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닉 백] ‘잇 백’의 시작, 펜디의 바게트 백
배경은 한낮의 뉴욕 골목. 방향을 잃은 여주인공은 지나가던 남자에게 길을 묻습니다. 다가오던 남자는 갑자기 총구를 겨누며 그를 협박하죠. “가방 내놔!” 여자는 대답합니다. “뭐라고? 이건 바게트 백이라고.”
펜디의 바게트 백은 TV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의 이 장면과 함께 잇 백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기자 명단, 한정판, 웃돈, 리셀가, 오픈 런… 1990년대부터 시작된, 도저히 갖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 가방’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죠.
펜디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드에게 제품을 빌려준 최초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였습니다. 2012년 발간된 책 <펜디 바게트>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는 바게트 백 강도 장면을 두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순간이죠. 캐리 브래드쇼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동시에, 시리즈에 강력한 영향력을 부여한 결정적 순간입니다.”
그의 이야기처럼 캐리 브래드쇼라는 캐릭터는 여성의 소비 패턴을 바꿨습니다. 가방 하나를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규칙을 따르는 여성이 등장한 겁니다.
올해로 탄생 25주년을 맞은 바게트 백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만들었습니다. 펜디 하우스 창립자의 손녀로, 액세서리 라인을 이끄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1920년대에 할머니가 들던 구슬 장식 가방 컬렉션에 영감을 받아 1997년에 처음 바게트 백을 디자인했죠.
26×14cm의 사이즈에 짧은 가죽 스트랩이 달린 가방은 착용할 때 파리지엔이 기다란 바게트 빵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바게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어요. 립스틱과 쿠션, 카드 지갑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사이즈지만, 바게트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역사상 그 어느 가방보다 다양합니다. 소재, 컬러, 장식에서 모든 종류의 대담한 시도가 가능해 10여 년 동안 1,000개가 넘는 버전을 제작했을 정도니까요.
“바게트 백은 199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역행하는 가방이었어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이야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헬무트 랭, 요지 야마모토, 캘빈 클라인 등이 대세이던 시절이니까요. 가방의 경우 커다란 토트백이 강세였습니다. 에르메스의 켈리와 버킨, 구찌의 재키 등 뮤즈의 이름을 딴 가방이 주류를 이뤘죠.
펜디의 바게트 백은 이와 대조를 이뤘습니다.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에 예술적 대담함을 더한 가방은 화려하면서도 장난스럽고, 놀라우면서도 덧없이 예술적이죠. 그야말로 즐거움 그 자체라고 할까요? 이는 1925년 설립된 펜디 하우스의 우상과 관습을 거부하는 정신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말합니다. “바게트 백은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왔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오버사이즈, 크로스백이나 긴 스트랩 등 다른 형태로도 선보였지만, 이것들 모두 펜디의 DNA를 갖고 있습니다. 늘 새롭지만 항상 곁에 두는 데이 백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요.”
태생부터 아름다움의 다양성에 헌정된 가방, 바게트 백은 지난 25년간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지난해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사라 콜먼(Sarah Coleman)과 손잡고 1970년대풍 사이키델릭 감성을 표현한 바게트 1997이 그렇고, 올 초 로마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에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던 ‘핸드 인 핸드’ 프로젝트가 그렇습니다. 이탈리아 각지의 여러 공방에서 각 공방만의 기술로 재해석한 바게트 백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했죠.
펜디 여성복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와의 협업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두 번째 시즌인 2022년 봄/여름, 디스코 시대의 화려한 매력을 모던한 관점에서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였어요. 시대를 앞서간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안토니오 로페스(Antonio Lopez)는 이 시즌을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그의 우아한 일러스트는 카프탄과 실크 셔츠뿐 아니라 바게트 백을 수놓는 요소가 되었어요.
얼마 전 공개된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좀 더 다양한 바게트 백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캐시미어, 인타르시아 밍크, 시어링 퍼를 메탈릭 가죽으로 라이닝한 버전 등 바게트 백의 25주년을 제대로 축하하는 듯한 모습이에요. 이런 펜디의 행보가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1990년대 스타일이 다시 트렌드의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죠.
최근 HBO는 <섹스 앤 더 시티>의 후속 시리즈 <그리고 그냥 그렇게(And Just Like That)>를 공개했습니다.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 아니 사라 제시카 파커는 이에 펜디와 함께 바게트 백을 만들었고요. 푸시아 핑크 컬러 시퀸에 적갈색 가죽 스트랩이 달려 있고, FF 로고 버클로 잠그는 가방이죠.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다고요? 네, 맞아요. 그 유명한 ‘강도 신’의 바게트 백을 그대로 재현한 거예요.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1990년대 스타일의 귀환과 함께 잇 백의 시대가 다시 열릴지 말이에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바게트 백이 다시 날개를 달았다는 것!
- 프리랜스 에디터
- 이선영
- 포토
- Courtesy of 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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