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티즈’라는 모험기
내일이 없는 것처럼 강렬하게 무대를 채우는 에이티즈는 오히려 내일을 궁금하게 한다. 한계를 깨부수듯 뛰어넘어온 에이티즈의 풍파 넘치는 모험기.
지난 1월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는 수만 개의 캐스터네츠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환호성을 지르면 안 된다는 방역 수칙에 따라 에이티즈(ATEEZ)가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해적왕’으로 데뷔한 이들은 바다의 보물인 조개를 떠올렸고 모양이 비슷한 캐스터네츠를 응원 도구로 제작했다. 산은 벅찬 얼굴로 그 순간을 전했다. “색다를 것이다 예상했지만 막상 들으니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없더라고요. 아, 정말 좋구나, 아름답구나 했습니다. 에이티니(에이티즈 팬명)의 진실한 목소리를 캐스터네츠가 잘 대변해줬습니다.”
‘THE FELLOWSHIP: BEGINNING OF THE END’는 2년 만에 지킨 약속이었다. 2020년 2월에 시작했던 공연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며 기약 없이 연기됐고, 투어 재개까지 2년이 흘렀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팬들과 생이별을 겪지 않은 뮤지션이 없지만 무대 에너지까지도 음악의 일부인 에이티즈는 더 애가 탔다. 다시 서울부터 미국 시카고, 애틀랜타, 뉴어크, 댈러스, 로스앤젤레스 투어까지 마치고 돌아와 “한 곡을 마치고 숨을 헐떡이며 암전되는 찰나까지도 반가웠다”고 하는 홍중의 말에서는 진심이 뚝뚝 묻어나왔다. 게다가 마지막 공연을 했던 LA는 데뷔 전 KQ 펠라즈로 연수를 갔던 곳이며, 공연장 더 포럼(The Forum)은 이들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마이클 잭슨, 데이비드 보위 같은 전설이 섰던 무대 아닌가. “더 포럼에 들어서면 그동안 공연했던 뮤지션의 이름이 양쪽에 쫙 새겨져 있어요. 공연장에 들어서니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의 오늘을 시간이 흐른 후 누군가 볼 수 있으니 ‘진짜 오늘 좀 멋있고 싶다’ 생각했어요. 이제 저희 이름도 거기 새겨집니다.”
월드 투어를 돌이켜보며 여상은 ‘Star 1117’을 부르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든 조명이 켜지고 에이티니 분들이 휴대폰 조명, 응원봉 빛을 켜서 흔들어주시는데 우주 안에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누구 눈에 눈물이 차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눈물의 색깔만은 같았을 것이다. 산은 에이티니와 재회하며 우리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다시 느꼈다. “해외에서 한국어로 ‘Light’ 떼창을 들으며 언어는 중요하지 않구나, 마음이 맞닿아 있으면 되는구나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무대장치나 효과를 잠시 내려놓고 목소리와 몸으로 온전히 채우는, 에이티즈 자체를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준비한 공연이었다. 그동안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지만 온몸으로 나누는 에너지는 여전히 그리운 존재였다. 홍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킹덤: 레전더리 워>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관객 없이 카메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해왔어요. 이번에는 ‘대면 공연의 묘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팬들이 정말 무대의 에너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개인곡도 없이 여덟 명이 다 같이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집중했어요.”
4세대 아이돌로 불리는 에이티즈는 데뷔 100일 만에 총 5개 도시를 도는 북미 투어를 개최했고 1년도 되지 않아 10개 도시 유럽 투어를 해낸 ‘글로벌 퍼포먼스돌’로 이름 높다. 국내 무대와 해외 무대를 거의 동시에 밟았고 이는 에이티즈가 급성장하는 동력이 됐다. 윤호는 첫 해외 투어 ‘Expedition’이 없었다면 지금의 무대 센스, 퍼포먼스가 만들어졌을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고 멤버들끼리의 호흡도 좋아졌으며 무대에서 소통이 더 원활해졌다고 말이다. 이는 지역마다 무대를 다양하게 꾸미는 센스와 지금의 노련함까지 이어졌다. 여상은 이번 공연의 예를 들었다. “그 지역에 뭔가 특별한 이슈나 문화가 있으면 무대에 반영하는 거죠. 스포츠 시즌이라면 야구의 효과음을 중간 멘트에 넣는다든지, 무대에서 농구를 하기도 하면서요.” 우주 화성 어딘가 스타디움에 떨어뜨려놔도 능숙하게 공연을 치러낼 듯한 음성이었다. 미국 <롤링 스톤>은 이번 공연을 본 후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온 K-팝 스타 에이티즈, 모든 것을 무대에 남겨두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2022년을 통과하는 뮤지션 대부분은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그 독창성을 설득해내는 뮤지션은 드물다. K-팝이라는 장르가 선명해졌고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던 시점, 에이티즈는 황무지에 거대한 깃발을 휘두르며 등장했다. 강렬한 비트와 사운드와 거친 랩과 극적인 보컬은 단숨에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여덟 멤버의 군무는 현대무용만큼 예술적으로 전달됐고 뮤지컬만큼 화려하게 펼쳐졌다. 뮤비든 무대든 쉴 틈 없이 빠른 전환이 이루어졌고 비장했고 웅장했고 거침이 없었다. 폭죽처럼 터진 강렬함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확장되는 세계관 속에서 에이티즈는 계속 강렬함을 선사했고 이는 곧 에이티즈의 정체성이 됐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내일이 없는 것처럼 무대를 채우는 여덟 명의 멤버였다. 데뷔 무대부터 빈구석이 없었다는 얘기에 산은 항상 모든 무대에 혼을 갈아 넣는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인드로 무대에 오른다고 입을 모았다. 무대에 밸런스를 부여하는 여상이 말했다. “에이티즈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다들 어떻게든 자기 파트를 살리겠다고 하는 눈빛이 있거든요. 우리 멤버들 진짜 대단합니다.” 엄청난 무대 몰입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하우를 들려줬다. “그 노래에 맞는 캐릭터를 생각해요. 전 최산이지만 노래에 따라서는 욕망에 가득 찬 사람일 수도, 세상 미치도록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제 안에 여러 모습 중 옷을 꺼내 입는다는 느낌이에요.” 직관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멤버인 성화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는데 무대에선 제가 아니어도 되거든요. 무대는 다 허락되는 곳이잖아요. 데뷔 때는 ‘나는 진짜 해적이야. 진짜 말리지 마’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끝나고 나면 내가 언제 저랬지? 신기해하고요(웃음).” 컨셉추얼한 곡을 전하기 위해 성화는 실제로 배우의 액팅도 연구했다. 어떻게 캐릭터에 빠져드는지 인터뷰도 모조리 찾아 읽었다. “배우든 가수든 모델이든 모두 예술을 하고 있으니까요. 편견이 없는 게 제일 중요하죠.” 몸이 부서질 듯 춤을 추는 이들의 무대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단거리 달리기도, 수영도 비할 바가 아니다. “무대에 오르고 나면 호텔에 진짜 기어서 가요. 욕조에 기어 가서 샤워를 하고요”라는 산의 말을 들으니 기량적으로 더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을 질문했을 때 “체력”이라고 답한 성화의 말이 정말 절실하게 느껴졌다. “요즘 체력에 고민이 많아졌어요. 노래 연습을 하는 것처럼, 춤 연습을 하는 것처럼 체력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이번 투어 전부터 체력 관리를 했는데 올해는 특히 좀 더 집중하고 싶어요.”
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무수한 과정 중 가장 즐겁고 치열한 과정은 역시 퍼포먼스를 만들어가는 단계다. 종호는 꼬이는 동선을 해결하기 위해 댄서 형들과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 같은 작은 순간이 모여 에이티즈의 무대가 된다고 말한다. 멤버들의 퍼포먼스에 대한 욕심을 확인하는 순간도 이때다. 산은 연습실 풍경을 들려줬다. “저희는 할 땐 하고 놀 땐 놀아요. 일에 관해서는 친구든 선배든 형이든 동생이든 스스럼없이 고쳐야 할 점,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상대방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않되, 말해야 하는 바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저희의 애티튜드고요.” 민기는 ‘욕심’을 팀의 장점으로 꼽았다. “멤버들 모두 의견이 많은 편이에요. 연차가 쌓이면서 포기하는 부분도 생길 수 있는데 저희는 진짜 사소한 거 한 가지에도 욕심을 내요. 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지. 이렇게 서로 능력치가 올라가서 레벨 업이 되고요.”
해외 팬덤으로 일으킨 화제성 때문에 데뷔와 동시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듯 보이지만 데뷔가 간절했던 과거가 없을 리 없다. 대화 중간 멤버들은 불안했던 그 시간이 여전히 무대에 동력이 된다고 했다. “오늘 이 무대를 할 수 있지만 내일은 못 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어요. 그 간절함이 저희의 빈틈을 많이 메워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산의 말에 우영은 데뷔 때를 돌아봤다. “저희를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죽기 살기로 하고 내려와요.” ‘독기’라는 말로 여상이 강도를 높였다. “어떻게든 우리가 힘을 합쳐서 K-팝 혹은 음악 시장에서 꼭 살아남아야겠다, 그런 독기를 다진 것 같아요.”
퍼포먼스, 보컬, 랩은 물론 물리적인 무대장치까지 꽉 찬 에이티즈의 무대를 보고 떠올랐던 단어는 ‘맥시멀리즘’이었다. 홍중은 같은 단어로 자신들의 음악을 설명했다. “의상도, 열정도, 멤버의 표현력도 진짜 맥시멀의 끝이에요. 에이티즈의 음악은 화려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보이고 그 안에 요소가 다양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해요. 처음에 듣고 ‘어, 세다’ 했다가 들을 때마다 이런저런 사운드가 새롭게 들리는 거죠.” 무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화려하구나’ 했다가 다시 보면 ‘어? 저런 제스처를 했다고?’ 또다시 보이고요. 멤버들 직캠 뜯어보면 뒤에서 막 눈 뒤집고 있고, 어디서는 혀 낼름거리고 있고 그게 또 묘미이지 않을까요(웃음).” 매 앨범에 자작곡을 실어온 홍중은 사실 에이티즈로 데뷔하기 전에 미니멀한 곡을 쓰길 좋아했다는 낯선 과거를 들려줬다. “적은 소리로도 꽉꽉 채우는 음악에 골몰했다니까요(웃음). 그런데 에이티즈 작업하면서 판타지 영화를 찾아보고 마블도 정독하기 시작했어요. 참고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다양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강렬한 무대를 선보이는 뮤지션이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은 ‘그다음’이다. 홍중은 공감하며 다음 앨범에 대한 힌트를 전했다. “데뷔 때부터 뇌쇄적인 강렬함도 시도했고, 개구진 강렬함도 시도했는데 쌓이고 나니 이제 어떤 장르를 시도해도 ‘이게 에이티즈구나’가 생겼어요. 다음 앨범은 ‘에이티즈의 스타일’을 한 번 더 깨고 싶어요. 이런 강렬함도 있다고? 할 수 있게요.” 민기는 구체적인 대안을 보탰다. “원래는 팝이랑 힙합을 섞었다면 EDM이라든지 록적인 장르를 섞어서 우리의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앨범 때 살짝 풀어줬기에 이번엔 좀 더 강렬하게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차별화된 세계관은 4세대 아이돌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떠올랐지만 에이티즈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TREASURE’ 시리즈는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사는 보물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긴 여행이었다. 5개 앨범으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던 모험은 ‘FEVER’ 시리즈를 통해 여정을 떠나기 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판타지 영화처럼 환상적이지만 그 가운데 자신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에이티즈가 있다. 마치 시리즈 소설처럼 에이티즈의 세계관은 연결되고 이어지고 확장된다. 산은 세계관에 대해 “멤버들도 완벽하게 알지 않고 오히려 유추해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에이티즈는 세계관 속에 주인공으로 존재하기에 결말을 모르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어차피 싸움에서 이긴다고 알고 있다면 보여줄 청춘이 어디 있겠어요. 저희가 그때의 심정이어야 맞는 것 같아요. 진짜 그냥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홍중에게도 세계관은 연구 대상이다. “제 음악 세계는 에이티즈 세계관을 만나기 전후로 나뉘어요. 사실 저는 에이티즈가 이렇게 강렬한 곡을 할 줄 몰랐어요. 연습생 때 사랑 노래도 썼는데 데뷔하고 사랑 노래 할 일이 없어요(웃음). 그래도 에이티즈에 세계관이 없었으면 이런 강렬한 노래를 듣거나 쓸 일이 있었을까요? 공부하는 느낌이고 그래서 엄청 좋아요.” 다채로운 서사는 에이티즈를 더 궁금하게 한다.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무엇을 찾아 헤매는 걸까. 이들의 항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대한 세계관을 갖고 있지만 에이티즈는 에이티니와 활발하게 소통한다. 데뷔부터 팬들에게 투표를 받아서 두 곡의 타이틀곡 중 활동곡을 선정한 ‘에이티즈 넥스트 송’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우영은 멤버들 의견이 한 번도 몰표가 된 적이 없다며, 타이틀곡이 매번 신기할 정도로 느낌이 다르다고 전했다. “‘INCEPTION’이나 ‘THANXX’도, ‘Eternal Sunshine’이나 ‘Deja Vu’도 아예 다른 곡이죠. 노린 건 아니지만 ‘에이티즈는 다 잘하는구나’라는 이미지를 심어드린 계기가 아닐까 합니다. ‘뮤비도 다 찍어놓았고 안무 연습도 했으니 고르시기만 하세요, 저희는 그걸로 할게요’였으니까요.” 사실 에이티즈의 음악 세계는 여러모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인상을 남긴다. ‘수록곡 맛집’이라는 댓글이 줄을 잇는데 음악적 스펙트럼이 대서양만큼이나 넓다. 윤호는 숨겨진 ‘이지 리스닝’이 많다고 소개했다. “3집이 특히 그런데 ‘ILLUSION’은 키치한 매력을 처음 보여드렸고 ‘UTOPIA’ ‘Eternal Sunshine’도 밝은 느낌이에요. 3집 이후 청량함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어요. 언젠가 노래에 좀 더 집중해서 여름에는 더 청량하게, 겨울에는 겨울 느낌이 가득하게 시즌 송을 해보면 좋겠네요.” 깔끔하고 시원한 춤선으로 에이티즈의 춤의 중심을 잡아주는 윤호는 지난 1월 공식 뮤비 조회 수 1억 뷰를 기록한 ‘WONDERLAND’가 에이티즈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돌아봤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처음이자 끝이다. <킹덤: 레전더리 워>에서 선보인 ‘WONDERLAND’ 무대는 에이티즈가 추구하는 3분 미학의 대표작이다. 여상은 숨은 명곡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Be With You’를 꼽았다. “처음에 가이드 나왔을 때 저녁이었는데 스스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언젠가 공연으로도 보여드리고 싶은 곡이에요.” 한편 에이티즈 음악의 절정을 책임지는 보컬 종호와 거칠고 낮은 톤으로 다른 결을 더하는 래퍼 민기는 자신의 마음과 가장 맞닿아 있던 곡으로 ‘야간비행’을 꼽았다. 종호는 “딱 그 가사 내용대로 위로받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실제로 녹음하면서 울컥하던 감정이 그대로 담겼어요.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소통하고 싶어서 가수가 됐는데 어릴 때 그 마음이 되살아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FEVER’ 시리즈가 끝났을 때 민기는 궁극적으로 “청춘이란 물음표에서 정답을 찾는 여행”이라는 얘길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문구는 ‘야간비행’의 한 구절로 담겼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장인 거 같아서 임팩트가 세게 남아 있어요. 여태까지 쓴 가사 중에 가장 의미 있는 문장이에요.”
에이티즈 음악에 서사를 더해주고 퍼포먼스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요소 중 하나는 패션이다. 이들을 보면 패션은 언어라고 했던 모 디자이너의 말이 떠오른다. 민기는 패션이 팀과 자신을 보여준다고 강하게 긍정하며, 음악과 의상의 일치율이 높았던 곡으로 ‘HALA HALA’를 꼽았다. “엄청나게 컨셉추얼한 곡이 흐르는 가운데 페도라를 쓰고 사슬 같은 마스크를 썼는데 신선한 인상을 더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옷을 같이 디자인하고 리폼한 ‘THANXX’도 개인적으로 애착이 남아 있어요. 김성재 선배님 패션에서 영감을 받아서 선글라스 등 당시에 유행하던 아이템을 많이 활용했죠.”
에이티즈는 ‘A TEEnage Z’라는 뜻으로 ‘10대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데뷔할 때 20대에 진입했던 이들은 방황할 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대로 가기 위해서는 10대가 시작이고 30대로 가기 위해서는 20대가 시작이지만 그 틀을 맞춰가는 데 제일 중요한 시기가 10대이기 때문에 저희 음악으로나마 힘이 되어드리고자 해요”라는 종호의 말에 유독 공감이 간다. 낯선 길을 더듬어가는 정서를 가사로 담는 멤버는 민기다. “딱 제 나이 때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야 하고 방향을 못 잡기도 하고요. 저희는 좀 더 일찍 일을 시작했으니까 내가 느꼈던 힘듦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알려주면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이 시절을 보내지 않을까 해서 진솔하게 가사에 담는 편이에요.”
신념을 지키며 뜨겁게 사는 게 ‘멋’ 아니냐는 에이티즈의 곡 ‘멋’도 있었지만, 여덟 명의 개성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뚜렷하게 다르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멋이 다르기 때문에 에이티즈라는 장르가 나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각기 다른 개성이 한 팀으로 어우러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고 그래서 저희 팀을 소개할 때 팔색조 같은 매력을 가졌다고 소개하곤 해요.” 성화는 멤버들마다 음악 취향이 분기마다 바뀐다고 해도 될 정도로 다이내믹하다고 했다. “요즘 전 록 장르를 음악적으로도, 패션으로도 굉장히 좋아해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런 무대를 한번 꾸려보고 싶고요. 저희 각자 음악 취향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 없고 다음 음악을 더 예측하기 힘든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이런 개성을 제외하면 “야망이 거대하지만 착한” 멤버들의 공통점이 남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역시 들려줬다. “인터뷰에서 어떤 선물을 하고 싶나요? 질문하면 서너 명은 답변이 똑같아요. 다른 질문에도 ‘이 얘기 누가 했겠지?’ 하면 분명히 했고요(웃음).” 멤버들이 스트레스를 다 같이 푸는 것도 장점이라고 우영은 덧붙였다. “뭘 계속 같이 하려고 해요. 누가 테니스 친다고 하면 ‘나도 칠래’ 하면서 같이 치고, 제가 자전거 탄다고 하면 산이도 같이 타고요. 영화 보러 간다고 하면 우르르 같이 가요. 연습생 때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잘 몰려다니는 거 보면 팀워크가 확실히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K-팝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오랜 시간 봐온 우리는 팀워크가 무대에 끼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합이 뛰어난 에이티즈의 무대는 사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이들의 관계와 다름없다.
3년 반 넘게 달려온 에이티즈는 실로 오랜만에 휴가를 다녀왔고 요즘 서로 “고생했다, 수고했다, 더 열심히 하자” 얘기한다. 다시 달려보자는 동료 사이의 안부 인사 같은 것이다. 그동안 활동을 그래프로 묘사해달라는 요청에 멤버들은 가파르지 않은 상승 그래프를 그렸다. 하강도 곡선도 없이 꾸준히 올라온 직선 그래프. 단 한 번도 성장하길 멈추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래프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고 예측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우영은 “빌보드에 가면 또 다른 목표가, 그래미에 가면 또 다른 목표가 앞에 생길 거예요. 그냥 계속 앞에 생기는 목표를 이루며 신화 선배님들처럼 오래 오래 활동하는 팀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목표를 크게 잡길 좋아하는 홍중은 끝을 설정하고 싶지 않지만 슈퍼볼 무대에는 서보고 싶다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에이티즈의 세계관은 더 확장하고 견고해질 테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소년들의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윤호는 자신들의 항해를 책에 비유했다. “지금 막 첫 장에 프롤로그 썼어요. 이제 2페이지 정도 왔어요. 어릴 때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에이티니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으니까 많이 남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웃음).” 산은 그 모험의 정체를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제가 스물넷이거든요. 청춘이 아직도 뭔지 모르겠고 가끔은 불안할 때도 있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친구들과 가족이 있고 에이티니가 있기 때문에 에이티즈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에이티즈의 거대한 깃발은 푸른 해원을 향해 계속 펄럭일 것이다. 자력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우리 앞에 섰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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