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Pistol>의 코스튬 디자이너가 펑크를 되살리는 법
드라마 <Pistol>의 코스튬 디자이너가 되살린 펑크!
펑크를 떠올려보면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음악이다. 귀를 찢을 듯한 기타 리프, 반항적으로 질러대는 보컬, 끈질기게 이어지는 4/4 박자 비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것이 바로 패션이다. 으르렁거리며 ‘God Save the Queen’ 가사를 씹고, 영국이 꾸는 꿈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고 선언하는(당시 영국 음악에서 가장 많이 검열되는 표현) 존 라이든(John Lydon)의 모습도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혔겠지만, 꼿꼿이 세운 모히칸 헤어나 찢었다 꿰맨 비비안 웨스트우드 티셔츠는 여전히 1970년대 후반의 스릴을 가득 담고 있다.
이것이 대니 보일(Danny Boyle)과 크레이그 피어스(Craig Pierce)의 FX 채널 신규 시리즈 <Pistol>에서 성공적으로 재창조해낸 급진적 미학이다. 이 시리즈는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하늘을 뚫을 듯이 급상승했던 인기(그리고 그만큼 빠른 몰락)를 그리고 있는데, 보일과 피어스는 섹스 피스톨즈의 신선한 음악만큼 패션이 이야기를 전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시리즈의 코스튬 디자이너 리자 브레이시(Liza Bracey)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음악을 먼저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패션도 제 생각엔 엄청 중요하더라고요. 펑크족이 다 트레이닝복 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들은 분명 트레이닝복을 절대 입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6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 시청자는 펑크의 극단적이면서도 과한 청각적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것이고, 여기에는 물론 의상도 함께 따라온다. 손가락질할 만한 스터드, 스트랩, 안전핀을 한가득 달고서 말이다. 하지만 브레이시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펑크족이 실제로 옷을 어떻게 입느냐가 아니라, 그들만의 미묘한 디테일까지 살린 룩을 정확하게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브레이시는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에는 ‘촬영 장면이나 화보에 있는 것과 똑같이 해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룩을 정확히 되살리기가 힘들더라고요. 펑크는 거의 DIY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베이에서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가 입었던 레인코트를 찾아내고, 틱택 과자 뚜껑까지 스타일링에 활용해야 했다. 그간의 수많은 어려움에 대해 브레이시와 <보그>가 대화를 나눴다.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고, 어떤 점에 끌린 거죠?
대니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연결점이 됐죠. 대니가 전화로 연락했을 때, 막 신이 났죠. 제가 어릴 때 섹스 피스톨즈가 활동했는데 그걸 즐기기엔 너무 어렸지만 엄청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나요. 조금 무섭기도 했죠(웃음). 일단 일이 정말 재밌을 것 같았어요. 특히 의상이라는 관점에서 말이죠. 아이코닉한 룩이 많다 못해 거의 한 트럭은 있잖아요.
대니, 크레이그와 함께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극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의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것들이 리서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가장 중요하면서도 우리를 겁나게 한 것은 대니가 당시 실제 촬영 영상을 쓰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의상은 당연히 완전히 똑같은 것이어야 자연스러울 텐데… ‘어떤 영상을 쓸지 이미 정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의상을 똑같이 복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죠.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어떤 걸 찾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뭐가 될지 몰라요!” 저는 비주얼 레퍼런스를 모아 타임라인을 만들었어요. 그 기간에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줘야 했거든요. 가능한 한 오리지널인 옷을 찾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오래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들 조 코레가 정말 멋진 몇몇 의상을 빌려주기도 했죠. 그리고 실제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에서 오래 일했고, 의상을 많이 보관하는 머레이 블루웻(Murray Blewett) 같은 분도 있었고요. 정말 도움을 많이 주었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었어요. “비비안이면 그렇게 안 하죠!” “비비안이면 여기서 이 옷감을 썼을 거예요” 같은 조언도 해주었고, 실제로 겪은 당사자만 가진 지식이 있었죠. 정말로 귀한 분이에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옷은 기술적으로도 아주 복잡하죠. 의상을 복각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셔츠에 그림을 그리고, 표백제에 넣고, 글자를 적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게 있었죠. 조가 어떻게 제작했는지 알려줬는데, 도움을 받아 제품을 새로 제작할 수 있었어요. 여기서 진짜 어려웠던 점은 같은 표백제를 이제 살 수 없다는 거였어요(웃음). 그래서 여러 제품으로 시도했어요. 마침내 딱 한 개로만 색을 제대로 뺄 수 있었는데, 바로 검은곰팡이 제거제였어요. 요즘 표백제는 그때처럼 세지가 않거든요. 이런 바보 같은 시도를 많이 했죠.
의상을 복각하면서 특별히 흥미롭거나 독특한 일이 있었을까요?
대부분 듣기 지루한 기술적인 일이에요. 제 어시스턴트인 필이 조그만 소재나 요소를 찾아오는 일을 했는데요. 특히 존 라이든이 입거나 옷에 붙인 것들을 담당했죠. 미국에서 희한한 카라비너 클립을 찾아오거나, 팔찌 같은 걸로 차던 사다리 체인 같은 것들을 구해왔죠. 원래 옷에 쓰이는 것은 없었고, 전부 1970년대 제품이었는데 이런 요소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하루는 필이 저한테 묻더군요. “저 어깨에 달린 게 뭘까요?” 며칠간 그 사진을 분석했는데, 딱히 결론이 나지는 않았어요. 그 뒤로 며칠 더 저를 괴롭혔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 어깨에 달린 게 틱택 사탕 상자 뚜껑에 안전핀을 단 것이란 걸 깨닫고는 바로 나가서 틱택을 한 통 사오더군요. 그렇게 의상을 완성했어요(웃음).
시리즈에서 사용한 것 중 찾아낸 의상과 다시 만든 의상이 어느 정도인가요?
운이 좋게도 줄리아라는 능력 있는 바이어를 알고 있어요. 옷을 찾아내는 데 아주 도사죠. 크리시 하인드가 아주 어릴 때, 반짝이는 줄무늬 레인코트를 입은 사진을 본 적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줄리아에게 “이런 거 찾아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죠. 똑같이 다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완전히 똑같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그냥 비슷하기만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며칠 뒤 줄리아가 돌아와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는 “찾는 게 이게 맞아요?”라고 묻는 거예요. 정말 완전히 같은 옷이었어요. 미국 이베이 판매자를 통해서 찾았다고요. 그렇게 늘 어떻게든 찾아내니, 줄리아가 찾아낼 수 없는 걸 발견하는 게 제 일인 것 같다니까요.
현시대가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보니, 옷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많이 필요했을 겁니다. 의상 디자이너로서 또 어떤 부담을 느꼈나요?
늘 제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에요. 모두 다 의견이 달라서 제 의견을 내세우는 게 겁나긴 해요. 그래서 몇몇 의상은 레퍼런스에 있던 것을 완전히 카피했어요. 그러면 적어도 “사진에 있는 거랑 똑같잖아!”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 아니고, 그냥 당시의 것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 의상에서도 굉장히 부담을 느꼈어요.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넘어서는 디자이너가 될 것도 아니고, 제대로 오마주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모방해야만 했어요. 제 시각을 투영하는 게 아니라, 실제 비비안 제품에 가능한 한 가까워야 하니까요.
크리에이티브 팀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대니의 모든 프로젝트에는 모두 긴밀하게 협업해요. 아주 가족적인 분위기죠. 그중에서도 저랑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이바나 프리모락인데, 헤어와 메이크업 담당입니다. 처음부터 따로 일을 분리해서 해나가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옷을 입히고, 이바나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 거죠. 두 사람 다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여기면서, 최종 결과물을 보면 ‘우리끼리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일하기에 참 이상적인 방식이지만, 가끔 시간 문제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있죠.
배우들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더 과감한 의상을 서로 입으려고 경쟁하지 않았나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들 어려서 뭐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다 좋게 받아들였어요. 그중에서도 존 라이든 역할을 맡은 앤슨은 굉장히 열정적이었어요. 촬영 중에도 특정 장면에서 어떤 의상을 입을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상에 대해 길게 의견을 나누기도 했죠. 실제로 연기에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존 라이든은 정말 해괴한 것들을 잘 입었죠(웃음). 하지만 앤슨은 늘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가 메이지 윌리엄스가 조던으로 변신했다는 것인데요. 조던은 그 자체로 패션 아이콘이었죠. 그리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메이지 역시 의상을 통해 캐릭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메이지는 정말 너무 멋졌어요. 앤슨처럼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용감한 사람이에요. 조던이 실제로 입은 의상이 많이 있었거든요. 출연진 모두 의상 준비 과정을 좋아했어요. 제 경력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피팅이었죠. 힘들기도 했지만,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드라마를 위해 리서치를 하면서 펑크 패션 전문가가 됐을 듯해요. 오늘날에도 접목할 만한 창의성이나 교훈이 있을까요?
일단 첫 번째로는 펑크 패션을 카피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예요! 실제 생활에서도 입은 옷이라면 분명히 굉장히 더러웠을 텐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깨끗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니 세트장에서도 옷을 망가트리는 일을 해주는 분이 있을 정도였죠. 대니가 계속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나요. “더 더럽게! 더 더럽게 해주세요!” 하지만 카메라에서는 굉장히 깨끗해 보였어요. 이 드라마를 폴 쿡(섹스 피스톨즈의 드러머)과 함께 보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진짜 새거니까 새것같이 보이는 거죠! 가게에서 바로 사오자마자 입었다고요.” 그 말을 듣고는 위안을 받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펑크 스타일을 통해 창의력이 더 증진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옷이 아닌 것들을 보고도, 옷이 될 수 있겠다고 여기게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것들을 모아서 스스로를 치장하는 까치 같은 모습은 좋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뭔가 맘에 안 든다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흠, 이거 쓰레기 같네’라고 말하고 바꿔버리는 게 좋다고 봅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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