무엇일까? “독자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공유할 기회가 있어서 감사해요. 작가로서 생활을 영위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회가 없었던 시절이 생생해서 지금도 미친 듯이 일하는 것 같아요(웃음).”

수많은 작품 활동, 외부에서 의뢰받는 일, 각본 집필과 드라마 시리즈 제작,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같은 저명한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한없이 바쁜 그녀를 안정시키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내 포커스는 보통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고 그들과 있을 때 살아 있다는 걸 느껴요. 그들이 겪는 부조리를 생각하면 정신이 바짝 들죠. 내가 간혹 느끼는 우울감은 즐거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는 데서 비롯돼요. 이런 아름다운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어떤 여성은 폭력에 시달리고, 어느 아이는 배고프고, 어떤 사람은 종교로 인한 탄압을 견디고 있잖아요. 아름다움과 아픔은 늘 동시에 존재합니다. 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민진 리가 인터뷰를 통틀어 가장 많이 한 말은 “It’s okay!”였다. 실패와 성공, 새로운 도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의문에 대해서도 이 말로 화답했다. 오랜 세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그녀가 내면의 성찰을 통해 우려낸 복합적인 긍정성이었다. 그녀가 평범함을 사랑하고,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어떤 것보다도 휴머니즘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내가 만난 민진 리 작가의 평범함은 삶의 심연과 정점, 수평의 양극을 경험한 후의 일상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 평범함은 어떤 특별함보다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한 경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건강한 거리감과 50대가 되어 가질 수 있었다고 농담하는 그 아줌마 파워를 모든 젊은이가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데뷔작 ‘에피그라프’는 제임스 볼드윈의 인용문이다. “Our crowns have been bought and paid for-all we have to do is wear them(우리는 비용을 이미 다 지불한 왕관을 소유하고 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삶에서 얻고 싶은 모든 건 이미 우리 내면에 있으니 단지 용기를 내서 그걸 발견하고 당당하게 살아내면 된다. 특별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소수 인종이든 가난하든, 우리 모두 가치가 있고 존중받을 존재라고 말하는 그녀의 작품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웃사이더 키즈의 생애, 메리 H.K. 초이

식물 모티브 패턴과 배색 컬러가 조화로운 스웨터, 팬츠, 블레이저는 PH5.

영화 <미나리>를 보고 팔로우하게 된 스티븐 연의 인스타그램에서 친구의 소설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가의 성이 ‘Choi’라 관심이 생겼고, 그렇게 메리 H.K. 초이(Mary H.K. Choi) 작가를 발견했다. 그녀의 작품은 10대에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생각나게 했다. 웃기면서 애틋하고 가슴이 아픈데 이상하게 희망적인, 복잡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독창적인 필체가 놀라웠다. <뉴욕 타임스>, <GQ> 등 저명한 여러 매체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와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좀 오는 듯했다.

메리 H.K. 초이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이 되기 전에 부모님의 사업을 위해 홍콩으로 이주했고, 14세에 홍콩이 중국령으로 넘어갈 때 미국 텍사스에 정착했다. 4,000명의 학생 중 졸업률 30%, 청소년 임신이 흔하던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고, 상황에 따라 얼굴을 수시로 바꾸는 ‘코드 스위칭’을 빨리 익혔다. 낯선 곳은 가족 모두에게 힘겨운 공간이었지만, 특히 텍사스에서 한국적인 면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려 한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됐다. “부모님은 1980년대에 한국을 떠났으니까 그 시대에 멈춰 있는 부분도 있어요. 한국인들은 정말 ‘하드코어’잖아요. 부모는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자식들은 복종하거나 심하게 반항하거나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나는 무조건 반항의 길을 걸었어요.” 갈등이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았지만 집안의 심한 반대에 저항하다가 텍사스주립대학 단 한 곳에 지원했다. 외부로 드러나는 스타일로 정체성을 조작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그녀는 패션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가방 달랑 두 개를 들고 아무도 모르게 뉴욕에 도망치듯 오게 된다. 모두가 바쁘고 서로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자유로운 도시가 좋았지만, 뉴욕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룸메이트와 겨우 월세를 내면서 일을 시작했지만, 보디 이미지에 집착하게 하고 자신의 몸을 혐오하게 만든 패션계가 곧 불편해졌다. 다른 일을 찾다가 <Mass Appeal>이라는 힙합 그라피티 매거진에서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매거진을 정말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아시안 에디터들의 글이 실린 매거진이 있었어요. 늘 백인 입장의 책만 읽다가 아시안 여성의 마인드로 들어갈 수 있는 그 매체가 너무 좋았고,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발을 들인 프린트 매거진 업계는 어땠을까. “뼈를 깎는 생존법을 배웠어요. 급여 지급 명부 관리, 팩트 조사, 매거진 배달, 물품 선적, 사무실 쓰레기 버리기까지. 한마디로 매거진의 맨 위부터 밑바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직함에 맞는 일만 하는 것과는 너무 달랐죠. 못 볼 꼴도 봤고, 폭력적인 문화도 경험했어요. 그땐 생존하기 바빠서 나중에야 깨달았죠.”

매거진에서 기회를 갖게 된 그녀는 젊은 여성을 위한 매거진을 창간해 편집장을 맡는 등 경력을 쌓았다. 유명 매체에 글이 실리고 HBO Vice 뉴스 컬처 특파원이라는 또 다른 미디어로 영역이 확대되면서 누구나 부러워할 커리어를 쌓아간다. 그 와중에 픽션 작가에 대한 꿈틀대던 꿈은 어떻게 실행되었을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조금도 없었어요. 내게 글 쓰는 것은 이별 통보를 할 때의 감정, 뭔가 쏟을 것 같은 불편함,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고백할 때와 같은 기분이에요. 부끄럽고 두렵고 불안해요.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커서 공룡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뜬금없는 꿈이었죠.” 그 두려움 때문인지, 직장에 다니면서 쓴 소설은 1년이 넘도록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겨우 용기를 내서 원고를 공개한 첫 에이전트는 심지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른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고, 하루 만에 코멘트가 빼곡히 달린 원고가 돌아왔다. “벅찬 기분이었어요. 오랫동안 혼자 스토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내가 만든 캐릭터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감격스럽더라고요.” 결국 첫 원고는 높은 경쟁이 붙은 옥션에서 당시 직장 연봉의 세 배가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린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의 조합으로 일궈낸 신랄한 묘사가 가득한 데뷔 소설 <Emergency Contact>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냥… 울었어요. 뉴욕에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노숙자가 되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 사는 거예요. 처음으로 내 생활에 안전함을 느꼈고, 긴장이 풀린 것처럼 와락 피곤이 몰려오더라고요. 동시에 ‘나한테서 더 이상 나올 게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것이 비밀이 아니어도 되어서 후련했다는 그녀는 그렇게 전업 작가가 된다. 예술과 생활은 분명히 다르다. 이 둘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인 현실에서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메리 H.K. 초이의 모든 작품에는 한국 캐릭터가 등장한다. 정체성의 여러 면을 늘 파헤친다고 말하는 그녀는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대화에서 감정이 고조되었다. K-팝, K-드라마의 성공으로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매우 높아진 지금, BTS와 블랙핑크, <기생충>, K-뷰티에 대해 칭찬하면서 덧붙인다. “가끔 사람들은 ‘한국인이 너무 잘되고 있는데 왜 아직도 불평해’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 성공은 디아스포라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와는 달라요. 코리안 아메리칸은 한국 문화의 성공에 대한 대화에서도 제외가 돼요. 그래서 <미나리> 같은 영화가 정말 중요해요. 스티븐 연이 미국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한국계 배우로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아니까.” 이민자의 삶의 무게를 경험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감 능력을 드러낸 그녀는 애틀랜타에서 한인 여성 네 명이 사망한 총기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서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메리칸드림과 다른 삶을 산, 마사지 숍에서 일하다가 죽임을 당한 그 여성들을 한국이 동포로서 감싸 안아줄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너무 힘들었어요. 내 삶도 그 여성들의 삶과 비슷하다고 느끼니까.” 인종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분명한 생각도 공유했다. “미국은 제노사이드의 역사가 너무 깊이 박혀 있고, 여전히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죠. 아시안도 많은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지만 다른 그룹에 비해 충분히 아프지 않았다는 이상한 위치를 차지하게 돼요. 여전히 백인이 아닌 소수 인종 취급을 받으면서 ‘Black and Brown’ 사람들에게는 백인과 같은 그룹으로 묶이고, 아시안은 그 애매한 위치를 이용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죠. 또 빈곤층인 아시안 역시 통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그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좋은 학교 가고 전문직인 아시안만 보이는 것도 문제죠.” 겹겹이 쌓인 인종 갈등,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혼돈은 분명히 개인에게 매우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 복잡한 소용돌이를 늘 안고 살기 때문에 주변을 관찰하는 시야는 날카로워지고 다른 필터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메리 H.K. 초이의 작품은 그래서 특별하다. 어떤 이유로든 소외된 아웃사이더의 경험을 거울 보듯 보여주고 차마 말하지 못한 느낌을 대신 표현해줄 뿐 아니라, 그런 감정을 허용하고 인정한다.

그녀의 두 번째 소설 <Permanent Record>는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이다. 감독으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감독인 존 추(Jonathan Murray Chu)가 거론되고 있는데, 직접 각본을 쓰고 있다는 그녀는 꼭 하고 싶은 일로 영화감독을 꼽는다. “영화 촬영장에는 촬영, 의상, 음악, 미술 등 몇백 명의 스태프가 있잖아요. 책은 늘 혼자 쓰는데, 여러 사람이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을 가지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좋은 리더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작 <Yolk>에는 뉴욕에 사는 자매가 등장한다. 주인공의 언니가 직장에서 해고당하면서 암 선고를 받게 되고 건강보험이 필요해서 동생과 아이디를 바꾸는 독특한 스토리의 틀 안에서 이민자 가정에서의 혼란, 섭식 장애, 자기혐오와 화해, 가족애를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동생의 입장에서 서술된 스토리는 나와 언니의 관계를 생각나게 했고, 혼자 뉴욕에서 17세부터 살았던 언니의 좌충우돌 삶과 주인공이 오버랩되면서 소설 속 마이너 인물이 돼 그들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의 집필 과정에 대해 그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창 코로나19로 미국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지난해, 그녀의 어머니는 암 선고를 받고, 아버지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책을 쓰고 출판하고 홍보 활동을 하는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없었어요. 책이 마치 사산아 같은 느낌이었죠. 심청이는 아빠를 위해 몸까지 던지는데 난 책을 쓰겠다고 부모님을 버린 느낌이었어요.”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 집을 떠났는데, 작품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소설 속에 암을 등장시켜서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부모님과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여러 에세이를 집필하기도 한 그녀의 이런 죄책감은 한국인의 정서에서 오는 것일까? 나 역시 미국에 오고 난 후,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가치가 있으려면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지 않나.

메리 H.K. 초이의 작업실에는 그녀의 노력과 땀, 숨결이 들어간 매거진과 소설이 가득하다. 소품과 가구 역시 그녀처럼 색깔이 분명하다.

자신의 작품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비판 아닌 비평을 들은 그녀는 피식 웃는다. “맞는 말이에요. 크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길거리를 걸을 때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유모차를 미는 무표정한 중년 남자가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농구 선수처럼 뛰어올라 전등을 치는 장면, 그리고 바로 뒤 20대 젊은 학생이 반바지와 농구화를 신고도 같은 전등 밑을 점잖게 지나가는 아이러니가 보인다. “사람들은 정말 재밌어요. 주변에서 그렇게 소소하게 웃긴 일이 늘 일어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얘기를 하는 게 좋아요.” 그런 관찰력 덕분에 작품 속 인물들은 남에게 보이지 않아도 개인에게는 크게 와닿는 넓은 스펙트럼의 경험을 한다. 그리고 독자는 덩달아 움직이고 웃고 울 수 있다.

메리 H.K. 초이는 부모님, 한국, 자신과의 관계에서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설켜 결국엔 사랑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그 과정을 겪고, 독자는 그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위로를 받는다. “글을 쓰는 건 내 삶을 워크숍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한 선택을 이해하려 하고, 더 자세히 살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용서하게 되죠.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서로를 아프게 하잖아요. 그 사이에서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해요.” 나와 너무 달라서 원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같은 위도에 위치해서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수 있는 깊은 공감대를 느낀 대화였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오후, 거리를 걷다가 길마다 붙어 있는 전등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의문은 바로 메리 H.K. 초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의 진실, 프란시스 차

스웨트셔츠 톱과 이어커프는 아딤(Adeam).

코로나19로 록다운 상태가 된 뉴욕의 2020년 5월, 데뷔 소설을 출간한 한국계 작가 프란시스 차(Frances Cha)가 온라인 이벤트를 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하필 지금 첫 작품이 나와서 힘들겠다.’ 첫아이 출산 후 산후조리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그렇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전자책을 구입했고, 모유 수유 사이 틈틈이 읽을 계획을 했다가 이틀 동안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 후 그녀의 데뷔 소설 <If I Had Your Face>는 <타임>지 선정, 2020년 꼭 읽어야 하는 100권의 책 리스트에 올랐고, <뉴욕 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 수많은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다. 화상으로 대화하고 며칠 뒤 마스크를 쓰고 브루클린에서 만난 프란시스 차는 차분한 어투에 분명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음반 활동을 할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녀는 외국 생활 후 한국 적응의 어려움, 유학 생활, 정체성 정립 과정 등 여러 면에서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창조한 세계는 내게 익숙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논현, 신사, 미아리부터 뉴욕의 이스트빌리지와 보스턴 같은 장소, 한국과 미국 문화의 뉘앙스까지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였다.

프란시스 차의 작품은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여성들의 굴곡 있는 삶과 우정의 이야기다. 성형수술, 룸살롱, K-팝 팬덤, 유학생들의 다양한 세계, 일진,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개인의 내적 갈등과 한국 사회의 시선 등 미국 문학에서는 물론 한국 문학에서도 흔치 않은 소재가 내러티브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서울에 살 때 친구들을 만나러 강남역과 신사역 사이를 걷다 보면 늘 눈에 들어오던 오피스텔 건물, 술집 골목 그리고 미용실에서 종종 훔쳐보던 직업여성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는 동안 전혀 몰랐던 그 세계에 들어가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관심은 물론 연민과 애정을 받지 못한 그 여성들은 프란시스 차의 소설 속에서 어엿한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는다.

프란시스 차는 할아버지 세대부터 문학을 전공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유학 시절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나, 텍사스와 홍콩을 거쳐 열한 살에 처음으로 한국에 정착했다. 여덟 살 때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녀는 책 읽기가 직업이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 생각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 학부에서 문예 창작 전공, 대학원에서 Creative Writing MFA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CNN 한국 지부에서 문화와 여행을 담당하는 기자로 일했다. 한국 관련 기사의 높은 클릭 수를 보고 현대 한국 사회에 관심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 세계 독자에게 한국 문화와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은 그녀가 나중에 소설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서 호평 일색이지만,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소재와 극단적 캐릭터에 대한 우려는 없었을까? “걱정은 했죠. 하지만 그 걱정은 주류 문학에 포함되지 않는 소수의 이야기를 쓰는 모든 작가가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뉴스에서 한국의 성형수술, 자살률에 대한 기사는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오히려 소설을 통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고, 결과적으로 연민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다고 여겼어요. 극단적 캐릭터가 흥미롭잖아요. 소설 속 인물들이 한국 여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H.O.T.의 ‘전사의 후예’가 음악 프로그램 1위를 했고 학교 폭력과 일진은 사회 이슈로 주목을 받았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교 폭력은 자주 거론되고 유명 인사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하는 핫한 이슈다. 내가 잠실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신천역 주변을 몰려다니는 일진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녀의 소설에도 중학교 때 직접 관찰한 학교 폭력과 일진의 세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일진 싸움에 휘말리면서 그때의 부상으로 벙어리가 된 인물에 대한 장면에는 생생한 디테일이 녹아 있다. “일산은 그 당시 미개발 지역이어서 학교 주변에 코스모스밭밖에 없었어요. 탈선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많았죠.” 학교에 많던 일진의 활동을 지켜본 그때의 기억으로 섬뜩한 디테일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그녀에게 잠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말하자 웃으면서 말한다. “잠실은 일산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을걸요?”

주요 인물 한 명은 몇 차례 성형수술을 하고 미아리를 거쳐 강남에서 제일가는 룸살롱에 취업한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내게도 생소한 이 소재가 어떻게 떠올랐을까. “석사 과정 중 워크숍에서 쓴 글이 바탕이 되었어요. 양악수술에 의한 사망 기사가 꽤 많이 나오는 시기가 있었는데,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절실함과 삶의 경험이 궁금했고, 내면의 이야기를 파헤치고 싶었어요.” 직업여성의 일기장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그 세계를 취재한 기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리서치했다. 덕분에 작품에는 그곳에 존재하는 직업의식, 폭력, 빚, 착취, 그 여성들의 휴머니즘이 드러난다. 성형수술 역시 마찬가지로 몇 차례 상담을 받으며 자료를 조사했다. “상담 내용, 비용, 회복 과정, 그 과정을 겪은 사람들의 개인적 이야기 같은 디테일이 궁금했어요. 수술 후 자신감이 생겼고 많이 행복해졌다는 얘기가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외국과 달리, 한국은 의료 시스템의 접근성이 훨씬 좋아요. 그 접근성도 성형이 더 성행하는 데 영향을 끼치죠.”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섣부른 판단을 거부하는 작가의 철학은 독자가 작품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길잡이가 되어준다.

남편이 뉴욕에 발령을 받으면서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된 그녀는 다른 직장 없이 작가로서 집중할 계획이었지만, 몇 달 안 돼 임신을 했다. 엄마가 된 것이 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보니, 몇 초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아졌고, 그 이야기를 할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었어요. 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답답함, 가정에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부담, 아이에게 관심을 다 주지 못하는 죄책감이 혼합되어 있어요. 전보다 감정을 더 깊이 느끼는 부분은 고맙기도 해요. 작가로서 도움이 되니까.” 엄마가 되고 분명한 것은 세상이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은 깊어지고, 아이를 대신해서 느끼는 두려움은 커진다. 그리고 내가 떠난 다음을 준비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벌써부터 생긴다. 내 목소리로 채운 음반 네 장이 있는 게 새삼 고마운 이유도 언젠가는 내가 떠나고 없을 때 아이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프란시스 차도 같은 이유로 데뷔작의 오디오 북 오디션을 보고 한 인물을 연기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의 목소리를 녹음하지 못한 게 애석했기 때문에, 자신은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프란시스 차의 아버지는 그녀가 대학교 다닐 때 암 선고를 받았다. 결국 석사 과정 중에 휴학하고 아버지 간병을 위해 귀국했다. 그때 그녀의 삶은 매우 어두웠고,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K-팝 팬덤에 빠졌다. “한국은 교육과 공부에 대한 극도의 부담과 압박, 직장에서의 불만족을 해소할 방법이 필요해요. 팬덤이 강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해요. 현실 도피를 위한 출구가 필요한 거죠.” 그 경험 역시 소설에 흥미로운 요소로 등장한다.

프란시스 차는 이스트 리버가 훤히 보이는 자택 창가에서 글을 쓴다. 거실 한 면 전체를 차지하는 책꽂이에 진열된 데뷔 소설은 표지만큼 강렬하다.

그녀의 소설은 애플 TV+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 중이다. 재미 한인 여성으로 꾸린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스토리라인, 배경, 문화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언젠가 각본은 꼭 써보고 싶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도 준비 중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다양한 스토리와 매체에 관심이 있다.

미국은 여러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살인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인종 문제에 대한 깊은 자각은 여러 업계에서 다양성에 대한 욕구로 표출되는 긍정적 영향도 있었다. 그녀 역시 더 많은 아시안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화도 마찬가지다. “아시안 아이들이 모국의 전통과 역사, 이민자로서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아시안이 아닌 독자들이 아시안 주인공이 나오는 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어려움 때문에 가엽게 느껴지는 캐릭터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죠.” 한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삶에서 소속감에 대한 혼란이 있을까. “솔직히 소속감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게 익숙해요. 어릴 때부터 돌아다니면서 살았잖아요. 유학생 때도 비슷한 걸 느꼈고요. 아웃사이더로서 관찰하는 것이 편해요.”

소설의 첫머리를 쓴 지 10년 만에 완성된 작품이 코로나 위기 중에 세상에 나왔다. 출판 기념회, 독자와의 만남, 북 투어 대신 온라인으로 홍보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에 대해 물었다. “원래 운명론자인데, 지난해를 겪고 그 마음이 더 확고해졌어요. 당연히 10년 동안 쓴 첫 작품이 팬데믹 한가운데서 출판될 수밖에 없었겠죠(웃음).” 그녀는 대화 중에 운명론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운명론에 대한 비판 중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니힐리즘’이다. 숙명은 정해져 있고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으니 개인의 노력이 무의미해진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운명론자라고 말은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과 세상에 내놓을 이야기를 본인의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노력은 하되 결과는 운명에 맡기는 방식이 그녀에게 또 다른 자유로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덟 살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어린 소녀의 판단은 적중했다. 소속감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다양한 사회를 오가며 날카로운 조망을 가능하게 했고, 그녀가 겪은 상실 역시 각 인물이 가진 존엄성을 입체적으로 완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운명론이 맞아떨어진 부분은 프란시스 차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가 느끼는 진실을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 써 내려갈 프란시스 차의 또 다른 진실을 기대한다.

사랑스러운 혁명, 제니 한

리본 장식 화이트 드레스와 핑크 컬러 귀고리는 클라우디아 리(Claudia Li).

2018년 여름, 넷플릭스에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이하 <내사모남>)라는 영화가 랭킹 1위인 것을 봤다. 여주인공이 아시안 얼굴이어서 특히 기억에 남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넷플릭스 플랫폼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오리지널 영화 중 하나였고, 그 세계를 창조한 원작자는 청소년을 위한 ‘Young Adult’ 카테고리에서 왕성한 팬덤을 거느린 제니 한(Jenny Han)이라는 재미 한인 작가였다. 영화를 시청하고 나자 왜 인기가 이토록 많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설정, 따뜻한 캐릭터, 어린 시절의 설렘을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와 진심 어린 연기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 한국 독자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너무 드문, 동양인 캐릭터가 주인공인 책과 영화를 만든 그녀는 서글서글한 표정과 시원한 말투, 화통한 웃음 뒤에 단단한 자신감과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제니 한은 1970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의 첫째로, 동양인이 극히 드문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한인 교회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커뮤니티에서 성장했다. 세탁소를 운영하던 부모님 대신 여동생을 보살피던, 이민자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맏이의 모습이었다. <내사모남>에서 주인공인 라라 진의 언니는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에게 엄마 역할을 하고, 요리를 하고 장을 보는 것은 물론, 인턴십과 수업에 관한 조언도 한다. 그런 관계가 참 한국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그녀의 어린 시절이 바탕이 되었다. 부모님을 위해 통역은 물론 대변인 역할까지 하다 보니, 자립할 수 있는 토양이 저절로 형성되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갈등이 있었는데, 부모님께 얘기 안 했어요. 내가 알아서 교장 선생님과 얘기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그때부터 알고 있었죠. 삶에서 맞닥뜨릴 일에 대한 좋은 준비가 되었죠.” 어릴 때부터 스토리를 쓰는 게 취미였던 그녀는 학교에서 글쓰기 상을 꽤 많이 탔고 “언젠가는 네 이름이 적힌 책을 분명히 보게 될 거야”라는 메시지가 졸업 앨범에 적힐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본인은 아티스트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어요. 특히 아시안 여성 작가는 상상도 못했고요.” 하지만 대학교 때 ‘아동을 위한 글쓰기’라는 수업을 듣고 졸업 후 노선을 문예 창작 석사 아니면 에디터로 정하고 책과 관련된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뉴욕에서 MFA를 하게 되었는데, ‘네 재능이면 분명히 성공한다’고 엄마가 말해준 게 기억나요. 직업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길이었고 학비와 대출금도 많았지만 부모님은 늘 나를 믿어줬죠.”

제니 한은 뉴욕에서 문예 창작 석사 과정 중에 첫 책을 출간했고 순탄한 작가의 길을 걷는다. 수업을 위해 제출한 과제를 읽은 담당 교수가 에이전트에게 소개했고, 그 에이전트와 일하기 시작한 그해에 여러 출판사가 경쟁한 끝에 첫 작품의 판권을 사갔다. 24세로서 믿기 힘든 행운이었다. 원고를 거절당하는 과정 없이 글을 쓸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지만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출판업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힘들었죠. 첫 작품 바로 뒤에 쓴 스토리는 한국계 소녀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원고를 파는 건 쉽지 않았어요. 책이 출판되긴 했지만 아주 잘되지는 않았죠. 당시 출판업계에서 독자들은 아시안들이 나오는 책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독자층이 없다고 하니 출판도 안 되고, 출판이 안 되니까 독자는 당연히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죠.”

미국의 미디어에서 나와 유사한 모습이나 경험이 반영되는 콘텐츠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변화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다양성은 부족한데, 제니 한은 인종의 다양성과 더불어 또 다른 다양성을 추구한다. “소수 인종의 스토리 안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은 너무 중요해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항상 정체성으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것이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죠. 백인과 대치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Young Adult’를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유가 궁금했다. “어린 친구들의 첫사랑, 첫 싸움, 첫 이별, 첫 책 등 여러 ‘첫’ 경험은 마음에 특별하게 남아요. 네 번째 남자 친구보다는 첫 남자 친구의 기억이 선명하잖아요(웃음). 첫 순간은 삶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스토리에 끌려요. 종종 어린 친구들이 내 책을 읽고 독서를 사랑하게 됐다, 캐릭터들이 너무 나와 같아서 위로를 받았다는 연락이 와요. 너무 기분 좋은 일이죠.”

제니 한이 글을 쓰는 과정은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일맥상통한다. 그녀는 아우트라인을 정하지 않고, 매일 글을 쓰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다에 나가서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처럼 영감이 오기를 기다려요. 물론 서핑은 못하지만(웃음). 완벽한 파도는 극히 드물지만 한번 만나면 그걸 타고 해변가로 돌아올 때까지 멈추지 않잖아요.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도 그래요. 영감이 올 때 무조건 붙잡아서 끝까지 쓰고, 그다음 하루 이틀은 쉬죠.”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문을 닫고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외부에서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늘 생각하고 걱정하면 새로운 스토리를 시도하고 세상에 내놓는 것이 힘들어져요. 문학 비평가들이 쓴 리뷰는 보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리뷰는 안 보죠. 좋은 평에 의존하면 나쁜 평에 똑같은 중요성을 부여해야 하잖아요. 평은 평으로 생각하고, 내가 믿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진실하게 글을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결국 내 작품의 핵심적인 독자 그룹이 좋아하면 그만이에요.”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내사모남> 시리즈’는 주인공인 고등학생 라라 진이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들에게 쓴 편지가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발송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한국 드라마에서 익숙한 계약 연애 설정이 등장하는 소설은 자매애와 가족애,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테마가 담긴 성장 스토리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고, 나중에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3권이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영화 촬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경험을 들려줄 때 제니 한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국은 너무 친절했어요.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이 함께 한국을 방문한 것이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죠. 부모님은 이민 가기로 힘든 결정을 했는데 고생한 세월이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내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잖아요. 영화에도 출연하시고(웃음).” (2편에 주인공 라라 진의 할머니, 할아버지로 제니 한의 부모님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미국 청소년 문학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All American Girl’의 모습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그녀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아시안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분투했고, 라라 진을 연기한 배우 라나 콘도르(Lana Condor)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앞으로 배우 커리어에 이 시리즈가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라나에게 늘 얘기해요. 젊은 배우가 상업적인 파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문이 더 열리죠.” 제니 한은 청소년 장르가 가진 힘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트와일라잇>의 벨라, <헝거 게임>의 캣니스, <해리 포터>의 헤르미온느처럼 젊은 독자를 위한 스토리에는 히로인이 자주 등장해요. 남자 인물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녀들이 스토리를 이끌고 가죠.” 의리 있는 독자들이 책을 읽고 영화 티켓 파워에 힘을 실어준 덕분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안 아메리칸이 하이틴 로맨스 주인공이 된 게 처음이었는데, 이 작품이 잘됐기 때문에 다른 아시안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죠.” 소수 인종 크리에이터로서 겪는 도전은 분명히 있다. “한 이야기가 모든 사람을 대표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이 되기도 해요. 스토리는 특정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를 대표할 순 없어요. 백인이 나오는 작품이 모든 백인을 대표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잖아요. 소수 인종의 이야기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다양한 이야기로 문을 더 넓게 열어젖히면서 가야죠.” <내사모남>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는 지난 5월에 MTV 무비 어워드에서 ‘베스트 무비 상’을 받았다.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라 진에게 큰 사랑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사랑을 주변의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에도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시안 혐오 범죄가 매일같이 보도되는 와중에 시의적절한 소감이었다.

핑크색 의자, 타자기 등 사랑스러운 가구와 소품이 눈에 띄는 제니 한의 자택 한쪽은 칵테일 바로 꾸며져 있다. 글쓰기 모임(Writing Retreat) 장소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제니 한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그녀의 작품 <The Summer I Turned Pretty>를 원작으로 한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공동 쇼러너이다. 파일럿 각본 집필은 물론, 쇼러너로서 모든 스토리라인에 참여하고 크리에이티브 팀 외에도 예산, 촬영 장소, 고용 등 제작을 지휘하고 있다. 창의적인 면에서 어떤 일이 흥미로운지 계속 발견하고 있다는 그녀는 감독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 쓰는 게 그리울 때가 있어요. 예산 걱정도 안 하고, 어떤 장소도 가능하고 머릿속에서 캐스팅을 다 할 수 있고(웃음). 9 to 5 일반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9 to 5가 아니라 쉴 새 없이 계속 일해요.” 새로운 커리어 도전은 어떨까? “좋은 파트너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글 쓰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한 태도로 임하죠. 사실 소설도 새 작품을 쓸 때마다 ‘내가 책을 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워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 관대하고자 노력합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그녀는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낸다. “한국 드라마는 감정 표출이 굉장해요. 울음을 삼키는 게 아니라 울고 소리치고 멱살 잡고(웃음).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또 미국 드라마에서 이미 성관계까지 발전했을 시간에 한국 드라마는 로맨스를 무척 오래 끌어서 ‘달콤한 괴로움’ 같은 걸 느낄 수 있죠.” 서울에서 배우들과 야구장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응원 문화, 음식을 나눠 먹고 집단으로 즐기는 한국의 커뮤니티 문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한국과 미국의 긍정적인 면을 혼합해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었다.

제니 한은 유난히 다른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들은 커뮤니티를 찾기 위해 더더욱 노력하는 것 같아요. 가끔 집을 빌려 일종의 글쓰기 모임(Writing Retreat)을 계획해요.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고, 에너지를 느끼고 지지하는 거죠. 글 쓰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잖아요. 각자의 시각은 독보적이고, 경쟁 상대도 아니죠. 책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 일을 해냈을 때 서로 되게 기뻐해주는 것 같아요.” 데뷔한 지 거의 20년이 흘러 많은 작가가 조언을 구하는 ‘큰언니’ 역할을 맡게 되었다며 웃는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한 경험을 공유해 다른 작가가 조금 더 쉽게 일할 수 있으면 내 고생은 충분한 가치가 생기죠. 글도 마찬가지예요. 어려움을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켜서 많은 사람에게 이해받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 나 역시 작가로서 넓어지고, 글을 통해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니 한은 딱 그녀다운 삶을 살고, 그녀다운 작품을 쓰고 있다. 많은 청소년, 특히 아시안 아메리칸 청소년이 자신이 반영된 영웅을 발견하고 용기를 낼 수 있게 지지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으로서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가는 커리어 역시 자연스럽게 여러 벽을 허물고 있다. 즐겁고 희망적인 스토리에 내포된 조용한 혁명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녀의 다음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 (VK)

피처 에디터
조소현
이소은
사진
Danny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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