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타운하우스
어덤 모랄리오글루와 건축가 필립 조셉의 블룸즈버리 타운하우스가 이 두 남자를 연상시키는 활기차고 컬러풀한 작품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백묵같이 흰 벽, 카펫을 깔지 않은 계단과 패턴 없이도, 섬세하게 복원된 조지아 시대 골조에서 온화한 인간미가 묻어난다.
“여기는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죠.” 부엌에 서 있던 패션 디자이너 어덤 모랄리오글루(Erdem Moralıoğlu)와 필립 조셉(Philip Joseph)이 자신들의 집이 된 블룸즈버리(Bloomsbury) 타운하우스의 역사를 즐겁게 설명해주었다. 1827년에 건축된 이 집을 1860년에 한 자선단체가 매입해 ‘의탁할 데 없는 빈곤층 여성을 위한 희망의 집’으로 탈바꿈시켰다. “정원에 세탁소를 지었죠.” 어덤이 말했다. “그 여성들이 그곳에서 일했죠.” 기록에 따르면 1892년경 3,216명의 여성이 그곳에 입소했다. 이런 뒷이야기를 굉장히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덤에게는 딱 맞는 이야기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회 인류학자이며, 과거의 울림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덤의 컬렉션 하나하나가 19세기에 활동한 마리안느 노스(Marianne North), 이탈리아계 미국인 공산주의 활동가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코튼 클럽(Cotton Club)에서 가진 여왕과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가상 만남 등 인본주의적 이야기를 담아낸다. 캐릭터와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영감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들의 현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공원의 게시판은 빅토리아 시대에 이성의 옷을 입었던 파니(Fanny)와 스텔라(Stella)를 기린다. 이들은 바로 어덤 2019 S/S 컬렉션의 주인공들이었다. 어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매료된다. 그래서 커플의 집을 가득 채운 초상화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벽 대부분을 채운 그 얼굴들은 아래쪽을 응시하고, 초상화마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필립은 동생 피트(Pete)와 함께 스튜디오 P. 조셉을 운영하는 건축 디자이너다. 어덤이 수집가라면 필립은 장인이다. 커플은 1990년대 초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 재학 시절 만나 2019년 이니고 존스(Inigo Jones)가 그리니치에 건축한 퀸스 하우스(Queen’s House)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 모두 쌍둥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연결 고리가 됐을 수도 있다. 필립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분위기를 지닌 인상적인 공간을 디자인한다. 그는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디테일을 마무리한다. 또한 2015년에 어덤의 메이페어 플래그십 스토어를 디자인하면서 짝꿍 어덤이 지금까지 선보인 디자인의 활달한 뮤즈이자 난해한 ‘그녀’에게 어울리는 공간을 기적적으로 만들어냈다. 예술계와 패션계 고객이 필립을 찾자 그의 스튜디오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고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죠.” 커플의 집이 어떤 모습일지 예상한 사람들은 놀랄지도 모르겠다. 텍스타일도 색채도 거의 없다. 소파 하나에 씌운 커버를 제외하고, 그 어디에서도 패턴이나 프린트를 찾아볼 수 없다. 4층 구조인 이 타운하우스는 텍스처, 프린트, 생동감으로 잘 알려진 두 디자이너에 비해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로 꾸밈없다. 그 집은 우아하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차콜 드로잉과 닮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거리낌 없다. 시각적 혹은 물리적 어수선함이 없어서, 모든 것이 증발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집의 차분함과 고요함은 힘든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인다.
“집이 다시 온전하게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그렇지만 과하게 복원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죠.” 필립이 설명했다. 그것은 분명 복원이다. 재단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조지아 시대 건축물의 골조가 훌륭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집에서는 그 골조 모두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강조하기 위해 전체를 화이트 페인트로 칠했다. 오리지널 소나무 바닥을 세심하게 수리해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는다. 몰딩이 멀쩡하다. 계단 가장자리와 난간은 브라운 컬러로 페인트칠했고, 계단 판 중간 부분은 원래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결정을 첫눈에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점이 합쳐져서 강렬한 효과를 낸다. 집이 정말 온전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꾸밈이 없다. 진실하고, 공손하며, 현대적이다.
“이 집의 소유자라기보다 관리자라는 점이 중요하죠.” 어덤이 말했다.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돌본다는 것은 필립이 이 집을 진지하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디테일한 것들을 놓고 고민한다. “부엌이 없었을 때 샤워 타일 배치 기술을 연습한 것 때문에 어덤이 저에게 살짝 질렸죠.“ 필립이 인정했다. “예, 맞아요, 헝가리 요양원에 있는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덤이 덧붙여 말하더니, 18세기에 만든 오리지널 ‘문손잡이 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손잡이 뒤쪽 벽에 구멍을 파고 황동으로 안을 댄 것이 바로 문손잡이 주머니로, 문이 벽에 닿았을 때 평면적으로 연결되게 해준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조지아풍이다.
“본래의 틀은 날것 그대로지만 벽은 무던하죠. 그것은 우리가 편하게 쉴 수 있고 대조되는 것을 즐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필립이 말했다. 그가 구조적으로 심플한 목공 제품에 대해 언급했다. 흥미롭게 믹스된 가구가 마룻바닥에 놓여 있고, 위풍당당해 보이지만 희귀하거나 값비싸 보이지는 않는다. 살짝 친숙한 스칸디나비안 의자와 체스트가 클래식보다는 난해한 느낌을 준다.
요세프 호프만(Josef Hoffmann)의 스콘 조명과 카를 아우뵈크(Carl Auböck)의 작고 독특한 작품이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Michael Anastassiades)의 눈에 띄는 조명과 제품 곁에서 세련된 비엔나 스타일을 연출한다. 높게 자란 몬스테라와 노구치(Noguch) 스탠딩 램프 옆에 놓인 편안한 올리브색 코듀로이 소파는 중세 모던 삽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웨스트 요크셔의 헤인스워스(Hainsworth) 양모 공장에서 제작된 당구대의 녹색 커버를 씌운 암체어 두 개가 박진감 넘치는 컬러를 보탠다. 정밀하면서도 심플한 인테리어 접근법이다.
이 커플은 예전에 살던 이스트 런던 집에 놓으려고 일본 히노키 욕조를 구매했다. “우리에게 그건 입에 올리기 싫은 이야기입니다.” 필립이 말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했더니 욕조에 균열이 생겼더라고요.” 이 집 지하에서 새 둥지를 찾은 이 욕조는 구매한 지 10여 년 만에 다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 욕조는 코르크로 벽을 마감한 습식 욕실에 놓여 있다. “욕조를 이곳에 설치하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물을 채웠죠. 그러자 집 전체에 삼나무 향이 가득하더라고요.” 필립이 설명했다. “기적적으로 갈라진 그 균열이 저절로 없어졌어요.” 그들은 친구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저녁 식사 전에 몸을 담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는 장 콕토, 던컨 그랜드(Duncan Grant), 패트릭 프록터(Patrick Procktor),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세실 비튼(Cecil Beaton), 리사 브라이스(Lisa Brice), 낸 골딘(Nan Goldin),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아티스트와 작품을 줄지어 놓은 특별 출석부 같은 모양새다. 실물 크기의 남성 누드상은 얼마 전 드레스덴(Dresden)에서 도착한 작품이다. “여기로 이사 왔을 때까지도 어덤이 예술 작품을 몇 점이나 숨겼는지 몰랐죠.” 필립이 말했다. “작품이 아직도 여기저기서 계속 나타나고 있어요.” 이 집의 맨 꼭대기에 자리한 침실은 케이 도나치(Kaye Donachie)가 2007년 작고한 어덤의 어머니 말린(Marlene)을 그린 습작 초상화로 가득하다. 우아하고 차분한 그녀의 사진이 벽난로 위 선반에 놓여 있다.
유일한 비구상 작품이 부엌 벽난로 위에 걸려 있다. 초상화가 더피 에이어스(Duffy Ayers)가 한 아티스트의 스튜디오를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1953년부터 102세가 되던 2017년까지 이 집에 살았다. 신기하게도 더피는 어덤의 생일날 숨을 거뒀고, 그녀 역시 쌍둥이였다. “이 작품은 그녀의 화실을 표현한 것으로 그녀가 여기 살 때 복도에 걸려 있었죠.” 어덤이 말하면서 그림을 가리켰다. “그 그림은 여전히 그녀가 여기에서 저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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