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이가 세상을 구하는 방법
칙칙한 세상에 우리를 구하러 온 미노이. 그는 언젠가 하늘을 찌르는 음악을 할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 ‘미노이의 요리조리’에 출연한 댄서 모니카와 립제이는 미노이(meenoi)에게 “귀여워!”만 연발하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영상 속 미노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간다. 힙합 신 뮤지션들과 안무인지 율동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춤사위를 보여주고, 엉성한 내용을 단호한 말투로 고민 상담을 하거나 반말로 엉뚱한 트집을 잡으며 게스트를 도발한다. ‘ㄱㄴ댄스’, ‘대파 살인마’ 등 웃음이 줄줄 흐르는 소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귀엽다’를 사람의 모습으로 시각화한다면 미노이로 조각될 것이다. ‘우리집 고양이 츄르’를 플렉스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신에 등장한 미노이는 하지만 착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해온 싱어송라이터다. 영상으로 처음 그를 접한 이들은 본업을 하는 미노이의 안정적인 보컬에 놀라고 독창적인 음악 세계에 충격받는다. 그리고 서서히 소용돌이처럼 미노이의 세계에 빠져든다.
귀여운 상상력과 창의적인 미적 감각을 믹서로 간 듯한 미노이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보그>는 토일렛페이퍼 밀라노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전시 공간을 촬영 장소로 삼았다. 그러고 보면 “내면적 공간에서 나온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정규 앨범 제목은 ‘In My Room’이었다. 물론 실제 미노이의 방에는 알록달록한 뱀이나 소스 범벅 스파게티는 없다. “완전 집순이여서 방에서 안 하는 거 빼고는 다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방에서 루미큐브도 하고요, 운동도 하고요, 옷도 입고요, 화장도 하고요, 텔레비전도 보고요. 제 방은 작지만 콤팩트합니다(웃음).” 방을 묘사해달라 청했더니 핵심을 짚었다. “거슬리는 것은 다 치워놓아서, 아끼는 물건만 있어요. 맘에 드는 물건이 나열되어 있는데, 거기에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이 섞이면 살짝 기분이 안 좋아지거든요.” 미노이는 촬영장에 버튼을 이용해서 스커트처럼 연출할 수 있는 근사한 팬츠를 입고 나타났는데, 그의 패션에 대한 우리의 관심 역시 음악만큼이나 높다. 포털 사이트에서 미노이의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뜨는 건 ‘미노이 선글라스’다. 기다란 타원형에 새카만 렌즈의 선글라스를 끼고 이곳저곳 출몰한다. 미노이는 자그마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선글라스를 쓰면 카리스마가 생기고요. 그리고 눈이 안 보이니까 약간 자신 있어지는 느낌? 그런 느낌이 있어요.”
3월 23일 미노이는 새로운 싱글 ‘Tea time’을 내놓는다. “무뎌지고 지치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오랜 연인과 추운 날 티타임을 가지며 다시 잘 지내보고자 관계 회복을 그리는 내용”을 담았다. “이제 봄으로 넘어가는데, 겨울이었잖아요. 오래전, 예를 들어 5년 만난 연인이 뜨뜻미지근해졌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감정을 계절에 비유해보자 해서 만든 곡이에요.” 티타임이 삶에서 발휘하는 역할에 동의한다. “차 마시는 걸 엄청 좋아하지는 않지만 추울 때 물을 끓이고 차를 내려서 따뜻한 걸 마시는 행위 자체가 아주 좋더라고요. 티타임은 뭔가 뻣뻣한 것들을 녹여줘요.”
미노이의 음악에는 사랑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이 고양이 털의 개수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사랑이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인가 물었을 때 “완전 그렇다”고 말했다. “저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정말 제게 디폴트예요.” 그렇다면 2순위는. “욕심이죠. 본인을 위한 이기심까지도요. 사랑하는 것도 이기적인 걸 수 있잖아요. 자기가 행복하려고 사랑하는 거니까.” 미노이는 ‘Tea time’에서 “널 미워하는 이유는 나한테 없어 사랑이 다 대신할 테니까”라는 구절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문장 같아요. 이 노래에서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은 문장이지 않나 해요.” 그 외에도 ‘삐끗삐끗’ 같은 가사가 나오는데 그간 살랑살랑을 비롯 말랑말랑, 졸졸, 빙글빙글 등 귓가에서 맴도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자꾸 나오는 걸 보니 선호하나 봐요. 수미상관은 약간 좋아하는 거 같아요. ‘너답기기안’이나 ‘우리 사랑을 만들어’ 같은 곡에서 처음이랑 끝을 되게 동일시하려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미노이는 자기 자신과 다름없는 곡을 아낀다. “곡 쓰고 나면 항상 뿌듯하죠. 완전 뿌듯해서 계속 곱씹고 계속 듣고 그래요.”
노래를 부르는 미노이의 음색은 몽환적이고 달짝지근하다. 솜사탕으로 귀를 간질이는 듯하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가사나 멜로디가 완전 정통 보컬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나 노래 잘해!’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오는 톤이에요.” 하지만 2019년에 내놓은 ‘하기 싫어’ 같은 곡에서 미노이의 목소리는 푸른 조명 아래 매캐한 재즈 클럽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다. 원래 음색이 어떻다기보다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에 따라 미노이는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넣고 뺀다. ‘Tea time’은 가만가만 기타 사운드와 함께 시작한다. 미노이는 기타를 다룬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칠 줄 안다고 말했다. 피아노도, 리코더도. 단소도, 트라이앵글도. 그중 가장 좋아하는 악기 소리는 기타다. “기타는 현악기지만 리듬악기에 가까운 거 같아요. 리듬적인 부분을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재밌어요.” ‘Tea time’은 십센치 권정열과 함께 했다. 로꼬, pH-1, 송민호 등 다른 뮤지션과 피처링을 주고받았을 때 그의 음악은 말랑거리는 무지개 클레이처럼 변신하곤 했다. ‘우리집 고양이 츄르를 좋아해’가 <쇼미더머니> 지원 영상에서 시작해 염따의 피처링으로 이어지며 실제 음원으로 발매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미노이는 힙합계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힙합이 제 음악에 끼친 영향이요? 분명 있지 않을까요? 힙합을 좋아하기도 하니까요. 듣기 재밌고, 노래랑 또 다르잖아요. 그런데 장르를 딱 국한시켜놓고 이런 음악 해야지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느낌이 나오다 보니까 어우러지면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해요.” 미노이는 이번 곡을 쓰면서 권정열이 부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 “권정열 오빠 노래를 제가 불렀을 때 되게 소화하기 좋겠다 하는 곡이 있었는데 반대로 제 곡을 권정열 오빠가 부르면 되게 좋겠다도 있었거든요. 실제로 서로의 노래를 불렀는데 완전 새로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너무 재밌었고, 작업을 함께 하게 됐어요.” 권정열만의 감성이 있다며 덧붙였다. “직접 말하진 않았는데 권정열 오빠는 약간 천재 같아요. 간지러운 구석을 너무 잘 긁어주는 느낌. 진짜 아무리 하고 싶어도 어려운데, 그걸 너무 잘해요.” 그는 과연 천재인가 노력파인가 골몰하는 미노이에게 당신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바로 ‘완전 노력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스타일이에요. 노력과 재능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마음속에 내린 적이 있는데, 노력이 재능이에요. 노력을 하니까 재능이 되거나 아니면 노력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실용음악과 진학을 준비하며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노래 부르던 과정에서부터 미노이는 ‘내 음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엄청나게 해왔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택한 방법은 곡을 쓰는 것이었다. “저만의 아이덴티티를 잘 담아내는 게 목표거든요. 뭔가 ‘비스무리한’ 느낌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요. 모두 제 바이브 안에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곡을 처음 쓰던 시절을 떠올려보며 이어 말했다. “근데 맨 처음 쓴 곡을 생각해보면 그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엄청 신기해요.”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들을 나열해달라고 하자 미디와 R&B를 가장 먼저 얘기했다. “R&B는 너무 재밌어요. 너무 뻔한데 너무 무궁무진해요. 아, 재즈도 추가할게요. 제 음악에 좀 자유로운 맛이 있는데 그런 느낌에 영향을 많이 주지 않았나 싶어요.” R&B와 재즈가 주는 소울이나 느낌을 미노이는 ‘가사’라는 수단으로 풀고자 한다. 단어나 구성을 정성껏 매만져서 얼핏 들어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가사에는 온몸을 휘감는 감정도, 사소하지만 신경 쓰이는 감정도 본격적으로 담겨 있다.
한편 음악을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재미있는 건 역시 시작하는 단계다. “빨리 다음 마디, 다음 내용, 다음 멜로디까지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요.” 일정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분량을 쓰는 소설가들처럼 작업 루틴을 가져가려고 한다. “웬만하면 계속 작업을 하려고 해요. 하기 싫은 날이 있고 하기 좋은 날도 있지만 계속해요. 매일 붙잡고 있지는 않지만 스케줄이 없으면 작업이 늘 할 일이에요. 작업을 계속 계속 생각해요.” 요즘은 여러 가지 곡을 많이 만들고 싶은 상태다. “안 해본 장르도 해보고 싶고 조금씩 해낼 수 있는 역량을 넓히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 기분을 끌어와서 곡을 만들고 있어요. 진짜 슬픈 것도 있고 진짜 덤덤한 것도 있고 ‘와! 신난다’도 있고 약간 앙큼한 것도 있고 귀여운 것도 있고 사랑스러운 것도 있고 그래요.”
미노이 음악의 또 다른 특징은 기획에 상당 부분 관여한다고 알려진 뮤직비디오다. 뮤비를 보며 그의 음악은 이미지까지 완성되어야 완결되는 게 아닐까 상상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했다. “곡을 쓸 때 ‘이런 장면이었으면 좋겠다’ 되게 많이 생각해요. ‘이런 느낌에서 내가 부르면 좋겠다’ 상상을 많이 해서, 뮤직비디오까지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Tea time’은 엄청 광활한 들판에서 선글라스 끼고 따뜻한 차 마시는 리릭 비디오 정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일이 점점 커졌어요(웃음).”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콘텐츠의 시공간이 엉켜 있는 시대, 유튜브 속 미노이는 바닷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만큼 자유로워 보인다. “맨 처음 시작할 때는 유튜브 자체가 너무 재밌고 웃긴 거예요. 취미로 유튜버 흉내를 내보자 시작한 게 점점 진심이 되어버렸어요. 자꾸 더 재밌는 거 만들고 싶고 빨리 올려야 할 것 같은 책임감도 생겨서 계속하고 있어요.” 이 시대의 ‘힙’을 보고 싶다면 미노이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보라는 기사도 있었는데, 직접 편집한다고 알려진 개인 채널 영상에서는 이상하게 그가 살아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1990년대가 진하게 풍긴다. “저는 진짜 센세이셔널하고 되게 현대적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다들 1990년대 스타일이라고 해요. 한참 뒤처진 걸까요, 너무 앞서간 걸까요.”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공통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더 미스터리한 답이 돌아왔다. “매끈함? 깔끔함? 똑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패턴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넣은 효과도 보면 복잡하지 않아요. 심플함이 베이스죠.”
AOMG 공식 유튜브 채널 ‘미노이의 요리조리’에도 얼굴을 내민다. 호스트가 되어 직접 음식을 요리하고 토크하며 게스트를 요리조리 파헤치는데 MC이자 인터뷰어로서 자질이 출중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두려움이 없고 상대의 특징을 캐치해내며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계속 소재를 던진다. “사실 유치원 때부터 MC를 안 해본 적이 없거든요. 학교 모든 행사, 심지어 대학교 때까지. 그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해요. MC가 잘 맞는다기보다 그냥 눈 떠보면 제가 하고 있어요. 시키면 막상 잘합니다(웃음). 그리고 제가 약간 장난꾸러기거든요. 장난치고 싶어서 근질근질한데 그런 면이 보이는게 아닐까요.” 귀여운 외모에 그렇지 못한 말투로 게스트를 도발하는 미노이는 과연 캐릭터인가, 실제 모습인가. “처음에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본캐랑 똑같다고 해서 ‘아, 연기가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영상 속 미노이는 거침없고 두려운 게 없어 보인다. “진짜요? 저 두려워요. 실수하면 어쩌나, 말실수하면 어쩌나, 미워 보이면 어쩌나 이런 걱정 항상 하거든요. 악플도 다 보고 상처받고요. 걱정도 많지만 그거보다 좋은 것들이 더 많기 때문에 그냥 웃는 자가 일류다 해요.” 그런데 이런 두려움이 본업에서 살짝 동력이 된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고 큰 걱정거리가 아니긴 해요. 근데 그 기준은 저한테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져요.” 미어캣처럼 세상을 기웃거리며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내고 있지만 미노이가 가장 잘하고 싶은 건 역시 본업이다. “멋진 음악을 진짜 많이 만들고 싶어요. 하늘을 찌르는 음악.” 일기장같이 솔직한 음악을 하는 그에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지금을 돌아보면 어떤 시절로 느껴질지 물었다. “되게 열심히 하는 시절로 생각날 거 같아요. 도장 깨기 하듯 한 만큼보다 조금 더 하면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해오기까지 방법을 아니까. 그래서 계속 계속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 (VK)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박배
- 패션 에디터
- 허보연
- 헤어
- 오지혜
- 메이크업
- 최민석
- 로케이션
- Hosted by Hyundai Card, Artwork by TOILETPAPER, Powered by Seletti, Special Thanks to MMBP & Associates
추천기사
-
리빙
침구 브랜드 밀로의 공동 창립자들이 꾸민 완벽한 침실
2024.12.08by 류가영
-
셀러브리티 스타일
겨울 룩에 더 빛을 발하는, 다재다능한 진주 목걸이
2024.12.10by 주현욱
-
리빙
리빙 편집숍 덴스크, 김효진 대표의 집
2024.12.03by 류가영
-
패션 트렌드
자세한 럭셔리! 20년 전 런웨이에서 배우는 '가방 꾸미기' 트릭
2024.12.11by 이소미, Emma Bocchi
-
패션 뉴스
루이 비통×무라카미 다카시 협업 에디션 기념 애니메이션 2
2024.12.10by 오기쁨
-
패션 뉴스
존 갈리아노, 메종 마르지엘라에 작별 고하다
2024.12.12by 오기쁨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