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도슨트] 권진규의 전시는 말이 없다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가’ 권진규의 전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는 말없이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권진규의 자소상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품고 살았기에, 어떤 생각으로 예술을 했기에,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그렇게 압도적인 자신의 형상을 빚어낼 수 있었을까요? 움푹 들어간 눈빛은 형형하고, 이목구비는 꼿꼿하고, 입매는 단호하고, 광대뼈는 서늘합니다. 동서고금의 숱한 예술가들이 자기를 그림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며, 살아남을 동력을 얻었지요. 하지만 권진규의 자소상은 이를테면 국보 240호인 윤두서의 강렬한 자화상보다 도발적이고, 예수를 닮아 더 유명해진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보다 강인한 자의식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권진규의 예술과 삶이 본질에 가닿고자 하는 절규에 가까웠기 때문일 겁니다.
5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는 권진규의 인생 마디마디마다 서린 예술혼의 결과물 총 240여 점을 펼쳐 보이는 자리입니다. 권진규는 ‘천생 미술가’인 동시에 훌륭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전시 제목은 1972년 3월 3일 자 <조선일보> 연재 기사 중 <화가의 수상>에 실린 시 ‘예술적藝術的 산보_노실爐室의 천사天使를 작업作業하며 읊는 봄, 봄’에서 인용한 겁니다. 노실은 가마 혹은 가마가 있는 방이라니, 작업실 정도가 되겠군요.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爐室에 화장火葬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悔改昇華하여 천사天使처럼 나타나는 실존實存을 나는 어루만진다”라는 문장을 나직이 읽다 보면, 권진규가 얼마나 속세를 벗어나 영원을 탐구하고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는지, 인간과 세상, 예술을 통합하려고 했는지가 느껴집니다. 고단하고 처절했을 그 여정이 손에 잡히는 듯합니다.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진 권진규의 작품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예수상부터 불상까지, 동물상부터 여성상까지, 두상부터 전신상까지, 조각부터 드로잉까지 그 경계 자체가 필요 없었죠. 지금 보더라도 그의 조각은 매우 원시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엄연한 구상이지만 추상적이며, 동양적인 동시에 서양적이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존재하고, 현세와 내세를 넘나든 존재입니다. 제정신으로는 살 수 없었던 강퍅한 시대상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예술에 대한 열정의 충돌로 완성된 작품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쉽니다. 자기 작품이 영원히 살아남기를 욕망한 권진규는 예로부터 썩지 않는다고 알려진 테라코타와 방부·방습·방충 능력이 뛰어난 건칠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51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노실’에서 스스로 죽어 ‘천사’가 됨으로써 피안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가사를 걸친 자소상’(1969-1970)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이 모든 시간을 다 겪으며 예술혼을 하얗게 불태우고, 오롯이 작품만 남긴 초월적인 한 남자의 영혼입니다. 심지어 자소상은 웃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이렇다 할 기념 동상 한번 의뢰받지 못한 권진규는 태어난 지 100년이 된 지금, 후대에 환대받고 있습니다. 위태로운 예술과 삶의 세계에 복무하는 스스로의 내면을 그려내고자 한 예술가의 의지를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우리는 권진규의 고독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번 전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세상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을 미술을 통해 대면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권진규의 말 없는 작업이 요즘 관객의 발길을 붙잡으며 그들을 울립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乾漆을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라 쓰던 예술가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 프리랜스 에디터
- 정윤원(미술애호가)
- 이미지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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