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미술가를 ‘승자’로 조명하는 시대의 도래
여성 미술가를 ‘승자’로 조명하는 시대가 온다.
‘여성 현대미술가를 재조명·재평가하고 역사 속에서 마땅한 명예를 되찾아줘야 한다’는 시대적 열망은 1960년대 후반 북미 페미니스트 혁명과 함께 태동했다. 2010년대 중·후반에 되살아난 이 흐름은 202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대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71년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발표한 에세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는 많은 이에게 개안의 기회를 주었고, 지금까지도 발전적 논쟁의 기회를 제공한다.
1970년대 이래 미술사에서 여성 화가와 조각가를 찾아내고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지속되는 가운데, 위대함의 기준을 여성의 입장에서 재설정하려는 노력, 즉 기존 관점에서는 미술 창작으로 높이 평가되지 않은 수공예 영역 등을 재조명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 미술인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술계와 시장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진보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0년대 후반까지는 그랬다.
노클린 박사는 1976년 LACMA에서 <여성 미술가들: 1550-1950(Women Artists: 1550-1950)>이란 기념비적 순회전을 공동 큐레이팅했는데, 초청된 여성 작가가 83명에 출품작은 약 150점에 달했다. 유럽과 북미 일색이라는 한계도 안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가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이탈리아 볼로냐의 매너리스트 화가 라비니아 폰타나,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명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에서 출발해,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라헬 라위스,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등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서사는 지금도 큰 변화 없이 여성 미술사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미국의 신여성 인상파 화가 메리 카사트, 스웨덴의 신지학파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 미국의 원조 페미니스트 화가 조지아 오키프, 미국의 할렘 르네상스 조각가 오거스타 새비지, 멕시코의 현대화가 프리다 칼로, 프랑스 출신의 초현실주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캐나다의 은둔형 레즈비언 추상화가 애그니스 마틴, 미국의 개념적 미술·비평 미술가 스터트번트,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자 헬렌 프랑켄탈러,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미술가 베티 사, 일본의 사이키델릭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미국의 개념 미술가 에이드리언 파이퍼 등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정치적으로 더 올바른 역사를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거장으로 재평가됐다. 최근엔 이러한 명예의 전당에, 환경 문제에 주목하는 칠레의 미술가 세실리아 비쿠냐, 독일의 전위 조각가 카타리나 프리치, 영국의 탈식민주의 비평 미술가 소냐 보이스, 미국의 여성주의 도자 조각가 시몬 리 등이 새로 입성했다. 그러나 미술계와 미술 시장의 여성 차별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아트넷(Artnet)과 인어더워즈(In Other Words)의 2019년 공동 조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북미의 주요 미술관 26곳의 신규 소장품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은 11%에 불과했다. 전체 전시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업 비율은 14%에 그쳤다. 여성 차별이 개선되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수치로 봤을 때 아직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했다.
아트넷과 인어더워즈의 공동 조사 결과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수치는 국제 경매 시장에서 여성 작가의 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에서 나왔다. 2008년 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국제 경매 기록을 총괄했을 때 여성 작가의 작품은 2%에 불과했던 것. 경매 시장을 통해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2%는 눈을 의심케 하는 충격적 수치였다.
즉 주요 미술관에서 여성 작가의 재조명과 재평가에 홍보의 초점을 맞추고,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미술사적 연구 성과와 그에 화답하는 언론의 조력으로 여성 차별이 꽤 많이 개선된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왔지만, 실제로는 거의 그대로인 셈이다. 최근 소더비의 몇몇 이브닝 세일즈에서 유색인종 여성 작가의 작업물이 고가에 낙찰되는 등 새바람이 일었지만, 여전히 연간 낙찰 총액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실태는 어떨까? 아예 미술 시장의 통계 자료가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국공립 미술관도 아직 여성 작가의 작품을 어느 정도 소장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예외가 서울시립미술관 딱 한 곳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0년 소장선 연구에 따르면, 전체 소장품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은 24%였다. 국제 평균치에 비하면 높은 편이었는데, 이는 김홍희 관장(2012~2017년 재임) 시절부터 여성 작가에게 비교적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2019년부터 재임 중인 백지숙 관장의 리더십 아래 2020년부터 ‘여성 작가의 사진 작품’ 혹은 ‘여성 한국화가의 주요 작품’ 등을 기획 공모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개선 노력을 기울인 결과 올 초의 통계 자료에선 전체 소장선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이 25.6%(총 5,654점 가운데 1,446점)로 유의미하게 늘었다. (남성 작가의 작품은 소장 작가 1,850명 중 1,233명으로 67%에 달한다. 여성 작가는 587명으로 31.9%이고, 나머지는 20명의 그룹·팀으로 1.1%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렇게 애를 써도 1년에 1%의 증가에 그친다는 사실은 급진적인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난해 6월 큐레이터 체칠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가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서 전시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 Il Latte dei Sogni)’라는 제목을 앞세우며 그가 강조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비남성) 육체의 재현과 그의 탈바꿈, 개인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신체와 대지의 연결성. 사실상 현대미술이 비남성 주체의 육체를 어떻게 다뤄왔는가를 총괄하며 초현실주의에서 포스트 휴먼 담론을 거쳐 환경 정의와 지속 가능성 등을 추구하는 오늘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로이 써 내려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총감독이 지난 2월 최종적으로 확정된 참여 작가 목록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거의 철저하게 여성과 젠더 비순응 작가 중심이었는데, 대략 여성이 9할이었던 것. 본전시 초청 작가가 213명인데 남성은 21명이었다. 본전시 참가 경력이 전혀 없는 작가가 180명이었으니 그 또한 놀라웠다. 1980~1995년생 구간에 속하는 청년 작가의 수는 58~60명 정도였고 그 가운데 정금형과 이미래가 있었다.
이렇게 강경한 탈남성 중심주의적 경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레마니의 강력한 의지 표명 외로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구겐하임 미술관의 인종주의를 고발한 셰이드리아 라부비에의 낸시 스펙터 퇴진 운동, 마약성 진통제 사업으로 부정한 돈을 벌어온 새클러 가문의 이름을 미술계에서 퇴출하는 운동(낸 골딘 등이 주도) 등의 종합적 흐름이 모종의 ‘정의 구현’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이런 긍정적 변화에 가속이 붙었다. (미국의 경우 주요 미술관의 리더에서 백인들이 밀려나고 유색인종 큐레이터와 이사진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여성과 젠더 비순응 작가 중심의 전시를 만든 알레마니는 이번 비엔날레를 ‘페미니스트 전시’라고 부르기는 주저한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라는 호칭이 여러 문화적 맥락과 상황에 따라 상이한 대상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전시에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규정하는 이들이 다수 포함됐지만, 알레마니는 기존 페미니스트 미술사의 얼개(린다 노클린 등으로부터 연원하는)에서 자유로운 판단 유예의 공간을 추구하는 길을 택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알레마니가 본전시에 초청한 35세 이하의 여성 및 젠더 비순응 청년 작가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1995년생 심니키웨 불룽구(Simnikiwe Buhlungu)가 최연소였고, 1993년생은 암브라 카스타녜티(Ambra Castagnetti), 자데이 파도주티미(Jadé Fadojutimi), 쿳자나이 바이올렛 흐와미(Kudzanai-Violet Hwami), 브론윈 캐츠(Bronwyn Katz), 타우 루이스(Tau Lewis), 젠더 비순응 작가인 프레셔스 오코요몬(Precious Okoyomon) 등 여섯 명이었다. 1991년생은 한나 레비(Hannah Levy) 한 명이었고, 1990년생은 젠더 비순응 작가인 제스 판(Jes Fan), 슈앙 리(Shuang Li) 두 명이었다. 1989년생은 키아라 엔초(Chiara Enzo), 산드라 무징가(Sandra Mujinga), 젠더 비순응 작가인 엘 페레즈(Elle Pérez) 세 명, 1988년생은 줄리아 첸치(Giulia Cenci), 이미래, 제냐 마크네바(Zhenya Machneva), 라파엘라 보겔(Raphaela Vogel) 네 명, 1987년생은 펠리페 바에자(Felipe Baeza), 자미안 줄리아노 빌라니(Jamian Juliano-Villani), 캐롤린 라자드(Carolyn Lazard), 타오 응우엔 판(Thao Nguyen Phan), P. 스태프(P. Staff) 다섯 명이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주목받는 문제적 작가라면, 프레셔스 오코요몬, 제스판, 엘 페레즈, 자데이 파도주티미를 꼽아볼 수 있다. 영국 런던 태생의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프레셔스 오코요몬은 육체의 연장으로서 환경을 마술적 리얼리티로 재포착해 구현하는 복합 미디어 예술가다. 자연관뿐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나 자신을 제시하는 방식에서도 기성 작가와 크게 다르다. 장르나 매체를 가리지 않는, 한마디로 새로운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성장한 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홍콩계 캐나다인 제스 판은 테스토스테론을 매개 삼아 자신의 트랜지션 과정과 복합 미디어 실험을 혼성 실험하며 유동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미술가다. 역시 정체성 정치학에서 탈궤하면서도, 몸의 정치학을 재규정하며 가시적·물리적 유동성과 정체성을 추구하고 실험하는 새로운 타입이다.
미국 브롱크스 태생의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엘 페레즈는 젠더 플루이드 시대의 성 소수자 청소년·청년 공동체를 탐구해온 사진가다. 특유의 차분한 시선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고찰하고 재현해냄으로써 구식 LGBTQ 정치학과 퀴어 미학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위악적 캠프 같은 요소마저 내밀한 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포착해내는 모습은 볼프강 틸만스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일단 속한 세대가 다르니 결과물도 상이할 수밖에.
반면 영국 런던 태생의 아프리카계 영국인 자데이 파도주티미는 일본 망가·아니메에 빠져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모에 추상화(캐릭터의 성격을 띠는 유기적 전면 추상화)를 창조해온 매우 독특한 경우다. 일본 체류를 통해 환상을 벗어던졌다고 하면서도 종종 코스프레를 즐긴다. 역시 새로운 타입이다. 그의 붓질에선 9번가 여성 추상표현주의자에 비견할 만한 거장의 면모가 보인다. (VK)
아래는 지난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예상가를 뛰어넘으며 낙찰된 40세 미만 여성 작가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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