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셔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댕댕이’ 이야기
몽클레르 패딩을 입고, 에르메스 그릇에 밥을 먹으며, 티파니 목걸이를 착용한다. 반려동물 전성시대를 살아가는‘우리 댕댕이’ 이야기.
“우리 애한테는 좋은 것만 해주고 싶어요.” 몇 달 전 생일 파티를 준비해야 한다며 서둘러 퇴근한 후배는 그날 저녁 반려묘의 생일상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유기농 사료와 새 장난감은 좋아했는데, 큰맘 먹고 구입한 옷은 거절당했다는 후기도 전했다. 도도하기로 유명한 그녀의 고양이에게 옷 입히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내 핀잔에 그저 ‘막내’에게 예쁜 선물을 하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쯤엔 반려견의 힙한 스타일을 위해 에센스에서 판매하는 마린 세르 도그 웨어를 산 지인이 떠올랐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집사’가 늘어난 만큼 ‘펫코노미’ 시장을 온몸으로 느낀다. 먹는 것뿐 아니라 가구와 테크, 심지어 보험, 게다가 패션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 반려동물 관련 이슈가 콜라보레이션 소식만큼 자주 들린다.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가 인류 역사상 가장 고차원적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얘기다. ‘펫셔리’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반려동물을 위한 소비가 늘자 비로소 반려동물이 하이패션의 새로운 고객이 된 셈이다. “당신의 네발 달린 친구는 특별한 액세서리를 즐길 자격이 있다”는 코멘트로 반려인을 사로잡은 펜디는 지난해 4월 첫 번째 펫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인 데 이어 얼마 전엔 펫 트래블 라인을 추가했다(송혜교의 반려견 루비가 착용해 화제를 모은 나일론 코트와 이동 가방을 기억하시는지). FF 로고로 뒤덮인 침대는 탈착 가능한 쿠션을 더해 세탁마저 손쉽다. 근사한 인테리어 효과는 덤이다. 모스키노는 스타일에 더 집중했다. 앙증맞게 재탄생한 시그니처 바이커 재킷과 트렌치 코트, 파티에 참석한다고 해도 믿을 법한 튤 장식 드레스와 같은 기상천외한 디자인으로 개성과 취향을 존중했다. ‘꾸뛰르!’라고 적힌 세라믹 볼로 식사하는 동안 품위마저 놓치지 않았다. 디젤의 ‘Diesel Doggies’ 컬렉션은 소형견을 위해 탄생했다. 불꽃 패치나 카무플라주만큼 흥미로운 건 사이즈. 닥스훈트처럼 상체가 긴 견종을 위한 버전을 별도로 마련했다니 반려동물에 대한 진심이 느껴질 정도다. 써네이의 첫 도그 웨어 라인은 기존 컬렉션의 축소판이다. 블루와 그린, 레드와 화이트를 사용한 상징적인 줄무늬와 로고를 전면에 새긴 다소 평범한 티셔츠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어우러졌다. 써네이 신상을 입은 강아지들이 셀피를 찍는 형식의 캠페인 덕분이다(사진에 담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없는 ‘내 새꾸’에게도 입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반려동물을 위한 컬렉션은 웬만한 디자이너의 기성복 컬렉션만큼 다채롭고 세심하다. 그저 가방과 동일한 가죽으로 만든 목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하이패션 브랜드가 하이‘펫’션을 위해 고급화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에르메스가 내놓은 오크 소재 침대와 볼을 비롯해 목줄에 다는 티파니 실버 참 장식, 비 오는 날 산책을 위한 프라다 레인 코트처럼 말이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Poldo Dog Couture’와 협업을 택한 몽클레르와 디스퀘어드2의 펫 컬렉션 역시 다를게 없다. 티파니 목줄은 50만원대, 프라다 하니스는 90만원대, 에르메스 볼은 150만원대, 루이 비통 도그 캐리어는 360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만큼 펫셔리 시장이 급성장한 비결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통해 귀에 인이 박일 만큼 들은, ‘1~2인 가구 증가와 저출산 및 고령화’ 등으로 기존 가족 구성원의 빈자리를 반려동물로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많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거들었다. 보복 소비 심리가 반려동물 용품에도 번진 결과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려동물과의 유대감이 더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쇼핑 방식도 영향이 크다. 반려동물을 또 다른 나로 인식하는 ‘Pet=Me족’은 그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펫부심’ 덕분이다.
애완동물의 개념을 넘어 함께 삶을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Pet Humanization’ 현상이야말로 패션 미개척지다. 이쯤에서, 반려묘의 생일상을 차린 후배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이런 댓글 하나를 달아볼까. ‘묘 팔자가 상팔자?’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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