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할리우드’ 마동석의 성공이 말하는 것
<범죄도시 2>의 대성공으로 마동석의 주가는 천장을 뚫고 있다. 이건 배우 마동석뿐 아니라 제작자 마동석의 승리이고, 한국 배우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사건이다.
<미나리>(2020)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트로피를 건넨 브래드 피트에게 “우리가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브래드 피트가 <미나리> 제작자임을 아는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피트는 IMDb 기준 100편의 영화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고, <머니볼>(2011)과 <노예 12년>(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며, <노예 12년>은 수상에도 성공했다. 배우보다 제작자일 때 상복이 더 많은 편이다.
브래드 피트는 주로 드라마를 제작할 뿐, 그 영화에 자기가 출연을 하느냐 마느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반면 톰 크루즈와 드웨인 존슨은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액션 스타, 즉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캐스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작자로서 적극 활용한다.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이어 <탑건> 리부트까지 성공하면서 자기 얼굴로 연중 박스 오피스 돌려 막기를 할 기세다. 드웨인 존슨도 제작 필모그래피가 이미 62편이다.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드웨인 존슨은 배급사도 쩔쩔맬 만큼 커리어가 탄탄하고 발 넓고 돈 많은 셀러브리티이니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가 회사를 차리고 직접 작품을 개발하거나 제작, 투자하는 건 유별난 사례가 아니라 할리우드 고유 문화에 가깝다. <미나리>에는 브래드 피트뿐 아니라 주연으로 출연한 스티븐 연도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배우들이 제작을 겸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캐스팅과 스태프 구성, 근무 조건 등 제작 전반에 개입해 자신에게 유리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고, 원하는 역할을 확보하거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커리어의 보조 수단, 수익 창출이 목적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이런 목적으로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만 배우가 전면에 나서는 일은 드물다.
할리우드 배우들에겐 개인의 성취욕, 영화 사랑, 지인들과의 친목,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이나 선호하는 주제를 구현하려는 욕망이 제작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이 업계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예컨대 샤를리즈 테론, 리즈 위더스푼, 제시카 차스테인은 자신을 포함한 여배우들에게 다양한 배역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을 한다. <왕좌의 게임> 출연자 메이지 윌리엄스는 미투 운동 이후 제작사를 차린 젊은 여배우 중 한 명인데, 자신이 누린 기회를 다른 영화인들에게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미나리>는 유색인종 주연, 작은 드라마, 신인 감독이라는 투자와 홍보의 악조건을 갖춘 영화였지만 스티븐 연의 활약과 브래드 피트의 이름값으로 그것들을 돌파했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투자 배급사는 기존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기 마련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그 벽에 부딪혀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배우들이라고 제작이 쉬울 리는 없지만 그들은 적어도 투자사에 명함이라도 내밀어볼 수 있고 인맥도 있고 캐스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든든한 부업이 있으니 몇 년씩 이어지는 작품 개발이나 제작 실패를 견뎌낼 여유도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제작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고무적인 성과는 드물었다. 하정우는 <싱글라이더>(2016), <PMC: 더 벙커>(2018), <백두산>(2019), <클로젯>(2020) 제작에 참여했다. 그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건 CJ와 손잡은 대작 <백두산>뿐이었다. 정우성이 제작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는 개봉 전 화제 몰이에 비해 반응이 미지근했다. 문소리가 공동 제작한 <세 자매>(2020)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배우 문소리에게도 좋은 무대가 되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정재는 정지우 감독, 한재림 감독이 연달아 하차한 <헌트>(2022)를 이어받아 각본, 연출, 제작, 주연으로 참여했고,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었다. 이 작품은 아직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동석의 성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동석의 이미지는 21인치 팔뚝, 마블리, 명동 아트박스 사장(카메오로 출연한 <베테랑>(2015)에서의 캐릭터) 등으로 대표된다. 엄청 센데 함부로 폭력을 쓰지 않고, 무슨 짓을 하건 알파 메일로 받아들여질 자신이 있으니까 귀여운 언행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불의에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진짜 힘을 보여주는 강강약약 이미지. 최근 몇 년간 배우로서나 제작자로서 마동석은 그 이미지를 활용해 다양한 상업영화를 내놓았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다.
제작 겸 주연으로서 첫 히트작 <범죄도시>(2017)는 좋았다. <성난 황소>(2018)도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악인전>(2019)은 할리우드 리메이크 결정도 났다. 반면 <챔피언>(2018), <원더풀 고스트>(2018), <동네 사람들>(2018) 등에 대해서는 이미지 소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보통 배우들이 그런 우려를 듣는 건 위기의 징후지만 자기가 제작하고 자신을 캐스팅하는 마동석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범죄도시 2>는 이른바 ‘마동석 장르’, ‘양산형 마동석 영화’의 공식이 모두 담긴 영화다. 강하고 위트 있는 캐릭터, 맨몸 액션, 어딘가에서 실제 벌어질 법한 어두운 범죄, 통쾌한 승리가 있다. 할리우드식 캐릭터 액션물에 한국형 범죄물을 결합해 토착화하는 전략이다. 이건 마동석이 배우나 제작자로서 자기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치밀하게 연구해 꾸준히 밀어붙이고 대중의 기대를 얻고 흥행 감각을 익힌 결과다. 그는 배우로서 미국 영화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드라마 <트랩>, <악인전>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추진 중이다. 데뷔 못하는 지인들을 돕기 위해 기획, 제작을 시작했다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지인들뿐 아니라 한국 영화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배우 마동석이 제작자 마동석에게, 제작자 마동석이 배우 마동석에게 도움을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라는 배우들 스스로의 편견이 있다. 카메라 밖에서 마동석은 그 틀을 향해 우직하게 주먹을 휘두른다. 빗맞을 때도 있지만 가끔 묵직한 한 방을 날리면서 거기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 결과물이 다른 배우들에게도 용기가 되기를, 배우가 업계에 공헌하는 방식을 다각도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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