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콘텐츠를 애정하는 이유
유튜브, 팟캐스트, TV에 정신건강 콘텐츠가 넘쳐난다. 정신건강에 지식과 애정이 있는 첫 세대가 만든 풍경이다.
최근 TV나 팟캐스트, 유튜브에도 전문의가 나오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꽤 오래 일한 나로서는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정말 정신건강 콘텐츠의 범람 아닌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종종 받는데, 그땐 정말 그렇구나, 라며 이유를 되짚게 된다. 유튜브에 ‘정신건강, 정신과 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을 검색해봤다. “작은 결정도 내리기 너무 어려워요.” “엄마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할 일을 너무 미루는 내가 싫어요.”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직장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다양한 고민 사연이 끝없이 뜬다. 사연을 보낸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아픔과 고민을 토로할 창구가 필요한 이들이 너무 많구나, 정신건강 관련 정보가 무척이나 간절하구나.
정신건강 전문의가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의 고민을 상담한 역사는 꽤 길다. 국내만 해도 30~40년 전부터 우리 일상을 함께한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유명한 원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출연해 사연자의 이야기를 상담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좀 더 다양한 세대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라디오 고민 상담 코너에서 활약했다. 5~10년 전부터는 정신건강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상담하는 팟캐스트가 조금씩 생겨났다. 나도 팟캐스트 <듣똑라>를 비롯해, EBS 고민 상담 라디오 <경청> 등을 통해 여러 상담을 경험했다. 당시 여러 청취자의 사연을 살피면서 ‘아, 고민이 참 많구나, 절박하구나, 모두 상담을 해드리고 싶다’란 생각을 했다. 그만큼 라디오 부스에는 감당이 버거울 만큼의 사연이 도착했지만, 그중 아주 일부만 회답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유튜브, 팟캐스트 등 창구가 다양해 더 많은 고민이 소화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팟캐스트에 이어 유튜브에 운영 중인 ‘뇌부자들’, 정신과 의사 형제 채널인 ‘양브로의 정신세계’, 독자 78만 명의 의학 전문 채널 ‘닥터프렌즈’ 역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포함한 세 명의 전문의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이곳에선 묻고 싶고 듣고 싶은 정신건강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쯤에서 궁금했다. 지금 우리는 왜 이리 간절한 고민,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까? OECD 국가로서 부족하지만 나름의 시스템도 갖추고 사회 문화 분야에 인정받아가는 과정인데 말이다. 내가 진료실에서 다양한 세대의 내담자(심리적 문제나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 상담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는 성과와 효율 압박이 강하고, 모두가 열심히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동일성의 압력도 강한 집단주의적 속성을 갖는다. 개인적 성향, 정서적 고통 때문에 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나약하다’ ‘유난하다’는 시선으로 본다. 그렇기에 쉽사리 고통을 토로하거나 지침을 구할 수 없다. 게다가 2000년대 이전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자체가 흉이나 편견으로 돌아와 참여를 망설였고 설사 진료를 받아도 주변에 숨기곤 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마주하고, 특히 많은 유명 인사가 자살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정신건강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또 학교 현장에 위클래스(부적응 학생을 위한 상담실) 등이 정례화되면서 지금의 2030세대는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덜 낯설게 여긴다.
지금의 한국은 세대 간 격차가 상당하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보면, 20세기 어른이 21세기 아이를 키워낸 시기인데, 꽤 많은 기성세대가 여전히 ‘우울증은 나약한 사람이나 겪는 것’ ‘우울증 치료를 밝히면 너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니 비밀로 해라’라고 말한다. 일부 기성세대는 본인의 정서적 어려움이나 감정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상대와 의견을 조율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신건강에 문맹에 가까운 일부 어른과 함께 가정·학교·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몇 년 전부터 여러 내담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본인이나 친구들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세나개)>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금쪽이)>를 열심히 시청한다는 것이다. 이를 듣고 정신건강 전문가이자 기성세대로서 가슴이 ‘쿵’ 했다. <세나개>나 <금쪽이>는 결국 섬세하고 따뜻한 양육과 상호작용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는 관계의 리더인 견주나 양육자를 교육한다. 이 프로그램이 젊은 층에 인기인 것도 결국 우리가 그런 상호 소통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고, 그만큼 절실히 원한다는 의미다. 젊은 세대는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공감을 받으며 조언을 구할 주변의 선배, 상사, 부모, 어른이 드물다. 용기 내서 말한다 할지라도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식의 답을 얻곤 한다. 그렇기에 주변 친구에게만 털어놓거나 혼자 앓는다. 전문 진료나 상담을 받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시도할 마음의 힘조차 바닥난 상태일 수 있다. 이런 이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여러 콘텐츠를 신청하고, 구독하고, 사연을 보내는 것 아닐까.
어떤 고통이 있는 사람은 그 내용과 감정을 인지하고, 수용하고, 공감을 받으며, 조금씩 행동을 바꿔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비록 방송의 일환, 컴퓨터 화면 너머일지라도 정신건강 전문가가 고민의 내용과 감정을 인지하고 질환의 기저나 심리학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인지, 수용, 공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만난 여러 내담자가 정신건강 상담 콘텐츠를 보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공감하며 안심했다고 말했다. 그런 콘텐츠 덕분에 용기 내서 내원했다는 이도 있었다. 그간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 ‘난 우울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약한 것 아닐까’ 하던 이도 자신과 비슷한 사례를 접하면서 진료나 상담에 용기를 낸 것이다. 또 현재 병원을 다닌다 해도 급격한 불안감과 고립감이 들면 나오기 쉽지 않은데, 그때 정신건강 콘텐츠를 보며 위안을 받고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만큼 누군가의 진실한 고민을 듣고 감정을 헤아리고 함께 좋아질 방향을 생각해보는, 공감과 연결의 힘이 있다. 이런 콘텐츠가 그런 연결을 원하는 사람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진료하는 의사 입장으로 돌아와본다면, 이런 콘텐츠를 다양한 세대가 함께 보길 바란다. 정서적 어려움을 겪거나 힘든 상황에 부닥친 사람에게는 일주일에 20분에서 1시간에 이르는 진료와 상담이 필요하지만, 그 밖의 나머지 시간을 함께하는 주변 사람과 사회의 지지와 수용도 굉장히 중요하다. 정신건강 고민 상담 콘텐츠를 통해 힘든 이들의 실제적 어려움과 바람, 도와줄 방법 등을 알게 되고 공유한다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당사자와 주변인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많은 보건기관과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고취’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이런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더 이상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나 개인의 영역으로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장애는 유전적 요소, 타고난 기질 등의 생물학적 요인·심리적 특성, 성장 과정 등의 심리적 요인·사회적 지지,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같은 사회적 요인, 이렇게 세 가지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나 심리 상담 치료에서는 약물과 상담을 통해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은 다루지만, 이 모든 갈등과 압력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요인은 적극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토록 정신건강 상담 콘텐츠가 유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사회가 살아내기 버겁고 외롭다는 것, 그래서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우리가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다가 정작 놓쳐버린 대화·포용·연결, 평가가 아닌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관계, 정신건강 분야만이 아닌 정치·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더 가까이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상담 치료에도 더 다양한 기관이 생기고 내담자에게 금전적, 제도적 지원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사과하고 싶다. 기성세대가 만든 세상이 답답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위 세대와 달리 정신건강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있는 첫 세대다. 그들이 조금 더 소통하는 문화를 요구하고 제안하면서, 조금은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VK)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 글
- 안주연(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저자)
- 사진
- 조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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