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위해 변신한 디올 ‘메달리온 의자’
무슈 디올을 상징하는 메달리온 의자가 새로운 시대를 위해 변신했다.
디자이너의 세계는 그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그가 머물고 일하는 세상에 피어난 꽃, 흐르는 음악, 은은하게 풍기는 향까지도, 모든 것은 철저히 디자이너의 욕망에 따라 달라진다. 심지어 어떤 디자이너는 부티크 화장실의 티슈 색깔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컬러로 특별 주문한다. 1947년 자신의 이름을 딴 꾸뛰르 하우스를 준비하던 크리스찬 디올 역시 그런 까다로운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다. 파리 몽테뉴 거리 30번지의 매장과 아틀리에는 무슈 디올이 꿈꾸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스케치북과 같았다. 그리고 그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함께 손을 잡은 건 친구이자 데커레이터 빅토르 그랑피에르(Victor Grandpierre)였다.
무슈 디올과 그랑피에르는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긍정적인 세상을 담아내고 싶었다. 진주를 닮은 회색빛과 하얀 몰딩으로 마무리한 인테리어는 20세기 중반 최고의 디자이너가 바라던 공간 그 자체였다. 그 과정에서 루이 16세 시대의 디자인을 닮은 의자가 탄생했다. 하얀색 타원형 틀 속에 자리한 회색 ‘메달리온(Medallion)’ 의자는 디올 하우스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살롱 내부의 탈의실은 물론 무슈 디올의 사무실, 패션쇼 관객석에도 역시 메달리온 의자가 자리했다. 그리고 무슈 디올이 자신의 세상을 선보인 지 75년이 지난 지금도 메달리온 의자는 디올 하우스를 지킨다.
지난 9월 초 밀라노에서는 또 다른 디올 세상이 펼쳐졌다. 전 세계 정상급 가구 디자이너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현장이다. 이곳에서 디올 인테리어 제품을 판매하는 디올 메종은 2021년을 위한 메달리온 의자를 선보였다. 그들로부터 초대받은 건 전 세계 아티스트 17명이다. 디올 하우스는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건축가에게 메달리온 의자를 새롭게 해석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고, 그 결과물이 브레라 지역에 자리한 팔라초 치테리오(Palazzo Citterio)의 지하 공간에 모여 있었다.
다양한 국적에, 각기 다른 디자인 철학과 작업 방식을 지닌 아티스트가 주목한 메달리온 의자의 특징은 모두 색달랐다. 풍선 위에 에폭시를 겹쳐 장난감 같은 의자를 완성하는 한국의 양승진 작가는 기존 디자인에 자신의 작업 방식을 더했고, 일본의 넨도는 곡선을 강조하는 유리 의자를 완성했다. 이탈리아의 디모레 스튜디오는 스트라이프 소재로 더 고풍스러운 멋을 강조했으며, 프랑스의 피에르 요바노비치는 디올의 자카드 소재를 더해 ‘무슈’와 ‘마담’을 상징하는 의자 한 쌍을 선보였다. 특히 디올 오블리크 장식을 더욱 강렬하게 자수로 표현해냈다. “디올 아틀리에의 장인과 협업하는 과정은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꿈꾸던 것들을 끝까지 재현해내면서 장인의 손길에서 탁월한 결과가 완성되니까요.” 요바노비치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전시가 진행된 공간은 꼭 패션쇼가 막 끝난 디올 살롱처럼 꾸며져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곳곳에 놓인 작품은 디올 메종이 바라는 지금의 디올 월드 그 자체였다. 무슈 디올의 인테리어에 관련한 책 <Dior and His Decorators: Victor Grandpierre, Georges Geffroy, and the New Look>을 쓴 작가 모린 푸터(Maureen Footer)는 1947년 무슈 디올이 바라던 공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모든 디자인이 그렇듯이 그 당시의 거대한 질문에 깔끔하고도 세련된 방식으로 답하고 싶었죠.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무슈 디올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던 시간으로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답을 밀라노의 메달리온 의자에서 찾았다. (VK)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Alessandro Garofalo, Valentin Hennequin, Marion Berrin, Sungmin Kim, Yuto Ku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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