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 전도연
전도연이라는 본능을 지탱하는 것은 몇 번을 리와인드 시켜도 맹목적인 사랑이었다. 멜로의 여왕! 눈물의 여왕!그 다음은 뭘까? ‘전도연’이라고 써놓고 나면, 그 후론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이 <밀양>에서 그 비밀을 풀었다. 보통 사람, 전도연.
어머? 전 매번 최고였어요. 까르르르. 전 모든 사랑이 다 중요했어요. 첫 번째 <접속>을 끝내고는, 두번째 <약속>이 절박했고, 그 담엔 세번째가, 네 번째가 더 중요해, 더 애절해…, <스캔들>의 사랑이, <인어공주>의 사랑이, <너는 내 운명>의 사랑이, 그 사랑이 더 간절해서, 애태우다 <밀양>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좀 끔찍하네요. 내가 진짜 사랑을 하기는 한걸까요? 아니요. 밀양에서 그 장면을 떠올리면 그렇다는 거예요. 처음으로 전도연이 감독에게 촬영을 접자고 했었던 그 순간. 감독님은 그냥 하염없이 내 손만 잡고 계시고…. 나 자존심 센데. 못하겠다, 모르겠다, 부끄럽다, 죽고 싶다, 나는 혼자다…, 감독님 미워죽겠다. 차라리 소리(<오아시스>의 문소리)가 쉽지 않았을까? 소리는 몸으로 비틀기라도 했는데, 나는 뭔가? 남편도 죽고 아이도 죽고, 낯선 소도시에서 바닥까지 떨어져 허우적거리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다가, 사랑도 밀어내는 나는 뭔가? 난 울타리를 쳐줘야 그 안에서 잘 노는 사람인데, 감독님은 밀양에서 날 방목하시고는 고개만 갸우뚱 갸우뚱~.
강호 오빠(송강호)가 아니라 이창동 감독님을 붙잡고 골백번을 미워하고, 사랑하고, 쌩까고, 울고, 웃고. 징글징글해. 그런데 어느 순간, 끈을 툭 하고 놔버리고 나니 편안해졌어요. ‘전도연’이란 방어벽이 스르르 부서지는 순간, 신기하죠? 그리고 결혼… 했죠.. 제 결혼 이야기…, 듣고 싶으세요? 전 결혼하면 일은 그만둘 생각이었죠. 결혼은 일에 대한 도피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일 외에 미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게 정말 남자고 결혼일까? 그건 아니지 않나? 가장 전도연다울 때는 일할 때가 아닌가 싶었죠.
내 인생 전부를 걸기보다, 일부와 이부를 걸면 어떨까? 그렇게 정리하던 중에 오빠를 만났어요. 전요, 그 남자이기 때문에 결혼했어요. 진짜 특이하고 재밌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 중에 흔치 않게 믿음과 신뢰의 베이스도 탄탄해요. 그러니까 전도연하고 결혼할 수 있는, 그런 남자예요. 결혼식장엔 단발머리에 베일 쓰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모든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이게 환상인가, 현실인가. 근데 제가 주례 석상에서 단상이 흔들릴 정도로 오빠를 붙잡고 바들바들 떠는 거예요. 오빠가 ‘왜 이러나? 이 사람이’하고 놀랄 정도로. 저는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오빠는, 그 사람은 단단해요. 이창동 감독님한테서 제 모습이 신랄하게 드러났던것처럼, 오빠한테서 제가 그래요. 옹졸하고 실망스러운 모습, 장하고 기특한 모습, 그런 게 다 나오니까…, ‘전도연’이란 방어벽이 스르르 부서지는 게, 고마워. 한때는 그랬어요. 내가 최고라는 게 막 몸으로 느껴질 때, “전도연 아니면 영화판은 돌아갈 수가 없어.” 네, 그런 시절이 있었죠. 요즘은…, 요즘은 안 그래요. 아직도 전도연은 집에 시나리오를 쌓아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죠? 후후. 한두 개 정도예요. 최고의 선택, 최선의 선택 그런 게 뭘까요? 지금 결과로 남는 게 베스트인 거죠.
제가 다른 사람 연기하는 거 보다가, 충격받은 적은 딱 두 번 있어요. <살인의 추억>의 강호 오빠가 하는 거 보다가 극장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의자에서 벌떡! 그런 제 모습이 웃겨서 저도 까르르 웃었죠. 또 하나는 <피아니스트>,아니요. <피아노>의 홀리 헌터 말구요.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 성적으로 사디스트고 마조히스트였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거예요. 아,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저, 넉살도 좋아졌어요. <타짜>의 최동훈 감독한테 “감독님, 저! 시간 비워둘게요~” 했는데, 나한텐 그런 요부 역할을 안 주더라구요. 아하하하. 이창동감독님한테도 “감독님, 저 앞으로 스케줄 주욱~ 비워야 돼요?” 하하, 하하하. 옛날엔 상상도 못했죠. 여유, … 뻔뻔함 그런 거요. 이창동 감독님한테 배운 게뭔지 아세요? ‘보통’이라는 단어예요. 보통 사람, 보통 옷, 보통 빵, 보통 말…혹시 아세요? ‘보통’이란 거. 한번은 스태프가 편의점에 빵 사러 가면서 주문을 받는데, 감독님이 “어, 근데 나는 보통 빵으로 사다 줘~” 그러잖아요. 소보루빵, 단팥빵도 아닌 보통 빵이요. 밀양에서 신애의 옷도 ‘보통 옷’을 입으라, 그래서 서울에 오면 옛날 옷 뒤지느라, 우수수 한바탕.
현장에선 감독님이 자꾸 전도연 얼굴, 말투 벗어버리고 ‘보통 얼굴’ ‘보통 말’을 하라는데, 여기 뻔히 있는 전도연을 어디다 갖다 버리라는 거야… 대체 이 사람이 왜 나를 캐스팅해서 이 고통을 주나. 감독님이 그러데요. “이창동과 전도연이 서로 갖고 있는 게 있다. 그것만 갖고 시장에 나가도 문제 없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럽지 않니? 우리가 만족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내가 만난 게 의미 있잖아.” 그게 ‘보통’을 향한 여정이었을까요. 보통 사람, 전도연.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산다고 하죠? 내가 그랬어요. 난 연기 하나는 진짜 내추럴하게 해, 그런 프라이드가. 근데 감독님이 “전도연, 연기 끔찍하게 잘해. 나무랄 데 없이 잘해. 근데 그게 다야. 그러니까 제발 연기하지 마.” 기가 막히죠. 충격에 무너지고 추락하면서 내가 나를 똑바로 봤어요. 김밥 하나 시켜도 참치김밥, 고추김밥 따져서 시키던 제가 나중엔 “전, 그냥 ‘보통 김밥’으로 사다줘요.” 그랬어요.
제 몸이 예쁜가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옛날엔 그냥 보통 몸매. 네, 골반의 형태도 종아리 라인도 변한 거 맞아요. 저, 운동 좋아해요. <해피엔드>끝나고 시작했으니까 8년 됐죠. 운동이 너무 좋아서 아침 먹고 운동하고, 점심 먹고 운동하고, 저녁 먹고 운동하고…, 공 차고, 산에 가고. 크리스마스에도 혼자 운동하고 첫눈이 올 때도 운동했어요. 사람들이 그러데요. “전도연씨 체육 영화 찍으시나 봐요?” 뭔가에 몰두하고 땀 흘리고 정당한 보상이 있고 그런 게 참 좋아요. 이젠 아파도 땀 흘려야 돼요. 하루라도 운동 안 하면 몸에 때낀거 같아서. 하하. 네, 이젠 오빠랑 같이 운동해요. 신부요? 오늘 촬영 컨셉이 ‘신부’라구요? 어쩌나. 전 웨딩 촬영도 귀찮아서 안 했어요. 제겐 신부의 환상이 없어요. 일하면서 화려한 것은 다 누려봤죠. 긴장되는 건 사진을 찍는다는 거. 중요한 일 앞에 두면 꼭 몸이 탈이 나서…, 나 카메라 앞에 서면 벼랑 끝에 몰린 거 같애. 점점 더 사진 속 내 모습에 자신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노메이크업에 안 예쁘게 나와도 용감해지는데, 그건 배역이 그런 거니까.
근데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환상을 주는 호사품으로 치장을 했는데도 별루면, 나 상처받을 거 같아. 전 옷을 잘 못 입어요. 잘 입고 싶은데 제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죠. 옛날엔 빨간색도 못 입었어요. 지금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틀에서 움직여 보는 거죠. 옷 잘 입고 싶어서 밀양에서 장윤주의 <스타일북>도 샀어요. 근데 그 책은 ‘이렇게 입으시오!’하는 교과서가 아니더라구. 하하. 난 응용력이 떨어져서 교본대로 해야 되는데. <프라하의 연인>때 ‘전도연 룩’이 유행하는거 보곤 신기했어요.
하지만 그뿐이죠. “아! 유행이야? 근데 이제 난 그 옷 지겨 운데.” 시들해져요. 패션을 연기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재주는 없는 거죠. 저랑 안 맞아요. 그래요. 저, 욕심 정말 많아요. 다만 제가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콘트롤 할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걸 넘어서는 거에는 욕심을 절대 안 부려요. 배우들은 외국 나가면 자유를 누린다고 하죠? 전 바보 같아지고 수동적이 돼요. 인천공항 돌아오면, 비로소 살 거 같아. 심지어 무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끼면 불안해져요.
차 안으로 돌아오면 ‘후~’하고 큰숨을 쉬어요. 네, 저는 친구가 별로 없어요. 여배우하고도 사적으로 술을 마셔본 건 문소리가 처음이에요. 인정해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해요. 전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살았고, 그만큼 남자를 의식했어요. 그런데 여배우들을 만나면 보호해줘야 할 것 같고, 양보해야 할 것 같고, 남자들이 예쁜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공황 상태가 돼버려요. 미숙 언니, 혜영 언니와 일을 하긴 했지만, 긴 대화를 나눠본 건 소리가 처음이에요. 맞아요. 난 사람 사귀는 방법을 몰라요. 누가 도와줘야 돼. 말이 끊기면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제 일상이 궁금하세요? 요즘엔 집을 개조하느라 바빠요.
청담동에 오빠가 혼자 사는 공간에 들어간 거라, 집안 구석구석 손 볼 일이 많아요. 냉장고엔 과일과 야채가 가득 차 있고… 질 좋은 고기도 먹을 만큼 채워져 있어요. 좋아요. 운동하고 뒹굴고 전화 받고 책 보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좋죠. 저, 소설책 읽는 거 좋아해요. 그리고 내가 읽는 소설책엔 반드시 멜로가 있어야 돼요. 난, 영화든 책이든 다 멜로가 있어야 돼요.
전도연 하면 ‘연기 잘하는 배우’, 그 다음엔 뭐냐? 없죠. 전 이미지가 없어요. 근데 전 어릴 때부터큰 이미지가 없었어요. 공부는 잘 못했지만 눈에는 띄는 아이. 새침하고 공주병 기질도 있고, 특별할 것없지만 선생님들이 예뻐하는 아이. 암기 과목 좋아하고, 가출이 너무 해보고 싶고, 하이틴 로맨스 읽으면 큰일 나는 줄 알지만, 생각으론 무시무시한 사고를 치는 아이. 자기를 끊임없이 여자라고 의식하는 아이, 그게 나였어요. 그런데 가끔은 저를 향해 막 욕을 해요. 못난년, 못된년. 저는 자신에게 관대하지않아요. 날 막 예뻐하지도 않죠. 운동할 때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다시피 해요.
이제 그만 치열함을 놓고싶지 않은가? 전혀. 전혀예요. 긴장감을 놓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한 단계 더 높은 도전거리를 원해요. 생각해보세요. 쉬고 싶은 생각이 들면 전도연이 아니지 않나? 무슨 말이든 해야 하나요? 세상이 성형제국이 돼서 반드시 다 뜯어고쳐야 되는데, “제발 이것만은 안 고치게 해주세요!” 청원할 수 있다면, 전 제 코를 보호할 거예요. 그리고 이마. 그래요. 코가 조금만높았어도, 이마가 조금만 좁았어도 지금의 전도연은 없었을 거예요. 다들 코를 높이라고 했지만, 전 약간 낮고 동글동글한 제 중심이 참 좋았어요. 또? 황진이, 장희빈, 사임당 중에 고르라면 전 사임당 할래요. 황진이와 장희빈은 너무 많아서 재미없어요. 요즘엔 인물이 재조명돼서 나오니까, 난 사임당 하고 싶어요. <스캔들>에서도 정숙한 숙부인 역을 했죠. 그래요. 제가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와 각각 멜로를 해본 유일한 여배우죠. <해피 엔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밀양>. 세 사람 다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에요.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만나 술을 마실 수있는 사람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우린 만나면 연기 토론 같은 건 절대 안하죠. 강호 오빠가 <밀양>이 전도연의 전무후무한 영화가 될 거다, 그랬다지만, 글쎄요. 종찬이와 신애가 정말 사랑을 하긴 한 걸까, 모르겠어요. 이젠 집에 가야 할 시간이네요. 네? <밀양>에서 신애가 살아가야 할 희망을 얻었느냐? 살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게 희망인 거 같아요. 너무 많이 잃어버린 사람은, 살겠다는 그게 희망인 거죠. 저요? 전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어요. 그럼 지금은 꿈이 있냐? 지금도 여전히 꿈이 없어요. 그래도 열심히 살아요. 치열하게 일하면서, 사랑하면서. 그게 나예요. 보통 여자, 전도연.
- 에디터
- 김지수, 손은영
- 포토그래퍼
- KIM SANG GON
- 스탭
- 스타일리스트/김누리, 헤어/귀정(이희 헤어&메이크업), 메이크업/김미진
- 브랜드
- 알렉산더 맥퀸, 미키모토, 미네타니, 프라다, 샤넬, 쇼메, 돌체 앤 가바나, 루이비통, 백지혜 웨딩, 랄프 로렌 컬렉션, 에릭슨 비몬, 이브 생 로랑, 지미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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