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도슨트] 우고 론디노네가 만든 형광빛 수녀와 수도승
우고 론디노네가 만든 인공적이고 또 자연적인, 가장 신비로운 풍경. 개인전 <nuns and monks by the sea(바다의 수녀와 수도승)>.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가 3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nuns and monks by the sea(바다의 수녀와 수도승)>는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회색의 섬으로 발현됩니다. 전시장 자체를 작업으로 간주하는 작가답게, 천장과 벽, 바닥의 경계를 없애 오묘한 공간으로 새로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인공적인 색인 형광색의 옷을 입은 조각 <nuns+monks(수녀와 수도승)>를 세워두었죠. 몸체와 머리로 의인화된 이들은 말도 없이, 표정도 없이 제자리에 서서 관람객을 위한 길을 묵묵히 만들어냅니다. 2015년에는 인간의 형태를 한 청석 조각 다섯 점이, 2019년에는 거대한 태양을 형상화한 금빛 태양이 바로 이 공간에 자리한 바 있죠. 이번 전시의 주인공 수녀와 수도승은 햇빛을 차단한 어둑한 공간에서 현대적인 것과 원시적인 것의 상반된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예술로 탐구해온 우고 론디노네의 다채로운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있습니다. 무지개, 올리브나무, 태양, 물고기, 새… 특히 돌은 작가에게 매우 특별한 재료입니다. 그의 작업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물론 공공 미술로 특히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록펠러센터 광장에 세워진 아홉 점의 청석 조각 <human nature(휴먼 네이처)>는 인류애의 풍경을 펼쳐 보였고, 미국 네바다 사막의 대지 미술과 팝아트를 결합한 거대한 돌탑 <seven magic mountains(세븐 매직 마운틴스)>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특히 <nuns+monks>는 돌의 활용 방식이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요. 작가는 원하는 크기와 디테일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작은 석회암을 3D 스캔한 후 확대해 청동으로 주물을 떠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실제 간밤의 꿈을 작업으로 펼쳐놓는 것처럼, 몽환적이고도 신비로운 우고 론디노네의 미술 세계. 그가 초대한 수녀와 수도승은 자연과 인간 및 인공, 꿈과 현실 등을 직관적으로 대비함으로써 합리성에 대항하는 인간의 정신성을 강조합니다. ‘수녀와 수도승’이라고 칭하긴 했지만, 이는 딱히 특정 종교에 관한 작품은 아닙니다. “인간의 내적 자아와 자연의 세계를 다루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들은 깊은 내면으로 진입하도록 도울 뿐입니다. 색색깔의 조각을 눈으로, 물리적으로 본다는 것, 이 돌덩어리처럼 생긴 수녀와 수도승을 형이상학적으로 보고 느낀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관념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펼쳐놓았다고나 할까요. 작품을 직관적으로 감각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현대적인 숭고미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사유하게 합니다.
서울점과 부산점에서 동시에 열리는 전시의 제목 ‘nuns and monks by the sea’의 의미는 결국 부산에서 완성됩니다. 서울을 지키는 수녀와 수도승의 존재감을, 부산에서 선보이는 해 질 녘 바다의 풍경이 품어내죠. 하늘, 바다, 태양, 이 단출한 구성의 회화는 ‘매티턱(mattituck)’ 연작이라고도 부릅니다. 매티턱은 작가의 스튜디오가 있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지명이에요.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작가는 자신에게 큰 위안을 주던 일몰 풍경을 수채화로 그려냈습니다. 그림마다 달라지는 하늘의 색과 태양의 위치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시간의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일기를 쓰듯 살아 있는 우주를 기록합니다. 이 계절, 이 하루, 이 시간, 이러한 풀의 소리, 이렇게 부서지는 파도, 이 노을, 이러한 하루의 끝, 이 침묵.” 작가 특유의 시적 언어로 직조된 수녀와 수도승, 이들을 감싼 일몰의 신비로운 풍경은 고단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를 경험과 느낌의 세계, 성찰과 명상의 순간으로 이끕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 과잉의 시대를 극복하는 미술의 힘이 아닐까요?
- 글
- 정윤원(미술 애호가)
- 사진
-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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