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탐내는 치퍼 아피아의 주얼리
힙합, 다이아몬드 그리고 기억. 지금 모두가 탐내는 이름, 치퍼 아피아.
메이페어에서 치퍼 아피아(Chiefer Appiah)는 다이아몬드에 기억을 담고 있었다. 그린 파크와 리츠 호텔 근처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에서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성장한 이 주얼리 디자이너는 누군가를 추모하는 의미의 주얼리를 현대적인 스타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다. “추모 펜던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가 설명했다. 휴대전화 화면을 스와이프하자, 참 장식의 클로즈업 이미지가 나타났다. 둥근 형태의 부적이 금으로 만든 판의 중심에 있고, 그 주변의 프레임을 다이아몬드가 감싸는 이미지였다. 이런 물건을 제작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처음에는 적절한 프린터를 찾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그러다 에나멜 같은 광채를 주는 작업으로 마무리했다. “작품 중 하나를 찾아 걸치면, 다른 주얼리 제작자들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번엔 누구야?’라고요.” 아피아는 ‘Chieferdcypha’라는 닉네임으로 SNS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알려주지는 않아요.”
아피아의 펜던트에는 역사적인 레퍼런스가 담겨 있다. “제가 처음 본 것은 빅토리아 여왕의 펜던트였는데요.” 말을 시작하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13년 6월 미국의 래퍼 애더런 로스(Addarren Ross, 예명 릴 스눕(Lil Snupe))의 죽음이 이런 추모 펜던트라는 감성적 카테고리에 대한 관심에 불을 붙였다. 릴 스눕은 고작 18세에 목숨을 잃었다. 유망주였던 그가 필라델피아의 유명 래퍼이자 송라이터 믹 밀(Meek Mill)의 레이블 드림 체이서(Dream Chaser)와 계약을 막 마친 때였다.
목숨을 잃은 후배를 기리기 위해 믹 밀은 다이아몬드 장식이 들어간 초상화 펜던트를 걸치기 시작했다. “신 전체가 릴 스눕의 죽음을 추모했죠. 믹 밀은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였고요. 그런 사람이 이 펜던트를 착용한 겁니다. 모두가 원했죠. 그래서 저도 뛰어들었지만, 저만의 버전으로 해석한 아이템을 만들어냈어요.” 아피아가 말했다.
테두리를 클로 세팅(보석을 갈고리발톱으로 고정하는 세공법)으로 처리한 ‘빅 50 포인터(‘포인트’란 캐럿의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로, 1캐럿이 100포인트와 같다)’는 이중 유리 레이어를 사용해 보석을 고정하는 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아피아만의 디자인이다. 다이아몬드는 마키즈 컷, 흔히 아는 눈물 형태로 사용되었다. “추모 펜던트는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상징하는 눈물을 넣어보자고 생각한 거죠.”
아피아의 펜던트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모든 형태를 기리고자 하며, 주얼리 제작자와 고객의 마음이 이어지는 결과물이다. 2018년 버밍엄의 어느 증권 컨설턴트가 지난한 양육권 분쟁을 마친 후 아피아를 찾아왔다. 아피아의 고객인 그는 전화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얻은 결과와 그를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상징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 구매했죠. 굉장히 감정적인 경험이었어요. 치퍼 아피아가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죠. 제가 왜 주얼리를 원하고, 무슨 의미를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요. 저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여겼어요. 제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더군요. 펜던트 장식에 그 에너지를 넣어주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당시 구매한 주얼리는 일종의 투자로서, 자식에게 물려줄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과거에 드리워진 눈물이나 미래에 다가올 즐거움을 시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스로 왕관을 쓴 이 버스다운 주얼리의 왕 아피아에게 다이아몬드란 ‘진정 중요한 물건’이다. 그만의 스타일로 주얼리를 제작하는 뛰어난 기술은 그의 휘황찬란한 닉네임에도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서 ‘버스다운’ 주얼리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주얼리의 금속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찬 파베 세팅(여러 행으로 보석을 줄지어 꽉 채우는 세팅법)을 ‘버스다운’이라고 부릅니다. 고객들은 1.2캐럿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일종의 과시죠. ‘내 펜던트에는 스톤이 16개인데, 쟤는 14개네.’ ‘이런, 난 20개 정도는 해야겠다’는 느낌인 거죠.” 버스다운 주얼리는 힙합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버스다운’이라는 단어는 믹 밀이 만든 겁니다.” 믹 밀의 ‘Ima Boss’를 예로 들며 아피아가 설명했다. 2011년에 발매된 믹 밀의 트랙 가운데 “내 손목엔 오데마, 버스트 다운(Audemars on my wrist, bust down (Bling))”이라는 가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버스다운! 버스다운! 버스다운!’을 외치고 다녔죠.” 아피아는 덧붙였다.
오데마 피게 손목시계뿐 아니라 롤렉스와 파텍 필립에 커스텀 다이아를 장식하는 것은 급성장하는 아피아 비즈니스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고객들은 런던 출신의 래퍼 나인즈(Nines)와 스크랍즈(Skrapz),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에 2회 등극한 앤서니 조슈아(Anthony Joshua)가 주문하고 직접 착용한 아피아의 시그니처 주얼리를 찾아 메이페어에 눈에 띄지 않게 위치한 사무실을 찾아온다. 포르쉐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반짝이는 체스 퀸 형태의 펜던트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수 조자 스미스(Jorja Smith)를 위해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한 보드게임을 주제로 한 펜던트를 구상하고 있다. 또 대단히 섬세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뮤지션 디아몬테 퀴아바 발렌틴 하퍼(Diamonté Quiava Valentin Harper)의 예명 ‘사위티(Saweetie)’를 보석에 일일이 박힌 고상한 필체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고객들은 인스타그램이나 주변의 입소문을 듣고 아피아를 찾아온다. 그의 작은 고객들은 상담 시간에 맞춰 줄지어 서 있다. 디자인에 대해 합의하면 착수금을 먼저 지불하고, 런던에 있는 공방 두 군데에서 제작을 시작한다. 아피아는 해튼 가든(Hatton Garden)과 메릴본(Marylebone)에서 바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26개 아이템의 주문 생산이 예정된 상태였다. 첫 인터뷰를 마치고 몇 주 뒤 아피아는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상품을 제작하는 메릴본 공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현재 제작 중인 상품에는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로 가득 장식한 펜던트가 있었고, 다른 작업대에선 회전축을 아주 정교하게 맞춰 회전이 가능한 반짝이는 반지를 발견했다. “본인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공방의 리더 안토니오 페라라(Antonio Ferrara)가 말했다.
최근의 작업물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성냥갑 형태를 재구성한 네모난 파베 세팅 다이아몬드 펜던트라고도 이야기했다. “여닫을 수 있고, 성냥도 들어 있어요. 하나 꺼내 체인에 걸 수 있죠. 안토니오가 제 스타일을 잘 알기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요. 저는 거기에 스트리트 감성을 섞었죠”라고 아피아는 말했다. 안토니오와는 아주 오래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제 사무실이 없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죠. 안토니오를 다시 만났을 때는 ‘해튼 가든에 사무실이 있다니!’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근처에 있는 코스타 커피에서 곧바로 계약했다. “이런 일을 하는 주얼리 제작자들이 또 있습니다. 모두 서로 다른 유니크함을 지녔죠. 그게 바로 어려운 점입니다. 보석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배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피아는 말했다.
그만의 USP(Unique Selling Point)는 다양한 사이즈의 보석을 빈틈없이 배치하는 것이다. 모자이크 같은 기술로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효과를 더한다. “눈에 띄고 싶다는 욕구가 저를 이끕니다. 저는 굉장히 외진 지역에서 자랐어요. 주민이 500명밖에 안 되는 곳입니다. 모두 나이키 에어 포스 1을 신었는데 다들 조금씩 달리 연출했죠. 신발 끈을 다르게 묶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이렇듯 모두가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곳에서 성장했습니다.” 아피아의 삶에는 할리우드 감성 같은 과시욕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주얼리라는 소재가 큰 역할을 했다. “저는 가나 출신이고, 가나는 금이 많이 생산되는 나라입니다.” 어머니가 가나에서 토트넘의 집으로 가져온 팔찌와 체인을 떠올리며 말했다. 열여섯 살 때 한 친구가 더 큰 체인을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어린 아피아는 생일날까지 돈을 모았다. 그리고 생일날 곧장 매장으로 달려갔다. “시골 마을로 돌아갔을 때 제가 대통령처럼 느껴졌달까요. ‘새 체인 했네!’라고 하면서 모두가 제 체인을 걸쳐보길 원했고, 이게 어떤 힘을 주는지 느꼈죠. 돈 있는 사람들을 보면, 큰 차, 큰 체인 목걸이를 하고 다니잖아요. 그런 것이 어릴 때 제가 원하던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기도 할 거예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주얼리는 그렇게 그의 인생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곧이어 그는 첫 번째 펜던트를 디자인했다. 아프리카 지도 모양을 본뜬 것으로 직접 제작해 목에 걸고 말았다. “꽤 멋쟁이였던 것 같아요.” 그가 회상했다. 그러나 주얼리 업계로 향하기 전에 그는 사촌인 래퍼 ‘스웨이 다사포(Sway DaSafo)’로 알려진 데릭 앤드류 사포(Derek Andrew Safo)의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스웨이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아피아는 친구들에게 럭셔리 시계를 조달하는 쏠쏠한 부업을 시작했다. “주얼리 제작자가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해봤죠. 하지만 뭔가를 디자인하고 잘 만들어낸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뭘 만드는 과정을 명확히 알고 있었죠.”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계획을 세우며 아피아는 신중하게 사업 계획을 세웠다. 우선 본드 거리에 있는 매장 쇼윈도를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타워 브리지의 왕관 보석 투어에도 참여했다. “물건이 세팅된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나름의 리서치였죠. 그냥 무작정 뛰어든 건 아닙니다.” 특히 역사와 전통이 깊은 산업일수록 그의 사업도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는 것 자체가 어렵더군요.” 경험 많은 보석 딜러 메이어 프리드(Meir Fried)가 그를 구제했다. 그렇게 그의 사업은 느리게나마 현재 형태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곳이 우리 클럽이에요.” 아피아가 설명했다. 어두워진 방 안에 한 줄기 빛이 다이아몬드 무더기를 비추고 있었다. 빛이 눈부시게 산란하며 보석과 보석 사이에서 춤추는 듯했다. 갑자기 우리는 나이트클럽에서 아피아의 메이페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가 쿠바 스타일 보석으로 뒤덮인 청키한 체인에 휴대전화 조명을 비췄다.
“이게 일하는 이유죠.” 아피아는 성공적인 제작품을 보며 말했다. “이것 자체가 존재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이 요란함 때문에 버스다운 주얼리를 좋아하죠. 다른 설명은 필요 없어요.” (VK)
- 글
- FELIX BISCHOF
- 사진
- TOM COCKE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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