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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

2023.02.12

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

딱 한 잔만 더 마시면 ‘쭈굴한’ 현재가 사라지고, 활기차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미래가 찾아올 것이다. 알코올이 부리는 마법이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는 흥미로운 이론이 등장한다. “인간은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유지해주면 더 느긋하고 개방적이며 대범해진다”는 철학자 핀 스코르데루의 가설. 권태에 빠진 중년의 교사 넷은 적당한 알코올이 삶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가, 직업적 수행 능력 수준을 어디까지 향상시키는가, 최대 농도에 이른 알코올은 어떤 해방감을 안기는가. 단계를 높여가며 실험에 돌입한다.

주인공들은 요란스레 음주측정기까지 불어가며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맞추지만, 55kg 여자 기준, 맥주 200ml 두 잔을 마시면 도달하는 수치임을 나는 만 19세부터 알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지 않으면 음주 여부를 식별하기 힘들지만, 분명 음주 운전에 걸리는 수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실험 결과가 놀랍다. 지루한 수업으로 컴플레인을 받아온 역사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은 와인 한두 잔씩을 벌컥벌컥 마시고 수업에 들어가고 발상을 뒤집는 수업으로 순식간에 재미있는 교사로 급반전을 이룬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필요한 한두 마디만 나누던 가족 관계에서도 변화를 일군다. 캠핑을 떠나 두 아들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섹스리스였던 부부는 자그마치 텐트에서 섹스를 한다. 혈중알코올농도 0.05%는 권태로움으로 침잠하던 일상에 재기 발랄함과 생기를 선사한다.

지루한 인간이 ‘인싸’로 거듭나는 마법. 나는 술이 선사하는 시원한 거품과 감정적 거품을 잘 알고 있다. 사실 캔 맥주는 손에 차가운 감촉이 닿는 순간부터 귓가에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차악’ 캔을 따는 순간 입속은 순식간에 흥건하게 변한다. 폭신한 거품이 입술에 닿고 꿀꺽꿀꺽 차가운 맥주가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 뜨겁던 머리가 차갑게 식는 청량감. 까끌까끌 아우성치던 탄산은 몸 안에 들어가는 순간 고요한 바다처럼 일렁이고 세월아 네월아 규칙성을 고수하던 심장박동은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빨라진다. 술에 관한 명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토머스 L. 피콕의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목이 마를 때 목을 축이기 위해, 또 하나는 목이 마르지 않을 때 목마름을 미리 막기 위해.”

극 중 심리학 교사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가 이 실험을 통해 훌륭한 심리학 에세이를 쓸 거라 진심으로 믿었듯, 술을 마시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기분에 휩싸인다. 술이 무의식중의 나를 발견해 천재적인 원고를 뱉어낼 것 같은 기분. 대박 터뜨릴 아이템을 찾아내 금방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취한 것도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중간 단계에서 피아니스트 헤르포르트는 환상적인 연주곡을 작곡했으니까. 난 세계를 정복할 거야. 아마 내일부터.

저 멀리 덴마크 땅에서 혈중알코올농도 실험을 벌이기 전부터, 나는 선명한 눈앞을 흐리게 하기 위해 술을 마셔왔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저 반가워서 술을 마셨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마셨다. 코로나 전에는 입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셨다. 발품을 팔아 찾아간 식당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술을 마셨고, 반대로 손에 넣은 술이 너무 귀해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결과는 늘 과음과 과식으로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술 마시는 행위는 동일하나 서서히 술을 마시는 시간과 장소, 목적이 달라진 변화를 경험한다. 일단 사교적 목적이 사라졌다. 그저 가슴이 답답할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치이익’ 맥주 한 캔을 딸 뿐이다. 목 안에 스크래치라도 내듯 거친 탄산의 쌉싸래한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오면 답답함이라는 불덩이가 꺼지며 조금 진정이 됐다. 인류에게 오랫동안 술은 용기를 그러모으는 장치였다. 실제로 술이 가까이 있는 것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근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낯설기보다 익숙한 지금,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저 바닥까지 내려간 에너지를 끌어올려 조금의 활력이라도 맛보기 위해 술을 마신다. 고된 프로젝트를 마치고 가사를 돌보고 지친 상태에서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알딸딸해지면서 시야가 뭉개지고 뾰족하던 마음이 느슨해지는데 그러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을 내일로 미룰 수 있다. 술을 마시면 나를 직면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도 괜찮아진다. 성냥팔이 소녀가 켠 성냥불처럼 불길은 곧 사그라지지만 그 순간만큼은 뱃속이 따뜻하다.

저녁을 거르고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맥주를 딴다. 언제고 맥주는 배부른 밥 한 공기가 되어줬다. 맥주는 보리로 만들고 보리는 곡기 아니던가. 그런데 얼마 전 맥주로 연명하는 일상이 나만의 상황이 아님을 알게 됐다. ‘1일 두 깡.’ 1년여 만에 만난 친구는 요즘 자신의 식단이라며 농담하듯 말했다. 3년째 재택근무를 하며 집과 회사의 경계가 사라졌고 역시 학교와 회사에 가지 않는 가족을 챙기는 건 오직 친구의 몫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나면 곧바로 점심 식사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그리고 오후 6시에 급하게 컴퓨터를 끄고 나오면 또다시 챙겨야 하는 식구들이 줄줄이 있었다.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친구는 매일같이 캔 맥주를 땄다. 번아웃 상태에서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건 오직 탄산이 가득한 황금빛 액체뿐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이런 우리를 부르는 용어도 존재하고 있었다. ‘키친 드렁커’. 외로움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혼자 주방에서 술을 마시는 주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장을 보는 것도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직접 하기에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가족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육퇴 후 한잔’ ‘여성 음주 늘리는 주범’ ‘40대 여성 음주율 상승 폭 증가’ ‘20~30대 혼술 여성 급증’… 이 사회의 성별 선입견을 강화하고 조회 수를 높이려는 기사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술을 마시지 않고는 오늘을 버티기 힘든 여자들이 있다.

광고 회사 임원으로 격정적으로 커리어를 해치우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도저히 이 모든 상황을 해낼 수 없어 커리어를 내려놓은 클레어 풀리의 저서 <금주 다이어리>에도 유사한 상황이 나온다. 그녀는 와인을 마시며 기저귀를 가는 따분함과 동요를 반복적으로 들어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나면 넉넉하게 한 잔 따르고 부엌에서 춤을 추며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언론계에서 일하다 전업주부가 된 뒤 무기력으로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박미소의 저서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에서도 똑같은 심정으로 술을 마시는 저자가 있었다. 박미소는 커리어를 접고 가정을 택한 주부들이 가슴에 품은 허망한 감정이 술에 의지하게끔 만든다고, 육아의 고단함을 술기운으로 버텨내고 있다고 적었다. “시간을 적게 들이면서도 가장 간편하고 즉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 음주이다. 술은 처방받지 않고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안정제다.”

실험의 레벨이 높아지며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 술이 인간을 밀어낼 때까지 마시는 입장에서는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아도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보인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잃어버린 것들이었다. 영화 초반 덴마크 대학생들은 호숫가를 돌며 맥주 마시기를 벌인다. 토하고 다시 마시며 먼저 결승선에 도착하겠다고 달리고 또 달린다. 지난여름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우연히 대학 친구를 만난 적 있다.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 출전, 고기 몇 차까지 가는지 한계 시험하기, 새벽에 아빠 차 끌고 나와 달리기 등 그저 재미를 위해 작당을 도모하던 파트너였다. 친구는 가족과 함께 있었고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눴지만 조용히 밥만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리웠던 게 뭔지 깨달았다. 바보 같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낄낄거리는 시간, 할 일 없이 술 마시는 시간, 마음껏 낭비해도 되는 시기. 하지만 언젠가 근사해질 거라는 믿음, 정해지지 않은 것들, 미지의 나였다. 앞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어느 정도 정해진 영화 속 중년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술을 통해 ‘미지의 나’였던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이다. 다음 날이면 깨어날 수밖에 없는 술처럼 그 바람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환희를 선사하는 술은 ‘중독’이라는 대가가 있기에 ‘혈중알코올농도 0.05% 항상 유지’라는 가설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외면하고 싶고 대고 싶은 핑계였다. 술은 그 시간을 잠시 허락해준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VK)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THOMAS LAG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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