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일출 그리고 송혜교의 새로운 시작
서울, 오전 5시 23분, 일출 그리고 송혜교의 새로운 시작.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촬영이 끝난 저녁. 송혜교가 식탁에서 써서 보낸 생각들.
서면으로 만나게 되었군요. 어떤 모습으로 이 답변을 쓰고 있나요? 앞에 놓인 물건도 궁금해요.
촬영 끝나고 집에 와 저녁 식사 후에 식탁에 앉아서 쓰고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지금 촬영하고 있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대본이 놓여 있어요. 이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열심히 또 대본을 외워야 해요.
<보그> 27개국이 연합해 ‘New Beginnings’라는 동일 주제로 9월호를 준비했어요. 송혜교 배우가 떠오르는 아침 해 속에 <보그 코리아>의 커버 걸로 등장하죠. 전 세계가 팬데믹, 기후 변화 등의 큰 문제를 겪고 있기에 절실히 ‘뉴 비기닝(새로운 출발, 시작)’을 바라는 때입니다. 당신이 ‘뉴 비기닝’ 하길 바라는 것은 뭔가요?
아무래도 우리 모두 팬데믹 상황에 놓이다 보니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일반적인 상황이 현재는 아쉽고 어려운 것들이 많아졌어요. 일례로 친구들과 만나서 식사하고 수다 떨던 소소한 일상이 어렵게 된 거죠.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워진 일들이 다시 소소한 일상에서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촬영은 새벽 5시에 <보그>가 있는 건물 옥상에서 이뤄졌습니다. 송혜교 배우의 인스타그램에도 종종 새벽 풍경이 올라옵니다. 왠지 좋아하는 시간대일 것 같은데요?
지금 집은 창문 밖으로 나무가 보이지만 전에 살던 집에서는 한강이 보였어요. 종종 해가 뜨는 걸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고,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우연히 해 뜨는 것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잠을 포기하고 계속 바라본 기억도 있어요. 아마 그 시간이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제일 평화로운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에 꽃 접사 사진과 푸른 하늘, 바다 수평선 등의 풍광 사진도 자주 올라옵니다. 자연에서 위안을 받는 걸까요?
물론 자연에 많은 위안을 받아요. 눈으로 마음으로 냄새로 촉감으로. 워낙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아하고 그 여행 안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인스타그램에 자연 사진을 올리는 건 제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기도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내 얼굴이 쉬지 않고 포스팅되는 것이 부담스러워요. (웃음) 아무리 제 얼굴이어도…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이별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쓴 이별 액추얼리’라는 부제의 멜로 드라마입니다. 장기용 배우와 호흡을 맞추죠. 당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멜로 드라마의 축이 큽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사랑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화면에 구현해줬죠.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는 어떤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나요? 전작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라는 작품도 멜로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기대하시는 분도 있고 또 기대 안 하시는 분도 있어요. “이번에도 멜로 드라마를 하는 거냐”라는 질문을 받지만 제 생각에는 20대에 했던 멜로, 30대에 했던 멜로 그리고 또 현재까지, 저의 외면과 내면이 변화하고 있고, 연기로 표현하는 부분에서 느낌이 다 미세하게나마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경험으로부터 제 자신이 만들어지고 표현해내는 여러 부분이, 같은 상황의 연기라도 과거와는 또 다른 모습이 분명 있을 거라고 봅니다. 또한 플랫폼의 다양화로 여성 중심의 장르물도 예전보다는 점점 많아졌고 재미있는 대본과 시나리오도 볼 수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아서 좋아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동화 같은 판타지 멜로의 여주인공이 아닌 지금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캐릭터이고 그 여성이 하는 고민이나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이었습니다. 일에 관해서나 사랑에 관해서나… 극 중 ‘하영은’은 사랑이나 일에 적극적이고 힘 있게 접근합니다. 사랑이나 관계에서 자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인물이고, 사랑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 지혜롭고 건강한 사고방식을 지녔어요. 이런 하영은이라는 캐릭터를 또 다른 느낌으로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극 중에서 자기 관리에 철저한, 패션 회사 디자인팀 팀장이죠. 오랜만에 패셔너블한 직업의 캐릭터를 만난 것 같아 기대됩니다. 캐릭터를 위해 어떤 스타일 컨셉을 잡았나요?
팬분들이 그 부분을 많이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게다가 패션 관련 드라마이기 때문에 제가 굉장히 화려한 비주얼로 보일 거라 생각하시죠. 그렇지만 하영은 캐릭터 자체는 화려한 인물이라기보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 캐릭터에 맞춘 이미지를 보여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무조건 화려하다고 해서 패셔너블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하영은에 맞는 이미지는 베이식하고 미니멀한 것이거든요. 그래도 전작보다는 예쁜 주얼리나 의상을 많이 입어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편하게 꾸며볼 수 있는 캐릭터라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송혜교의 여자들’이란 표현을 쓰고 싶어요. 그동안 연기해온 여성 캐릭터는 각 시대와 그 직업의 현실적인 면을 담아냈기에 공감이 갔습니다. 제게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이 특히 그랬어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여성 캐릭터는 우리와 어떤 공감대를 가질까요?
지금 제 나이에 가까운 역입니다. 그래서인지 하영은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많이 와닿아요. 그리고 ‘내 또래 여성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은 전작 중 제일 현실적인 인물이었어요. 아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방송되면 하영은이 주준영보다 더 현실적인 인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더운 날씨와 팬데믹 상황으로 촬영에 힘든 점이 많죠. 촬영 중 어떤 점이 고되고,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나요?
아무래도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예전처럼 촬영이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안전한 상태에서 촬영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전보다 촬영 환경에 몇 배로 더 신경 쓰고 예민해져서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많이 힘들어 보여요. 드라마는 늦가을 방송 예정입니다. 촬영은 여름에 하고 있지만 옷은 초가을 의상을 입기로 했어요. 그래서 요즘 36~37도를 오가는 날씨에 가을 옷을 입고 촬영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나중에 방송을 보면 보람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 역시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한창 촬영 중이라 어렵게 시간을 냈어요. 왠지 모르게 일이 한창 바쁠 때 더 에너지를 받는 인물일 듯한데 맞나요? 흔히 말하는 시즌, 비시즌에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드라마를 시작하면 거의 5~6개월은 드라마만을 위해 살게 됩니다. 시간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그 역으로 살고 있기에 송혜교의 시간은 찾아볼 수 없어요. 일을 하면 아무래도 늘 긴장을 유지해야 하니 에너지가 절로 생기는 것 같고 또 함께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힘은 들어도 즐겁고 행복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게 됩니다. 비시즌일 때가 더 힘없어지고 게을러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요. 시간 여유가 많으니 ‘내일 해야지’ 하며 게을러져서 살이 찌기도 하고… 일할 때가 더 건강한 것 같아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이후에 김은숙 작가의 신작 <더 글로리(The Glory)>에 출연합니다. <더 글로리>는 학폭 피해자였던 여성이 가해 주동자 아이의 담임 교사로 부임한 후 복수하는 8부작이죠. 이 한 줄만으로도 새로운 역할이 기대되는군요. 멜로에서 굉장히 급커브를 도는 듯한 작품 장르기도 하고요. 새로운 장르물을 해보고 싶은 의도였나요?
<더 글로리>는 제가 기존에 자주 접하지 않은 장르입니다. 늘 하고 싶었던 장르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떨리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 계속 들어요. 그래도 어렵지만 신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은숙 작가님이 그리는 장르물은 어떨까, 안길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떨까’ 설렙니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잘 끝내고 또 열심히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죠.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얘기를 종종 했어요. 어떤 일에 오래 매진할수록 어려움을 알게 돼 겸손해져요. 할수록 어려운 이 분야를 ‘평생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적 있나요?
20대에는 막연히 ‘서른 넘으면 연기가 쉽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저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또한 저와 같이 나이 들고 있었어요. 그 나이대에서 오는 상황, 경험, 생각, 심리적인 것 모두 다 저와 함께 성숙해지고 있었죠. 그러니 점점 더 무게가 실리면서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여전히 연기는 어렵습니다. 쉬운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그날까지는 열심히 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은 뭐죠?
요리. (웃음) 음식은 자주 할수록 늘어요. 확실히.
<보그> 인터뷰에서 “20대에는 어쩔 수 없이 또래 배우가 좋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났어요. 요즘엔 그런 욕심이 사라졌어요. 내 것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내려놓아요”라고 말한 적 있어요. 반면에 배우로서 새롭게 욕심나는 부분이 생기지 않았나요?
여전히 같은 마음이에요.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지 않아요. 욕심낸다고 한들 내 것이 아닌 것은 내 것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더 부럽거나 샘나거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굳이 욕심난 부분을 얘기한다면 새로운 장르에서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하게 되었네요. (웃음)
주변 동료 여성 배우들과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는 뉴스가 자주 올라와요. 송윤아, 김희선 등과 커피 차를 주고 받고 김혜수 인스타그램 사진에 하트를 달죠. 함께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박효주와 연극 나들이도 하고요. 25년간 배우 생활을 하며 같은 길을 걸어온 동료 여배우에게 연대감이 강해지나요.
나에게는 너무 멋진 선배님들이 계시죠. 제 인생의 복이에요. 좋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늘 용기와 사랑을, 때론 위로와 힘을 주세요. 그동안 표현을 잘 못했지만, 정말 큰 힘이 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효주는 2004년 <햇빛 쏟아지다>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는 둘 다 너무 어리고 내성적이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이번 드라마를 통해 거의 17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재회한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대화하는 듯해요. 저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지만 언니 같을 때가 많아요. 토닥토닥해주는 효주의 말과 마음에 늘 따뜻해집니다. 또 이번 드라마에서 처음 알게 된 최희서 배우는 제가 그녀의 팬이었어요.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할까’ 생각하며 궁금했거든요. 인연이었는지 이렇게 한 작품에서 만나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친동생 같고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가진 희서 덕분에 제 주변은 늘 웃음이 함께합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2012년부터 10년간 역사적인 기념일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해외의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국어 안내서와 한글 간판, 부조 작품을 꾸준히 기증해왔죠. 지난 삼일절에는 <해외에서 만난 우리 역사 이야기-LA 편> 1만 부를 LA 한국문화원에 기증하고, 6월에는 김구 서거일을 맞아 중국 가흥의 ‘김구 피란처’에 김구 대형 부조 작품도 기증했어요. 다른 분야보다 특히 잊혀가는 독립운동 유적지와 열사를 기리는 선행을 이어가는 이유는 뭔가요?
해외 나갔을 때 그 나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한국어 안내서가 없는 곳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이 아쉬워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시작했죠. 그러다 해외에 있는 독립 유적지는 상황이 더 좋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안내서는 물론이고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우리가 하는 작업을 통해 더 많은 분이 알고 한 번 더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요즘 아티스트를 인터뷰해보면 다들 팬데믹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뮤지션의 경우 공연은 못하지만 창작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하고, 피아니스트는 순회공연이 취소돼 처음으로 깊은 휴식을 가졌다고 했죠. 배우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팬데믹이 준 영향(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조금 비슷한데 배우들은 주로 작품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실제로는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팬데믹 전에는 국내외 행사를 통해 팬들을 가까이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펜디를 위한 킴 존스의 옷을 입고 촬영했어요. 개인적으로 당신이 이런 부드러운 질감과 컬러를 입을 때가 좋아요. 특유의 신비로운 표정이 더 빛을 발하는 것 같거든요. 흔히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이나 마음이 그에 맞춰 변하곤 합니다. 당신도 그런 영향을 받나요? 가장 송혜교다운 패션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번 <보그> 커버 의상 역시 기억에 남아요. 인디언 핑크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컬러이고 여성스러운 라인이라 조금만 포즈를 취해도 보디라인이 예뻐 보이는 마술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웃음) 패션 화보 촬영은 다양한 스타일을 입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이제 많이 아시지만 평소에는 그냥 심플한 스타일을 좋아해요.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귀찮아서 그냥 심플하게 입는 편이죠. (웃음) (VK)
*송혜교 배우가 보낸 답변 중 웃음을 표현한 의성어는 ‘(웃음)’으로 변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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