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듯한 프랑스 북부의 아름다운 주택
존 갈리아노는 파트너 알렉시 로슈와 함께 18세기에 지은 주택에 산다. 파리 북서쪽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제르베루아라는 조용한 마을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숨겨진 보물 창고에 <보그>가 다녀왔다.
“시장이나 중고품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호기심이 많거든요. 일종의 물건 사냥이죠. 그렇게 잘 모르는 것을 새로 발견하는 짜릿함을 느끼면, 그게 다른 것으로 연결되고, 또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이 사람 좀 말려주세요.” 갈리아노의 파트너이자 협력자 알렉시 로슈(Alexis Roche)가 말했다. “말리지 않으면 절대 멈추지 않는다니까요!” 갈리아노는 ‘벼룩시장에서 찾은 물건 또는 여행하면서 찾아낸 지리나 역사 이야기와 에너지를 담은 물건’을 아낀다. 그에 따르면 이렇다. “정말 깊은 감명을 줍니다. 이런 감정이 나오기 시작하면, 창작할 수 있죠.” 이 수많은 보물은 파리 마레 지구에 자리한 갈리아노와 로슈의 아파트, 오베르뉴(Auvergne)의 소박한 농가에 전시되어 있다. 오베르뉴는 이른바 ‘진짜 프랑스’에서도 가장 청정하며 외진 지역으로 로슈의 조모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농가는 약 10년 전 갈리아노의 커리어에 큰 위기가 찾아왔을 때, 완벽한 안식처가 되었다. 끝내 갈리아노는 여러 방법으로 회복했고, 메종 마르지엘라를 재정비할 크리에이티브를 갖고 돌아와 2014년 말부터 마르지엘라의 키를 잡고 있다. 이 커플은 파리와 접근성이 좋은 시골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앤티크 가구 딜러인 한 친구가 피카르디 지역의 제르베루아(Gerberoy)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 있으니 한번 볼 것을 권했다. 자갈이 깔린 길에, 접시꽃과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목조 주택이 가득한 프랑스 북부의 마을이었다. 로슈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마을에서 영혼을 느꼈습니다.” (인근 도시 루앙의 앤티크 매장에 가기 좋다는 것도 가산점을 얻었다.) 제르베루아는 후기인상파 화가 앙리 르 시다네르(Henri Le Sidaner)가 폐허가 된 시골집 주변에 만든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시다네르의 은은하게 반짝이면서도 신선한 그림의 끝없는 주제가 되었다. 심지어 갈리아노와 로슈가 보러 간 집도 그림으로 남아 있다. 갈리아노의 추측에 따르면, 이 18세기 주택은 플로베르가 쓴 <보바리 부인>의 배경이었을 수도 있다. 이 커플은 마을과 집의 아름다움, 그 스토리가 가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집 상태는 좋지 않았고, 갈리아노는 야심 찬 리모델링 계획에 착수했다. 로맨틱하면서도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남길 생각이었다. 지붕 타일은 하나하나 섬세하게 들어냈다가 집 구조가 안정된 후 다시 올렸다. 빛과 전망을 고려해 방 구조를 바꿨다. 앤티크 향수병과 베네치아 거울, 빌헬름 폰 글뢰덴(Wilhelm von Gloeden) 남작의 시칠리아 소년 사진으로 가득한 메인 화장실에는 침실로 가는 대기실 같은 역할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갈리아노와 로슈는 앤티크 욕조 안이나 세면대 앞에 서서,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최고의 지점을 만들었다.
런던 클라리지 호텔에 머물 때면, 갈리아노는 인테리어 회사 콜팩스 앤 파울러(Colefax and Fowler)의 아이코닉한 친츠 직물과 앤티크 제품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곤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집에도 그 유명한 낸시 랭카스터(Nancy Lancaster)의 ‘버타-옐라(Buttah-yellah, ‘버터 옐로’의 버지니아 사투리 발음. 낸시 랭카스터는 미국 버지니아 출신이다)’ 컬러로 칠한 높은 층고의 응접실 스타일을 구현했다. 갈리아노는 콜팩스 앤 파울러의 까다로운 오뜨 꾸뛰르적 맞춤 제작 기준뿐 아니라, 노란색 응접실의 찬양자였다. “좋은 기술자를 찾는 것은 금맥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파리 아파트에 달 커튼을 위해 인테리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제르베루아의 집은 콜팩스 앤 파울러에서 일했던 다니엘 슬로윅(Daniel Slowik)과 함께 꾸몄다. 슬로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꾸뛰르의 아이디어와 감각을 이해하는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이를테면 오래된 킬림 카펫은 멋진 그림과 사진으로 장식한 계단에 깔린 패치워크 러너로 재탄생했고, 라즈베리색으로 바랜 실크사 자수가 놓인 모로코식 웨딩 이불은 거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걸었다.
널찍한 거실에는 태피스트리로 장식한 루이 15세 양식 의자가 놓였다. 그 곁에는 원형 테이블과 함께 큰부리새와 앵무새 그림(아마 19세기 초 아동들을 위한 작품일 것이다)이 시원한 푸른색 벽을 장식했고, 물 빠진 노란색에 푸른색 줄무늬가 있는 태피터 소재 앤티크 커튼이 같은 소재 장미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은 18세기 직물 장인들의 매뉴얼과 존 파울러가 직접 디자인한 폴린 드 로스차일드(Pauline de Rothschild)의 런던 아파트 디자인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메인 침실에는 앙투아네트 푸아송(Antoinette Poisson)의 친츠 직물로 만든 커튼을 드리웠다. 커튼 색상이 포르투갈 주택에서 영감을 받은 푸른색과 흰색의 아술레호스(Azulejos) 타일을 연상시켰다. 갈리아노는 이 타일에 심취한 나머지 트롱프뢰유 아티스트 엘로이즈 다르장(Eloïse d’Argent)에게 이 노란 거실의 벽난로가 있는 벽에 붙일, 내러티브를 담은 델프트 타일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벽난로에 불을 붙이면, 더 많은 빛이 퍼질 수 있도록 말이다.
한때 수도원이던 이 집은 1779년에 지어진 성문이 보호하고 있었다. 지금은 마르지엘라 아틀리에에서 만든 두 마리 수탉이 그려진 깃발(존 갈리아노의 ‘갈리’가 스페인어로 수탉이라는 뜻이다)로 장식했다. 갈리아노는 여러 손님방과 아틀리에를 만들었고, 가장 좋아하는 서적으로 가득 찬 서재로 집을 마무리했다(어릴 적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준 일러스트가 있는 디킨스의 초판본은 침대 협탁 근처에 놓였다).
아틀리에 바닥은 세심하게 복원된 육각 테라코타 타일로, 그 위에는 터키산 앤티크 러그가 깔려 있었다. 갈리아노는 방의 여러 부분에 서로 다른 색상을 사용했는데, 이는 빛이 바뀌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가장 까다로운 기준은 초를 켰을 때 어떤 모습인가입니다. 빛과 색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거죠. 색채가 정말이지 노래하는 것 같아요. 초를 켜놓고 시간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에 따르면 ‘밤에 심호흡을 하는 듯한’ 색상인 테라코타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노래하는 분홍빛을 내기 위해, 천장을 포함한 모든 벽에 여덟 겹을 칠했다. “이런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원했어요. 빛이 벽과 천장에 부딪혀 나오면서 반향을 일으키는 느낌이길 바랐는데, 생각한 대로 됐습니다. 더없이 편안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비오네의 책을 뽑아 들고 꿈나라로 갈 수 있어요.”
지난 수백 년간 타일 제작자, 유리공예가, 보베 부근의 태피스트리 공방 전문가 같은 장인들이 이 프랑스 지역을 번성시켰다. 그들의 업적에 대한 오마주로 갈리아노는 이 지역의 앤티크 페어에서 장인들을 위한 견본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작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만듦으로써 살아 숨 쉽니다. 그래서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일하면서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이 멋진 만화를 어떻게 리사이클링하고, 업사이클링할지 찾아냈죠.” 그는 만화 콜라주로 상상 속 풍경을 만들어 벽 한쪽을 장식했다.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나무가 흔들리면서 빛을 반사할 때 만들어지는 트롱프뢰유 효과를 좋아해요. 또 안팎의 경계를 두지 않는 아이디어를 활용했는데, 그중 몇 가지는 아껴뒀어요. 그리고 또 어떤 상상이 떠오르면, 그것들을 이어 붙이는 거죠.” 이 아틀리에의 신비로움을 창문 블라인드가 한층 더하고 있었다. “일본 절에서 가져온 거예요.” 이 가리개를 구해온 이는 릴루 마르캉(Lilou Marquand)으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친구이자 동업자였다. 갈리아노는 90대의 마르캉을 ‘아티스트이자 시인’으로 정의한다. 마르캉은 갈리아노가 손님이 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티타임을 제안했다. “그분 주변에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갈리아노는 그녀의 아틀리에에 매혹당했다. “알라딘의 동굴이었어요. 일본산 패브릭, 1930년대에 제작된 인도산 사리, 폼폼, 트리밍, 태슬 장식 같은 것이 한가득이었죠. 샤넬 리본을 봤을 땐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요!”
핑크 실크와 벨벳으로 만든 것으로, 수년간의 애정 어린 사용감으로 거의 칠이 벗겨져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끌리는 물건은 여태 본 적이 없었죠.” 그리고 마르캉이 그에게 이야기했다. “이걸 당신에게 주고 싶네요. 코코 샤넬이 쓰던 거예요.” 마르캉으로부터 구매한 블라인드가 걸린 이 방은 갈리아노식 표현에 따르면 이렇다. “기차에 타고 있는 마를렌 디트리히 느낌을 조금 냈죠.” 요제프 폰 스턴버그 감독의 1932년 작에 출연했던 마를렌 디트리히는 전설적인 디자이너 트래비스 밴튼(Travis Banton) 의상에 가려져 은은한 매력을 뽐냈다. “무언가 숨긴 듯한, 미스터리를 담은 장소예요.”
이 집의 분위기는 음악을 통해 한층 살아났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빌리 홀리데이의 처연한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갈리아노가 사랑하는 교회의 향, 딥티크의 머스크,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석류 향이 풍성하게 층을 이루어 여러 방을 떠돌고 있었다. 메인 하우스는 방이 한 칸 크게 있고, 양쪽에서 흘러넘칠 정도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위층에는 핑크빛으로 꾸민 거실이 나오고, 바스락거리는 실크 소재의 예스러운 복장을 한 교회 성상으로 채워져 있었다(“전체를 성소로 꾸몄어요”라고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 그 밑의 응접실은 18세기에 널리 쓰인 또 다른 색상으로 칠했는데, 갈리아노는 그 유래에 대해 기쁘게 설명해줬다. 바로 ‘인디언 옐로(프랑스어로 ‘Pipi de Vache’, 소 오줌색)’로 망고를 먹여 키운 소 떼의 오줌으로 만든 컬러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햇빛과 석양, 촛불 빛을 신비롭게 활용할 수 있는 멋진 색상이죠.” 로슈와 갈리아노의 탐구 결과는 명확했다. ‘노란 방’의 인테리어는 21세기의 감성과 갈리아노 커플의 열정을 매혹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석류알과 작약이 그려진 친츠 원단으로 만든 1950년대 지오 폰티(Gio Ponti) 암체어, 장밋빛 니들포인트 러그, 1940년대풍 마멀레이드 레드 벨벳 소파, 해바라기 같은 노란 색상의 실크 벨벳으로 만든 루이 15세 양식 의자, 18세기에 페인트칠한 이탈리아식 서랍장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갈리아노는 19세기 스타일의 살롱으로 꾸미기 위해, 섹스 피스톨즈의 포스터나 론 라파엘리(Ron Raffaelli)가 찍은 지미 헨드릭스, 브라사이(Brassaï)와 펜(Penn)의 사진, 장 콕토의 동성애를 표현한 스케치를 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브라사이의 1932년 작품인 ‘마담 비주(Madame Bijou)’는 바의 테이블에 흐트러진 모습으로 앉은 여성의 사진으로 갈리아노의 손님용 화장실에 진품이 걸려 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컬렉션에 큰 영향을 주었죠. 코트의 볼륨감, 모자, 가발, 보석, 내려간 스타킹, 탭댄스 슈즈… 마담 비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끝도 없죠!”
이 새로운 집은 갈리아노와 로슈가 함께 여행한 장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아티스틱 디렉터로 일한 디올에서 팀원들과 함께 영감을 받기 위해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일본, 중국, 인도의 다양한 지역을 방문했다. 이 중 ‘노란 방’으로 표현된 방에는 여행 중 라자스탄에서 찾아낸 17~18세기 인도의 아주 정교한 미니어처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인도와는 늘 마법적인 관련성이 있었죠.” 갈리아노가 덧붙였다.
갈리아노와 로슈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의 다양한 이웃과 가까워졌다. 가드닝이나 정신 건강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하고, 마을의 가십이나 맛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내가 방문한 오후에 그는 블룸즈버리 그룹의 괴짜 지식인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푸른색과 라일락색 깅엄 조각으로 짠 마르지엘라 프로토타입 스웨터와 마르지엘라 트렌치를 걸치고, 웰링턴 부츠에, 이마까지 내려오는 짚으로 짠 클로슈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갈리아노는 로슈와 함께 반려견 집시, 코코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안한 풍경이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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