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니엘의 유리구슬이 말하는 것 #친절한 도슨트
2022년 여름, 서울의 풍경은 덕수궁 작은 연못에 핀 ‘황금 연꽃’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은 몇 년 전부터 한국을 종종 오가면서 연꽃을 알게 되었고, 꽃말인 ‘고귀한 생명력’과 ‘지혜’에 크게 감명받아 연꽃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종종 소개했지요.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혼란한 세상에 던져진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요. 게다가 전시장 밖 세상에서 이 동양적인 꽃의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건 처음이라 더욱 귀한 꽃입니다. 이맘때면 수면에 가득 피어 있는 노란 어리연꽃과 함께 덕수궁의 풍경을 바꾸어놓는 ‘황금 연꽃’은 지난 2011년 (지금은 없어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의 개인전 이후 11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오토니엘의 대규모 개인전 <정원과 정원>의 마침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의 야외 조각 공원에서는 ‘황금 목걸이’가 관람객을 환대합니다. 소장가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목걸이 형태의 작품이 나무 사이에서 마치 우리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 같습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금빛 회화 ‘루브르의 장미’가 고요하게 위용을 떨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에 인색한 루브르 박물관이 이례적으로 소장을 발표하며 화제가 된 이 작품은 오토니엘이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해 루벤스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만든 겁니다. 영광을 이어가기라도 하듯 그는 서울 전시를 위한 회화 ‘자두꽃’을 새로 제작했는데, 덕수궁 내 건축물에 사용된 문양에서 착안한 작업입니다. 중앙 공간 바닥에는 푸른색 유리벽돌로 이루어진 ‘푸른 강’이 넘실거리고, 그 위에는 작가의 전매특허인 수학적 매듭 형상의 조각이 별을 이루며 떠 있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푸른 강’ 옆에서는 ‘프레셔스 스톤월’이라는 연작이 길을 밝혀주고 있지요. 다양한 명도와 채도의 빛이 서로 반사되는 이곳에 있다 보면 미술관 밖의 세상을 잊게 될지도 모릅니다.
유리구슬과 유리벽돌은 오토니엘의 작업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재료이자 가장 핵심적인 조형 언어입니다. 형태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유리는 현대미술사에서 공예적인 재료로 분류되어왔지만, 오토니엘은 재료의 가치를 차별하지 않았고, 유리로 만든 작품이 온전히 미술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지요. 게다가 유리구슬은 장인들이 날숨으로 만들어내는 재료이기에 각각은 흠과 균열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런 구슬이 함께 모여 고유한 빛을 발합니다. 오토니엘은 유리의 다각적인 특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이를 작업에 적극 활용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되었든, 희망이 되었든, 그는 유리구슬 하나, 유리벽돌 하나로 이 쉽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오는 8월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야외 조각 공원과 덕수궁 연못 등에서 선보이는 전시 <정원과 정원>의 제목은 “실제 복수의 전시 장소를 지칭하면서 또한 예술로 재인식하게 되는 장소와 작품을 거쳐 관객의 마음에 맺히는 사유의 정원을 포괄”합니다. 모두들 저마다의 마음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갈 겁니다. 예술을 통해 오토니엘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에 존재하는 숨은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이끕니다. 어디서나 반짝이는 그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아름답지만 보이는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의 작품 표면은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현실을 담아냄으로써 그 세상의 이면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현시대가 원하는 아름다움과 영원히 변치 않은 아름다움, 표면의 아름다움과 이면의 아름다움, 그 간극과 조화에 대한 오토니엘식 정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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